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는 한글이자 동시에 영문명 공용으로 설정했다. 세계가 아는 코리아는 우리의 원래 이름이며 무엇보다 원음에 가깝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은 물론 한민족 그리고 고려인과 조선족을 포함한 8백만 재외동포 등 국가와 민족을 아우르는 한글의 명칭으로 코리아를 고려하고 있다. 또한 나아가 지난 반만 년 문명의 혼을 담고자 하였다. 유목과 농경, 대륙과 해양, 동서양이 어우러진 복합문명의 전통을 복원하기 위한 열쇠로서 역사공동체 코리아에 주목하였다. 코리아글로브는 줄곧 묻혀진 그 정체성(Identity)의 복원에 주력할 것이다. 

   글로브(Globe)는 영문명이다. 월드(World)를 쓰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코리아글로브는 오늘의 세계(World)보다 미래의 세계(Globe)에 주목한다. 지질과 공중보건 및 기후변동의 3각 재앙에 본격 노출된 세계, 지구를 넘어서서 우주시대로 나아가는 문명의 미래를 고려하기에는 글로브가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이 모두를 고려하여, 코리아는 새로운 지구문명의 제안자이자 발상지이며, 글로브는 그 시공간이자 궁극의 지향점으로 설정하여 부르고자 하였다. 


코리아글로브는 10년 전, 1997년의 이중 충격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같고 출발하였다.            첫 충격은, 20세기 말 최대 위기인 환란이었다. 지난 세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던 개발연대의 시스템이 환란 한 번에 맥없이 무너졌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도성장의 신화가 하루아침에 붕괴했다. 이로 인해 완전고용과 공교육을 통한 역동적인 계층이동의 일반화 그리고 보호무역의 장벽이란 3대 방파제가 동시에 해체되어 코리아의 국민경제와 국가공동체는 물리적·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어야 했다. 

   둘째 충격은, 대량 아사라는 민족사 최악의 비극이었다. 전시(戰時)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남한은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었다. 또한 동아시아권이 서세동점 이래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는 시점에, 북한에서는 전 인구의 1/10 이상이 방치와 유기(遺棄)로 인해 속절없이 굶어 죽어갔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이래 평양의 붕괴를 미리 예상했음에도 아무 대비도 못하다가 막상 대량 아사를 접해서는 신속 과감한 전면 지원의 때를 놓쳐 천추의 한을 남기고 말았다. 민주주의 신화가 응집된 87체제는 이중 충격으로 일상적인 체제위기에 빠졌으며 그로부터 '포스트 87'과 '포스트 평양'이란 과제를 화두로 삼게 되었다 우리는 1997년의 이중 충격을 아울러 한반도 차원의 '97체제'라 부르고자 하며, 이의 극복을 통일한국으로 넘어가는 발판으로 삼고자 뜻을 모으게 되었다. 

   코리아글로브의 초기 구성원은 20세기 말 민족사의 격동에서 대북지원의 네트워크를 추진하다 만나게 되었으며, 절망의 현실을 목도하고 숨져간 수백 만 동포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하여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집단'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코리아글로브는 코리아가 스스로의 장래를 제 손으로 빚어내지 못하고 주변국의 의제설정(Agenda Setting)과 개입에 따라 요동하고 끌려갔던, 그래서 그를 벗어나기 위하여 몸부림쳤던 지난 세기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노심초사해왔다. 정한론(征韓論)에서 민족의 분단 그리고 동북공정에 이르기까지 주변국들의 야욕과 도전은 쉼 없이 이어져, 결국 반만 년 역사공동체가 늘 존폐의 위기에 시달렸다. 그 모두가 우리 스스로 앞서 예견하고 대비하지 못한 결과였다. 지금도 두 차례 북핵사태를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지위와 역할을 높여가기보다 오히려 발언권이 약해지고 주변부 국가로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코리아글로브는 한반도구상은 물론 코리아 플랜의 기획과 운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나아가 코리아글로브는 코리아가 베이징과 워싱턴을 아우르며 지구문명의 새로운 주창자로서, 역사적 소명을 감당할 수 있을 지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마실 물조차 없고 기근에 시달리며 인간 이하의 삶을 연명하는 이들이 인류의 태반을 채우고 있다. 또한 화석연료의 고갈과 유전자원의 독과점은 과거 냉전보다 더한 에너지 전쟁을 예고하고 있으며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회의를 품게 하고 있다. 이에 더해 지질과 공중보건 및 기후변동의 지구적 재앙은 점점 폭넓게 인류사회를 위협해오고 있다. 이상의 4대자원의 결핍과 3대 위기가 지구공동체의 목을 조여 오고 있음에도 인류사회에는 그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보다 오히려 패권을 유지 확장하는 쟁투의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우리는 인류가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리아가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마땅히 나서야 한다고 본다. 지난 세기가 우리에게 지극한 고통이었음을 각성한다면 금세기에 펼쳐지는 인류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이미 인류사회와 코리아의 관계가 순망치한(脣亡齒寒)임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지난 세기 인류사회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안보와 시장(Market)은 물론 식량과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코리아가 인류사회의 고난을 외면한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격을 잃을 것이다. 

   코리아글로브는 이상의 절실함을 풀기 위하여 그 비전(Vision)을 '모든 민족이 공존공영 하는 조화로운 지구문명의 건설'로 명백히 하였다. 그리고 그 3대 영역으로 '4대 자원의 최저선'을 제공하는 세계질서의 수립, 공존공영의 첫 관문인 아시아네트워크의 실현, 지구촌 사랑방으로서 글로벌 코리아 건설로 설정하였다. 아울러 이를 이루기 위하여 코리아글로브의 성격과 연계사업으로 3가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는 정론집단으로서 공론화(Public opinion) 그리고 기획집단으로서 자문(Consulting) 및 비전집단으로서 조율(Harmonizing)을 뜻한다.


코리아글로브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백년을 약속한 구성원들을 살피면, 주로 학계 인사와 시민사회 인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세대로 보면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하지만 특정 이념 중심의 만남은 아니다. 코리아글로브는 그와 같은 낮은 수준을 일찍이 뛰어넘어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코리아글로브 구성원들은 틀에 박힌 전문가나 허명의 명망가이기를 거부하며 사회 시스템의 일단(一端)을 책임지고 움직이는 현장전문가이자 복잡계라 불리는 고도화된 사회 전반과 인류사회의 세계 시민으로서 주인(Ownership)의 역할을 다 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늘 해당 분야에서 다루는 미시(微視)를 넘어서서 세계의 그림(Grand Design)을 만들지 못함에 깊은 갈증을 느끼고 있다. 자신들이 경험한 87체제의 과거와 오늘을 성찰로 접근하고 20세기의 언어를 극복하고자 하며 과거의 낡은 사고를 뛰어넘어 미래를 통찰로 설계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구성원들의 다수는 공론과 비전의 설계에는 강하되, 아직까지 과정의 기획과 운용에 탁월하다고는 볼 수 없다. 코리아글로브는 그 한계를 인정하며, 뜻을 같이 한다면 그 누구든 따지지 않고 지혜를 배우고 함께 하고자 한다.


코리아글로브는 구성원들에게 공인(公人)의 마음가짐을 바라며, 그 기본에는 3대 불문율이 있다. 나이와 고향 및 출신 학교를 묻지 않는 것이다. 굳이 그것을 알아야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면 모르되, 가능하면 그 수준을 넘어서고자 한다. 

   코리아글로브는 이를 위해 우선 문무겸전의 기풍을 진작하고자 한다. 아무리 학식이 충만해도 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줄 몰라서 늘 피로와 짜증에 찌든 이들은 필경 나뿐인 사람, 나약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심하면 그들에게서 내일은커녕 사람의 기본인 정과 의리가 지속되리라 기대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 제 몸과 마음을 늘 다스려 활기차고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라면 함께 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의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코리아글로브는 그 첫 단계로 매년 봄 가을로 마라톤 대회를 열고 있으며 주요 구성원들의 상시 자가수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코리아글로브는 다음으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기풍을 진작하고자 한다. 제 스스로 뱉은 말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이불 속의 만세 삼창과 술자리의 비분강개로 그치는 문약(文弱)을 철저히 경계하고자 함이다. 

   코리아글로브는 나아가 괄목상대(刮目相對)의 기풍을 세우고자 한다. 몸이든 마음이든 게으른 사람은 청춘이라도 은퇴자이며, 사흘이면 눈을 씻고 봐야 하는 사람은 황혼이라도 인생의 정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코리아글로브는 그 마음가짐으로 구성원들이 먼저 공인이자 인재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미 완성된 인재를 모심은 누구나 할 수 있으되, 구성원 스스로 인재가 되고 그 누가 오든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곳은 찾기 어렵다. 그리하여 그 깊이와 연륜이 쌓이면 지구촌의 경당으로 서 나가고자 한다. 


코리아글로브는 200여 회원 중 절반 정도가 CMS를 이용해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그러나 코리아글로브가 말 그대로 사람 중심의 조직이라서 회비만으로는 기본적인 활동에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기에 아직 부족함이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3가지를 고려하고 있다. 

   첫째, 조직의 확대다. 조직의 구성원이 뜻을 모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기여를 함은 당연하다. 차츰 조직의 수준을 높여 전체 회원이 안정적으로 회비를 납부하고 더불어 다양한 형태의 기여를 늘릴 계획이다. 둘째, 영리활동의 전개이다. 코리아글로브 안팎에 실물경제의 당사자들이 너무도 많다. 네트워크 경제의 이점을 살려 그들과 함께 다종 다기한 사업을 벌이고자 한다. 셋째, 기획-컨설팅 사업의 추진이다. 공공영역을 중심으로 하되 사기업 분야에서도 코리아글로브의 인적 자원과 컨텐츠 및 기획력은 필요한 곳이 많다. 지금까지 이를 외면해왔지만 이제는 기획-컨설팅 사업을 본격적으로 펼쳐서 한국식 싱크탱크의 기반을 만드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지금의 코리아글로브는 미완성의 싱크탱크다. 우리는 한반도 구상에서 한 발 나아가 코리아 플랜에 집중하고 있다. 이를 이루기 위해 100회가 넘도록 매주 화요대화마당이란 토론의 장을 연속하고 있으며, 또한 당장은 빈한한 살림살이에도 무리를 하면서 연구역량을 상시 가동하며 축적하고 있다. 

   코리아글로브 사무실의 출근자들은 실무자가 아니라 연구원인 셈이다. 실무자라고 한다면 코리아글로브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연구원이라고 보면 생산성은 그리 낮지 않다. 지난 두 해 동안 그리고 그 훨씬 이전부터 코리아글로브는 87체제의 종언과 포스트97, 네트워크 경제와 아시아네트워크, 민족론 및 백년대계의 비전 그리고 사회통합의 과정과 초기 코리아 플랜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고유하고 독특한 개념을 생산하고 그를 바탕으로 지금 구체화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코리아글로브는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분과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5개 분과(역사해석/ 경제모델/ KP(Korea Plan)2010/ 유라시아/ 글로브2050) 활동을 통해 코리아글로브의 문제의식과 비전을 구체화시키고 현실적인 과제로 풀어나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외에도 주요 현안에 대한 집담회 및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카데미 캠프, 헌정사 기행과 유라시아 기행, 회원간 멤버십을 강화하기 위한 가족야유회, 등산, 마라톤 등도 전개하고 있다. 

   코리아글로브는 2006년에 들어서서 제2기를 맞이하고 있다. 내부의 합의와 구성원을 마련하는 일에 골몰한 1기와 달리 2기는 외향의 시기다. 그래서 1기가 코리아글로브 그 자체였다면, 2기는 팀을 확대하여 사회공론을 조성하고 백년대계의 자원을 확보하며 팬코리아의 내실을 구성하는 동시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코리아글로브는 정치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정치와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구성원 각자로는 불가근이되 코리아글로브는 불가원이다. 코리아글로브는 무엇보다 그 분야와 지역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분야에서 제일 우선순위는 문화이며 다음으로 시장이고 끝은 정치영역이다. 가능하면 그 역순으로 가는 길은 배제하려 한다. 지역에서 제일 우선순위는 세계무대(Globe)이고 다음으로 아시아-동아시아며 끝으로 한반도 권역이다. 

   코리아글로브의 권력과 정치의 화두는 베이징과 워싱턴, 런던과 상하이, 뭄바이와 모스크바, 예루살렘과 테헤란, 베를린과 로마, 도쿄와 울란바토르이며 또한 포스트 디지털이자 인류문명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미 그 일을 해야 하고, 해야 할 만큼 대한민국이 컸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을 뿐이다.


코리아글로브는 민족에 관한 독특한 판단을 하고 있다. 즉, 민족은 서구 근대의 산물이 아니라 유사 이래로 인류사회에서 형성된 역사 진화의 산물이란 점이다. 

   서구 근대의 산물은 민족주의(Nationalism)다. 민족주의는 서구가 세계의 패자(覇者)로 등장하는 시점부터 서구 내부의 폭발(Big Bang)로 빚어진 부국강병과 약육강식의 논리로서, 수많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의 도구로 기능해왔다. 그러므로 코리아글로브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일찍이 폐기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민족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언어도단이 될 것이다. 시장을 중시한다고 모두가 시장주의자가 아닐뿐더러, 시장주의를 부정한다고 유사 이래 늘 존재했던 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족 또한 진화를 거듭해 왔고 그 특정한 시점에 그 실체를 빙자한 민족주의가 존재했을 뿐이다. 

   현생 인류의 문명 발상지인 아시아에서는 대륙의 연안을 따라 대략 1만 년 전의 정주(定住) 농경의 시작부터 무수한 교류와 경쟁을 통해 족(族, Tribe)이 생겨났다. 초기에는 낮은 생산성으로 인하여 혈연공동체일 수밖에 없었으며, 유목사회와 농경사회의 양대 축이 자리 잡을 무렵에는 그 생활양식의 결정적 차이로 말미암아 문화공동체로 재편되어 갔다. 문화공동체는 혈연공동체의 확장이자 역사공동체의 전 단계로서 언어의 공통성과 의식(儀式)의 유사성 및 동일한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족(Ethnie)은 인류사회가 금속문명에 접어드는 과정에서 고대국가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다. 그로부터 민족은 역사시대와 함께 성쇠를 거듭하며 역사공동체로서 그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나름의 영속성을 지니게 된다.  
    인류사회에서 선민(選民)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해당 역사공동체는 인접한 수많은 역사공동체와의 교류와 경쟁에서 형성된 관계의 산물이기 때문에 특정 역사공동체의 우월을 주장하는 선민사상과 그를 뒷받침하는 국가의 패권주의나 종교의 근본주의는 다른 역사공동체의 자결과 생존을 위협하고 인류사회의 시민권을 제약하며 공존공영의 인류문명을 가로막는 3대 암(癌)이다. 그러므로 코리아글로브는 3대 암의 척결을 위해 '자원의 최저선'을 제공하는 세계질서의 수립을 모색하고 그 독과점의 경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원주의의 문명을 건설하고자 하며, 이를 하나로 담아 '모든 민족이 공존공영 하는 조화로운 지구문명의 건설'을 비전으로 삼았다. 

   역사공동체가 관계의 산물임을 고려할 때, 단일민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코리아에서는 다만 지난 수백 년 동안 민족의 고향인 북방 유목문명과 스스로 단절하고 명나라의 패망 이래 소중화(小中華)의 망상에 빠져 단일민족을 자부해왔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지난 세기 전무후무한 민족말살정책에 맞서면서 ‘극단의 지배’를 이기기 위한 ‘생존의 논리’로 불가피하게 단일민족의 허구를 임시변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짐을 벗을 때다. 민족의 소멸 또한 매우 섣부른 가설이다. 민족은 인류사회의 명백한 정치적 실체로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들이 어떤 문명과 어떤 국가를 선택하였든 상관없이 그 역사적 존재는 늘 상수로 존재해왔다. 민족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그 명맥을 같이 할 것이며, 세계정부의 미망(迷妄)이 아니라면, 탈 민족은 인류가 허다한 행성에 자리 잡을 명실상부한 우주시대의 도래 이후에야 현실이 될 것이다.


코리아가 열강에 포위된 한반도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국제협력을 주도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다. 특히 한국은 국가 존속의 기본인 에너지와 식량의 수급은 물론 국부 창출까지 대종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지난 사반세기 동안 해외에서의 이득과 평가에는 민감했지만 의무와 기여 및 역할에는 무관심했다. 단적으로 한국이 산업화 초기에 선진국들로부터 받은 원조규모는 120억 달러이나 그동안 한국이 개발도상국에 제공한 원조규모는 20억 달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 구상하는 국제협력의 출발은 아시아네트워크다. 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하나의 정체성을 고려하기 힘든 다원성의 보고이다. 아시아는 문명의 요람으로서 모든 민족이 수천 년을 넘나드는 뿌리 깊은 자부심을 지닌 역사공동체로 존속하고 있으며, 인류사회의 과반수가 밀집한 곳으로서 문화와 역사 및 자원의 최저선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의 내일에 유럽연합과 같은 구상을 고려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오히려 그 다원성을 인류사회의 자산으로 포섭하기 위해 네트워크형 관계의 증진을 고려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관건은 상호의존성을 증대하여 분쟁의 여지를 줄이고 공존공영의 토대를 구축해나가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역할은 우선, 받은 만큼 기여해야 한다. 국경을 넘어서 벌어지는 지질학적 재앙과 기후변화 및 공중보건의 위기만큼 상부상조가 간절한 계기가 없다. 다음으로 크고 작은 퍼즐을 꿰는 접착제로서 에너지와 경제협력을 선도하는 한국이 되어야 한다. 이상의 과정을 거치고 아시아네트워크의 안내자로서 존경 받는 국가가 되었을 때에라야 비로소 한국은 유라시아의 새 역사를 창출하는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패권이나 테러리즘의 위협을 제거하고 황화(黃禍)나 식민지의 잠재된 피해의식을 해소하려면, 존경 받는 중재자(balancer)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