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재공고> 제2차 헌정사기행

by 永樂 posted Sep 01, 2003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8월24일 떠나기로 한
제2차 헌정사기행이 폭우로 어이없이 연기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숙고 끝에 헌정사기행의 날을 다시 잡았습니다.
9월28일(일)...
이 때는 하늘도 더 이상 우리 앞길을 가로막진 않을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기행일을 비워주시고
다시 한 번 참가신청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기행일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은 원래 계획과 대동소이합니다.
아래를 참고하시길...

1> 집결지 및 시각

탑골공원 옆 낙원상가 앞 관광버스
2003년 9월28일(일) 9시 정각
(집결시각 엄수 부탁드립니다.
불가피하게 늦는 분은 10시 이전에
망우공원 주차장으로 오시면 됩니다)

2> 참가자 준비물

회비 2만원 그리고 경건하되 간소한 복장
자료집 미리 읽고 오실 것
뒷풀이까지 빼놓지 말고 참석하실 것

3> 연락처

永樂 016-245-1609

4> 세부 일정 / 목표시각

09:00  낙원상가 앞 집결 / 등록 및 탑승
10:00  망우공원 주차장 도착, 죽산 묘소로 이동
10:20  죽산묘소 참배 / 약식 제례와 헌화, 발표
11:10  주차장으로 이동
11:30  탑승, 수유리 몽양 묘소로 출발
12:00  몽양묘소 참배 / 약식 제례와 헌화, 발표
12:50  탑승, 의정부 식당으로 출발
13:20  점심 및 참가자 소개와 친교의 시간
14:30  탑승, 파주 광탄 장준하 묘소로 출발
15:30  장준하묘소 참배 / 약식 제례와 헌화, 발표
16:20  탑승, 귀경
17:50  낙원상가 도착, 해산 및 뒷풀이 장소 이동

5> 예상인원

[총원 18인 예상]

[일굼 6인 예상]
조민, 강명원, 강성룡, 윤여진+한길순, 이왕재

[청년회 9인 예상]
조용일+최새힘+이재혁, 김재민+김영희, 김영옥, 유동성+김주일+김용식 어른

[중복 인원 3인 예상]
永樂, 이봉훈, 임윤옥

6> 준비 및 담당

총괄- 永樂
발표- 조민 (세 분을 이을 헌정사의 주체는...)
         조용일 (몽양) 윤여진(죽산) 강명원 (장준하)
캠코더/디지털카메라- 최새힘 
차량안내/핸드마이크- 강명원
수납/회계/등록/명단관리- 한길순
제례준비/관리- 조용일
꽃조달/헌화/영정/플래카드- 강성룡
뒷풀이 사회- 永樂


* 1차 기행 評 소개

기행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었지만, 그건 상당히 독특한 즉, 헌정사란 측면에서 50~70년대를 대표할 만한 3인의 민족지도자를 선정해 집중 조명하려 한 기획의 성공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한국사회의 사표를 하나의 계통으로 세우려는 면에서 [초유의 기행]이었다는 이점도 많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행 주최측은 물론 참가자들 또한 그 기획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치적 메시지]로 만들어내기엔 아직 역부족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이번 기행을 통해 민족주의 통일노선이니 통합주의 정치노선이니 하는 화두가 거론되기는 하였지만, 솔직히 아직은 3인의 발자취를 되새기는 순례에도 벅찬 게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기념 촬영할 때마다 등장한 플래카드에 나온 글귀 [몽양-죽산-장준하-?]에서 마지막의 물음표는 거론조차 되지 않고 넘어간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넘어서야 할 대상에서도 이승만이나 박정희는 거론되지만 양김씨는 거론조차 아니 되면서 현하의 정치현실과는 동떨어진 [추모사업의 군집]으로 전락할 우려도 없지 않습니다.

다만 이번 첫 기행은, 실제 당대의 민족적 과제를 체현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민족지도자를 기리는 [순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응당 앞으로의 과제는 [순례를 넘어서서 “왜 그들인가”에 답을 명확히 줄 수 있는] 현하의 민족사적 과제를 응집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만드는 작업이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번 첫 기행에서 거론치 못한 [물음표]에 대한 치열한 접근을 통해, [순례의 정착]은 물론 지금부터 장래의 민족사적 과제에 대해 앞장서 제기하고 추동해나가는 [새로운 모색]의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겝니다.


자료집>
http://www.gslove.or.kr/bbs/view.php?id=freeboard&page=4&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5
출처-> http://coree.pe.kr


참고 글>
배반의 역사를 찾아서 / 조 민 (통일연구원)


전쟁과 혁명, 그리고 이념 투쟁의 광란의 시대로 점철되었던 20세기는 역사의 지평 저 너머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그땅, 그날'을 향한 꿈도 신념도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지금, 우리는 무뇌(無腦)의 회색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1세기 한민족의 민족시간은 아직도 20세기의 시각에 멈춰있다. 민족분단, 증오와 대결, 불화와 균열, 그리고 배반의 역사에 짓눌린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 한, 이 '비극적 소극'(笑劇 tragic farce)의 시대는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한국현대사는 광복세력의 좌절 속에 건국세력의 승리로 시작되었다. 민중민주 세력의 배제와 억압 속에 근대화 세력의 축배소리가 드높았다. 반외세 통일지향적 민족주의의 패퇴 속에 외세의존적 반민족적 세력이 활개쳤다. 말하자면 광복, 민중민주, 통일지향적 민족주의세력의 수난과 외면 속에 건국과 근대화 세력의 역할과 의의는 크게 부각되어왔다.

몽양 여운형(1886.4.22∼1947.7.19 경기도 양평)은 일제 식민지 말기 칠흑과 같은 어둠의 시대에 해방의 빛을 가리키면서 건국을 준비했다. 그러나 해방과 동시에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는 해방공간의 혼돈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미군정은 그의 건국 의지를 외면했다.
그후 몽양은 미국과 소련의 조종에 의해 남북한에서 각각 두 개의 분단국가가 수립되어 가는 역류에 맞서 최초의 좌우합작을 시도했다. 김규식과 좌우합작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한을 수차례 왕래하면서 김일성과 남북협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미·소 대결의 각축장이자 아시아 냉전의 초점이었던 한반도에서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은 당시 국제정세의 객체에 불과한 약소 민족 지도자의 신념과 역량을 초월하는 문제였다.

죽산 조봉암(1899.9.25∼1959.7.31 경기도 강화)은 민족과 혁신정치의 이상에 그의 전생을 바쳤다. 항일(抗日)은 한때 그를 사회주의자로 만들었으나, 일찍이 강대국 소련의 독단과 전횡은 그에게 이데올로기에 앞서는 민족의 존재 가치를 일깨웠다.
해방공간에서 죽산은 민족혁명가에서 단정참여를 통한 '정치적 현실'의 길을 택했다. 그는 극우와 극좌를 배제한 중간파세력이 중심이 되는 타협노선의 중도파 기치를 내걸었고, 토지개혁을 추진하여 건국의 초석을 다졌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모든 이념적 논쟁이 종식되고 중도파의 입지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가운데, 죽산의 반독재투쟁과 대중적 지지는 이승만 정권의 기반을 위협하였다.
죽산은 혁신정치의 이념과 진보당 결성으로 '피해대중'의 열망을 담아내고자 했으며, 그의 '평화통일론'은 북진통일의 허구를 꿰뚫고 강고한 냉전체제의 한 축을 흔들었다. 그러나 아직 새벽이 밝아오지 않았던가? 그의 중도파적 정치노선과 남북한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의 짙은 암운이 거두어질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장준하(1918.8.27∼1975.8.17 평북 의주)는 한국현대사에서 반독재 민주주의, '반(反)유신' 투쟁의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였다. 해방과 건국과정에서 그는 우익민족주의의 길을 걸었다. 일제 말기 중원에서의 학병을 탈출한 마지막 세대의 저항적 민족주의자였던 그의 역정에 따른 자연스런 정치노선이었다.
그러나 장준하는 근대화 논리에 함몰되었던 소박한 반공주의·반북주의로부터 통일민족주의자로 되살아나면서 민주와 함께 질식당했던 민족 통일의 열정에 불을 지폈다. 그는 또한 통일의 주체로서 '민중'을 발견했다. 평화적 민족통일운동의 선구로서 큰 족적을 남겼다.      

과거를 잊는 것은 배반을 의미한다. 외세와 결탁한 권력정치의 무대에서 이긴 승자의 기록만이 역사라면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있는가?
이제 우리는 세 분의 영령(英靈) 앞에 감히 선다.  누가 이 배반의 역사를 바로잡겠는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73 평화와 영성의 마당에 모십니다 진월 2003.10.14 1823
72 낭보> 일굼, 새출발의 가닥 잡다 일굼 2003.09.30 2103
71 회원들 경사가 이어집니다... 永樂 2003.09.01 1767
» 확정-재공고> 제2차 헌정사기행 永樂 2003.09.01 1921
69 묶어알림> 주말에 봅시다... 永樂 2003.09.20 1805
68 공지> 일굼 새출발을 위한 워크샵 永樂 2003.08.29 1761
67 일굼 마지막 공지> 워크샵... 永樂 2003.09.05 1647
66 KIN> 예술의 전당, 초대합니다... 永樂 2003.09.01 2065
65 급보> 헌정사기행 연기... 永樂 2003.08.23 1554
64 필독> 헌정사기행 최종공고 永樂 2003.08.20 1843
63 집계> 8.24 / 8.9 신청현황 永樂 2003.08.01 2024
62 안내> 8월24일 제2차 헌정사기행 永樂 2003.07.31 1730
61 최교수님 책 내다... 永樂 2003.08.21 1732
60 감축> 이강일 의원 득녀 永樂 2003.08.18 1677
59 안내>일굼 여름 가족 공동휴가 일굼 2003.07.29 2009
Board Pagination Prev 1 ... 34 35 36 37 38 39 40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