<連載> 여덟번째! [오래된 미래] 코리아글로브·아시아투데이 연중기획

by KG posted Jan 28, 2014
올해로 열세 살 초등학교 졸업반이 된
사단법인 코리아글로브의 상임이사
김석규 인사드립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우리 최영재 이사(아시아투데이 정치부 부장)와
연중기획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대한민국의 元勳 조영진 고문님을 비롯한 고문단
그리고 조 민 이사장님을 앞세운
(오래된 미래, 말머리를 주셨습니다.)
좌우 / 팬코리안 / 아시아네트워크
스물한 분 이사진은 물론
조용진-안경환-박원길-우실하-정형진-김운회-구해우,
말 그대로 코리아글로브 펼치시는
경당 교수진 분들의 말씀을 받아
대서소 식으로 밤새워 올립니다.

많은 단골의 꿈과 선비의 뜻을
제대로 연중기획에 담지 못한다면
그는 오로지 모자란 제 그릇 탓입니다.

꼼꼼이 봐주시고 날카롭게 꾸짖어주소서.
(가까운 연재부터 거꾸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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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학자, 중국 시안(西安)서 중국몽(中國夢)'찾는다

[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 특집 기획] 아시아투데이 코리아글로브, 국제학술세미나 개최

기사수정 [2014-05-29 08:27]              


아시아투데이 최영재 기자 = 연중기획 ‘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공동진행하고 있는 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이사장 조민)는 오는 6월 4일에서 6월 8일까지 중국 시안(西安)에서 ‘중국몽(中國夢)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한·중 우호협력을 위한 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포럼은 ‘중국몽을 찾아서’라는 대주제 아래 △리우광링 서북정법대학교 경제대학 학장이 ‘중국몽과 2019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까오동신 시안시 사회과학원 부원장이 ‘중국몽과 2019년 한·중관계’를 △조민 통일연구원 연구본부장이 ‘중국몽과 인류몽(人類夢)’을 △진월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가 ‘하늘겨레와 중화민족이 함께 펼쳐갈 미래’를 각각 발표한다.

본지는 시안 등 중국 현지에서 벌어지는 국제학술토론회와 역사기행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할 계획이다.  

본지는 연초부터 ‘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 기획을 통해 빙하기가 끝난 뒤 1만여 년 동안 ‘유라시아의 길(European Road))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제시했다. 먼저 제사장의 문명이 들어선 ‘해의 길(Solar Road)’과 북방 유목 겨레들이 유라시아 대륙 곳곳에 문명의 거점을 세우던 ‘초원의 길(Steppe Road)’가 있었다.  

이어 신라와 당나라가 함께 했던 ‘비단길(Silk Road)’과 비로소 유라시아를 하나로 엮었던 ‘칭기스칸의 길’, 그리고 앗틸라가 지중해 세계에 끼쳤던 바와 같이 아시아에 ‘주어진 근대(近代)’를 안겼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길’이 펼쳐졌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은 물론 바다에서도 똑같이 내내 ‘바다의 길’로 이어져 왔다.

본지는 이 기획을 통해 ‘유라시아의 길’을 따라 코리아 역사공동체는 ‘유목사회의 자유주의와 인도주의(Nomad Liberalism & Humanitarianism)’인 ‘하늘겨레(天孫)’ 사상과 ‘홍익인간’ 이념을 키워왔고 앞으로 이를 지구촌 인류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중국은 강한성당(强漢盛唐) 이래로 유라시아 문명의 용광로(Melting Pot)였다. 오늘에 와서 서세동점의 상처를 넘어 유라시아가 ‘호혜평등한 벗’으로 나아가는 있어 큰 사명을 맡고 있다. 그럼에도 선민사상(選民思想)에 터잡은 중화주의는 이웃 나라들에게 큰 걱정을 끼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여섯 번째 ‘유라시아의 길’을 펼쳐야 할 때다. 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는 한·중(韓中) 두 나라가 손잡고 ‘초원의 길’과 ‘비단길’과 ‘바다의 길’ 그 셋을 아우른 ‘공존공영의 유라시아 문명’을 만들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박근혜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Eurasia Initiative)’, 중국의 ‘신(新)실크로드 구상’, 러시아의 ‘신동방정책(New East Asia Policy)’이 그 큰 길에서 각각 제 몫을 할 수 있다면 유라시아 대륙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3bong@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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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이 유라시아의 길을 같이 열자

두 번째 삼한- 고구려 부여 신라

기사수정 [2014-05-13 07:50]               글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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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유목겨레들의 우물인 바이칼에 해가 뜨고 있다.]

빙하기가 끝나고 1만년 동안, 비단길이 나타나기 훨씬 앞선 까마득한 옛날에 유라시아의 드넓은 땅 위에서 ‘해의 길’과 ‘초원의 길’이 펼쳐졌다고 이미 말했다. 그 어느 길이든 반드시 거쳐야 할 거룩한 곳이 있었으니 바이칼호(湖)다. 지구마을에서 가장 큰 담수호로 호수라기보다 바다와도 같은 바이칼 호반에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 언젠가 해를 찾아 떠난 제사장의 무리들이 그 앞에 섰다고 생각해보자. 여기가 곧 하느님의 바다라고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바이칼 - 첫조선 - 부리야트 - 코리

바이칼호는 신화 속의 천지(天池)이며 모든 북방 유목 겨레들의 우물이다. 지금도 그 거룩한 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자. 부리야트족이 있고 코리족이 있다. 부리야트는 불을 다루던 사람들이니 구리든 쇠든 상품을 만들어 ‘초원의 길’을 휘젓던 장사꾼들의 남은 자취다. 코리는 코리아의 뿌리말로서 ‘초원의 길’에 나타난 구리의 문명을 이끌던 사람들의 남은 자취다. 그 둘이 멀게 느껴지는가. 지도를 펼쳐봐라. 만주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다.

영남이나 호남이나 다 같은 코리안이고 대한민국 사람이듯이 그들은 처음부터 신시(神市)라 불렀던 아사달, 이름하여 홍산문명의 같은 피붙이였다. 또 옥과 구리 문명의 나라 고조선에서도 같이 살았다. 그러다 고조선이 기울게 되니 자연스레 일어난 나라가 그들의 이름을 딴 부여고 고구려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다. 고조선은 ‘닫혀있는 나라’가 아니라 바이칼호 권역의 문명과 늘 발걸음을 같이 하며 ‘초원의 길’을 함께 이끌었다는 것이다. 또 고조선이 무너질 무렵 북부여와 고구려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고조선을 무너뜨려 흉노와의 동맹을 끊는 것, 다시 말해 만주와 바이칼 권역의 ‘유라시아의 길(European Route)’을 끊는 것으로 한(漢)나라는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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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유라시아 문명사로 볼 때 곧이어 열릴 두 번째 ‘삼한의 시대’ 그 1000여년의 성격을 말해준다. 강한성당(强漢盛唐)으로 대표되는 중원의 세력은 어떻게든 만주와 바이칼 권역의 만남을 막으려 했고 고구려·발해 그리고 부여로 대표되는 하늘겨레의 무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땅으로든 바다로든 그 인연을 이어가려 했다.  

그 전반전은 중원의 뜻대로 되어 비단길이 표준이 되었지만 후반전은 하늘겨레의 바람대로 끝내 칭기스칸의 길을 열어 오늘 우리가 말하는 유라시아의 문명을 틀을 잡게 되었다. 이제부터 그 우물이 된 두 번째 삼한의 시대로 떠나보자.
◇조작된 신화, 한사군 탄생 그 101주년  

여행을 떠나기 앞서 반드시 짚어볼 데가 있다. 한사군(漢四郡)이다. 101년 전 일제의 조선 초대 총독 테라우치가 조선을 짓밟던 1913년. 세키노 다다시(關野貞)가 평남 용강군 허허벌판에서 2000년 동안 그 누구 눈에도 띄지 않았던 점제현신사비 (점蟬縣神祠碑)를 용케도 찾아냈다.  
이는 그 뒤 두고두고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는 증거로 널리 쓰였는데 참으로 친절하게 시멘트까지 발라서 세워놓았다. 일본육군 참모본부가 파견한 사코이 가게아키(酒勾景信) 중위가 광개토태왕비에 석회를 바르고 정으로 쪼아준 친절과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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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의 아버지 도리이 류조]

그 밖에 평양 남쪽 토성리토성(土城里土城)에서 잔뜩 찾았다는 봉니(封泥)가 있다. 봉니는 종이가 없던 시절 죽간(竹簡) 등으로 만든 공문서를 봉인하기 위해 흙덩어리를 붙이고 도장을 눌러 찍은 것이다.

그런데 먼저 봉니가 이리 많이 나올 수가 없다. 봉니는 공문서를 열면 부서지게 되어있다. 한 술 더 떠 희한하게도 잘 구운 봉니가 나온다. 노벨상감이다. 구워진 흙을 무슨 접착제로 2000년 앞서 대나무에 붙였는지 그 엄청난 과학의 비밀을 아직도 일본 사학계에서는 밝히지 않는다.
일찍이 정인보(鄭寅普) 등은 이 모든 것을 ‘한사군이 코리아 역사의 출발이며 그 한사군은 만주가 아닌 한반도에 있었기에 열등한 조선인들을 일본이 너그러이 황국신민으로 받아들여 개화시킨다’는 목적을 위해 꾸며낸 위조품으로 보았다.  

그를 증거하듯 1997년 중국 요령성 금서(錦西)시에서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이 압인된 봉니가 발견되어 비로소 일제의 올가미에서 벗어나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가 아닌 하북성 난하에서 요령성 대릉하(大凌河)까지 존재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를 길게 하는 까닭이 있다. 한사군이 지금의 북한 지역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조선총독부에 앞서 통감부 때 만철(러일전쟁 뒤 일본이 만주를 삼키려 세운 간판만 철도회사)의 의뢰로 동경대 도리이 류조(鳥居龍藏)가 지어낸 말이다. 그는 총독부를 움직여 ‘고구려 고적 조사사업’을 ‘한대(漢代) 낙랑군 유적 조사사업’으로 바꾸었고 그 뒤 먼저 말한 비석이고 봉니고 쏟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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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를 살았던 중국의 사마천이 쓴 <사기>나 <한서> 같은 춘추필법의 사서들조차 얼렁뚱땅 적은 한사군을 사실(史實)로 바꾼 것은 코리아의 시작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일제였다.

그런데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이를 정설로 받아들이니 중국이 ‘한강 이북은 China’라며 동북공정을 펼치기 얼마나 좋은가. 고작 태어난 지 101년 밖에 아닌 된 한사군의 이야기를 오늘도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 이제 그만 황국(皇國)사관의 망령에서 벗어나자. 이를 고치지 않고서 우리가 어찌 유라시아의 길을 논하겠는가.

◇두 번째 삼한, 고구려 부여 신라

최첨단 철기문명의 나라 고구려·부여·신라 그 가운데 부여와 고구려는 처음부터 한 뿌리였다. 해모수로부터 내려오다가 어느새 성이 바뀌어 고주몽이 된다. 부여는 흔히 말하는 북부여로부터 비롯하며 나중에 만주부여-남부여(백제)-열도부여(일본)로 퍼져나가면서 로마처럼 황해(서해)를 지중해로 삼는 동아시아 역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상제국을 이루게 된다.

북부여는 고조선을 이은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적장자로서 만주부여-남부여-열도부여 등이 모두 그 분조(分朝)이다. 나중에 부여 편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그 이름(Brand)에 깃든 정통성의 정치학을 헤아리지 않으면 왜 백제를 백잔(百殘)이라 치를 떨면서도 광개토태왕조차 북부여를 놔둘 수밖에 없었는지, 왜 백제가 그토록 지독하게 고구려와 싸우다가 494년 북부여의 멸망 뒤에야 비로소 성왕이 남부여 이름을 썼는지, 해독이 불가능하다.

고구려는 알려진 바와는 달리 〈신당서(新唐書)〉·〈당회요(唐會要)〉·〈문헌통고(文獻通考)〉 등 수많은 사서에서 엄연히 나오는 900년 된 나라다. 그 900년은 강한성당(强漢盛唐)이라 부르는 한(漢)족 문명의 전성기였다.  

그럼에도 그토록 긴 역사의 쟁투에서 수많은 북방의 유목 겨레들은 한화(漢化)되기는커녕 거꾸로 대륙을 유라시안 루트의 진지로 탈바꿈시켰다.  

이는 팽팽하게 맞섰던 남북조 시대와 달리 하늘겨레에게 늘 압도당했던 송나라(960~1279)의 불운이 잘 말해준다. 그 엄청난 에너지를 모아냈던 최초의 마그마 체임버(Magma Chamber)가 바로 고구려다. 강한성당 900년의 태풍을 피해 늘 북방의 유목겨레들이 숨어들어 다시 기운을 차려나온 항구가 다름 아닌 하늘겨레 고구려의 문명이었다.

또다른 계통으로 가라(가야)와 서라벌(신라)이 있었으니 가라는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이야기에서 보듯이 ‘바다의 길’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나라다. 가라라는 말부터 인더스 문명을 이끈 드라비다족의 물고기라는 뜻이다. 드라비다는 쌀농사 문명의 뿌리로서 한국어와 쏙 빼닮은 단어만 자그만치 1300여개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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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어문에 이은 목어]

비록 신라로 빨려 들어갔지만 가라는 일본 왕가의 뿌리로서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의 가장 큰 성씨로서 우리가 잊고 있는 ‘오래 된 미래’를 가르쳐주고 있다. 불교에서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밑천이 같은 쌍어문(雙魚紋)은 유대-바빌로니아-페르시아-인디아-미얀마-사천성-김해로 서로 오고갔으니 우리가 만들어갈 제6의 유라시아의 길에서 되살릴 일이다.

서라벌은 서라의 땅이란 말인데 서라나 지금의 시리아나 같은 말로서 해뜨는 동쪽 즉 새터를 뜻하니 아사달이다. <문무왕릉비문>에 투후제천지윤(투侯祭天之胤)이 나오는데 투후는 흉노 휴도왕의 태자로서 한무제가 관리하던 김일제(金日제)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김알지의 형제자매들이 한나라가 만리장성을 쌓게 만든 흉노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신라는 발해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는 후대신라 8~9세기에 그 역사의 값어치가 두드러진다. 그때는 역사시대 처음으로 바이칼-만주가 아니라 중원-강남-신라로 유라시아의 길이 열리던 비단길의 시대였다. 당나라는 고작 한 세기도 되쟎는 호황을 누리다가 ‘안사의 난(755~763년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일으킨 반란)’으로 인구부터 반으로 줄 정도로 망조가 든다. 그럼에도 비단길이 성황을 누렸던 것은 신라가 그 시장의 몫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다.

◇한중 두 나라가 열어가야 할 ‘미래의 길’

안타까운 바는 오늘 중국이 보이는 역사의 안목 부재다. 비록 코리아가 고구려-부여-신라 그 두 번째 삼한을 잇고 있지만 고려 이래로 신라계가 중심이 된 것이 사실이다. 하여 고구려를 잇겠다는 고려에서는 왕가의 첫손 꼽히는 교재가 당태종을 미화한 정관정요(貞觀政要)였고 조선은 먼저 말했듯 스스로 중화가 되려하기까지 했다.

그를 잊어버리고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을 넘어선 국사수정공정으로 코리안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다. 북경이 굳이 바라는 바가 고구려와 부여의 부활인가 아니면 비단길을 같이 이끌어가며 강한성당에 일조했던 신라의 지속인가.  
우리가 맞이해야 할 날은 지난 1만년 유라시아의 길을 지구마을로 넓혀 아름다운 새천년 ‘무등(無等)의 지구문명’을 만드는 미래다. 마침 6·25전쟁 때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두 나라가 연년생(連年生)인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주석 대에 이르러 참으로 따뜻하게 손을 마주잡았다.  

부디 바라건대 두 나라가 두 지도자처럼 손을 맞잡고 ‘초원의 길’과 ‘비단길’과 ‘바다의 길’ 그 세 ‘미래의 길’을 함께 열어나갔으면 한다. 아시아투데이와 코리아글로브는 곧 ‘북경-서안-낙양’을 거치는 역사기행을 떠난다. 그 주제처럼 두 나라가 함께 여는 아름다운 미래가 곧 ‘중국몽’(中國夢)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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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러시아 손을 잡고 '제 6의 유라시아'루트 함께 열자

가깝고도 먼 나라, 러시아
한·러 관계는 '유라시아의 길'을 연 문명이라는 역사 자부심 공유하는 관계 되어야...


기사수정 [2014-04-14 07:45]               글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러시아 지형세도
[러시아 지형세도: 들여다보면 ‘해의 길’ ‘초원의 길’ ‘제6의 길’ 다 보인다]

<편집자 주>
지금까지 연중기획 ‘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진행하면서 실크로드에 앞서 우리 겨레가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해의 길’ ‘초원의 길’ ‘바다의 길’을 누빈 사실을 언급했다. 그리고 이를 떠받친 정치이념이 민본(民本)도 민주(民主)도 아닌, 태초의 자유주의인 ‘하늘겨레(天孫) 사상’과 태초의 인도주의인 ‘홍익인간’ 이념이었다는 사실을 서술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조선시대 이후 그 전통을 다 잊고 어느 순간 스스로 중화(中華)가 되고자 더 지독히 굴었다는 슬픈 이야기까지 풀었다. ‘우리가 오랑캐다’는 곧 그 결론이었다. 이제 두 번째 삼한(三韓)인 고구려와 부여와 신라 이야기를 쓸 차례다. 그에 앞서 현재 박근혜정부가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현실의 러시아 이야기를 먼저 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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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잘 나오지 않는 러시아가 유라시아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러시아가 곧 유라시아다. ‘해의 길’ ‘초원의 길’ ‘비단길’ ‘바다의 길’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어느 때나 늘 있었다. 그 뒤에 ‘칭기즈칸의 길’이 있다. 그 뒤는 ‘제5의 길’인 서세동점(西勢東漸)이다.  

‘제5의 길’은 조선이 ‘중화(中華) 놀음’에 푹 빠져 있던 500년 동안 벌어진 천지개벽이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영국이 인디아를 어떻게 했고 오스만투르크가 어찌 되었다는 이야기는 줄줄 나오는데 러시아 이야기를 깊숙이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압록강 두만강 위로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였던 만주와 연해주는 관심 밖이었다. 연해주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유라시아는 달나라 옥토끼 이야기다.  

◇대한민국과 소련의 끈질긴 악연

일제 시대 당시 연해주에서 우리 선조들은 끝없이 피를 흘렀다. 자랑스러운 봉오동-청산리대첩만 알지 우리는 그 뒤 그 당사자들이 어찌 되었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그 승리를 일군 독립군들은 일본군의 대토벌을 피해 당시 소련(소비에트 연방)만 철석같이 믿고 연해주로 몸을 피했다가 일본과 볼셰비키의 합작품인 ‘자유시의 참변’으로 1921년 6월27일 3500명의 독립군이 떼죽음을 당했다.  

3500명이면 얼마나 많은 숫자인가. 상해임정에서 1940년 한 해 내내 악전고투 끝에 창설한 광복군이 영화 제목과도 같은 300명이었다. 그런데 그 12배였던 일제시대 최강의 독립군 전력은 민족해방을 달콤히 속삭이는 볼셰비키 손에서 하루아침에 녹아버렸다.

그렇다면 그 이념을 따라간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졌을까. 1937년 9월9일, 스탈린은 연해주의 18만 명 고려인을 일본 첩자의 침투를 막는다는 핑계로 느닷없이 중앙아시아로 끌고 갔다. 물론 그에 앞서 스탈린에 충성했던 한인 공산주의자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일본 첩자로 몰려 즉결처형되었다. ‘Asia-N’에 실린 김호준 선생님의 글이다.

『 김 텔미르 연해주고려인재생기금 회장의 한탄을 들어보자.
“나의 부친은 (원동의) 하바로프스크 시에 묻혀 있다. 어머니는 (러시아) 크림 주 옙파트라 시에, 외할아버지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주 미르자 촌에, 친할아버지는 연해주 수하놉카 촌에, 외할머니는 타슈켄트 주 사마르스코예 촌에, 그리고 친할머니는 카자흐스탄의 침켄트 시에, 형님은 연해주 크라스키노 촌에 묻혀 있다. 그러니 어떻게 이 고인들을 모셔 성묘를 할 것인가. 기가 막힐 일이다. ”』

이윽고 꿈에도 그리던 해방이 왔다. 자유시 참변 이래 만주 벌판에는 만주 호랑이 김동삼 장군(가곡 ‘선구자’의 실제 인물로 추정되는)을 비롯한 여러 김일성 장군이 있었다. 김일성이란 이름은 해방을 바라는 만주 벌판 동포들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소련은 해방된 조국에 김성주란 소련 앞잡이를 데려와서 그 바람을 무너뜨리고 1946년 2월10일 단독정부를 세워 한겨레에게 통일 대신 분단을 선물했다. 평양정권의 연평도 공격이 있었던 11월23일에서 정확히 65년 전인 1945년 11월23일 신의주에서 일어난 ‘신의주 반공 학생의거’를 소련군은 무력으로 짓밟았다.  

무엇보다 소련은 6·25전쟁의 전범이었다. 그도 종범이 아닌 주범이다. 1951년 들어 이미 전쟁은 끝을 바라봤지만 스탈린은 동유럽을 온전히 공산화할 때까지 미국의 발목을 잡고 한편으로 중국 공산당의 전력을 줄이기 위해 휴전 때까지 한없이 협상을 끌며 이 강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1921.6.27러시아적군
[대한독립군을 몰살한 오합지졸 소련 적군. 저들 또한 볼셰비키에 속았을 뿐이다.]

◇자존심 상하는 러시아(대한민국을 만날 때)

그렇지만 이제 현실의 러시아는 과거의 소련과 다르다. 한국에서 러시아의 한인 동포인 고려인에게 별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러시아에선 그들이 연해주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는 오래도록 줄곧 평양정권이 정신 차리도록 직간접의 압력을 넣고 있다.  

러시아는 코리안들을 만날 때 세 가지로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첫째 코리안들이 역사를 너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6·25전쟁에서 소련의 역할과 고려인과 스탈린 얘기가 나올 법도 한데 일부러 물어봐도 모른다고 한다.  

둘째 코리안들이 러시아 문화를 너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니 차이코프스키니 유리 가가린을 모른다고 해도 고려인 출신 위대한 음악인 ‘빅토르 최’를 모르는 코리안이 대다수라는 사실은 러시안들에게는 큰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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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1962.6.21.~1990.8.15.) 러시아 가왕이자 락의 황제]

러시아는 유라시아에서 ‘제5의 길’을 튼 위대한 문명의 나라였다. 코리아도 먼 옛날 유라시아의 길을 걸었다. 이제 한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유라시아에서 서세동점의 길 이후 ‘제6의 유라시아 루트’를 열 때가 왔다. 몽골이든 터키든 카자흐스탄이든 헝가리든 먼 옛날을 잊지 않고 유라시아를 가로질러 코리아를 사랑하는 벗들이 아직도 있으니 ‘제 6의 유라시아 루트’를 한?러가 함께 열면 러시아의 앞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러 관계는 둘 다 오랑캐라는, 다시 말해 둘 다 유라시아의 길을 연 문명이라는 역사의 자부심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하늘겨레’와 ‘홍익인간’의 이념을 애플처럼 우리만 독점할 것이 아니라 구글의 안드로이드처럼 나눠 써야 한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만의 것도 아니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게 곧 ‘슬라브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다.

◇한·러는 문명으로 만나고 인맥으로 하나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부터 스스로 두 문명이 함께 섞이는 길이 되어 시베리아 횡단철도보다 더 길고 넓고 높은 인맥부터 쌓을 일이다. 러시아 두마에서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들까지 10년 넘게 맡는 의원들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러시아를 상대하는 정치인과 외교관이 볼 때마다 바뀐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러시아같은 큰 나라는 서두른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다. 러시아는 코리아가 비록 지금은 작지만 통일이 되면 21세기를 함께 이끌어나갈 ‘문명’이라고 판단하면 전략적인 접근을 하게 되어있다. 그때라야 비로소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제6의 길’은 놓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유라시아 횡단철도 같은 실무 논의는 언제든 서로 이익만 맞으면 추진되는 사업일 뿐이다. 우선 시베리아 횡단철도보다 더 길고 넓고 높은 인맥부터 쌓을 일이다. 그리 되면 러시아 불곰은 기뻐서 백두산 호랑이와 끌어안고 춤을 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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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간가변 고속대차'로 철의 실크로드 기술 난제 첫단추 풀었다

한반도횡단철도와 대륙횡단철도 이으려면 북한철도 문제 등 해결과제 첩첩

기사수정 [2014-03-31 08:58]


아시아-횡단-철도-궤간가변-고속대차-구간 (1)


아시아투데이 최영재 기자 = ‘궤간가변 고속대차’의 혁명성은 궤도 폭 변화에 상관 없이 부산에서 유럽까지 한 열차로 화물을 나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철도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유럽까지 차량 하나로 통과할 수 있는 열차를 개발해서 동북아 물류 시스템을 누가 선점하느냐에 국부가 좌우될 것이다”고 말하고 있었다.

현재 열차 궤도는 광궤(1520mm)·표준궤(1435mm)·협궤 등 세 종류다.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몽골, 벨라루스, 서유럽국 중 핀란드는 광궤를 쓰고 있고 한반도와 중국, 폴란드, 서유럽은 표준궤다. 그래서 궤도 폭이 다른 국가를 통과할 때는 국경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철도 간격 재구성, 새로운 선로 건설, 이중 궤간, 환적(짐 바꿔 싣기), 대차 교환(바퀴부분만 빼고 차량 윗부분을 통째로 들어서 바꿈), 궤간 가변대차(차량에 달린 바퀴가 움직여 폭이 다른 궤도에 적응하는 열차) 등이다.

이번에 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궤간 가변 대차’를 쓸 경우 국경 통과 절차만 끝나면 즉시 운행할 수 있다. 컨테이너를 옮겨 싣는 ‘환적’이나 기차 자체를 갈아끼우는 ‘대차 교환’ 시설에 투자할 필요도 없다.  

물류 유통에서는 시간이 비용이고 생명인 만큼 경제성을 살리는 데는 이 방법이 혁명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기술 수준으로 궤간가변열차는 안전성이 떨어져 속도를 낼 수 없고, 2500∼3000km 정도 운행한 뒤에는 계속 보수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물론 앞으로 한반도 횡단철도와 대륙횡단철도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가장 큰 과제는 북한지역의 철도 문제다. 북한 지역의 철도를 국제기준에 맞는 속도와 시스템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재건해서 한국의 철도와 연결하고 대륙 철도와 다시 이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 철도는 현재 대륙 철도와 네 곳이 연결되어 있다. 신의주역과 중국 단둥(丹東)역, 만포역과 중국 지안(集安)역, 남양역과 중국 투먼(圖們)역, 두만강역과 러시아 하산역이다.

다음 과제는 철도 시설과 차량 문제다. 우선 국가별로 다른 신호시스템을 표준화하거나, 어느 국가의 동력차량에도 적용가능한 차상 신호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이런 표준화 작업은 이번에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한 ‘궤간가변 고속대차’기술과 함께 진행하는 것이 낫다.

또 전철화 및 비전철화 구간 문제도 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전철 구간과 비전철 구간에 상관없이 운행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Hybrid) 방식 추진 장치가 필요하다.

대륙횡단철도의 경제성을 위해서는 컨테이너 열차의 속도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 이와 관련,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동북아연구실장은 “남한지역과 북한지역의 철도를 연결해서 대륙횡단철도와 연결만 하면, 현재 상태로도 모스크바나 동유럽까지는 경제성이 있다”고 말한다.  

또 대륙횡단열차가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적절하게 유지·보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표준화한 유지보수품 공급 체계와 생산체계가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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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 4편, 우리가 오랑캐다!

중화가 되고자 형제를 오랑캐로 만든 소중화주의


기사입력 [2014-03-03 09:25]            글=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역사왜곡하며 ‘소중화’ 자처한 조선의 왕들...하늘겨레 망각의 세월]

◇고조선은 첫 삼한(三韓, United States of Korea)

‘첫 조선’(고조선)은 요하문명으로부터 이어지는 ‘제사장의 문명’이자 ‘홍익인간의 문명’이었다. 고조선은 첫 삼한(三韓)이었다. 어차피 소리만 빌린 한자를 빼고 보면 삼한은 세 하느님의 나라다. 요즘 말로 하면 USK(United States of Korea)가 되겠다.  

그 연방은 시대에 따라 시간차가 있다고 보인다. ‘제사장의 문명’을 이은 이들은 먼저 ‘神 한’(진한)이 될 것이다. ‘초원의 길’을 따라온 최첨단산업의 CEO들은 다음으로 ‘머리 한’(마한)이다. 유통업의 CEO들은 끝으로 ‘불 한’(변한)의 터주대감이 되었을 것으로 헤아려본다.  

이는 곧 고조선이 시대에 따라 ‘유라시아를 통튼 제사장의 몫’, ‘홍익인간의 정치 영향력’ , ‘엄청난 시장지배력’ 으로 시나브로 중심이 달라지면서 차츰 유라시아에서의 지위가 낮아지는 과정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드디어 ‘쇠의 시대(철기시대)’에 접어들면 유라시아 곳곳에 다 제사장이 들어서고 홀로서기를 하게 된다. 그에 따라 이웃한 중원에서도 한족(漢族)이라는 문명의 구심이 새로 떠오르게 된다. 한나라 무제가 고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땅에 곧장 두 번째 삼한의 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 들어섰다는 것이 곧 그 엄청난 시대의 변화를 웅변하는 것이다.

◇사라진 ‘첫 삼한’과 너나없이 저지른 역사왜곡

일제시대 조선사편수회가 저지른 만행의 핵심은 고구려·백제·신라 이전의 우리 역사를 지워 버린 것이다. ‘유라시아는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길’이라 했는데 그 드라마 앞쪽의 3/5 필름을 숫제 지워버리고 드라마의 처음을 한사군(漢四郡)으로 잡아 드라마 이름을 아예 ‘한반도는 2천년 조선의 길’로 바꿔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역사왜곡을 일본만 했을까. 동북공정으로 악명 높은 차이나(China)가 있다. 그들은 제 평가는 높이고 남의 평가는 낮추는 ‘역사의 분식회계’(粉飾會計) 즉 춘추필법(春秋筆法)이란 말장난으로 2000년 동안 늘 우리 역사를 왜곡했다.  

예를 들면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화살에 눈을 맞아 애꾸가 되어 도망간 당 태종이 그 와중에 양만춘에게 비단을 하사하고 격려했다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바는 역사왜곡의 중심에 우리 스스로가 있었다는 사실(史實)이다.

작은 역사왜곡에는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이 있다. 삼국사기를 보면 팩트(fact)는 둘째 치고 평가에서 김부식은 당송(唐宋)의 사가(史家)들과 춘추필법이라는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조선의 왕들은 더 큰 역사왜곡을 했다. 조선 태종은 서운관(書雲觀)의 고서(古書)들을 주자의 말에 어긋난다며 종로네거리에서 불을 질렀다. 세조, 예종, 성종은 아예 3대에 걸쳐서 온 나라에 사서(史書)수거령을 내려 고조선비사, 표훈천사, 고려팔관기, 대변설, 조대기, 삼성밀기, 진역유기 등을 비롯한 수만 권을 없앴다. 
 

[조선의 왕들은 창덕궁에 대보단을 만들고 명나라 왕들의 제사를 지냈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조선식 사대

조선 숙종 때 창덕궁 후원에 만든 대보단(大報壇)이란 제단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군을 보내줬다고 명나라 신종을 모신 곳이다. 이곳에서 숙종이 몸소 술을 올리고 종묘에서 제 조상님 모시듯 치성을 드렸다. 영조는 거기다 명나라 태조와 의종을 더했다. 명 태조는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정해줬다고, 의종은 남한산성에 구원군을 보내줬다고 그 은혜를 갚겠다며 아예 세 사람의 기일마다 제사를 올리라고 규정까지 내렸다.  

온 천지에서 망한 명나라 왕들을 오로지 조선에서만 제사를 지낸 것이다. 압권은 정조다. 임기 24년 동안 딱 한 해만 빼고 제사 올리는 기록을 세웠으니 아비인 사도세자보다 죽은 명나라 왕들이 더 위였다. 그도 모자라 정조는 유생들과 무인들에게도 제사 참석을 의무화해 빠지면 과거 응시 자격을 뺏고 관리들은 벌까지 주었다.  

고종은 어떤가. 올해가 갑오전쟁-동학혁명 120주년인데 제 나라 백성이 일본군에게 도살되는 그 와중에도 명나라 왕들의 기일을 지킨다고 바빴다. 대한제국은 아예 내놓고 환구단에서 천제를 올리며 “중화문명의 정통이 명나라를 거쳐 조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말했다.

이것이 조선식 사대의 실상이다. 이리하여 오늘 우리는 스스로 ‘하늘겨레’가 아니라 중화(中華)의 자손이라 믿는 얼빠진 역사인식을 가지게 됐다.

반만년 동안 우리 민족만큼 잘 먹고 잘 산 나라가 없다 했는데 왜 굳이 사대를 자처했을까. 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위화도 회군을 보며 무민공(武愍公) 최 영 장군의 충성심은 높이 사면서도 현실감각을 잃었다 생각하는가.

그때부터 세종 때까지 틈만 나면 초원지대로 물러난 북원(北元, 원나라의 또 다른 이름)은 명나라를 같이 정벌하자고 수없이 제안을 하였다. 조선은 그저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결국 북원은 알아서 50만 명나라 대군을 깨뜨리고 왕인 영종을 포로로 잡는다. 한족의 황제가 사로잡힌 최초의 사건조차 모르면서 오로지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 식의 역사인식으로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사대를 했어야 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다.


[여말 선초 우리의 군사기술은 강력했다. 사진은 당시의 신무기인 신기전]

영화에도 나왔듯이 조선 초기의 군사력은 막강했다. 신기전(神機箭)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미사일 기술은 세계 최고라서 명나라 사신들이 올 때마다 불꽃놀이를 보여 달라 조를 정도였다.  

그를 알아서 없앤 이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세조였다. 저 같은 왕이 또 나올까봐 스스로 군축을 한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청나라의 원조인 누르하치가 부모의 나라인 조선을 구하겠다고 정병 5만을 보내겠다고 청해도 들은 척도 않고 오로지 명군만 기다렸다.  

이유는 조선의 건국이념이자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자학에 있다. 조선은 고려말까지 4천여 년 이어온 하늘겨레와 홍익인간의 정치이념을 내팽개치고 중화를 다시 뒷받침한 주자학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인 정도가 아니라 그에 푹 빠져 조선이 망할 때까지 반만년의 유산을 다 갉아먹으며 사문난적(斯文亂賊) 놀이에 해지는 줄 몰랐다. 그러다보니 경술국치에 이르러 이 겨레는 빈껍데기가 되어있었다.


[고구려와 건곤일척의 전쟁을 벌인 수양제(왼쪽)는 그 바람에 나라가 망하고 당고조(오른쪽)도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었다.]

◇하늘겨레와 중화, 칸과 천자

과거 첫 번째 삼한의 전통을 이은 두 번째 삼한 고구려·백제·신라는 한결같이 ‘모두가 하늘겨레’임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오로지 ‘나만이 하늘의 아들’이라는 한족(漢族) 천자의 이념과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하늘겨레는 고조선으로부터 이어져오는 정치이념이며 그 짝이 바로 홍익인간이다. 반면 천자의 이념은 곧 중화이니 모든 세상을 제 발밑에 두어야 한다. 하늘겨레의 임금인 ‘칸’은 요즘으로 치면 이사회 의장이다.  

이사회는 안에서야 온갖 권력투쟁으로 피를 흘리지만 주주들과의 관계는 전혀 다르다. 그들의 지지를 얻지 않고서야 배겨날 수가 없다. ‘화백’이 그렇고 초원의 ‘코릴타이’가 그렇다. 정수일 문명사가에 따르면 하늘겨레의 한 갈래인 돌궐(투르크)은 텡그리(하늘)가 도는 방향으로 자리를 정해 동서남북이 아니라 동남서북이다. 당연히 사신들을 맞이할 때 서열이 없고 여러 왕들이 모여도 모두 다 칸으로 부른다. 마치 ‘김 사장’ ‘이 사장’ 부르듯이.  

그러나 천자는 다르다. 천자의 백성들은 하늘겨레가 아니라 그저 바닷가의 모래 즉 억조창생일 뿐이다. 자신은 하늘을 대신해 관리하지만 하다가 잘못해 모두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피조물인 억조창생 가운데 누가 감히 대들 수가 있는가.  

이를 모른다면 수·당과 고구려의 70년 전쟁에서 늘 이기기만 했던 고구려가 왜 끝내 무너졌는지 알 수가 없다. 609년 수나라의 인구가 4600만으로 추정되고 중원에는 3500만이 살았다고 한다.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건곤일척을 펼쳤던 때 동원한 군사만 113만이 넘고 보급병까지 치면 400만이 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인해전술이다. 2차대전의 사상자 5000만으로 세계가 경악을 했는데 인구대비로 보면 수·당과 고구려의 70년 전쟁에 어찌 견주겠는가.  

이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앞에서 ‘춘추필법’을 언급했다. 중화민족은 진 전쟁의 군사 수는 늘리는 게 아니라 줄여서 말한다. 더 나아가 고구려가 무너진 대가로 3500만이었던 중원의 인구가 참혹하게도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도 중화민족은 태연하게 당나라의 영광을 칭송했다. 87년이 지나 겨우 3500만으로 되돌아온 중원의 인구가 ‘안록산의 난’으로 다시 반토막이 났는데도 당은 145년을 더 버텼다. 이 모든 것은 사람을 ‘하늘겨레’가 아니라 ‘억조창생’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했던 참극이었다.

다행스레 두 번째 삼한(고구려·백제·신라)이 막을 내리고 코리아 역사공동체가 쪼그라들었을 때도 후고구려인 발해와 고려에 이르기까지 많이 옅어졌지만 나름대로 하늘겨레를 이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래서 해동성국 발해와 10~14세기 그 격동의 유라시아 루트에서 오롯이 저 홀로 국체를 지켰던 고려가 가능했던 것이다.


[조선의 개국 공신인 오랑캐 여진족 출신 이지란]

◇‘오랑캐’와 ‘되놈’이라는 말은 우리 얼굴에 침 뱉는 소리

오랑캐는 두만강 일대에 살던 여진족을 낮춰 부르던 말이다. 여진족 가운데 가장 뿌리 깊은 건주여진은 금나라와 청나라를 세운 이들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꽤나 낯익을 것이다. 그들은 곧 현재의 연변 조선족, 즉 재중동포처럼 고려 사람과 조선 사람과 뒤섞여 살았고 우리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며 특수관계로 이어져왔다.

요즘 드라마 ‘정도전’에 나오는 이지란(퉁두란) 같은 존재가 곧 건주여진이다. 그런데 그 여진의 땅과 사람이 곧 고조선과 고구려의 땅이자 사람이다. 그들은 발해에서는 서울이었고 서울 사람이었다. 그들은 조선 개국 이후 조선에 와서 지독하게 차별받는다. 관북은 버려진 땅이었으며 거기 간 장수들은 김종서와 남이부터 살아남는 이가 없다. 3박자의 마지막 결정타는 오랑캐라는 말이다. 지금도 지독한 욕이 ‘호로새끼’ 아닌가.

오랑캐는 부족 이름이기도 하고 말의 뿌리로는 오라비처럼 친족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말을 아예 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가장 인연이 깊은 하늘겨레였으며 지난 1000년을 빼면 한 나라 사람들이었다. 같은 말로 ‘되놈’이 있다. 우리말에 동서남북의 바람이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된바람이다. 그저 이북 사람을 뜻하는 말이 또 욕이 된 것이다.

◇초원의 길, 바다의 길을 아우른 복합문명 길잡이로 오랑캐를 복원하자

이제야말로 정신 차려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음식이 김치와 된장이 아닌가. 왜 된장인가. 콩의 원산지 만주에서 만들어졌으니 된장이다.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 그 뿌리의 2/3가 오랑캐이고 되놈인데 언제까지 그들을 욕할 것인가.  

이제 우리가 오랑캐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자. 한스승 환웅이 곰 부족에게 오라비 노릇을 했던 그 오랑캐가 코리아의 뿌리다.  

이제 600년의 미망에서 깨어나자. 하늘겨레로 홍익인간으로 다가오는 우주시대를 열자. 우리가 오랑캐다. ‘초원의 길’과 ‘바다의 길’을 아우른 복합문명의 길잡이 그 이름으로 오랑캐를 당당히 복권시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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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3)유라시아 대륙 누비던 단군과 칭기즈칸...이젠 코리안이다

"8000만 팬코리안이 80억 인류를 섬기며 통일시대를 열자"


기사입력 [2014-02-16 17:52]            글=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연중기획 ‘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1편 반만년 코리아역사공동체의 지정학, 2편 지경학을 다루었다. 2편 지경학편에서 삼한을 들면서 당대의 최첨단산업인 구리의 시대와 쇠의 시대를 이끌었던 코리족과 가라와 서라벌을 말했고 유통산업을 지배했던 불의 대장이자 바다의 왕자 부여계를 말했다. 또 ‘먹자 산업’을 가르쳐준 고마운 남방 문화에 대해 말했다. 이제 우리는 3편에서 지정학과 지경학에 이어 역사시대를 상징하는 우상(Icon)으로서 사람을 다루겠다.

먼저 환인(桓因)이 있다. 올해가 단기 4347년이다. 독자 여러분은 ‘환기’나 ‘배달기’가 생소할 것이다. 우리나라 한쪽에서 쓰는 연호인데 환인으로부터 몇 년, 환웅으로부터 몇 년 이런 식이다.  

◇잃어버린 ‘신화시대’를 위해 단기(檀紀)를 되찾자

그리 치면 서기 2014년 올해는 환기 9211년 배달기 5911년인 셈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 있다. 환기나 배달기를 쓰자는 말이 아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단기는 써야 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 단기를 쓰지 않았다. 박대통령이 통일시대를 열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때에 단기를 써야 할 것이다. 역사시대의 처음인 신화시대를 말하고자 함이다.  

환인(桓因)은 곧 하느님이다. ‘역사 되찾기’를 위해 애쓰는 분들은 일제 총독부가 광개토태왕비 조작하듯이 삼국유사에서 석유환국(昔有桓國)이라 되어있음을 석유환인(昔有桓因)으로 왜곡해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시간대를 서기 뒤로 반토막 내었다고 꾸짖는다.  

그런데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어차피 그 신화의 시대는 지금의 역사학으로 맞다 틀리다 말 못하는 때다. 거꾸로 일제 총독부의 후손들이 허탈해 하도록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도리일 듯하다.

앞서 글에서 말했듯 ‘해의 길’이 열리던 때에 이집트 파라오처럼 스스로 하느님이거나 때로는 하느님의 아들인 제사장들이 대를 이어 나왔다. 부도지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홍익인간의 건국 신화만 있는 게 아니라 창세신화도 있다.  

이 대목에서 위서(僞書)니 뭐니 떠들 까닭이 없다. 지금 신화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도지를 꼭 사서 한번은 읽어보실 것을 권한다. 그 창세신화란 게 마고로부터 시작하는 유라시아 이야기의 집대성이요 결정판이자 효시(嚆矢)다. ‘해의 길’로 나아갔으니 당연히 유라시아 창세신화의 신화소는 닮을 수밖에 없지만 특히 부도지는 마고라는 여성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어쨌든 마고를 이어 사람이 신성(神性)을 잃고 타락하는 과정 그리고 뿔뿔이 흩어졌다 가닥을 잡으며 어느 때 환인이 나타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역사시대 그 앞에 팡게아 대륙이 있었는지 아틀란티스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연히 사람들이 그 긴긴 빙하기를 살아남으며 불 쬐며 동굴 안에서 그림만 그렸겠는가.  

‘빙하기 앞에는 참으로 밝은 날이 있었으며 우리 조상들이 잘못해서 현재의 고난이 계속된다. 그러니 참고 기다리면 다시 하느님이 나타나리라’ 이런 집단 무의식이 신화로 나타난 게 아니겠는가.  

역사상 훨씬 뒤에 나타나는 중동의 창세신화에 비해 여성성이 먼저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부도지’에 실린 이야기는 우리가 곱씹을 만하다.

◇잃어버린 하느님 ‘환인(桓因)’을 복권시켜야  

한마디로 ‘환인(桓因)’이란 한자어의 하느님은 ‘해의 길’에 접어든 인류의 잃어버린 고향이자 꿈인 당대의 ‘오래 된 미래’다.  

하기에 우리는 우리말로 하느님을 당당히 복권시켜야 한다. 하느님이란 ‘오래 된 미래’는 지금도 다가올 우주시대에도 유효하다. 인류가 안다고 나서지만 우리가 아는 우주는 2+1이다.  

하나는 우리는 먼지다. 우리의 뿌리인 해가 이 은하계에 2천억 개가 넘게 있다. 그 은하계가 이 우주에는 또 수천억 개가 넘는다고 하지 않는가.  

또 하나는 우리는 우주다. 우리 몸 안에 100조 개의 세포가 있다 한다. 수십억의 사람이 모인다고 하면 곧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즉 이 우주의 별만큼의 수가 되는 것이다. 별이 사람이 되고 다시 죽어 별이 된다는 말도 성립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 우주는 73%가 암흑에너지고 23%가 암흑물질이다. 다시 말해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하다는 게 지금 인류가 도달한 명백한 진리다.

하느님 다음은 누굴까. ‘환웅(桓雄)’이라는 한자어로 칠갑이 된 한스승이다. 배달기로 따지면 기원전 4천 년 무렵이니 인류문명의 싹이 막 틀 때이다. 물론 ‘해의 길’과 ‘초원의 길’과 ‘바다의 길’이 겹친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터전이 가장 유리했겠지만 이때가 되면 인류문명은 다극화로 간다.  

다시 말해 곳곳에 학교가 세워진다. 앞에서 하느님 얘기를 길게 했다. 요약하면 ‘한스승’이 동아시아든 중동이든 인디아든 적어도 세 곳 넘게 나온다. 그를 통해 인류는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무시무시한 자연으로부터 더 큰 자유를 얻게 된다. 어찌 ‘홍익인간’하지 않을 수 있겠나.

◇단군과 석가세존, 예수, 그리고 칭기스칸  

하느님과 한스승 다음은 누굴까. 단군(檀君)이라는 한자어로 칠갑한 한임금이다. 그 이름은 저 북쪽에서는 ‘텡그리 옹군’이라고도 했고 우리는 지금까지 단골이란 말로 남아있다. 이 때가 되면 가장 유치한 수준의 나라가 지구마을 곳곳에 들어서게 된다.  

우리가 좀 들어봤다 싶은 굵직한 나라나 겨레의 경우 거슬러 올라가면 다 이때 꽃을 피웠다. 이 연중기획 1편에서 말했듯이 그 앞은 몰라도(또 그때는 모두의 시대다. 어찌 제 조상만 그렇다 무식하게 말할 수 있나.) 이때에도 제 뿌리와 조상만 외롭게 문명화되었다고 우기는 나라가 있다면 스스로 집단자폐증에 걸렸다고 볼일이다.  
하느님과 한스승과 한임금 다음은 누굴까. 성인이라는 한자어의 거룩한 분들이다. 그로 떠오르는 분은 석가세존인 고타마 싯다르타와 예수가 있다. 석가모니는 어쨌든 힌두를 걸러내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모두가 브라만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또한 엘로힘과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를 넘어서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모두에게 몸소 임하셨다. 이 두 분을 통해 우리는 우주와 티끌이 마치 블랙홀과 화이트홀처럼 하나로 만나는 기적을 이미 맛보았다.  

그 다음은 또 누가 있을까. 바로 테무진 이란 이름의 칭기스칸이 있다. 한임금의 재림이다. 석가세존과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하느님이란 이름의 한어버이와 한스승을 번갈아 넘나드니 그 다음은 누가 한임금의 몫을 해야 하지 않겠나.  

‘해의 길’과 ‘초원의 길’과 ‘비단 길’을 이어 칭기스칸은 네 번째로 유라시아를 하나로 이었다. 비록 남송에게는 각박했지만 그는 유라시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었다. 근대문명의 씨앗이 여기서 뿌려졌다고 봐도 좋다.  

이제 다가올 홀로그램 시대-로봇시대-유전자혁명의 시대-우주시대에 누가 우상이 될 것인가. 코리안들이 3박자에 미치듯 ‘3위1체’는 특정종교가 아닌 인류문명의 뿌리이고 공통자산이다. 모두가 하느님으로서 ‘무등의 꿈’과 ‘홍익인간의 뜻’과 ‘공존공영의 길’을 이끄는 한어버이자 한스승이자 한임금이 되어야 한다.  

다른 이들에게 숙제를 떠 넘기기 앞서 먼저 코리안 8천만부터 나서보자. 전체 인류 80억의 1/100이다. 우리 코리안이 전체 인류를 ‘일당 백’으로 섬겨보자. 연중기획 ‘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우리 코리안이 그렇게 통일시대를 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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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유라시아이니셔티브](2)고조선·삼국시대·고려의 생활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지경학(地經學): 과거나 현재나 먹고 사는 길 따라 역사가 열린다


기사입력 [2014-02-03 08:22]            글=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왜 처음에 요하 일대에서 우리 옛 조상들은 그 좋은 구리나 쇠를 놔두고 옥(玉)을 만지작거렸을까. 이 분야의 권위자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무덤에서 옥기(玉器)는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다. 대다수가 구부러진 곡옥(曲玉)인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게 다 해고 달이다.  

다시 말해 원시신앙이자 뿌리신앙이다. 지금도 우리가 제사 지낼 때 올리는 촛불이 곧 해이자 달이다. 뒷날 나오는 비파형 청동검도 그 쓰임새가 바람 부는 들판이나 산꼭대기에서 꺼지지 않을 불꽃 생김새의 촛불인 셈이자 곡옥의 후손이다.

◇옥(玉)과 구리 문명의 나라 고조선  

그러다가 신석기가 지나고 구리의 시대와 쇠의 시대로 접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첨단의 문명을 이끄는 이들이 그 이름으로 역사시대를 다시 연다.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정벌했을 때 열도에서 고려를 고(高)코리라 몽골을 맥코리라 불렀다.

다시 말해 고비 사막 동쪽의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게 다 코리족이다 이 말인데 그 코리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구리다. 구리를 다루는 최첨단의 환인과 환웅과 단군이 다시 나타나신 게 바로 ‘초원의 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자어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역사가 보인다. 단지 그 소리를 빌려썼을 뿐인데 구려(句麗), 구절마다 아름답다 이 따위 소리를 하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구리나 한자어 구려나 고려나 다 그 말이 그 말이다. 이 즈음이면 고구려를 세운 이들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현재로 치면 ‘구글’쯤 된다 보면 된다.  

◇최첨단 철기문명의 나라 고구려,백제,신라  

그렇다면 쇠의 시대는 뭐로 봐야 할까. 이 또한 이 분야의 권위자인 동양대 김운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쇠는 새고 또 해이다. 다시 말해 하늘겨레 즉 천손민족이다. 그래서 새인 까마귀의 신화 삼족오(三足烏)는 어느 순간 만주에서부터 열도까지 나타나는 것이다. 까닭은 간단하다. 최첨단이니까.

쇠의 길을 살펴보면 두 갈래가 먼저 보인다. 하나는 먼저 온 ‘가라(伽倻)의 길’이다. 김해는 쇠(해)의 바다다. 그 위에 보이는 김천은 쇠의 샘이다. 한마디로 엄청난 부자들이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센 부자들이 나타났다. 신라라 부르는 서라벌이다. 서라벌은 그 위로 달구벌(大邱)로 이어진다. 닭의 벌은 곧 계림이고 그 계림이 서라벌이 아닌가. 그 위에 사벌인 상주가 있다. 또 그 위로 쇠벌인 철원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당연히 유라시아 지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렇다면 두 번째 삼한(첫 번째 삼한은 고조선 때의 삼한이다.)에서 우리가 백제라 부르는 부여는 또 무언가. 이 또한 당대의 글로벌기업으로 짐작된다. 멀리 발칸반도로부터 중앙아시아에서 만주까지 곳곳에 나타나는 부르항산(육당 최남선은 백두산을 일러 불함문화론을 설파했다.)에 이르기까지 코리족과 한 갈래인 오늘의 부리야트족까지 온데 그 말이 널려있다. 먼저 말했듯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먼 옛날에 땅이름은 곧 로제타 돌의 글자와도 같은 값어치가 있다.  

부여든 부르항이든 부리야트든 모두 불과 닮은 말이니 곧 대장간이다. 다시 말해 먼저 나온 구리든 뒤에 나온 쇠든 그걸 공장에서 손을 봐야 서너 배 이익을 남기지 않겠는가. 부여 계통은 한마디로 장사꾼이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죽으나 사나 대륙만 누볐던 그 계통과 달리 부여계들은 지금의 서해 즉 황해를 자신들의 지중해로 삼고 만주에서 열도까지 또 만주에서 황하와 양자강을 건너 동남아까지 말 그대로 바다의 왕자 노릇을 하였다. 그 바탕이 그 엄청난 장사 기질임은 두 말할 까닭이 없다.

그렇다면 대륙의 길 말고 바다의 길에서 나타나는 최첨단 또는 장사는 어떠했을까. 먼저 그 유명한 가라의 김수로 왕과 아유타 국에서 왔다는 허황후 얘기부터 들어보자. 김해에 가보면 알겠지만 그 두 분을 만나는 순간 아름다웠던 환상이 깨어진다. 부부가 합장은 고사하고서라도 무슨 원수가 졌는지 엄청나게 묘가 멀리 떨어졌다. 게다가 아내의 묘가 훨씬 더 크다. 이는 곧 아름다운 신화가 실은 두 정치세력이 함께 했음을 나타내는 이야기임을 뜻한다. 조선조 이래 우리가 버릇이 잘못 들어서 늘 북쪽을 바라봐서 그렇지 지도를 펼쳐보자. 코리아에게 남쪽으로 끝없이 열린 바닷길은 지금이나 먼 옛날이나 노다지 길이다.

◇‘바다의 길’로 코리아에 들어온 쌀농사와 염장문화  

그 길로 쌀농사라는 첨단문명이 먼저 전해졌다. 쌀은 언제부터 먹었을까. 경기도 고양의 가와지 볍씨가 나타나기 전에는 기원전 2천년으로 보다가 이제 대륙과 같이 기원전 5천년으로 본다. 먼저 누누이 말했듯 생각해보라. 그 노다지 길로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우리가 아직 몰라서 그렇지 허황후가 단 한 분이 계셨을까. 단군처럼 수없이 많은 허황후(남녀 가리지 않고)가 계셨을 것이다. 그리 되면 지금 김해의 두 분 묘처럼 그렇게 그림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길로 쌀농사만 전해졌을까. 아니다. 인디아에서 동남아까지 많이 다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닷길로 엄청나게 넘치고 기름진 염장문화가 들어왔다. 김치와 된장으로 대표되는 우리 발효식품의 전통문화에서 배추를 비롯한 풀도 있고 콩도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게 소금과 젓갈이다.  

우리는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역사를 다시 쓸 뜻을 세워야 한다. 보라. ‘해의 길’과 ‘초원의 길’은 어디로 사라지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훨씬 이후에 나타난 ‘비단 길’만 주워섬기고 있지 않은가.  

◇실크로드보다 훨씬 오래된 코리아의 ‘해의 길’, ‘초원의 길’

이제 그 궁색함과 외로움을 쓰레기통에 넣자. 연중기획 내내 확인하겠지만 코리아는 반만 년 내내 딱 20세기만 빼고 잘 먹고 잘 살았다. 여기서는 그 첫머리니 굵직한 몇 가지만 말하겠다.  

먼저 고조선 시기를 보자. 그 무렵은 ‘해의 길’에서 ‘초원의 길’에 이르는 때다. 옥기에서 비파형 청동검까지 이어지듯 제사장의 무리들이 이어가던 그 2천년의 시기는 하이데커 말마따나 역사시대가 열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웠다. 고조선은 일단 유라시아를 통틀어 제사장의 몫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홍익인간으로 상징되는 정치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큰 것은 그 둘을 밑받침하는 엄청난 시장지배력을 가졌다. 당연히 그 긴 시간 내내 무등(無等)의 하느님 나라, 한자어로 말하면 태평성대가 이어진 것이다.

쇠의 시대에 접어들자 모든 게 달라진다. 뒤에 자세히 말하겠지만 하도 오랜 세월이 흘러서 유라시아 곳곳이 다 제사장으로 알아서 홀로서기를 한다. 당연히 이웃한 중원에서도 오랜 땅따먹기 패권다툼을 거쳐 한족이라는 문명의 구심이 새로이 떠오른다. 게다가 구리의 시대와 달리 쇠의 시대의 생산력과 환경의 변화는 말 그대로 비약에 접어든다.  

그럼에도 부자가 망해도 3대를 간다고 여전히 두 번째 삼한인 삼국시대는 최첨단 산업과 유통산업, 식품 산업이 어우러지며 업그레이드된 문명을 이어간다.  

그 잘 나가던 세월은 고구려 평양성이 불타고 백제 백강전투에서 일본의 지원군이 전멸하면서 끝난다. 그 한참 뒤 고려를 보자. 지금 대한민국이 당대의 벽란도보다 더 큰 시장지배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세계 최고의 문명권이었던 코리아를 알고 자학사관에서 벗어나야  

나중에 말하겠지만 13세기 몽골은 비단 길에 이은 네 번째 유라시아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동업자는 다름 아닌 고려였다. 지금의 한미동맹이 세계가 부러워하는 혈맹이라고는 하나 어찌 ‘여몽동맹’에 명함이라도 들이밀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일본 정도의 경제력이라도 가져야 그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뒤에 낱낱이 말하겠지만 청나라를 볼까. 전성기의 청나라는 2차 대전 바로 뒤 미국이 가장 잘 나갔을 때처럼 세계 GNP의 30%(무굴제국은 25%)를 차지할 때였다. 이 분야를 파헤친 동국대 황태연 교수의 연구처럼 조선은 비록 임진왜란을 거치고 나서는 한동안 빈국이 되었지만 청나라와의 특수관계에서 조선은 무섭게 성장한다. 비교사적으로 볼 때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적 수준은 영정조 때만큼 산다고 보면 될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늘 반만 년의 가난이 어떻고 단군 이래 최초라니 이런 무지한 소리가 나오는 형국이니 좌우를 막론하고 어찌 ‘자학사관’에서 벗어나겠나. 어쨌든 우리는 유라시아의 길을 되찾아 제발 자학사관을 벗어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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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1부 역사기행] “오래된 미래, 홍익인간을 유라시아에 펼치자”

1편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지정학(地政學): 땅과 바다를 따라 사람의 길이 열린다


기사입력 [2014-01-20 06:17]            글=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상임이사  


인류문명의 나이는 얼마일까. 고민할 필요 없다. 1만년이다. 그때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지금까지 간빙기가 이어져오고 있다. 얼추 따져보자. 서기 2014년 올해의 단기는 4347년이다.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뿌리가 대충 반만년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반만년이라면 옆의 한족(漢族)이나 북쪽 대륙 길의 겨레들 그리고 남쪽 바닷길의 겨레들은 얼마나 될까. 당연히 그 겨레들도 반만년 앞뒤다. 우리 조상들이 자폐증 환자들도 아니고 이웃에는 모조리 문화를 모르는 야만인들만 사는데 수천 년 전 우리만 문명인이었겠는가. 이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가르친 것이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신화다.

다시 말해 ‘우리 코리안만 반만년’이라고 외치게 되면 아직 반만 년이 되도록 단군 할아버지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우리부터 귀를 뚫고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얘기하면서도 오로지 홀로 외롭게 수천 년 동안 ‘나 홀로 문명’을 꾸려왔다고 우겨대는 이웃 차이나(China·중국)를 타이를 일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이 있다.  

◇위대한 코리안 아니라 홍익인간 다시 유라시아에 펼쳐야  

이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독자들과 함께 떠나는 올 한 해의 역사기행의 목표는 ‘위대한 코리안의 발견’이 아니다. 그 목표는 ‘홍익인간’이다. 조선왕조를 앞뒤로 대가 끊긴 ‘홍익인간의 시대’를 유라시아에 다시 펼치는 것이 이 연중기획의 뜻이니 그 뼈대인 역사기행의 목표는 ‘홍익인간의 역사화’에 있다.  

그럼 이제부터 낱낱이 따져보자. 1만년 앞선 어느 날 빙하기가 끝났다. 오랫동안 추위에 떨던 인류의 조상들의 유일 신앙은 무엇일까. 해, 즉 태양이다. 그래서 단군이 자리 잡은 곳이 아사달이다. ‘아사의 달’, 즉 ‘아침 해가 처음 뜨는 땅’이 꿈이고 그 꿈을 찾아 인류가 해 뜨는 동쪽으로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아사달이 태평양 코앞에만 있을까. 아니다. 그 긴 여행의 길에 어디든 아사달이 나타난다. 아시리아(Assyria)나 그 서라벌(서울)인 아수르(Assur)나 둘 다 중동의 아사달이다.  

참을 수 없이 추운 북유럽에서부터 중동을 거쳐 중앙아시아 그리고 바이칼 호수를 거쳐 만주로 내려오는 길이 첫 문명의 길인 ‘해의 길(태양의 길)’이다.  

◇‘해의 길’, ‘초원의 길’, ‘바다의 길’이 모이는 한반도

그 다음에 나타나는 길은 ‘초원의 길’이다. ‘해의 길’이 뚫리고 한참이 지나 유라시아 대륙 북방 곳곳에 무리지어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이름하여 유목민들이다. 그들끼리 주고받는 시장이 열리는데 그를 잇는 길이 ‘초원의 길’이다. 보통 알고 있는 비단길(Silk Road)은 그보다 한참 뒤에야 나오는 막내들의 길이다.

‘땅의 길’ 말고도 ‘바다의 길’도 있다. 지금 인류의 첫 선조들이 살았다고 말하는 동아프리카에서 인디아를 거쳐 동남아를 거쳐 코리아로 오는 길이다. 이 또한 보통의 상식과 달리 ‘땅의 길’만큼 오래 되었다. 생각해보라. 당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여기서 눈여겨볼 매듭이 하나 나온다. 유라시아에서 이 ‘땅의 길’과 ‘바다의 길’이 겹치는 곳이 딱 하나다. 삼한(三韓)이라고 불렀던 옛조선(고조선)의 땅인 만주에서 한반도까지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영역이다.  

그래서 세계 고인돌 7만기 가운데 4만기가 한반도에 있고, 또 2만기가 전북 고창 일대에 있는 것이다. 세계의 금관 열 개 가운데 여섯 개가 여기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왜 여기에 다 몰려있을까.  

그 답은 다시 1만년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먼저 말했듯이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인류에게 유일 신앙은 해이고 그 길은 아사달, 즉 해 뜨는 동쪽이다. 다시 말해 도무지 알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에스파냐 여왕 이사벨이 콜럼버스를 보낸 것이 아니라 이사벨 여왕의 무리들이 몸소 태평양까지 온 것이다. 가다보면 아이도 낳고 아픈 사람도 생기고 그럼 그들은 가는 길에 자리 잡고 사는 것이다. 하지만 숭고한 사명을 지닌 제사장의 무리들은 해를 좇아 끝없이 땅으로 바다로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홍익인간의 비밀이 있다. 왜 다른 건국신화들과 전혀 다를 수밖에 없을까. 제대로 된 즉 가장 먼저 해 뜨는 곳을 찾아 나선 제사장들의 무리. 바로 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홍익인간,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 뿌리이자 인류의 고대사  

하느님(환인)이 천부인을 주며 환웅에게 풍백, 우사, 운사 등 모든 엘리트들을 다 붙여 보낸다는 이야기, 그리고 환웅이 곰족과 호랑이족을 교화해 단군을 낳고 홍익인간을 한다는 이야기는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이야기이면서 아울러 수만 리 아니 수십 만 리를 죽을 고생하며 거쳐온 인류의 고대사다.  

먼저 거쳐온 곳들의 사람들은 야만인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해동포(四海同胞)들이다. 홍익인간은 당연하지 않은가.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서 단군조선의 시대는 한참 뒤에 들어선 옆 마을 중원(中原)의 춘추전국과는 달리 참으로 태평스러웠고 길게 갔다. 그 후예들은 영고, 동맹, 무천이라는 이름으로 하늘에 계신 조상들께 제사를 지내되 사흘 내리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추는 제사장의 일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또 엇나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예를 들면 “그래서 코리안들이 가장 뛰어나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게 답하겠다. “뛰어나든 말든 그것이 그리 중요한가”. 옛날 시골마을에서 명문대에 합격하면 현수막을 걸고 마을잔치를 하듯이 언제까지 그리 덜 떨어진 말을 하겠는가.  

◇홍익인간, 유라시아 사해동포 통합 메시지  

그보다 첫 삼한 즉 단군조선의 시대 때 모든 인류를 위해 바쳤던 제사장의 역할을 그 뒤로 제대로 했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여기 왜 왔는지, 통째로 다 잊고 엉뚱하게 요순을 그리워하고 주자의 제자로 살아온 세월이 5백년이 넘지 않았나.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쨌든 그 역사의 퇴행은 다음에 다루기로 하고 유라시아의 길 이야기로 돌아가자.

베이징(北京)에서 자신들의 ‘나홀로 문명’이라 우기는 요하문명을 보면 거의 1만년 전으로 올라간다. 한족(漢族) 이야기는 뒤에 이 시리즈를 통해 밝히겠지만 그들은 흔히 말하는 서역을 거쳐 한참 뒤에 동아시아로 온 사람들이다. 바이칼 쪽으로 왔든, 그 위의 시베리아로 왔든, 천산(톈산)산맥 거쳐 몽골로 왔든, 위에 말한 홍익인간의 이야기는 컴퓨터와 같다.  

다시 말해 반만 년 넘도록 수없이 업그레이드되어 왔다는 것이다. 지금의 동몽골 지역. 옛날로 치면 서만주. 더 올라가면 단군조선과 부여와 고구려의 서라벌인 곳 그 일대에 보통 말하는 신석기 시대 내내 수없이 많은 환인과 환웅과 단군이 계셨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모계 씨족사회였다가 어느 순간 옥기, 제단, 작은 마을이 나타나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 나은 버전(Version)이 줄곧 나오게 된다. 그래서 홍익인간의 이야기는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뿌리 이야기면서 아울러 인류의 고대사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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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미래공정...′홍익인간′을 다시 이야기하자

[코리아글로브·아시아투데이 공동 연중기획]출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프롤로그>


기사입력 [2014-01-20 08:03]                                             최영재 기자




박근혜정부가 출범과 동시에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내놓았다. 김영삼정부에서 ‘세계화’가 나온 뒤 한동안 대한민국의 외교 구상은 축소지향으로 일관했다. 김대중정부의 ‘동아시아 구상’에 이어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반도를 둘러싼 긴박한 국제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었지만 실제는 북한 정권과의 공존에 방점을 찍은 구상이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외교구상이 지구촌 모두를 아우르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다행스럽게 이명박정부의 ‘글로벌 코리아’ 구상에 이어 박근혜정부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이 나왔다. 이로써 우리의 외교구상은 다시 유라시아로 눈앞이 탁 트였다. 사실 외교구상만큼은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바뀌지 않는 게 좋다. 그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의 길’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전통의 선진 강국들이 그렇다.

그렇지만 모처럼 나온 박근혜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은 제목만 있고 실체가 모호하다. 외교 전문가들도, 정부도 뚜렷한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말했던 대륙횡단철도 구상, 시베리아 개발과 별다른 차별 점이 없다.  

이에 ‘코리아글로브’와 아시아투데이는 연중기획을 통해 모호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에 뼈를 세우고 살을 돋우며 피가 흐르게 하고자 한다.  

우리가 세우려고 하는 첫 번째 작업 ‘뼈’는 역사기행이다. 우리는 연중기획을 통해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가 내내 가난하고 쇠약했다는 ‘역사의 무지’를 깨뜨릴 것이다. 그리고 유라시아가 반만년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길이었고 활동무대였음을 증명할 것이다.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 서북공정을 내세우며 고구려사, 발해사, 주변국 역사를 자기나라 역사라고 우기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런 작업이 중국 정부가 노리는 팽창을 정당화하고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살’은 ‘코리아=글로브’, 코리아를 글로벌화하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같은 특출한 코리안뿐만 아니라 8000만 코리안이 모두 반기문과 같은 지구인이 되도록 만드는 일이다.  

세 번째 작업 ‘피’는 ‘공존공영의 길’이다. 코리안만이 아니라 우리와 만나는 지구마을의 모든 이웃들이 함께 잘 사는 길을 열어야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가 절로 열린다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