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아고라(Agora)의 시대가 열렸다

by 永樂 posted Jan 26, 2003
[주간조선 2003.02.06 화면보기 클릭]

인터넷 아고라(Agora)의 시대가 열렸다



<민주주의는 진화한다>

작년 2002년은 한국 민주주의 史에서 한 획을 그은 해이다.
건국 이후 서울시청 앞 광장은 행사의 무대나 투쟁의 장이었지, 시민들이 평소에 하릴없이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거니와 더군다나 불경스럽게 떠들고 즐긴다는 걸 이전엔 상상이나 하였나. 그런데 월드컵을 핑계로 700만 인파가 일시에 붉은색으로 스스로 물들이면서 죄다 몰려나와 희희낙락 그 근엄한 광장을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이름만 민주주의였지, 그 동안 시민들이 언제 나라의 주인이자 체제의 승인자라는 대접을 체감한 적이 있었나. 건국 이후 최악의 해프닝이었던 국민교육헌장의 암기를 필두로 한국인들은 시민(citizen)으로서보다 국민(nation)의 지위에 익숙하였고, 이는 ‘성공한 시민혁명’을 창출해보지 못한 한국인들 다수 특히 전전세대(戰前世代)에게는 신민(臣民, subject)을 크게 넘어서지 못한 허술한 ‘개념으로서의 민주주의’였다.

사실 우린 87년 6월 시민항쟁 이후 15년을 오로지 대의제 민주주의에 목 매달고 살았다. 물론 그조차도 지극히 고통스런 70~80년대의 희생의 대가로 이뤄낸 것이지만, 막상 선거란 것도 실제 시민들의 참여통로가 꽉 막혀버린 독과점의 ‘주어진 정치자원’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도무지 맛이 나질 않는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 극단적인 정치불신과 90년대 이후 연례화된 투표율의 저하로 나타났다.

우습지 않나. 명색이 OECD 11위 국가, 그것도 세계의 주목 받는 성장엔진(Emerging market) 지역의 민주주의 교사랄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렇다 할 광장(Agora)의 민주주의를 해본 적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디지털 민주주의의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작년 월드컵에 뒤이은 촛불 시위와 대선으로 이어지는 인터넷 정치여론의 실시간 형성으로 말미암아, 삽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민주주의는 체제의 문제다. 우리가 6.25 동란이란 민족사의 비극까지 겪으며 마지막까지 사수하고자 한 게 무엇이었나. 그리고 미국이 세계의 통솔(leadership)을 합리화하는 가장 큰 명분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린 그 민주주의를 지난 반 세기 동안 분단을 핑계로 때로는 수의(壽衣)를 입은 ‘한국적 민주주의’로, 때로는 붓 뚜껑에만 국한된 대의제 연례행사로 박제화해 왔다. 그런데 작년 한 해, 한국인들은 그 박제를 단번에 깨뜨리고 ‘광장(Agora)의 민주주의’를 창출해냈다. 참으로 감격스럽고 놀라운 민족이다. 그렇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진화할 뿐더러, 비등점에 다다른 액체마냥 때로는 비약하는 모양이다.

<‘인터넷 참여정치’는 21세기의 아고라(agora)다>

인터넷이란 ‘21세기 로마의 길’은 미국이 닦았지만 꽃 피어난 곳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세계 초일류의 인구밀도와 도시화에 3천만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있는 나라. 그도 곧 ADSL을 넘어 VDSL로 갈 나라. 왜 MS니 시스템즈니 세계 굴지의 IT 스타들이 이 나라를 시험대(Test bed)로 삼으려 하겠나. 이와 같이 당대 문명의 최첨단 실험지대에서 한켠으론 민주주의의 최첨단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인터넷 참여정치’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입만 벌리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 자처하는 미국에서, 월 가(街)와 워싱턴의 주류언론이 한국 대선을 이렇게 평가했다. 인터넷 파워로 결정된 선거라고…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다른 건 몰라도 이 대목에서 우린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 노사모도 좋고 창사랑도 좋다. 그 누구든 지금의 디지털 파워를 한국사회의 부동의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해, 우리 자식 대에는 “50년대에 한국 민주주의를 보고 ‘쓰레기통에서 장미는 피지 않는다’고 한 백인들이 있었다” 란 말을 하다 손주들에게 거짓말쟁이 할아비로 불리는 날이 오게끔 말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저자거리에서 탄생했다. 저자거리란 시끌벅적한 시장통과 네거리를 끼고 있는 곳 아닌가.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을 늘 지겹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의 저자거리는 기원전 지중해의 광장처럼 –그리스의 아고라(Agora)나 로마의 포룸(Forum)- 처음부터 시민들이 선점한 곳이 아니고 종로의 피맛골처럼 권력에선 밀려난 동네라서 상의하달(top-down)의 정치는 맛볼 수 있을지 몰라도 원탁(roundtable)의 정치는 언감생심인 동네였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한국의 저자거리를 아고라나 포룸보다 더 멋있는 광장으로 탈바꿈 시켜버린 것이다. 그것도 전부 높낮이나 격식과 권위를 애초부터 무시한 원탁(roundtable)으로 말이다. 결국 한국에서 사고를 쳤다. 인터넷 참여정치의 무대를 일반화해 버리면서 21세기의 아고라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그 앞에서 당장 어느 집단의 선거 공간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유치한 논쟁이 될 수도 있다.

<미디어의 독과점을 넘어서야>

난 젊지만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실은 채팅도 멀리 하고 인터넷에서도 ‘하세여’란 표현만 봐도 인상을 찌푸린다. 그러나 어쩌랴. 조카뻘의 10대 아이들, 특히 무례한 일부 네티즌들에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건 모두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나가는 통행료로 지불할 각오를 하고 있다.

정작 중요한 건 앞으로의 과제다. 인터넷 참여정치의 무대를 일반화에서 보편화의 단계로 격상시키는 일이다.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미디어의 독과점을 넘어서야 한다. 독과점엔 ‘종이 미디어’만 아니라 ‘인터넷 미디어’도 포함되어 있다. 20세기식의 성향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몇몇이 모든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독과점의 폐해다. 그건 또한 후기 산업자본주의의 최악의 개념인 ‘전문가 논리’하고도 닿아 있다. 가까스로 꽃 피어난 이 새로운 실험이 또다시 이래저래 학자연(學者然)하는 사람들의 입김에 말려드는 꼴을 어이 볼까. 그걸 디씨인사이드의 햏자들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춘추전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야흐로 디지털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인터넷 정치참여’란 걸음마를 떼었다. 뛰지는 못하더라도, 한 단계 넘어서서 스스로 걸을 수는 있어야 디지털 민주주의의 세상은 올 게다. 그건 인터넷 미디어의 빅뱅(Big Bang)-백가쟁명에서 비롯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