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가족야유회 後記

by 永樂 posted Jun 02, 2003
송구합니다.
일굼 최초의 가족야유회를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나서,
이제서야 後記의 글을 올립니다.
(기억이 부실한 대목은 질정해주시길...)

제가 요즘 이리 상황을 부여잡지 못하고 떠다닙니다.
호통치지 마시고, 안타까이 여기고 지켜주시길...

그런데 유동걸 선생님 말고 다른 분의 글이 없어 섭섭합니다.
[살아가는 이야기]에 기왕에 올라왔는데 명문입니다.
역시... 국어 선생님... ^^

그리고 아직도 야유회 사진을 독점하고 있는
某 현인님과 某 호준님은 어서 사진 자료실에 올리시길...
~~~~~~~~~~~~~~~~~~~~~~~~~~~~~~~~~~~~~~~

<<세월은 덧없고 風流는 가없고...>>



5월17일(토).
드디어 그 동안 벼르고 벼른 [일굼 5월 가족야유회]가 열렸다.

집결지인 잠실역에서 바라본 5월의 하늘은, 그래도 푸르렀다.
맘 같아서야 쾌청이면 좋겠지만, 서울 하늘로서야 이 정도면 봐 줄 만하지 않은가.

역시 오늘도 진월 스님이 길을 여셨다.
(대체로 젊은 회원들이 주로 지각을 한다...)
수아를 업은 김영실님(김정대님의 부인)과 제 아내인 박미화 님 그리고 이왕재님은,
오자마자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하러 갔다.

한 거리 너머에선 이강일 의원의 가족과 오늘의 행사 여정을 총괄할 김현인님이,
승합차를 세워놓고 대기하고 있다.

이 때부턴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구석에선 심심한 한백이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옆에선 한울이가 지 어미 찾는다고 고성방가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이리 오기로 했다 다른 곳에서 출발하는 이부터
곧 도착한다고 조금만 기다리라는 이까지 손전화가 잠시도 쉬질 못한다.
어느새 등줄기에 땀이 흥건히 배어난다.
(다행히 곧 도착한 윤여진님 덕분에 숨을 돌린다)

생각보다 장 보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도리 없이 뛰어갔다. 왜 이리 먼가...
가보니 거진 예닐곱 상자의 장바구니가 기다리고 있다.
오늘 올 대식구에 걸맞게 음식 준비만도 엄청나다. 19만 원...

간신히 11시를 훌쩍 넘겨서야 남한산성으로 간다.
가는 와중에도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
벌써 남문주차장에 도착하신 최교수님 부부와
입추의 여지 없이 카풀을 한 유동걸님 차량 그리고
애면글면 산성을 걸어 올라오는 이호준-신동신님 짝까지,
일굼의 대식구가 속속들이 모이고 있다.

남문 주차장. 그 새 도시락이 도착했다.
21+3 인분, 11만 원 어치. 이 날 우리의 음식 값만 30만 원이다...
행사는 언제나 끝까지 가봐야 아는 법.
이걸 언제 다 먹나 근심하는 永樂과 현인님을 뒤로 하고,
이강일 의원과 진월스님, 최교수님 가족은 벌써 곡차를 주문한다.

눈치 빠른 현인님.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일행을 독려하더니, 금새 만해 한용운 기념관으로 모두를 모셔간다.

만해 기념관. 私設이다.
이미 역사의 인물이 된 만해와 젊은날 운명적인 첫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전보삼(全寶三) 관장님. 함자부터 예사 인연이 아니구나 싶다.
신구대 교수로 재직하시는데 정작 주업은 이 곳 관장이시다.
무너져가는 尋牛莊을 차고앉아 85년 마침내 서울시문화재로 돌린 일부터
이 곳에 사재를 붓고 기념관을 세우고 만해의 온갖 유품을 진품으로 모아온 그 정성은,
참으로 뜻 있는 개인이 이룬 하나의 役事이며 歷史를 어이 보존하는지 살아있는 示唆다.

전 관장님의 정성은 실로 대단했다.
별 준비 없이 찾아간 일행을 앞에 두고 1시간이 넘도록 열변을 토하신다.
점심이 너무 늦어져 자릴 뜨지 않았다면 아마 한나절을 그리 말씀하실 분이셨다.
그 분께 전해들은 만해의 비범한 기개와 배포는 무량수의 경지였다.

"無題 一三수"란 시조의 첫 수다.

이순신(李舜臣) 사공삼고
을지물덕(乙支文德) 마부삼아
파사검(破邪劍) 높이 들고
남선 북마(南船北馬) 하여 볼까.
아마도 님 찾는 길은
그 뿐인가 하노라.

아쉽다. <곰과 獅子>란 이야기 하나만 더 소개한다.

1937년 총독부에서 31본산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이유야 당연히 조선 불교를 친일 주구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마곡사(麻谷寺) 주지 만공(滿空) 선사가
주장자로 책상을 내리치며 無間地獄에 갈 것이라고 대성일갈 총독을 꾸짖었다.

이 통쾌한 이야기는 금새 장안에 퍼졌다.
만공은 만해를 찾았고, 이미 소식을 접한 만해는 곡차로 환대하며 선문답을 주고받는데...

만해 왈 "호령만 하지 말고 스님의 주장자로 한대 갈길 것이지."

만공 왈 "곰은 막대기 싸움을 하지만 사자는 호령만 하는 법이지."

다시 만해 왈 "새끼 사자는 호령을 하지만 큰 사자는 그림자만 보이는 법이지."

총독을 아이 다루듯 한 만공이나 심우장에 등 돌리고 앉아 총독을 꼬마 취급한 만해나,
관장님 말씀대로 反日의 범주를 뛰어넘어 獅子吼를 토하니
그 경계를 어찌 필설로 드러내리오. 훗날 만해 선생이 돌아가신 후
만공 선사는 이제 서울에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다시는 서울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 우리에게 왜 이만한 인물이 없을까...
최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귓전을 맴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 일본인이 와서 개탄을 하더랍니다.
그 많던 기라성이 다 어디로 갔냐고..."

정말 어디로 갔을까, 몽양에서 시작해 조소앙까지 다 우리 손으로 떠나 보내지 않았나.
그 별들이 다 지고나니 막내뻘인 죽산과 장준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지금... 그만 한 인물도 없어 이 민족은 이리 신음하지 않나.
장탄식을 하며 우리 집단부터라도 인재를 키우는 요람이 되어야 하지 않냐고
말씀을 나눴다. 소회는 이 정도로 그치고...

아쉽지만 사해를 넘나드는 그 그림자를 접하려면 http://www.manhae.or.kr 사이트로
직접 들어가보시라. 물론 만해기념관에 몸소 가시면 더더욱 좋다.

큰 진리가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모두들 大悟覺醒하며 부랴부랴 밥 먹으러 간다.

두어 마장을 더 가서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
민족정기탑이 있고 그 뒤편에 조용수 선생 묘소가 있다.
모두들 밥그릇을 앞에 두어 그런지 올라가는 길이 고달프다.
참으로 짐이 많다. 먹을 것, 마실 것, 취할 것, 구울 것, 놀 것... 끝도 없다.

민족정기탑 앞에 진을 치고 배식을 하는데...
패가 갈린다. 땡볕에 앉은 일반부와 그늘에 앉은 모자 모녀 모임...
무언가 어색한데 우선은 먹고보기로 하고 도시락 연구에 열중.

조막걸리가 등장한다.
김도현위원장님과 한복현님의 준비한 名品이로다.
무더운 날씨에도 몇 순배가 돌아간다. 

비로소 다 모였다.
얼추 보니 태중의 아이를 제외하더라도 무려 33명. (어른 25 그리고 아이 8)

김도현위원장님, 김정대님 가족(김영실님과 수아), 김현인님,
박언식님 가족(주현미님과 성민), 손종도님 가족(이금희님과 유진, 현동),
永樂 가족(박미화님과 한백, 한울), 유동걸님 가족(하늘), 윤여진님,
이강일의원 가족(?+ 하정), 이왕재님, 이진한님, 이호준+신동신님, 정용국님,
조박사님 부부, 진월스님, 최교수님 부부, 한복현님
(빠진 분 계시면 말씀하시길...)

잊을 수 없는 인물은 이호준-신동신님과 조박사님...

이호준님은 아침에 이리 말했다.
"제 애인(KBS 카메라맨)이 쓰러졌어요. 과로로..."
모두들 응당 못 오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유일하게 큰차를 타고 남한산성까지 오더니만,
그것도 모자라 걸어서 남문주차장까지 이르러 일행을 감동에 젖게 한다.
그리고 시종일관 고기 굽고 아이들과 어울려노는 마음씀이 참으로 아름답다.

조박사님 가라사대...
"10시에 그리로 가면 되나"
"마 같이 가게 12시쯤 차 타고 갈께"
스님이 계속 찾으시는데 3시가 넘어 오시더니만, 同姓의 조막걸리부터 품에 안으신다.
아마 일행의 추측이 신빙성 있으리라. 야유회는 차수의 연장이 아닐까 짐작코 넘어갈 밖에...

조용수 선생 묘소를 찾았다.
4.19의 잠시 열린 공간에서 민족일보를 창간해 죽산이 바라던 바 그대로 세상에 알리다가,
5.16의 광풍에 불과 석 달만에 붓을 뺏기고 언론인 최초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선생.
그 덧없음에 봄날 햇살도 더없이 한가롭다.

일행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아래 문닫은 주막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제 본격적인 야유회를 펼칠 판이다.
모처럼 사내들이 나선다. 자리를 펴고 상추를 씻고 땔감을 구해와 고기를 굽고...
부산한 모습이 보기에도 좋은데 역시 아니 보이는 분들이 있다.
조박사님과 유동걸 선생님. 아까 조용수 선생 묘소에서 빠뜨린 獻酒를 부탁드린다.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다들 얼큰히 취기가 오르는데,
아니 그럴세라 곡성이 낭자히 울려퍼진다.
한백이와 하늘이... 한 놈이 물면 다른 놈이 울고, 다른 놈이 물면 또 한 놈이 운다.
그 소란에 다른 아기들 칭얼대는 소리가 오히려 정겹다.

조박사님과 최교수님 두 분의 사모님이 톡톡히 역할을 하신다.
한 분은 차분히 좌정해 소담스레 이야길 나누다 조용히 사라지신다.
문득 보니 한백이를 비롯해 설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들꽃과 풀에게 소개하신다.
또 한 분은 예술가답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시종 고기를 구으신다.
(알고보니 최교수님 부부는 참으로 지독한 분들이시다. 25년 된 청바지란다.
버리긴커녕 부부가 돌려입고 이제는 화실 작업복이 되었단다...)

10근을 준비한 고기는 아직도 태반이 남았다.
한 말을 준비한 조막걸리 역시 태반이 넘게 남았다.
아뿔사. 길어지기 시작한 날도 무색하게 안타까이 땅거미가 지려 한다.

이 얼마나 좋은 쉼터인가.
바람은 삽상하고 개울가엔 청정수가 흐르는데,
아이들은 풋풋이 뛰어들고 선남선녀들은 배드민턴에 사랑을 실어 주고받네.
우린 이리 세상 시름을 잊고 담소에 仙境에 저물도록 취해만 간다.
하지만 어쩌리. 일행의 엉덩이가 무거울수록 아이들의 보챔은 하늘을 찌르네...

애닯은 아쉬움을 노래로 때운다.
'내나라 내겨레'를 찾으니 지긋이 감은 눈에 '아다다여'가 애를 끊고,
이윽고 유동걸 선생이 정지용의 향수를 부르며 그윽히 四圍를 밝힌다.

참으로 덧 없도다. 곡차 그늘에 지난 한 세기가 무심결에 스쳐간다.
노래가락에 실린 세월이 悠長하고도 아득하다.
그래도 지금 우리에겐 이리도 古雅한 風流가 면면히도 흐르네.
예서 미래를 기약함은 그 누구의 先覺일까.

저녁 나절을 넘어서며 그제서야 아쉬운듯 자리를 접는다.
한켠에선 구박을 받으며 최교수님이 조막걸리 배급에 한창이고,
한켠에선 잠든 아이 추스려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아쉽다. 여기서 어이 물러서리.
永樂이 차량 사이를 비집고 마지막 순간까지 고군분투한다.
"2차 갈 사람... 모입시데이..."

아쉬운 작별을 한다. 그러나 永樂의 뜻은 이루어진다.
풍문에 의하면, 조박사님 부부와 유동걸님 가족, 손종도님 가족은
서울 동쪽에 자리를 잡고 기어이 저녁 핑계로 2차를 갔다 하고...
또다른 패거리는 대림동까지 가서 새벽을 밝히고 일부는 아침을 맞았다 한다.
(김정대 가족, 永樂 가족, 윤여진 이왕재 이진한 정용국 님 등 10여 명)

대단한 일굼이다.
아홉 가족을 위시해 33명이 하루를 지새우고도 모자라 1박2일의 야유회를 이었다.
다가올 여름 휴가가 기대된다.
그 때는 더 많은 가족이 귀가 염려 않고 당당히 아침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끝으로 이 날 총진행을 맡아 모두를 즐겁게 한 김현인님과,
운전사 노릇한다 고생한 유동걸 선생님, 이강일 의원, 박언식님, 최교수님, 조박사님 사모님,
그리고 좋은 경지를 보여주신 전보삼 관장님과 김도현 위원장님,
퇴원하자마자 달려온 이호준-신동신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과 참석자들께 깊이 감사 드린다.

* 이 날 못 오신 회원들은 매우 부러우실 게다. 앞으로 아니 오시면 손해다... ^^
?
  • 박언식 2011.05.12 21:43
    벌써 8년이 지나가는군요. 정말 즐거운 모임이었다는 기억이 항상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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