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조발언 요약>
우리 사회에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갈등만 증폭되면 위험하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정치권이나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풀려고 하면 그 원인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는 지난 50년 동안의 압축성장 과정에서의 파생된 문제들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150년~200년 동안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비교적 안정된 민주질서, 경제질서, 사회통합을 이뤄왔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화 당시에 경제에만 총력을 기울이면 된다고 봤고 민주주의나 근로자 억압 등 모든 걸 경제성장을 위해 희생했었다.
대한민국은 1차, 2차 경제개발을 마치고 1970년대 중반에 벌써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국가로 변했다. 경제성장과 산업화가 경제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부를 증대시키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행태를 변화시켰다. 먹고 사는 게 해결되면서 다른 욕구가 자꾸만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경제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몰랐다. 특히 정치가들이 그런 욕구의 변화를 해결해가면서 사회통합을 이루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경제성장을 핑계로 억눌러버리고 말았다. 1972년 유신도 그런 경우다. 여기저기서 저항이 일어나니까 경제성장을 위해서, 또 남북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사실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하면서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성장논리가 사회적 갈등해결 뒤로 미뤄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 경제올인, 경제를 개혁한다고 하는데 경제개혁의 본질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린지 모르겠다. 보안법폐지, 과거사청산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실질적인 사회변화와 무관하기 때문에 국민적 공감대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경제개혁에 대해서 말해보자.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재벌개혁을 추진했었다. 대한민국 재벌의 성장과정, 특히 그 속에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에 경제정책을 봐도 본질적인 문제를 단호하게 접근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관료사회의 현실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기만 해도 정부가 분위기를 띄웠다가 너무 뜨거워지면 잡으려고 하는 정책의 악순환을 계속 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 제기되었던 토지공개념도 그런 경우다. 세금으로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것인데, 토지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세금 낼 능력만 있으면 토지를 무한대로 가져도 된다는 것인가? 결국 밀어붙이다가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끝나버렸다. 사실은 1920년대 영국의 노동당 정부에서 이미 실패한 정책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시대와 상황변화에 맞는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또 이제는 경제력이 정치력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경제라는 것은 수요공급원칙에 따라 가야하는데 경제력이 막강한 사람들이 자꾸 시장질서를 왜곡하려고 한다. 요즘에 집단소송제에 반대하고 출자총액제한을 폐지하자는 요구가 있는데 바로 그런 움직임이다.
문제는 정부정책에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이 없다는 것이다. 출자총액제한의 경우 한국경제의 중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만든 것인데,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없애버리는 것이 맞는 것이지, 어디 압력으로 좌우될 사항이 아니다. 경제계의 힘이 커지니까 정치권은 경제계의 정치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국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로 광고주로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무책임한 경제정책으로는 사회통합 어려워
최근들어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문제인데, 역시 1970년대 중반에 예상되었던 것이다. 압축성장을 하면서 관련된 제도 역시 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1990년대 초 우르과이라운드(UR)가 진행되면서 WTO를 예상하고 자유무역의 흐름 속에서 국제경쟁력을 고민했었다. 특히 경쟁사가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하는 재벌의 문제가 제기됐다. 모든 재벌이 선박엔진을 만들었고, 자동차생산에도 뛰어들었다. 그것을 막으려고 하니까 반대논리가 시장진입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는데, 결국은 국가적 자원의 낭비 밖에는 안되는 것이었다. 결국 IMF 시절 엉망진창이 되는 것을 보지 않았나? 이런 모든 책임이 정부정책에 있는 것이다. 경제인, 기업인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성장에는 기여했는지는 모르지만 사회통합에는 완전히 실패한 경제정책에 대해서 이제는 냉정하게 평가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교육수준은 매우 높고 지금은 세계화시대 지식정보화사회다. 또 시민사회가 커지면서 소득격차나 지역간 불균형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의 모토만큼이나 사람의 행태가 더 빨리 바뀌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 중에, 이익집단들이 자신의 주장을 최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정부가 수렴을 해서 끌고 가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없다.
솔직히 말하자. 정치권, 시민단체에서 쓸데없이 사회협약을 맺자고 하는데, 사실 협약은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언론플레이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것을 해야지 왜 선언에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사회협약, 선언이 아니라 실질변화 가능해야
다른 예를 들면, 최근 주가가 상승하는데 경제적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특히 코스닥시장의 경우는 최근에 변한 게 없는데 이상하다. 정부가 지난 연말에 12조원에 가까운 벤처자금을 투입하겠다고 하니까 저렇게 거품이 발생하는 것이다. 너도나도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까 그걸 빙자해서, 어떤 식이라도 뭔가 보여줘야 하기에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직업인으로서 관료, 장관들의 수준이고 본질적인 모습이다. 기본적으로 정책을 끌고 가는 사람들의 자세가 그래서는 안된다. 요즘은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하는데, 표현 자체가 무슨 TV연속극 테마도 아니고 안타깝다.
우리 경제정책의 문제는 정치권에서 종합적으로 다루는 인물이 없다는 데도 원인이 있다. 대통령 하겠다는 사람은 많아도 무엇을 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은 없다. 대통령 자리에 앉으면 저절로 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대통령 임기를 보냈던 것이다. 지난 김영삼, 김대중 정부도 그랬다. 경제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순전히 정권에 줄 선, 무능력한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IMF 경제위기 때도, 미국 재무부와 IMF가 시키는대로 따라만 했을 뿐이다. 사실 IMF 위기는 단기적인 외환 유동성의 위기였다. 6.25 이후 최대 위기라고 했는데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능력으로 해결한 것도 아니었다. 단기 외채를 중장기 외채로 전환시켰을 뿐이다. 엄청난 공적자금으로 금융권을 정상화시켜서 해결된 것이다. 공적자금 159조원에 공공자금까지 포함해서 총 230조원이 들어갔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경제의 문제는 구조상의 취약점 때문인데, 경기를 진작한다면서 부동산투기를 조장하고 돈을 투입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신용카드를 무차별로 살포했었다. 1998년 마이너스 6.7% 성장이 1999년에 10%넘게 성장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그래서 좋아진 것처럼 보인 것 뿐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경제정책이 수시로 바뀐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것이다. 기업이건 가계건 정부건 경제주체가 능력도 없이 과잉소비를 하면서 빈부격차가 생겼다. 능력도없이 투자하니까 IMF가 왔다. 또 요즘에는 각종 사회기금을 동원해서 경기진작을 하겠다고 한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역시 잘못된 정책일 뿐이다.

작년인가는 얼핏 先성장 後분배를 말하는데, 정부의 정책책임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국밖에는 없다. 1960년대부터 그런말 했는데 언제 한번이라도 후분배 한 적이 있나? 지금 1인당 국민소득이 1만5천불인데, 환율이 떨어지면 금방 2만불이 된다. 그런 광고성 선전만 하려고 하지 지금 1000원대에서 연평균 4% 성장해 2008년이 되면 2만불이 되는데, 그런 수치가 일반국민의 생활과 무슨 상관이 있나? 1만불 시절에도 後분배 못하고 1만5천불에도 못하고 그럼 언제 하나? 이러니까 국민이 신뢰를 못하는 것이다.
양자 선택만 있고 종합적 판단은 없어
우리사회에 삼팔선, 사오정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마디로 중산층이 붕괴하고 저소득층이 많이 늘었는데, 기본적인 대책이 없다. 국민연금만 해도 그렇다. 1980년 후반에 도입된 제도다. 당시 경제성장률이 8% 수준이었고, 국제수지도 약 330억불 정도의 흑자를 내면서 도입되었는데,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지금 130조원 정도의 기금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운영방식에 있어서 혼선을 빚고 있다. 매년 30조원 가까이 징수를 한다. 지금 일하는 세대가 늙은 세대를 먹여살리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또 적립방식을 병행하면 문제가 없는데, 자꾸만 다른 소리를 한다. 결론적으로 국가운영 전체의 틀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보면서 정책을 추진해야지 모든 분야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데 그게 아니고 A냐, B냐 선택의 문제로 가니까 통합은커녕 국민들 살기만 더욱 어렵다.
다음으로 앞으로 제일 큰 문제가 북한문제다. 최근에는 북핵 얘기가 많은데, 북한문제의 초점은 핵문제가 아니라 체제가 존재가능 하느냐에 있다. 소련이나 동유럽, 특히 공산주의사회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했던 동독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서 결국 체제라는 것이 국민을 굶겨죽이면 붕괴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깨닫았다. 북한이 핵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이다. 어버이 수령이라고 하는데 국민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북한이 많이 변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체제가 와해하는 과정에 있다고 판단한다.
임박한 통일, 우리의 의지와 능력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만에 하나 급작스런 사태가 머지않은 장래에 온다면, 한국이 북한체제를 받아안고 통합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보듯이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데 10년 이상 걸리는게 상식이다. 북한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전환과 통합의 문제인데, 우리에게 지불능력, 지불의사가 있어야 한다. 물론 지금의 현상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변화하길 바라는 분위기도 있겠지만,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 보면 북한의 와해가 머지 않았는 것이 기정사실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통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이점에서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 여러 정권은 통일을 위한 준비가 아니라 국내정치용으로 대북정책을 써왔다. 하지만 이제는 끝나야 한다. 통일을 얘기하면 많은 비용이 드니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독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이미 수치로 나와 있다. 물론 비용도 들고 혼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는 작용을 할 것이다. 이념대립과 민족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사관계를 살펴보자.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용의 문제이고 노조의 입장에서는 생존권에 대한 것으로 서로 대립한다. 이러한 대립은 최근 기아자동차노조 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기업단위 노조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고, 물질주의적 노조운동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단위 노조는 사실 전경련의 주장이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관리하기가 쉽기 때문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를 사회통합으로 이끌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산별노조로 갔으면 쉽게 대화를 진행시킬 수 있다. 다른 경제정책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맞지 않는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다.
국민을 설득하는 리더십부터 회복해야
마지막으로 요즘 행정수도와 관련해서 논란이 많은데, 행정수도는 갈등만 가속화시킨 측면이 있다. 통일을 지향하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했다. 정치인으로서 다른 성장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정치를 펼 것으로 판단했다. 사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지역감정에 사로 잡힌 표는 빼고 수도권의 중저산층이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다고 분석하는데, 지난 2년 동안 그들을 위해서 한 것이 없다.
돌이켜보면 1956년 신익희 후보의 대선공약은 ‘못살겠다. 갈아보자’였다. 경제구호였다. 그다음에 1961년 군부의 쿠데타는 기아에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겠다는 혁명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바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세우고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그래서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다. 경제발전이 생활을 향상시켜주니까 국민들이 따랐던 것이다. 그러다가 묵묵히 살던 시민들이 시위에 나서고 치명타를 날린 것이 부마사태였는데, 바로 부가세조세에 대한 저항이 그 시작이었다. 결국 경제가 사회를 바꾸고 사람들의 의식을 바꾼다는 것과 변화의 흐름에 맞는 정책을 펴야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통합의 논의를 할 수 있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의 핵심이기도 하다.
<질의응답>
조민(연구위원) :
정부여당에서 연기금의 SOC투자가 얘기되고 있고, 이를 통해 고용을 확대하는 이른바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의원님의 견해는? 또 실업,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김종인 :
국민연금에서 돈을 가져다 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문제는 국민연금이 사업의 주체가 되어서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겠다는 데 있다. 사회간접자본이라는 것 자체가 수익률이 낮은 편이다. 그렇다고 수익성 위주로 SOC를 운영하면 소비자의 부담이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정부가 사업의 주체가 된다. 제 생각에는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사회연기금이 그 국채를 사는 방식이면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또 빈약한 우리나라의 채권시장도 살릴 수 있기 때문에는 합리적이다. 국민연금을 사업주체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느는 것은 상식이다. 기업이 출자총액제한 때문에 투자를 못하겠다는 소리를 하는데 기업이란 돈만 벌 수 있다면 지옥도 가는 사람들이다. 저는 한국경제의 문제가 경기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본질은 성장엔진의 문제다. 하이테크산업이 한계에 부딪쳤고 수출기업들 간에도 양극화가 심각하다. 성장이 해결되지 않으면 고용의 해결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하는 모습은 구조적 문제의 정확한 진단과 치유없이 몰핀주사만 쓰는 꼴이다. IMF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하고 있다.
또 앞으로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인구의 감소추세다. 인구가 줄면 연금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많이 징수하고 적게 주는 방식은 단기대책일 뿐이다. 작년부터 출산율이 문제라고 말하는데 사실 1980년대 후반부터 예상됐던 문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1.14%인데, 독일의 1.7%만도 못하다. 세계에서 최하위권이다. 이건 보건복지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문제다. 복지문제가 아니라 경제부터 나라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정책을 포함해서 모든 국가정책에 인구감소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
교육제도도 마찬가지로 중장기적 방향을 설정하고 새롭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짜야 한다. 그런데 왜 하지 않느냐면, 생색도 나지 않고 골치만 아프기 때문이다. 역시 관료사회의 문제다. 사실 우리경제의 잠재성장율이 약 4% 수준인데, 국민소득 1만5천달러라면 큰 문제가 아니다. 쓸데없이 성장률 1% 올리는 짓을 하지 말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우는데 총력을 기울어야 한다.
김현인(편집주간) :
문민정부 이래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사람들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또 중장기적인 한국경제의 전략부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결국 정치권의 문제인지?
김종인 :
정부의 역할은 이미 끝났다. 시장경제의 여건이 변화하는 상황에 따른 그 틀을 바꿔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무슨 산업은 누가하고 뭐는 누가하라는 식으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이미 아니다. 또 이미 경제의 파워가 정치 파워보다 커져서 얘기를 해도 말을 들을 상황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말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역시 솔직히 없애야 한다. 그 제도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이미 아니다. IMF 사태 때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팽창했기 때문에 그런 규제를 만들었다. 이제는 이미 만들 규제는 다 만든 상황이 아닌가? 또 지금까지는 정부가 국내시장을 보호한고 시장개방을 막으면서 국내산업을 육성했는데 이제 그 단계는 지났다.

이왕재(경제모델분과장) :
조금 전에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같은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방혁신과 분권운동에 대한 의견은?
김종인 :
재정의 이양 없는 지방분권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행정적 권한만 분권시켜서는 불가능하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역간 편차가 너무 심하다. 결국 지방자치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중앙정부에서 돈을 움켜쥐고 지방을 컨트롤 하기 때문이다. 지방분권을 하려면 지방에 대한 과감한 재정 이양이 선결되어야 한다. 또 경제특구니 뭐니 하면서 지방에 대단한 것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정말 모르겠다. 1인당 국민소득 1만5천달러 시대에 가능한 소리인가? 개발경제 시대의 사고방식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결국은 돈만 낭비하는 짓이다.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 미리미리 해 놓으면 생색도 안난다.
꼭 문제가 터졌을 때 임시방편이라도 처리를 해야 여론의 주목도 받고 빛이 나니까 관행처럼 굳어졌다. 관료사회의 전통적인 문제다.
앞서 인구감소 문제도 말했지만, 전기, 에너지, 물류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천공항도 그렇고 전력소비 예상도 마찬가지다. 관료들에게 조사를 시키면 아파트나 건물의 전구가 몇 개인지를 가지고 예상치를 뽑는다. 그런데 한 여름에 에어콘을 쓰니까 전기가 모자라고 단전을 하고 난리가 났다. 왜 전기가 부족한지 물으면, 물가안정을 위해서 전기료를 동결하고 발전소를 적게 졌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전기료를 올려서 발전소를 지으려면 국민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설득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하지 못한다. 전기료 조금씩 더 내는 것이 좋지 한 여름에 전력이 부족해서 엘리베이터, 냉장고, 선풍기가 모두 스톱하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면 답은 뻔한 것이 아닌가.
조민(연구위원) :
현 정부는 동북아중심국가를 국정의 제1과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다.
김종인 :
상식적으로 솔직하게 말하자. 중국은 13억 인구에 연간 9% 성장, 일본은 세계에서 제2의 경제대국이다. 중국과 일본의 중간에 낀 한국이 동북아에서 중심국가가 어떻게, 무엇으로 될 수 있나?
중국 상해에는 세계 100대 기업이 다 들어와 있다. 금융을 포함한 모든 것이 집중돼 있다. 나중에는 다 중국의 것이 된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역사적인 소산이기도 하다. 그래서 저는 중국의 자본주의를 천자자본주의라고 본다. 상상력과 비전도 좋지만 우리의 규모에 맞게 상상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아무 의미도 없다. 사실 1976년부터 15년 경제계획을 세웠는데, 목표가 영국을 따라 잡겠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또 15년 계획을 세웠는데그때도 영국을 따라잡겠다고 했는데 정말 웃기는 소리다. 한마디로 산업화 시절 기획경제의 부산물이다. 시장경제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목표설정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5년도 못 보는 실정이 아닌가.
김석규(Globe2050분과장) :
불과 몇 년 동안 국정목표가 몇 번 바뀌었다. 동북아중심국가도 그렇고,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도 그렇다. 중요한 것은 경제력이 정치력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치인이 인기없는 미래전략을 세우겠는가?
김종인 :
국민들의 공감대를 찾아야 한다. 정치인은 솔직하게 우리들의 실상을 알리고 제안을 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과 컨센서스를 맞출 수가 있다. 국민들도 동의할 것이다. 또 경제계나 재벌도 제일 무서운 것이 국민이 아닌가?
요즘 유행어가 로드맵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슨 로드맵을 내놓는 것이 아니고 국민을 설득하고 함께 끌고 갈 수 있는 자세와 실력이다. 그래야 국민이 동의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개발시대 성장신화를 눈으로 보았다. 빨리 그 경험의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래를 개척할 수 없다.
참석자 ; 김현인, 이왕재, 이주원, 박소희, 고한석, 김정대, 김석규, 이호준, 박현선, 박종철, 김경아, 진월, 조민 13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