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본

by 최배근 posted Dec 06, 2004
한국경제의 신진로 모색

1. 잃어버린 7년

경제 성장은 1970년대 이래 한국경제에 있어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성장의 폭이 문제가 될 뿐이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임기 내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7%로 제시했다. 좀 과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제시하는 수치라고 자신있게 말한 바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은 임기 3년간 최소한 연평균 9%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올해의 경제성장률이 5%에 머무르거나 그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지금의 상황으로는 언감생심이다.

한국경제가 IMF 위기를 맞이하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민소득 1만불 시대로의 돌입이 착시현상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 환란을 거치면서이다. 1995년과 2002년의 국민소득을 비교해보면 1만달러 정도로 제자리 걸음이다. 연평균총투자율을 비교해 봐도 1993년부터 1997년까지의 5년 평균투자율보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의 5년 평균투자율이 8%이상 하락했다.

한국경제는 현재 중병(重病)을 앓고 있다. 민간소비 지출이 7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서비스업 생산이 사상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하는 등 내수가 극도로 침체된 상황에서 국제경제 환경 역시 우리 경제에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중국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고, 부시의 재집권으로 고유가와 약달러-고금리의 지속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발 쇼크가 미국(해외)자본의 탈출로 결합될 경우 내수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한국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상태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올해 들어 중국기업들이 북한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데 이는 북핵문제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북한의 입장을 활용하여 남북간의 경협이 더욱 진전되기 전에, 그리고 핵문제 해결 이후 본격적인 북한시장의 개방 이전에 북한 시장을 선점하려는 중국의 전략으로 특히 동북3성 진흥계획과 연계하여 추진되고 있다. 게다가 동북지역 진흥계획은 한반도를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구상도 물거품으로 만들 공산이 크다. 실제로 중국은 홍콩ㆍ상하이에 이어 한반도와 인접한 동북지역까지 금융ㆍ물류허브 건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 착수함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동북아 허브전략 자체에 심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중국의 이 같은 프로젝트는 랴오닝성ㆍ지린성ㆍ헤이룽장성 등 동북지역의 인구 3억~4억 규모의 시장을 직접 겨냥한 것이며 아울러 북한의 신의주 개발 등에 대응한 사전포석의 성격도 있어 우리의 남북경협 전략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경제와 한반도문제를 중국과 미국이 좌지우지하는 형국인 것이다.

한국 경제의 추락은 경기순환, 노사문제, 북핵문제, 사스 등의 일시적인 요인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시스템의 정체에 의한 것임을 의미한다. 설비투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3년에서 1997년까지는 13.8%로 OECD 회원국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으나, 1998년부터 2002년 중에는 미국이나 일본은 각각 3%와 1%가 성장한 반면 한국은 이 비율이 11.2%로 2.6% 하락했다. 현 참여정부 경제정책은 기본틀과 철학에서 DJ 정부를 계승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국민의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유롭고 투명한 공정 시장질서의 확립, 지속적인 구조개혁, 기업 환경 개선, 대외개방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을 통한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선진경제시스템 구축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다. 참여정부는 출범 당시 국민통합,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분권 등의 목표를 설정했다. 하지만 2년이 가까워지는 현재까지의 추진 내용과 과정을 볼 때 현 정부의 리더십의 부족, 철학의 결여 등으로 그 목표의 실현이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여정부의 경제 개혁에 대한 집착은 고집스럽기만 하다. 지금 국민들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요소투입형 경제구조에서 혁신주도형 경제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기회비용으로 여기고 있다.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오히려 대기업이 여유자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는다며 경기 침체의 책임을 대기업의 사보타지로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은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뉴딜적 종합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정부재정도 확대하고, 세금도 감면하면서, 연기금을 SOC 확충 등에 투자해 지나친 경기 침체는 막겠다는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한국 경제는 성장한다’라는 명제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있다. 한때 그 어렵고 힘들었던 IMF를 통과하면서 한국경제의 저력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직면한 침체와 위기가 주는 두려움은 그 믿음을 압도하고 있다. 고난의 현재를 견디는 것보다 힘든 것은 무망(無望)의 미래를 기다리는 일이다.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현재의 침체에 있지 않다. 한국 경제는 절체절명의 도전으로 상정된 ‘개혁’의 덫에 걸려 있다. 한국의 ‘개혁’은 해석되지 않는 과거와 싸우고 있고, ‘반개혁’의 유령과 대치하고 있다. 낡은 것과 투쟁하고 있다는 자긍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싸움의 승자가 미래를 담보하지는 못한다.

청년실업, 노동시장에서 퇴출되거나 소자본자영업을 꾸리다 파산의 위기에 몰린 중년의 구조조정 희생자들, 국민의 5.9%에서 11.5%로 2배 이상 늘어난 절대 빈곤층 등 이 모든 것이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경제)개혁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87체제의 결과로 성립한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진행된 경제개혁이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개혁이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진행된 개혁들은 낡은 것을 파괴한 반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위기의 원인이다. 위기는 외파(explosion)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능력(리더십)의 부재에서 비롯하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사의 시각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만들어낸 87체체의 주역들은 낡은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청사진을 갖고 있지 못하였고, 그 결과는 북핵위기로 표면화된 한반도문제와 외환위기로 나타났다. 리더십의 결여와 관련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의 철학이 빈곤한 정치권은 물론이고 자신의 장기적 성장동력 확보와 국민경제의 이익이 한 몸뚱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재벌)기업, 미국(경제)학자보다 더 미국(경제)식으로 사고하는 지식인사회, 국민 다수를 위한 진보와 내용의 진보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운동진영 모두가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영미형 시장경제모델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내수기반의 구조적 붕괴와 민족공조 중심의 한반도구상으로 오히려 미국과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한반도문제의 유산을 물려받은 참여정부는 적어도 경제와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그 이전 정부와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한걸음도 앞을 향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

2. 1990년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지난 한국경제에 대한 평가를 경제정책 운용과정의 문제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90년대 접어들어 시대적 변화와 도전에 어떻게 조응하려 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경제가 어떤 대응을 하고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살펴볼 때 총체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1990년대에 접어들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와 접하게 된다. 이른바 탈냉전 시대와 세계화의 도래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출현이 그것이다. 90년대 초반 탈냉전의 시대가 열리면서 한미동맹 중심의 한반도 질서는 1993년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이후 제1차 북핵위기가 발발하면서 격랑에 휩싸인다. 금융부분에서는 1985년 레이건의 연두교서에서 자본의 재배치를 선언한 이래 1986년 UR 협상, 1995년 WTO가 출범하기 이르기까지 급격한 세계화가 진행됐다.YS 정부는 1995년 세계화선언을 하고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그러나 3저 호황 이후 거품 경제가 붕괴되고 경기가 침체되었고, 자본시장 개방과 환율하락의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IMF 외환위기가 발발하게 된다. DJ 정부는 IMF 위기의 극복을 위해 영미형 시장경제모델에 따른 구조조정과 경제개혁을 단행하고, 대북 햇볕정책을 통해 민족공조 중심의 한반도구상을 펼치게 된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가 발생함에 따라 IMF와의 협약에 따라 외화공급의 확대 및 시장개방 촉진을 목적으로 OECD 가입 시 유보하였던 단기금융 및 채권시장 개방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자본거래를 자유화하면서 지금까지 고도 성장의 동력이었던 <고부채-고투자-고성장>의 위험공유시스템이 붕괴되게 이르렀다. 이 결과 성장활력이 상실되었고, 소득분배도 악화되었다. 그리고 불확실성의 증대 등 한국경제의 내수기반이 구조적으로 취약해지면서 해외수요에 경기가 의존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경기의 침체 등에 따라 수출이 급감하면서 경기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2001년 중반부터 본격적인 소비 중심의 내수진작책으로 전환하게 된다. 주택담보대출 비율을 확대했고, 무분별한 신용카드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부동산가격의 폭등과 가계(금융)부채와 신용불량자의 급증하게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족공조 중심의 한반도구상은 국제협조의 결여로 6.15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남게 되었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사회는 90년대에 맞이한 새로운 시대와의 조응에 경제적으로도 정치외교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우리 앞에 놓여진 기회와 도전에 응전할 적극적 의지가 부족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새로운 국가비전을 마련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3. 전락과 대안 : 네트워크형 성장메커니즘 구축과 사회통합적 경제개혁

1) 단기 투자주도형 성장방식의 복구와 중장기 혁신주도형 성장전략의 조화
새로운 성장동력의 부재 상태로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신산업으로의 급속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산업연관관계의 약화 등으로 즉 금융.부동산. 서비스업 등을 제외하고는 생산이 증가해도 고용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 저고용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요소투입에 의한 성장의 급격한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투자주도형 성장 방식은 필요하고 유효하다. 지식 및 기술 집약형으로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총요소생산성의 증가 없이도 규모의 경제효과로 요소투입에 의한 성장 방식은 높은 성장률을 보장한다.  기업의 역량이나 기술 수준을 고려할 때 혁신주도형 성장 방식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비현실적 전략이다. 현 단계에서는 투자주도형 성장의 기반을 복구시키고 중장기적으로 혁신주도형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투자주도형 대 혁신주도형 성장 전략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발전이 비슷한 단계에 있는 국가들과 비교해 한국경제의 성장률이 하락한 것은 투자주도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자율의 구조적 하락에 있기 때문이다. 높은 투자율은 혁신주도형 성장 전략에 전혀 장애물이 될 수가 없다. 신산업으로의 급속한 구조조정과 혁신주도형 성장잠재력의 확충을 위해 기술의 융복합화 경향에 맞춰 교육 및 기술개발 관련 구조개혁이 시급히 필요하며 R&D투자의 질의 개선을 위해 역량의 집중과 공유도 필요하다. 그런데 선진국이 국가기술혁신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기술개발의 효율성과 선순환 구조 형성에 역량을 결집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대학의 교육시스템이 취약하고 효과적인 국가혁신시스템의 효과가 미흡한 실정이다.

2) 투자위험 분담시스템에서 네트워크형 성장메커니즘으로 전환
지금의 시점에 모두가 동의하는 한국경제의 당면한 근본문제는 국내투자의 기피현상이다. 일각에서처럼 이를 기업의 사보타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이러한 시각으로 접근해서는 문제해결은 어렵다. 투자율의 하락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이다. 지금의 투자율 하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벌체제에 대한 이중적 시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계열기업간 상호 보조를 통해 재벌체제가 과감한 대규모 투자와 장기적으로 전망 있는 산업의 육성, 즉 장기적인 성장동력의 확보를 가능케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반면, 재벌체제는 채산성 없는 부실기업을 지탱시키고 계열사 연쇄 부실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위험과 손실의 규모는 국민경제를 담보로 하고 있다. 이처럼 재벌체제는 자신이 실패할 위험(리스크)을 사회 전체적으로 분산시킨 시스템이기에 재벌체제가 유지되기 해서는 분배가 전제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분배는 미래에 대한 보험인 셈이다. 국민들이 재벌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나눔은 없이 위험만 분산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벌기업이 출자총액제한제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의 폐지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나눔의 지혜를 깨달아야 한다. 재벌개혁을 주장하는 자칭 개혁진영 역시 재벌체제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향후 한국을 먹여 살릴 미래 성장동력의 확보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출자총액제한제의 강화나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경영권의 중앙 집중에 따른 재벌체제의 폐해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재벌기업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내부감시체계의 강화를 통해 재벌총수와 주주와 사회적 이익이 합치하도록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재벌체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진다면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의 훼손은 기존의 위험공유메커니즘의 붕괴에서 비롯한 것으로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기존의 투자위험 분담시스템의 양축인 재벌그룹에 의한 상호부조적 투자메커니즘과 정부의 암묵적 보증에 의한 은행들의 위험수용체제가 크게 훼손된 상황이다.

투자 위축과 관련하여 또 다른 원인으로 금융의 중개기능 약화를 지적할 수 있는데 이는 무분별한 금융자유화 정책으로 외국계 자본의 금융시장 장악과 금융주권 상실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고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다. 한때 근시안적 이익 때문에 금융자유화를 요구하였던 재벌기업이 최근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의 필요를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국내금융시장에 대한 외국인 자본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외환위기 이전과 같은 관계지향형 금융시스템의 구축은 어렵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연기금에 ‘사회책임투자’(Social Responsible Investment)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도모하면서 주식시장 활성화를 통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점, 건전한 기업경영 관행을 정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 외국 투기자금에 노출돼 있는 우리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 등으로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를 주도하게 되면 기업경영자는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제성, 사회성, 환경성을 함께 고려하는 경영방식을 채택하게 될 것이기에 노조나 지역사회나 사회단체가 기업과 반목할 이유도 사라질 것이다.

경영권 안정과 투자 확대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와 부채비율의 규제에 대한 시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정부 및 공적 기구의 감독기능의 강화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3) 개발국가에서 ‘네트워크 국가’로의 전환

고전적으로 ‘강한 정부’란 사회의 주요 행위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책을 고안하고 수행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으로 정의될 수 있다. 강한 정부의 경우 국가의 ‘침투역량’과 ‘추출역량’에 의해 국가 역량이 결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강한 정부’의 리더십이 관철되기에는 한국사회는 이미 고도화되었고, 다양한 권력 구조가 작동하는 복잡한 사회가 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네트워크 국가’이다. ‘네트워크 국가’의 힘은 국가와 사부문의 이해의 수렴과 양 부문간 확장된 연관복합체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정부.기업.사회 등 경제주체간 합의와 협력이 강소국 성공의 조건이었듯이 불확실한 대외여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제주체간의 긴밀한 협력과 유연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현 단계에서 한국경제는 과감하게 위험을 감수함으로써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지만, 민간부문의 힘만으로 한계를 가진다. 경제주체간의 발목잡기, 상호견제로 인한 의사결정 지연으로 인해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경제주체 간 네트워크, 정보.지식공유, 합리적 인센티브 등을 통한 정부와 민간의 효율적 협력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보통신, 교통-물류 등은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국방, 재난-의료, 에너지 등은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 수행하는 방식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디스플레이, DTV 등 경쟁력 있는 분야는 기업이 주도하고, 바이오산업, 지능형로봇 등 장기 투자가 요구되고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는 정부 주도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대기업투자가 중소기업 투자로 연결될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 간 기술공여, 공동연구개발, 장기계약, 설비구매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현재 재정여건이 급속히 악화되는 가운데 사회복지재정 지출의 증대나 공적연금 등 사회부담의 증대, 그리고 자주국방 및 통일 재원의 마련 등 재정팽창 요인들이 크게 증대하고 있다. 장기적 성장 원천을 조속히 구축하지 않을 경우 재정건전성의 악화는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의 빠른 진행과 출산율 저하에 따른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부족과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 비정규직 급증에 따른 고용안전성 저하, 임금문제와 불가분 관계를 맺고 있는 교육과 주택문제, 환경보전형 농업과 지역순환형 농촌사회의 건설을 통한 농업과 환경과 분권의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국민국가 차원의 협상과 대타협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의 역할은 부문간 이해를 수렴시키는 확장된 연관복합체, 즉 네트워크 국가로서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

4) 아시아 경제 네트워크 구축
국가간 경쟁.협력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운데 중국 경제의 부상으로 인한 한국의 상대적 매력도 저하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과 일본의 경제영토 확장 경쟁으로 한반도 구상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민족문제의 해결은 국제협조 없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북한 개방과 신동북아 출현 과정에서 미국의 이해를 존중해주는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고, 또한 통일한국의 등장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감소시켜야 한다.
동북아 경제중심으로 비즈니스 거점화 및 동북아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대안 없이 한미동맹에 머무는 것도 문제지만 대안 없이 한미동맹을 해체하는 것도 문제이다.  동북3성 진흥계획(동북공정)과 연계된 중국의 북한 시장 진출이나 중국과 일본의 경제영토 확장 경쟁에서 아시아 경제네트워크의 구성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중첩되는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에서 고립될 우려가 있다. 한국-일본-중국-ASEAN을 연결하는 동아시아 국가내 경쟁은 후진국의 경제개발 노력과 함께 심화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동아시아 역내 경쟁이 심화됨과 동시에 역내 분업체제도 가속적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아 금융․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공동의 문제에 대한 공동대처 방안 마련 요구가 높아지면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역(FTA) 등 동아시아 지역경제통합체의 설립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도의 부상으로 ‘아세안+3’는 아세안+4로 재편해야 할 운명에 놓였고, ‘아세안+3’에서 한국 정부가 제창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도 빛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아시아 경제권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ASEM과 APEC을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지역화와 세계화의 동시 진행에 대하는 방식이 될 수 있으며, 세계시장을 무대로 추가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몽골-중앙아시아-인도-오스트레일리아-베트남을 중심으로 하는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아시아 경제네트워크>의 건설을 적극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러시아가 중심이 된 동북아 에너지 네트워크나 동아시아지역경제통합체 구상에서 머물고 있는 형편인데 이를 뛰어 넘어 중앙아시아-인도-호주-아세안을 잇는 <아시아 경제네트워크>의 건설을 한국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이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인도, 호주 등과 FTA를 추진 중인 상황에서 동아시아에 머무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건설의 불가피성은 아시아의 미묘한 역사적 지정학적 정치․경제적 관계와 구도에서 비롯한다. 중국과 일본은 서로를 불신하며 상대방의 주도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동아시아는 구조적 불안정성을 안고 있다. 공간적 역사적 맥락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동북아 강국들의 팽창이나 경제적 지배를 우려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동북아 강국들과 동남아 국가들을 맺어주고 중재해 줄 수 있는 적임자의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그러한 역할을 위한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 아시아와 동북아의 전략적 가치가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동북아 강국들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을 맺어주고 중재해 줄 수 있는 적임자의 위상을 확보할 때만이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게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중요성을 가질 것이다. 즉 한미동맹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또 한미동맹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한국은 한미동맹의 동질성과 호혜의 원칙, 그리고 소국인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전략적 가치는 결국 아시아의 공동체적 기운을 북돋우면서 남북간 협력과 화해의 무드를 조성해 우리의 운명에 작용할, 우리의 지렛대를 조금이라도 더 크게 만드는 길밖에 없다. 이를 위해 사회통합의 리더십은 대전제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