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동아시아는 무엇이고,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by 永樂 posted May 23, 2007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무엇이고,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2006. 11.12 / 永樂



이 벅찬 주제를 감당하기에 앞서, 먼저 개념 설정부터 하고 들어가야 할 듯싶다. ‘우리’는 누구이고 ‘동아시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 말이다.

‘우리’는 누구를 말함인가

‘우리’란 범주에는 필시 대한민국이 당연히 들어갈 것이고, 나아가 수복되지 못한 이북1)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즉 통일한국의 존재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재외동포들이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 조선족이라 불리는 3백만의 재중동포를 위시해서 고려인이라 불리는 재러시아 동포와 재일동포 그리고 전 세계 120여 개국에 단 한 세기만에 이산한 비극의 8백만 동포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저는 이 8천만 모두를 ‘팬코리아’(Pan Korea)라 부르기를 요망한다. 이는 세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세계무대에서 우리를 ‘South Korea’와 ‘North Korea’로 알고 있다. 다시 말해 8백만의 재외동포는 그 자리에서 빠져 있다. 특히 재중 재러 재일 동포들의 존재가 국제사회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세 강대국에 고루 산재해 있기에 남북통일의 과정이나 그 이후에도 코리아의 가장 중요한 ‘사람의2) 자원’(Man Power)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위를 분명히 하고 나아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하고 볼모로 잡힌 이북의 2천3백만과 함께, 독립전쟁의 후예로서 지금껏 응당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세 강대국의 2류 국민으로서 생존에 급급해야 했던 8백만 재외동포를 포함하여, 3각의 솥 다리로 정립(鼎立)하는 팬코리아를 분명히 세우고 싶다.

둘째, 서울의 무관심 속에 8백만 재외동포 사회가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멀리는 북송 재일교포의 사례도 있지만, 그 이후에도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재외국민에 상응하는 대접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그로 인하여 이미 재일 동포 사회는 그 기반에서부터 심각하게 무너져가고 있으며, 러시아 동포들은 러시아 극동 당국의 서울에 대한 우호의 정서에도 지금까지 오로지 제 힘으로 자리를 잡아야 하는 형편이다. 무엇보다 엄중한 사태는 동북공정으로 대놓고 반만년 코리아의 뿌리를 지우려 하는 차이나의 도발 앞에 재중 동포 사회가 급속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팬코리아’는 대한민국이 그들을 명백히 앞으로 우리의 재외동포에서 재외국민으로 간주해 나가겠다는 약속이며 또한 영구히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를 ‘코리아 네트워크’니 하는 식으로 어영부영 물 타기 한다고 주변 강대국들이 특히, 차이나와 일본이 넘어가리라고 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발상이다.

끝으로, 팬코리아는 코리아의 ‘탈(脫) 단일민족’ 선언이다. 코리아가 유사 이래 단일 민족이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며 인류사회에서 그렇게 된다는 믿음 자체가 실은 웃음거리다. 민족이란, 애초 혈연 중심의 ‘족’(族, Tribe)이 주변의 수많은 인류 집단과의 교류와 경쟁 및 협력의 과정을 거치며 ‘말글과 신화 그리고 의식주’의 3대 요소를 공유하는 문화공동체를 거쳐 주변과 뚜렷이 구분되는 ‘집단의 뿌리와 공간에 관한 인식 및 그 계통성’의 3대 요소를 고유의 개성으로 확보한 역사공동체로 서 나가는 과정에서 시나브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문명의 생성과 진화 과정에서 주변의 수많은 인류 집단과 끊임없는 섞임의 과정에서 그 고유의 실체와 정체성이 만들어진 것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따로 노는 인류 집단이란 존재할 수도 없고 설사 존재한다 하더라도 동종교배의 결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멸족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말도 되지 않는 믿음이 우리 모두를 지금껏 사로잡고 있었던 것인지 까닭은 두 가지로 유추해볼 수 있다.

첫째, 이조(이씨조선)의 맹목에 가까운 모화 사대주의 탓이다. 그들은 반만 년 민족사의 뿌리를 스스로 왜곡했다. 한족의 사서에도 엄연히 만주를 안마당으로 대륙을 호령한 선조들의 자취가 뚜렷함에도 그들은 스스로 소중화(小中華)의 미망에 빠져 사마천의 주장을 따라 기자조선의 후예를 자처함으로써, 역사시대를 연 단군조선의 문명은 사라지고 주(周) 무왕이 기자를 조선왕으로 봉한 때로부터 내내 한족의 영향권 내에서 있었다는, 오도된 역사인식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단군조선은 물론 부여와 고구려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 부모 밑의 형제’나 다름없는 이들을 몽고니 거란이니 말갈이니 한족의 지칭에 따라 부르며 오랑캐라 홀대하고 스스로 역사의 계통에서 배제했으며, 오로지 주 무왕의 책봉이란 정통성을 이어받은 문명화된 조선만이 중화의 일원이란 ‘신복(臣僕)의 순혈주의’에 빠지고 말았다.3)

둘째, 혹독한 일제 치하의 반작용이다. 일제는 그나마 남아있던 단군조선을 위시한 고대사 서적 수십 만 권을 불태우고, 코리아 역사의 시공간을 삼국시대 이래 2천년에 미달하며 그나마 한반도를 벗어나지 못한, 반도사관으로 철저히 세뇌하였다.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선일체를 주장하며 역사공동체로서의 코리아를 아예 지워 버리려고 하였다. 그 반작용으로, 코리아는 일본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같은 것이 없고 오히려 문명화된 코리아가 미개한 일본인의 문화를 처음 열어주었다는, ‘저항의 순혈주의’에 경도하고 말았다.  

이로서 코리아는 ‘신복의 순혈주의’로 대륙의 뿌리를 잘라내고 ‘저항의 순혈주의’로 열도와의 관련마저 부정하니, 결국에 남은 것은 뿌리도 없고 주변과 아무런 연계도 없으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로서, 반만 년이 아닌 2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고 오로지 9백 번이 넘도록 침략만 받았다는, 그럼에도 나라를 세웠다 하면 최소 5백 년에서 천 년을 가는 매우 이상하고 알 수 없는 ‘평화의 나라’, 그래서 도무지 스스로도 자신을 해명할 길 없는 ‘고요한 은자(隱者)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 미망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먼저 고구려 이전에 들어선 부여의 한 갈래로서 백제부여와 동일한 시기에 동맹으로 존재했던 일본부여의 실체를 드러내어 더 이상 그들을 오랑캐나 야만인이 아닌 우리와 먼 옛날 ‘한 부모 밑의 한 형제’로 복권할 일이며, 다음으로 스스로를 경주 김씨의 후손이라 밝히고 있는 애신각라(愛新覺羅, 아이신자오뤄)의 금나라와 청나라를 포함하여 우리 대륙의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단언하건대 코리아는 동북공정이라는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2천 년에 걸친 한족의 집요한 민족말살 정책을 결코 쉽게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언어도단의 순혈주의를 포기한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국적법의 속인주의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누구든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그 역사와 전통을 인정한다면 그는 우리의 국민이 되고 팬코리아가 되고 우리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더 이상 주변국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재외동포의 이중국적 문제는 신속하게 풀어야 한다. 그에 관한 주변국의 압박을 들어주었다고 언제 그들이 우리 국경과 역사에 시비를 걸지 않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제 나라 국민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다면 우리에게 세계 어느 강대국의 압력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자신들만 국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알면 곤란하다.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무엇이고,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 즉, 팬코리아에 관한 이야기가 두서없이 꽤 길었다. 이를 명백히 설정하지 않고 타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함은 불가하기 때문에, 특히 우리에 관한 설정이 매우 협소하고 자학사관에 절어 있다고 판단하기에, 그의 전면 재설계 없이 동아시아를 이야기함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그리 되었음을 혜량하시기를 바란다.

팬코리아에게 동아시아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하나는 생존의 터전이고 또 하나는 팬코리아의 안마당이란 점이다.

먼저 ‘생존의 터전’으로서 동아시아를 살펴보자. 동아시아는 분류에 따라 여러 개의 실체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동북아와 동남아다. 이 경우 전자는 한중일과 러시아 몽골, 후자는 아세안 10개국+@, 그리고 국제질서의 상수로서 미국이 있다. 이와 달리 미국과 차이나를 축으로 ‘Pax America'와 ’Pax Sinica'의 영향권을 나누어볼 수도 있다.4) 어느 경우든 코리아는 동아시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탈아입구(脫亞入歐)에 매달렸던 일본은 여전히 세계 2위의 경제대국임에도 이미 미국의 뒷받침이 없다면 장래를 설계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특히 세계 4대 강대국에 유일하게 둘러싸인 코리아는 각별하다. 그러므로 코리아가 동아시아에서 자신의 국가브랜드를 강력하게 확보하고 권역 20억의 민심을 얻는 일이 매우 절실하다.

동아시아가 ‘생존의 터전’이 되기 위해서 필수의 전제는 남북의 통일이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같이 하나의 기독교 문명의 틀 안에서 높은 동질성을 갖고 있는 권역이 아니다. 사람만 보아도 대한민국에 시민(市民, Citizen)이 있다면 일본에는 신민(臣民, Subject) 그리고 차이나에는 백성(百姓, Populace)이 있다. 이와 같은 처지에서 코리아가 남의 땅을 빼앗는 것도 아니고 전범국가 일본 대신에 분단되었던 나라를 통일하지 않고서야, 유럽의 강소국처럼 영원한 안전보장을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은 참으로 안일하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일부 강대국들의 견제를 어떻게든 극복하고 주변국들의 지지를 얻어 최단 시일 내에 최우선 순위로 통일을 이루어내는 일은, 코리아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전제이며 그 경우에 동아시아는 우리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거론할 문제는 경제동맹의 문제다. 이미 한 세대 이상을 먹여 살린 ‘한강의 기적’은 그 운을 다했으며 우리는 새로운 기적을 만들 때가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이나와 일본의 경제전쟁 틈바구니에 끼여 있고 게다가 셋 다 제조업 중심이라서 움직이기 매우 힘든 여건이다. 그럴 때 우리에게 남는 여지는 과감한 개방과 신속한 역내 시장의 진출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한중과 한일 그리고 러시아와 아세안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틈을 타서 동아시아 전역의 나라들을 우리의 경제동맹으로 만들고 그를 바탕으로 동아시아를 코리아가 주도하는 경제공동체로 끌고 나가야 한다. 그럴 때에라야 IT강국이자 문화강국으로서 우리의 장점은 실로 동아시아를 우리의 ‘생존의 터전’으로 만드는 도구로 그 역할을 십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거론할 문제는 동아시아의 재난대비 네트워크의 중심에 코리아가 서는 일이다. 우리가 동아시아 권역의 이방인이나 비주류가 아니고 스스로 주역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장의 이해관계를 떠나 실제 이 지역이 우리의 안방이라고 생각하며 그 안전보장에 주인답게 관장하려는 자세와 마음가짐이 매우 절실하다. 안전보장과 관련해서 세 가지가 있는데, 군사안보는 앞서 말한 통일의 문제에 주요하게 연결될 것이고 자원안보의 문제는 넓게 보아 경제동맹의 범주에 포함하여 이 글에서는 생략하겠다. 끝으로 재난에 대비한 안보가 있는데, 패권주의는 늘 경계의 대상이지만 재난 대비 안보에 코리아가 주역으로 주도한다면 이는 20억의 칭찬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

재난 대비 안보와 관련해서 심각한 몇 가지 문제만 거론하고 넘어가겠다. 먼저 ‘물 부족’의 문제다. 이미 차이나와 몽골은 대다수 지역이 사막화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로 인한 ‘목마른 동아시아’의 문제는 앞으로 매우 엄중하게 대두할 것이다. 황하의 황해 유입량이 이미 지난 세기에 1/10로 줄어들었으며 이를 남수북조(南水北調)로 풀려 하는데 결국 이는 샨시댐 건설 이래 줄어든 양자강의 상류와 하류마저 말라붙게 해 추후 회복 불능한 환경의 이변을 불러올 수도 있다. 티벳이 정치 경제에 이어 삶의 터전마저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으며 수량 유입의 현격하고 이어지는 감소로 바뀌게 될 동아시아의 지중해인 황해와 동지나해의 염도 변화는 동아시아 전역에 어떤 해양성 기후의 돌발 변화를 불러올지 모른다. 나아가 이상의 물 부족과 기후의 변화는 복합 상승작용을 일으켜 이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와 조류 인플루엔자(AI)로 곤욕을 치른 동아시아에 그보다 더한 공중보건상의 재해를 촉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질학상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천여 년 만에 최근 백두산의 마그마 활동이 매우 증대하였다고 하며 그와 관련하여 차이나는 주변 국가와 정보공유를 기피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리고 후지산이 있다. 그 역시 활동이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게다가 2003년과 2004년의 동일한 12월26일에 재앙을 맞이했던 이란과 인도네시아 등지에 이어서 동아시아를 둘러싼 판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고 그 에너지가 점점 커져간다는 우려 섞인 이야기도 들린다. 이와 관련해 코리아는 경제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매우 앞서나가는 투자와 권역 국가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큰 국가이미지의 개선이 있을뿐더러 우리의 생존과 직결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지난 백두산의 대폭발이 발해 멸망 3년 전인 923년경으로 추정되고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팬코리아의 안마당’으로서 동아시아를 살펴보자. 우선은 역사전쟁이 있다. 앞에서 말한 바대로라면 즉, 유사 이래 우리의 주 무대가 한반도가 아니고 만주를 위시한 대륙이었다면 그리고 조선 조 이래의 사실상의 5백 년 쇄국정책이 아니고 청해진과 벽란도의 전설이 현실로 이어져왔다면, 오늘 팬코리아에게 역사전쟁은 없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길게는 고려 중기 이래로 짧게는 조선 중기 양란 이래로 소중화의 신복이 되고자 한반도로 숨어들고 얼토당토 않는 순혈주의에 빠져들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동북공정이 나오고 치우 천왕을 한족의 조상이라 우기는 중화삼조당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 채화를 하는 계획이 수립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코리아와의 연줄을 잃어버리고 제 스스로 외톨이 민족이 되어버린 일본과의 피곤한 역사전쟁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역사전쟁의 해법은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 지금은 단군조선 이래의 반 만 년 대륙의 역사를 공식화하는 일에 신명을 바칠 일이지 참여정부처럼 과거사 청산에 매달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때가 아니다. 아마 이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승 이병도의 참회에도 아랑곳 않는 유별난 학계 인사들도 많은데다 무엇보다 지난 10년 친북반미의 광풍 속에 부쩍 커버린 신판 친중주의자들의 득세 그리고 일부 기독교계의 이성을 잃은 광기에까지 3각 파도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길이 이것 밖에 없다면 우리는 신명을 바쳐 이를 이루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안이 계속 허물어져 내린다면, 우리는 차이나와 일본의 끈질긴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모든 옷을 벗고 종내에는 뿌리를 알 수도 없고 생존을 위해 유랑을 거듭 하는 ‘동아시아의 집시’로 전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와 관련해 모(某) 선생께서 제시한 좋은 방안이 있다. 요사(遼史) 금사(金史) 원사(元史) 등 우리와 대륙에서 함께 했던 옛 형제들의 기록 즉, 차이나의 정식 25사로서도 인정받고 있는 기록들을 우리말로 번역해 대중화하고 그에서 찾은 진실과 우리가 소중화의 광풍에서도 지켜온 사실(史實)을 한데 모아서 세계를 움직이는 앵글로색슨의 권역에 널리 영역(英譯)하여 알리자는 것이다. 이는 먼저 우리 안에 잘못 된 역사인식을 시급히 교정하고 그 기운을 바탕으로 세계무대에서 차이나의 역사전쟁의 도발을 막을 원군을 얻어내자는 견해로서 대단히 탁월하다. 그 가닥을 잡게 된다면 우리 안의 3각 파도를 스스로 극복할 기운을 얻게 될 것이며 일본 문제 또한 쉽게 풀 실마리를 절로 찾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팬코리아의 안마당’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할 애기가 있다. 한족과의 지난 수천 년의 쟁투를 살펴보면 그들의 특징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문화전쟁이다. 청경(淸鏡) 김운회 교수의 『삼국지 바로읽기』저서에도 잘 나와 있듯이 삼국지 한 권으로 그들은 동아시아 모두의 의식세계를 천 년이 넘도록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게 정규전에서만 문화전쟁을 벌인 것은 아니다. 여불위의 자식이 저지른 분서갱유 이래 당장(唐將) 이적(李勣)이 지휘한 고구려의 분서갱유를 위시한 직간접의 비정규전으로 입은 타격 또한 그 못잖은 것이었다. 지금 베이징에서 한류에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 지난 월드컵에서 차이나의 CCTV가 그리도 혐한(嫌韓) 정서를 내놓고 퍼뜨린 것도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둘째 이이제이(以夷制夷)다. 그들은 유사 이래 늘 정공법보다 주변 민족들을 이간하고 그 틈을 벌려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취하는 우회전법을 즐겨 사용해왔다. 어쩌면 지금 또한 대한민국은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북 문제가 나오면 차이나를 고마워하며 워싱턴에 눈을 부릅뜨고, 역사왜곡이 거론되면 차이나와 함께 일본을 잡아먹으려 한다. 일본의 못다 한 죄과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눈앞에 닥친 동북공정에 비하면 만사를 제쳐둘 사유가 아닐 수도 있는데 우리는 앞뒤 가리지 않고 그 패에 말려왔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이북의 어리석음이야 말할 나위 없다. 아직도 대한민국 적화의 야욕을 못 버리고 차이나의 수렴청정 아래 연명하며 코리아의 생존에 위협을 줄뿐더러 유사 이래 이보다 더하게 민족에게 수치를 안기고 인류사회에서 그 체면을 짓밟고 망신을 시킨 적이 없다.

세 번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다. 그들은 매우 끈질기고 집요하다. 농경민족의 전형으로서 유목민족처럼 서로 나누고 거래하는 것보다 성을 높이 쌓고 오로지 제 땅과 착취의 대상으로서 그 백성들을 늘리는 일에만 관심이 큰지라 무엇 하나를 뺏기면 대를 이어 복수를 한다. 우리 민족사를 보라. 복수의 개념이 아예 없고 심지어 제 역사의 뿌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까먹는 것조차 예사가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지금도 치우와 연개소문을 증오하고 있다. 4천7백 년 전, 1천 4백 년 전의 원한을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공이산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코리아는 가랑잎에 불붙는 냄비근성이 다분하다. 먼 옛날의 낭도들처럼 심신과 영혼을 동시에 다스리는 수련을 하는 집단이 코리아의 중심에 서지 않고서야 그 근성은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면 큰 추진력이 되겠지만 만약 내부가 취약하면 우공이산에 꼼짝없이 휘둘리는 ‘방향 잃은 멧돼지’가 될 것이다.

이상의 특징을 넘어서지 않고서 팬코리아가 다시금 천 년 만에 동아시아를 안마당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5) 그를 고려한다면 원교근공(遠交近攻)을 위시한 외교안보 전략 전반의 수립이 절실하다. 우선 우리가 차이나와 손을 잡고 남북통일의 문제를 풀겠다거나 그보다 한 술 더 떠 탈미(脫美)를 하겠다는, 참으로 안일한(Naive) 사고를 가진 내부의 걸림돌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반미나 친미는 다 필요하다. 어떻게 한 쪽 손만 갖고 살겠는가. 마찬가지로 반중과 친중, 반일과 친일 모두 절실하게 양성해야 한다. 그러나 탈미와 결중을 하겠다는 것은 도를 넘어선 것이다. 그를 넘어서게 방치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것과 진배없다. 이는 노사정이나 복지 부동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안의 논란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는 우리 안의 민주주의 문제요 조화의 해법을 찾아 코리아를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반인 국가안보를 해치는 위험한 불장난을 앞으로도 용인하다가는 팬코리아의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물론 그렇다고 내놓고 차이나와 척을 지는 바보짓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들 식의 표현대로라면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하자는 것이다. 언제 차이나가 대놓고 하든 아니면 몰래라도 탈미 행각을 스스로 언술로 드러낸 적이 있는가. 그러면서도 어느새 그들의 보유 달러는 1조 달러를 넘어섰고 상하이 협력기구(SCO)는 세계 최강의 반미 블록으로 커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본 문제는 우리에게 관건이 될 것이다. 이미 더 이상 그들에게 우리 마음에 들 만한 식민지 사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들은 패전을 겪었음에도 동아시아를 자신들의 안마당으로 만들 지혜를 찾지 못하고 아직도 탈아입구의 미망에 사로잡혀 동아시아 전체 위에 군림하려는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세기와 달리 더 이상 그들의 바람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어차피 차이나와의 관계에서 우리 말고는 권역 내에서 지렛대를 찾지 못할 것이니 독도를 비롯한 제반의 민감한 문제는 무작정 뒤로 미루는 지혜가 필요할 수도 있다. 대신 그 지렛대를 이용해서 우리가 그들의 대중(對中) 창구가 되고 대(對)동아시아 창구가 되어주면 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차이나를 제외한 모든 강국들의 협력과 지지를 얻어서 최단기일 내에 남북통일을 이루어내어야 할 것이다. 지금 일본의 역사왜곡에 앞뒤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내던지는 참여정부 식의 무모함은 곤란하다. 그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우리 나름의 백년대계로 후일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전쟁에서 이겨야 한다. 한족들은 거짓과 왜곡을 바탕으로 전쟁을 치렀지만 우리는 사실(史實)과 함께 공존공영으로 나아가는 홍익인간의 민족 철학이 있다. 중화주의가 이에 어떻게 비할 것인가. 그를 세계화 하고 동아시아의 다채로운 문화에 스며들어 더 큰 하나로 나아가게 하면 된다. 이를 위해 향후 민관을 불문하고 모든 국가 역량을 총 투입할 필요가 있다. ‘주몽’ 식의 형편없는 드라마가 다시는 등장해서는 곤란할 것이며, 한류의 차림표와 가격대를 다양화하고 그 대표부문을 표준화하여 의식주를 위시한 우리 역사문화전통의 모든 것이 동아시아의 안마당에서부터 우선 소비되고 유통되도록 원점에서부터 복원하고 재설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앵글로색슨 판의 상품이 따로 나와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끝으로 팬코리아의 진출이다. 지난 세기 기네스북에 오를 코리아의 이산이 대부분 타의에 의했다면, 이제는 자의에 의한 진출이 절실하다. 당장의 청년실업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그 한 방편으로 거론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가까이는 이조 멀리는 1108년 윤관의 동북9성을 까닭 없이 포기하고 틀어박힌 이래로 (그 7년 뒤 만주의 형제들은 금나라를 일으켰고 그 뒤로 코리아는 대륙과 아예 멀어져버렸다) 몸에 인이 박힌 칩거의 인습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설사 남북통일이 되고나서라도 코리아는 그렇게 치욕스런 반도인으로 그저 머무를 공산이 크다.

이와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곳은 러시아의 극동 3개 주다. 이미 고르바쵸프 시절부터 러시아는 코리아의 왕성한 극동 진출을 바라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넓은 연해주와 시베리아 벌판에 소련 붕괴 시 8백만이 살고 있었는데 불과 십 몇 년 동안 6백만으로 인구가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를 통계도 잡히지 않은 다수의 한족들이 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해전술에 극동 3개 주를 뺏길 수도 있다는 러시아의 공포감은 상당하다. 그러나 일본은 하릴없이 북방4개 섬 문제로 러시아와 만나면 다투니 요청하기도 힘들고 결국 부담 없이 요청한 곳이 코리아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역대 대통령이 그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 대신 몇몇 기업과 단체들이 수공업 방식으로 그나마 터전을 닦고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팬코리아가 머무르며 기여할 수 있는 곳으로 매우 유력한 곳이니 모두 명심하고 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맺음말

거창한 주제에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은지 모르겠다. 이 글이 발표될 토론회 자리에는 예상컨대 몇몇 단체와 원로 어르신들 그리고 대학생들이 주로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자리에 그 어떤 대기업도 어떤 당국자들도, 국제사회에 영향력이 막강한 어떤 인사들도 별반 참여할 가능성이 많지 않을 터인데, 그렇다면 토론회에 모인 남녀노소들, 가진 뜻이 가진 다른 자산을 압도하는 우리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언뜻 떠오르는 것은 ‘신에게 아직 13척의 배가 있나이다’ 아뢴 충무공의 심정, 그리고 세계 최고의 디지털 마인드를 지닌 우리들, 나아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홍익인간을 이끌 단군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들어주신 모든 님들께 머리 조아려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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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논란이 많은 이 대목은 선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이 글을 쓴 저 자신부터 한때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체제를 부정하고 연북통일을 당연히 여긴 미망에 빠진 적이 있다. 그러나 (체제 논쟁을 떠나서라도) 씻을 수 없는 3대 범죄(동족을 참화에 빠뜨린 6.25의 도발, 민족을 반세기 동안 바보로 만든 우상화, 반만 년 민족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량아사의 방치)를 저지른 집단을 두호하고 여전히 평양 정권과의 연북통일을 염두에 두는 반역의 사고를 지닌 자와는 어떤 대화도 불가함을 명백히 하고 싶다. 이미 평양 정권은 작금의 문명사회에서 히틀러 파시즘보다 더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인가. 분명한 점은 이를 명백히 해야 두 가지의 전략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첫째, 평양 정권의 개혁개방은 차이나나 베트남과는 달리 대한민국이란 동족의 국가가 엄존하기에 김정일 정권이 존속하는 한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10년의 햇볕정책의 초라한 결말이 웅변하고 있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은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전제로 하고 자신의 생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정일 주변에 기생하는 이북의 150만 핵심세력을 대한민국이 노멘클라투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분리정책을 제대로 시행할 경우에야, 서울이 주도하는 남북의 통일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포스트 김정일 시대를 맞이하면 2천3백만 이북 동포들의 생존과 민주주의를 향한 바람은 폭발할 것이다. 이 경우 이북동포들의 민심을 얻는 곳이 곧 통일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 첩경은 이북동포들에게 해방이 가까이 와 있음을 알리고 대한민국이 그들의 편에 시종일관 서 있음을 웅변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상의 까닭으로 저는 북한이나 DPRK란 표현을 생략하고 헌법 정신에 입각해 평양정권에 볼모로 잡혀있는 2천3백만의 감옥을 이북이라 지칭한 것이다.

2) ‘인적 자원’이란 말을 어렵게 쓰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저는 애매하고 별로 아름답지 못한 한자식 어투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的)은 ‘~의’ 혹은‘~에 관련된’을 뜻하는 한정어(限定語)다. ‘개인적 고뇌’는 ‘혼자만의 고뇌’로 충분히 그 뜻을 표현하며 오히려 뚜렷하게 그 느낌을 드러낼 수 있다. 이와 같은 노력이 없었기에 학동들은 물론 회사원들조차도 ‘선생님적 생각’이니 ‘이사(理事)적 발언’하는 엉뚱하고 유치한 말글이 거듭 튀어나오게 되는 것이다.

3) 기자나 기자조선의 실재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여불위의 자식이 분서갱유를 저지른 이래로 끝없는 역사왜곡의 천재였던, 한족 사가들의 의도대로 기자조선 설이 주장하는 ‘중화의 그늘’에 고려 중기 이래 안주하였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그로 인해 임진왜란의 참화에서도 부모의 나라를 돕겠다는 누루하치의 제언을 오랑캐라 하여 물리치고 오로지 명의 원군만을 기다렸으며, 후금에 항복을 하고서도 아예 내놓고 북벌을 주장하는 바보짓만 계속 하였다. 그로 인해 일찌감치 청나라는 조선과의 동맹을 통한 동아시아 지배를 포기하고 몽골과의 동맹을 선택하였다. 이는 원나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원은 고려가 자신들을 동족으로 보기보다 오랑캐라 무시하였음에도 고려의 국체를 보존하고 고려와의 동맹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였다. 물론 이상에 관한 역사학계의 해석은 전혀 딴판이다. 그 피해를 확대 과장하며 형제였던 나라들에게 적대감을 고취하고 우리가 그 과정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내었다는 순혈주의의 승리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대륙의 길’을 스스로 팽개치고 ‘한족화의 길’을 걸었던 고려 중기 이래의 모화 사대주의의 승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4) 노태우 대통령 때 북방정책을 본격화하면서 평양정권의 몰락을 재촉하고 대한민국의 탈냉전을 스스로 주도한 적이 있었으며, 문민정부 때는 세계화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서두르며 나름대로 세계경영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환란 이후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대기업의 글로벌화와 못 사는 집 자식들마저 땡빚 내고서도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마당에 막상 그를 선도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잔뜩 움츠려 들어, 국민의 정부 때는 동아시아를 거론하더니만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는 그마저도 줄어들어 동북아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음에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동아시아 전역을 우리 안마당으로 삼고 세계를 바깥마당으로 여기며 청년들과 함께 뻗어나가는 진취의 정부를 세워야 할 것이다.

5) 이는, 이미 50년대부터 머잖아 동아시아 전체를 실효성 있게 지배하겠다는 한족의 패권과 최대 영토주의에 관한 야심과는 다르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우리의 비전(Vision)은 공존공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세기도 되기 전에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도 엄연히 대륙을 다스렸던 만주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떻게 계산을 해도 13억 인구의 92%인 12억이 한족이란 이야기는 평양의 100% 찬성에 의한 선거 이야기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물 부족보다 더욱 심각하게 말라가는 민족의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한족만 남고 모든 주변 민족이 멸족하고 박제로 전락하는 민족 생태계의 파괴를 막아야만 그 때에서야 동아시아는 모든 민족이 공존공영 하고 자유롭게 그 행복을 도모하는 모든 민족의 안마당이 될 수 있다. 팬코리아가 그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먼 옛날의 형제 민족들의 생존과 번영을 먼저 도우면서 말이다. 지금처럼 몽골 등지에서 추문을 일으키는 한국인들은 우리 손으로 처결할 필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