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하고 싶으면 해라. 단 서울시 돈만 넣지 말라!”

by 김정호 posted May 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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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하고 싶으면 해라. 단 서울시 돈만 넣지 말라!”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나는 박원순이 두렵다”
마을활동가는 [박원순의 분신]?...“의심사고 싶지 않다면 市場에 맡겨라”




박원순 시장이 말하는 마을공동체는 [일종의 감시조직]이다.
그는 지금 2013년 서울에서 [원시 농경사회]를 꿈꾸고 있다.


경제학과 법학에서 두 개의 박사학위,
9년간의 자유기업원장 이력과 대학 교수,
현역 최고령 래퍼이자 가수,
청소년 소통과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주제로 한 음반발매 및 랩배틀 뮤직비디오 출연.

톡톡 튀는 [별난 학자]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가 박원순 시장을 향해 작심하고 독한 충고를 던졌다.

박 시장이 취임직후부터 각별한 애정을 갖고 추진 중인 서울시의 [마을공동체 사업]을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는 경고도 함께 했다.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사업의 좌편향성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그러면서도 [마을공동체 및 마을기업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협동조합이 가진 순기능]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곁들였다.

박 시장이 마을공동체 및 협동조합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우려를 걷어내길 바란다면,
시의 예산을 쓰지 않으면 된다는 [심플한] 조언도 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 일답이다.



#1. 박원순 시장이 추진하는 마을공동체에 대해 걱정이 담긴 고언을 자주하고 있다.
박원순 표 마을공동체,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간단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박원순 시장이 꿈꾸는 마을공동체의 본 모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바라고 이런 사업을 벌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 중인 마을공동체는
[일종의 감시조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시 농경사회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공동체 개념을,
서울에서 마을이란 이름을 앞에 붙여 되살리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다.


#2. 농촌공동체를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된다? 언뜻 이해가 안 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을단위의 농촌공동체는
개인이 임의로 가입여부-활동여부를 선택할 수 없는
강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즉, 마을사람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여기서 정한 룰에 따라야 했다.

그런데 현대 도시공동체는 이와 전혀 다르다.
가입여부를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이 본인의 선택과 필요에 따라 활동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가입 탈퇴에 부담을 느끼는 일은 없다.
대표적인 것이 각종 동호회와 사이버 상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티 공동체들이다.

사회적-경제적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다른 현대 도시사회에서
과거 농촌공동체의 모습을 재현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퇴행이다.

과거 농촌공동체 아래서 개인의 삶은 공동체라는 이름 앞에서 뒤로 밀렸다.
일도 시간도 개인보다는 공동체가 우선이 된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원시 공산사회적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서울시의 마을공동체가
이런 농촌공동체의 모습을 띠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3. 어떤 면에서 그런 의심을 하는가?

서울시는 마을공동체 사업을 벌이면서 마을활동가를 양성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결국 마을공동체는 [마을활동가]라는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주도될 것이고,
이들이 사업과 조직을 장악할 것이다.

이들은 마을을 위한 봉사자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감시하고 제약하는 감시자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박 시장과 코드를 같이하는 사람들,
즉 [박원순의 분신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파는 풀뿌리 시민사회의 경험이 매우 적다.
반면 좌파는 20여년 전부터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시작으로
풀뿌리 지역사회 공동체 활동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그렇다면 누가 [마을활동가]가 되겠는가?
결국 좌파 지역사회 운동가들이 [마을활동가]가 될 수밖에 없다.

벌써 아파트단지는 부녀회를 중심으로 박원순 시장의 영향력이
소리 소문 없이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것은 공론화해야 한다고 본다.
마을공동체든 협동조합이든 주민들이 실체는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4. 마을공동체와 함께 박원순 표 협동조합이
또 다른 숨은 목적을 갖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협동조합의 기본은 동지-동무가 함께 모이는 것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지금까지 별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그 이유가
근거 법령의 부족이나 제도적 정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란 견해가 있는데,
나는 찬성할 수 없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없던 시절에도 원한다면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었고,
실제 여러 종류의 협동조합이 존재해왔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일반화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5. 경제적 측면에서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이 1인 1표를 가진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소유욕이 있다.

1인 1표 체제 아래서는
자신이 가진 1표의 권리만큼만 재산을 출연하는 것이 자연스런 심리다.
이런 상황에선 대규모의 자본을 모을 수 없다.
단위가 작으면 코스트(비용)가 엄청 높다.

대규모의 자본을 빠르게 모을 수 있는 일반 주식회사와 비교할 때,
협동조합은 상품의 질과 가격 모든 면에서 열악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느 상품을 선택하겠는가?
협동조합을 가지고 본격적인 기업비지니스를 한다는 것은 될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시장에서 경쟁을 거쳐 도태됐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려면 나랏돈을 넣어야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그 돈을 복지에 쓰는 것이 낫다.


#6. 협동조합을 지지하는 이들은 스페인의 <몬드라곤>이나,
이탈리아 볼로냐의 대규모 협동조합을 성공의 예로 든다.
박 시장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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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
(Mondragón Cooperative Corporation; MCC)

스페인 북구 바스크 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 복합체.
2010년 기준 인구 22,000여명의 작은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으나,
매출 148억 유로(한화 23조원)으로 그해 스페인 전체 기업 중 매출 규모 9위를 기록했다.
고용규모는 8만5천명으로 스페인 기업 중 3위.
매출에 비해 고용규모가 상대적으로 높지만,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10곳이 넘는 협동조합, 1백20여개 이상의 자회사 등 2백50여곳의 사업체가 연계돼,
한 곳에서 해고자가 나오면 바로 여력이 있는 다른 사업체가 고용을 하는 방식으로
근로자들의 신분안정을 유지한다.
전기-자동차-철강-공작 기계-서비스-유통-금융-교육 분야 등 사업영역은 매우 넣다.
세계 건축사에 빛나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만든 시공사 역시
이곳의 계열사인 몬드라곤 건설이다.

1941년 호세 마리아라는 젊은 신부가
독일군의 공습으로 인구의 대부분이 떠난 폐허가 된 이곳에 부임하면서
MCC의 역사가 시작됐다.
신부는 남아있는 주민들의 가난 극복을 위안 대안으로 협동조합을 생각했다.
1956년 기술학교 졸업생 5명과 노동자 23명이 힘을 모아 몬드라곤의 효시가 되는
석유난로 공장 <울고(ULGOR)>가 문을 열었고,
60년대 초반 이미 스페인 1백대 기업으로 입자를 다졌다.
<울고> 설립 이후 MCC는
순익 기준으로 연평균 7.5%, 일자리 창출 규모로 연평균 10%씩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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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

하고 싶으면 해라.
협동조합으로 삼성전자를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해라.

그런데 서울시 돈은 집어넣지 마라.
관(官)이 주도해서 억지로 마을공동체 만들고 협동조합 활성화하지 마라.

시장(市場)에 맡겨서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마을공동체도 순수하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다.
누가 어떻게,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박원순 시장이,
<아름다운가게>-<희망제작소> 사람들을
[마을활동가]로 써서 사업을 하는 것이 문제다.

이들은 비즈니스를 하는 활동가가 아니라,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본다.

박 시장은 과거 참여연대 시절에도,
[시장학교]라는 것을 만들어서 지방의회 의원들을 만들어 냈다.

모금을 하는 법-선거를 치르는 법 등 이런 분야에선
박 시장만한 전문가가 우파에는 없다.

그런 박 시장이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활동가]를 길러낸다고 하니 의심을 하는 것이다.


#7. 서울시에서는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에 대해 불만이 많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사업을 가지고,
갖가지 추론과 예단을 섞어가며 소설을 쓴다는 비판도 있다.

마을동공체나 협동조합의 실체를 모르는 서울시 공무원들 이라면,
그런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의 머릿속에 있는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은
태어나기만을 기다리는 [다 큰 아이]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는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에 관한 마스터플랜이 들어 있을 것이다.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분이다.


인터뷰 말미에 김 교수는 다시 한 번,
협동조합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협동조합, 일반 사기업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보완재로서의 협동조합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자신도 얼마 전 한 협동조합에 30만원을 출자한 조합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인터뷰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했다.

마을공동체건 협동조합이건 그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서울시 돈만 넣지 말란 것입니다.




[김정호 칼럼] 박원순의 마을공동체를 경계한다
3천 마을공동체 활동가 거느린 빅 브라더는?
코드 맞는 마을활동가? [빅 브라더]의 하수인? 세금으로 지원해선 안 돼



박원순 서울시장이 마을공동체 사업에 발 벗고 나섰다.

동네 사람들끼리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의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 정책이 표방하고 있는 비전이다.
일종의 원시공산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사람은 누구나 현실보다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도시의 현실보다는,
동네 사람끼리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마을공동체적 생활방식이 좋아 보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러나 서울 시민들이 진정으로 그런 삶을 좋아할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

만약 사람들이 정말 마을 공동체 방식으로 살고 싶어한다면,
이미 많은 마을공동체들이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공동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마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장이 직접 나선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에서는 낭만적인 공동체가 잘 만들어지지 않음을 반증해준다.

여건이 나빠서 안되는 것도 아니다.
초기에 만들어진 주상복합아파트들에는
입주민들끼리 같이 모여 밥이라도 같이 먹을 수 있는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입주민들끼리 밥상공동체를 만들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아파트마다 부녀회가 결성되어 있으니,
주민들이 원하기만 하다면 얼마든지 낭만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꿈꾸는 정도의 공동체를 갖춘 아파트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은 서울 시민들이 말로는 공동체를 원해도,
행동으로는 각자의 방식대로 살기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공동체적 삶에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어도 감출수가 없는 것이 마을 공동체의 치명적 단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이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면 착각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산악자전거 동호회, 마라톤동호회, 색스폰동호회, 직장밴드,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카페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중심으로 맺어진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국민의 다수가 농촌공동체에 속해 살던 50 년 전에 비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자발적 모임들이 만들어져 있다.
그것들이 모두 공동체이다.

다만 마을공동체와는 달리,
어떤 활동으로 어느 정도의 공동생활을 할 것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가 있다.

마을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나면,
이웃을 얼마나 자주 볼지 어떤 방식으로 볼지는 각자가 선택할 수 없다.
각 개인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을의 행사와 분위기에 휩쓸려야만 한다.
마을공동체는 일종의 강요된 공동체가 될 것이다.

게다가 마을공동체가 확산될수록 기존의 자발적 공동체들은 쇠퇴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 두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억하고 사귈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대개 원시공동체 구성원의 숫자 정도라고 한다.

마을공동체가 확산되어 사람들이 저마다 마을 사람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지금처럼 각자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
수많은 동호회들, 카페들, SNS 활동에 필요한 정신 에너지는 남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이해하고 나면 필자가 마을공동체 정책을 걱정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많은 시민들에게,
마을공동체는 일종의 감시나 간섭 조직이 되어갈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감옥 말이다.
3천명이나 되는 마을활동가들은 [빅브라더]의 하수인들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한발짝 더 나아간다면 다음 번 대선에서 벌어질 일도 미루어 짐작해보게 된다.
그 3천명의 활동가들이 박원순 시장과 [코드]를 같이 하리라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 또는 그가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는
2017년의 대선에서 이 3천명 활동가들과 그 네트워크의 뒷받침을 받게 될 것이다.

얼마나 유리한 대선 게임이 되겠는가.
여러 해에 걸쳐 정부의 돈으로 마을 사람들의 표심을 만들어 놓았을테니.

서울 공동체를 동력으로 해서,
대한민국을 거대한 좌파공동체로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공동체가 아무리 낭만적으로 보인다 해도 정부 돈으로 해서는 안된다.
지금도 원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해 있으니 인터넷으로 원하는 사람을 모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무원인 서울 시장이 나서서 공공자금으로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사생활을 보호받고 싶어하는,
또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싶어하는 시민들의 삶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된다.

서울 시민의 돈으로 박원순 진영을 위한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셈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마을공동체 운동에 반대한다.
서울 시민들도 마을공동체 정책의 본질을 파악하고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