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by 최배근 posted Nov 15, 2004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미국과 중국의 수중에 놓인 남북한경제와 한반도문제
한국경제는 현재 중병(重病)을 앓고 있다. 민간소비 지출이 7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서비스업 생산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하는 등 내수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국제경제 환경 역시 우리 경제에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중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부시의 재집권으로 고유가와 약달러의 지속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 쇼크가 미국(해외)자본의 탈출로 결합될 경우 내수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상태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 올해 들어 중국기업들이 북한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데 이는 북핵문제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북한의 입장을 활용하여 남북간의 경협이 더욱 진전되기 전에, 그리고 핵문제 해결 이후 본격적인 북한시장의 개방 이전에 북한 시장을 선점하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특히 동북3성 진흥계획과 연계하여 추진되고 있다. 한국경제와 한반도문제를 중국과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형국인 것이다.  

이처럼 한국경제는 내수 기반의 ‘구조적’ 회복이 시급하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7년간 정체하고 있고, 외환위기 이후 5년간 국민소득 대비 투자율은 이전의 5년과 비교할 때 평균 78%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다. 이밖에도 국가적 고민거리로 떠오른 청년실업,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소자본자영업을 꾸리다 파산의 위기에 몰린 중년의 구조조정 희생자들, 국민의 5.9%에서 11.5%로 2배 이상 늘어난 절대 빈곤층 등 이 모든 것이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경제)개혁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87체제의 결과로 성립한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진행된 경제개혁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개혁이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진행된 개혁들은 낡은 것을 파괴한 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위기의 원인이다. 위기는 외파(explosion)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능력(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사의 시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만들어낸 87체체의 주역들은 낡은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청사진을 갖고 있지 못하였고, 그 결과는 북핵위기로 표면화된 한반도문제와 외환위기로 나타났다. 리더십의 결여와 관련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의 철학이 빈곤한 정치권은 물론이고 자신의 장기적 성장동력 확보와 국민경제의 이익이 한 몸뚱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재벌)기업, 미국(경제)학자보다 더 미국(경제)식으로 사고하는 지식인사회, 국민 다수를 위한 진보와 내용의 진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운동진영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영미형 시장경제모델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내수기반의 구조적 붕괴와 민족공조 중심의 한반도구상으로 오히려 미국과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한반도문제의 유산을 물려받은 참여정부는 적어도 경제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그 이전 정부와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한걸음도 앞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위험과 성장의 공유를 통한 사회대타협
이 시점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국경제의 당면한 근본문제는 국내투자의 기피현상이다. 일각에서처럼 이를 기업의 사보타주로 이해한다면 문제해결은 어렵다. 투자율의 하락을 구조적 문제로 이해하지 않는 한 투자활성화는 기대할 수 없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한국경제성장의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재벌체제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계열기업간 상호 보조를 통해 재벌체제가 과감한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의 육성, 즉 장기적인 성장동력의 확보를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 재벌체제는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과 손실의 규모는 국민경제를 담보로 하고 있다. 이익의 보장이 불확실할 때는 나눔이 독점보다 유리하다. 재벌체제는 자신이 실패할 위험(리스크)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산시킨 시스템이기에 재벌체제가 유지되기 해서는 분배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분배는 미래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국민들이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나눔은 없이 위험만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기업이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의 폐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나눔의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자칭 개혁진영 역시 재벌체제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향후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성장동력의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의 강화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경영권의 중앙 집중에 따른 재벌체제의 폐해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기업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내부감시체계의 강화를 통해 재벌총수와 주주와 사회적 이익이 합치하도록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재벌체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 속에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은 발붙일 여지가 없다.

투자 위축과 관련하여 또 다른 원인으로 금융의 중개기능 약화를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무분별한 금융자유화 정책으로 외국계 자본의 금융시장 장악과 금융주권 상실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한때 근시안적 이익 때문에 금융자유화를 요구하였던 재벌기업이 최근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의 필요를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국내금융시장에 대한 외국인 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전과 같은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의 구축은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연기금에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점, 건전한 기업경영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 외국 투기자금에 노출돼 있는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주도하게 되면 기업경영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영방식을 채택하게 될 것이기에 노조나 지역사회나 사회단체가 기업과 반목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재벌을 장기적인 성장동력의 틀 안에서 바라볼 때 증대하는 재정팽창의 압력을 해소시킬 수 있는 길도 보인다. 우리 사회는 현재 재정여건이 급속히 악화되는 가운데 사회복지재정 지출의 증대나 공적연금 등 사회부담의 증대, 그리고 자주국방 및 통일 재원의 마련 등 재정팽창 요인들이 크게 증대하고 있다. 장기적 성장 원천을 조속히 구축하지 않을 경우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의 빠른 진행과 출산율 저하에 따른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부족과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 비정규직 급증에 따른 고용안전성 저하, 임금문제와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는 교육과 주택문제, 환경보전형 농업과 지역순환형 농촌사회의 건설을 통한 농업과 환경과 분권의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국민국가 차원의 협상과 대타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역할은 부문간 이해를 수렴시키는 확장된 연관복합체, 즉 네트워크 국가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