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사상계 2003.02 화면보기 클릭]
<<북핵, 그 판도라의 상자>>
<북핵 사태의 본질>
북핵 사태의 재연을 접하며 문득 떠오른 단상은 박정희의 핵 개발이었다.
약소국의 숙명. 비록 한민족의 말살을 꾀하던 끔찍한 일제의 마수에서 해방되었다 하나, 분단된 조국. 남이든 북이든 미국이나 중국과 소련 등 열강에 의지하지 않고선 안보를 확신할 수 없었던 우리의 불운한 현대사에서, 핵은 늘 한반도의 권력자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크나큰 유혹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무대는 냉혹하다. 누가 좋아서 92년 남북 비핵화선언을 했겠나. 하지만 약소국인 우리가 어찌 감히 현실주의(Realism)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간 파나마의 노리에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정희까진 아니더라도 작년의 가장 큰 해프닝이었던 신의주특구의 양빈 꼴만은 무시할 수 없을 게다.
지금은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 험한 꼴이 연출되고 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행여 워싱턴에서 북핵 개발을 묵인한다 치자. 그렇다고 세상이 조용할까. 결코 그럴 리 없다. 탈북자 문제로 지금도 끊임없이 베이징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평양이다. 게다가 전략지 만주에 자리잡은 조선족은 솔직히 베이징에선 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골치 아픈 소수 민족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갖는다, 그래서 중국이 머리에 핵을 이고 산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속방(屬邦)의 불온(不穩)이다. 대만의 핵을 인정 않는 베이징이 북한의 핵을 인정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참으로 순진한 판단이 아니겠는가.
최근에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부시와 체니는 쟁반에 담긴 김정일의 목을 원한다” 그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 둘은 정말 그걸 바랄 지도 모른다. 로마나 징기스칸 제국보다도 더 위대한, 역사상 최초로 명실공히 세계 패권을 쥔 초강대국에 ‘한 주먹도 아니 되는 놈이 덤빈다’는 그 모욕감. 그것도 ‘이라크처럼 먹을 거라도 많으면 참겠지만, 눈 씻고 봐도 돈 될 것도 없는 놈들 –그래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예산은 거의 한국이 대었다- 때문에 우리가 이리 바빠야 하나’ 하는 대목에서 끝 모를 증오가 솟구칠 게다. 아메리카는 곧 정의다, 아메리카의 말은 정언 명령이다, 그런데도 워싱턴은 대화가 아닌 협상을 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유라시아 대륙 곳곳의 동생들이 북핵을 핑계로 토를 달고 대꾸를 하고 있다.’
열강에 둘러싸인 약소국이란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핵은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설사 핵에 관한 유혹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건 열강을 자극하여 자꾸만 통일의 길을 멀게 하는 단견이 될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 위험한 도박은 중단되어야 한다.
사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를 차치하더라도 북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아니다. 북한은 이미 네 차례나 스스로 약속을 어겼다. 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94년 제네바 합의 그리고 NPT(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와 2000년 6.15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혹은 쌍무관계로 혹은 다자간에 맺어진 조약을 북한은 번번이 줄곧 어겨왔다. 제네바 합의와 NPT 탈퇴에 관해 평양이 할 말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끝마다 민족공조를 들먹이는 평양이 민족간에 평화를 위하여 맺은 비핵화 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무력화한 것은 무어라고 변명할 것인가.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고도 다시금 미국 책임론만 들먹이며 자신들의 집요한 핵개발 의지를 합리화하는 것을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민족의 고통>
WFP(세계식량계획)가 호소한다.
“식량지원이 끊기면 북한 어린이들 4백만이 아사(餓死) 위기에 몰린다”
고통스럽다. 이미 90년대 중반의 대량아사와 식량난으로 북한 인구는 거꾸로 감소했으며 살아남은 10대 아이들도 평균 신장이 남한에 비해 10~20cm를 밑도는 난장이가 되었다. 그런데 또 식량난이고 아사 위기다. 2천만 종족 전체를 대상으로 이어지는 극한의 생체실험. 유구한 한민족사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좀처럼 끝나지 않고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연변에서 동북3성 그리고 중국의 변경은 모두, 멀리는 몽골과 러시아까지 이어진 끝없는 탈북의 행렬. 물경 수십 만으로 추정되는 이 동아시아판 집시족은 시민권은커녕 인권도 없다. 때리면 맞고 건드리면 몸 대줘야 하고 눈 치켜 뜨면 자다가도 줄행랑을 쳐야 하는, 오직 생존을 위해 인간의 모든 존엄을 포기한 유인원의 무리라면 지나친 지적일까.
한국에 사는 우린 너무 태평해 보인다. 레드 콤플렉스에선 벗어난 지는 몰라도 과연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산다 할 수 있을까. 우리 중 지금도 일제말기 멸족의 위험에 처했던 때 그리고 자유시참변(1921년)과 민생단 사건(1932~35년)을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그러니 반도 이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우리 반쪽의 처참한 몰골, 세계인들에게 비춰질 다 같은 코리안으로서 우리의 自畵像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 그에 대해 어찌 평가해야 할까. 자고로 정치가의 사생활은 묻지 않는 법이다. 그가 도덕군자든 무절제한 제왕이든 그건 호사가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정치가는 오로지 위정(爲政)의 결과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김정일의 위정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는 무얼 위해 이북의 형제들에게 첩첩산중의 ‘고난의 행군’을 지금도 강요하고 있나. 어차피 북한은 체제를 떠나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기능과 정당성을 상실한 나라다. 게다가 인민들을 국내외로 죄다 유리걸식 하게 만드는 정치가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도대체 핵을 가지고 무얼 하겠다는 건가. 그걸로 최악의 경우 정권을 지키겠다고? 국가의 안보도 아니고 체제의 안보도 아닌 오직 정권의 안보를 위해서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핵은 보유하겠다고. 그러나 김 위원장은 심각한 오판을 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외부 충격으로 무너질 나라가 아니다. 수 년 전에 수백 만이 아사하지 않았나. 그래서 워싱턴은 당연히 붕괴할 거라 믿고 제네바 합의도 덜컥 해주고 희소식이 들리기만 고대하고 있질 않았나. 그러나 전쟁보다 더한 그 참극에도 평양의 정권이 흔들린다는 이야긴 그 어디에도 없다. 모택동이 말했듯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그런데 인민들이 총을 가지고 있나. 극단적인 파쇼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인민이 아니고 결국 총을 가진 측근들이고 외세와 연관된 군부말고도 사고칠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오로지 핵만 가지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설사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치자.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그래 봐야 주한미군은 요지부동이고 유사시 프레데터 1대만 떠도 주석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인데.
‘협정의 효력’이란 오직 힘의 균형관계가 유지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약소국인 이북에서 그 힘이란 권력의 정당성과 국가기능의 복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협정은 다만 문서에 새겨진 빛 바랜 텍스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께 드리는 苦言>
김정일 위원장에게 묻는다. 제발 ‘민족공조’란 수사를 그만 썼으면 한다. 당신이 급할 때 언제 서울을 찾은 적이 있었나. 6.15 선언의 감격이 다 사라진 재작년 이후 서울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도 사방의 공격에 시달릴 때 당신은 벌써 답방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당신은 강택민과 푸틴만 귀찮게 쫓아다니며 북-중-러 공조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민족공조 라니. 당신이 북한의 지도자라면 아직도 민족의 통일을 간절히 원하신다면, 앞으로 민족의 이름을 거론할 때는 심사숙고 한 흔적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정말 민족공조를 원한다면 다음의 주문을 이행해 주시라.
첫째, 핵 개발을 영원히 포기하라
당신은 지금 ‘경제개발과 핵’ 두 마리 토끼를 다 좇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선택하라. 무얼 선택해야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지금처럼 벼랑끝 전술로 주변 열강의 신경을 자꾸 긁어 민족의 장래에 득 될 건 아무 것도 없다. 과거 핵은 물론 농축우라늄 방식과 경수로까지 죄다 포기하라. 당신들 기술로 경수로 운영했다간 제2의 체르노빌 걱정으로 한민족은 모두 밤잠을 이룰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둘째, 자주포를 뒤로 빼라
자주포가 평양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나. 남한의 침략은 막겠지. 자주포를 쏴버리면 서울은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되니깐. 그런데 상식으로 생각해봐라. 남한이 미치지 않는 한 북침을 할 가능성은 전무하지 않나. 미치려고 해도 그렇게 몰아갈 전제군주도 없다.
셋째, 군축하라
저개발국에서 오로지 믿을 건 인적자원 뿐인데 청춘 남녀들을 남자는 11년, 여자는 3년씩 군대에 붙잡아두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이미 20대가 결혼 적령기를 놓쳐 마을마다 애 울음소리마저 그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군축을 하지 않고선 신의주 특구를 10개 만들어도 경제개발은 물 건너가게 된다. 또한 그래야 남한에서도 진심으로 이북의 확고한 경제개발의 의지를 믿게 될 것이다.
넷째, 외교는 반드시 서울과 공조하라
어리석은 당신. 허장성세는 그만 부려라. 9월17일 북일 수교 협상의 악몽을 잊었는가. 고이즈미가 애가 타 청한 그 좋은 조건에서 당신은 엉뚱한 말 한마디로 대사를 그르치고 결국엔 이시하라 신타로(도쿄도 지사, 일본의 극우 포퓰리즘의 상징)만 좋은 일 시켜주지 않았나. 그리고 강석주 마저 당신의 풍을 따라 켈리를 만나 큰소리 치다가 또 그 덫에 걸리지 않았나. 당신들의 일방 시스템으로 외교를 안다고 자신하지 마라. 당신들의 ‘통 큰 외교’가 먹힐 곳은 오로지 같은 민족, 한국밖에 없다. 그것도 우리가 알고도 속아주며 애 타도 한 없이 기다려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섯째, 북한의 재건을 남한에 위임하라
솔직히 생각해봐라. 평양에 돈 줄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는지. 당신의 부친 때 만든 나진선봉조차 90%는 재일교포들이 투자한 것 아닌가. 그 뒤에 KEDO까지 남한이 아니면 어디서 돈 나올 때가 있었나. 지금도 미국의 감시를 받아가면서도 대만처럼 폐기물 갖다 주는 게 아니라 독일처럼 광우병 걸린 쇠고기 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카지노자본주의가 아니라 남북 협력으로 이북에 청정 테크놀러지를 이식하려고 민족애를 발휘하는 게 남한 기업인들 아닌가. 남한에 위임하라. 그래야 당신도 살고 민족이 살 수 있다.
<한국정부가 할 일>
북핵 사태의 해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애타게도 질질 끌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북한을 응징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북에서 뭐 팔아먹을 게 있어야 경제봉쇄도 의미가 있는데 실효성이 없다. 설사 한다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치 않으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다. 유일하게 제어 가능한 건 한국인데 이 경우에도 ‘인도주의적 지원’이란 부메랑을 맞으면 워싱턴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된다. 여긴 동아시아지 아프리카나 중동이 아니지 않은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다. 계속 일괄타결 이런 소리를 하면서 이북을 구슬릴 수밖에 없다. 일본이야 특히 이시하라 신타로 派들은 제발 북핵이 현실화되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음지에서 고생하는 자위대가 양지로 나올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권위를 상실한 제네바 합의를 대체할 신규협약의 타결로 결론이 맺어져야 하는데, 아무튼 올 가을까지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만 간절히 빌 뿐이다.
북핵 문제를 일거에 타결할 실마리를 제시할 곳은 오로지 김정일 위원장 밖에 없다.
그가 현명히 판단해서 자신도 살리고 이 민족도 살 길을 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아울러 노파심으로 하는 말을 보탠다. NGO와 정부는 다르다. 지금의 국면에서 NGO는 부시 욕을 엄청 해도 된다. 그리고 반전평화 시위를 세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어차피 NGO는 면책이 된다. 아울러 한국에도 국제사회의 평화를 고뇌하는 수준 높은 지성인들이 많다는 걸 만방에 알리는 것도 역설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국정부의 발언권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다르다. 정부 권력의 정당성은 무엇보다 국가의 안전보장에 있다. 그러길래 국민이 권력을 위임해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부가 태평하게 사태의 책임론을 따지고 어설프게 중재니 하는 말을 남발하게 되면, 심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판단력에 관해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주도권은 고사하고 외교적 발언권의 심각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곧 신정부가 들어선다. 평양에 못지않게 서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게 주목 받을 시점이다. 이에 한국정부에 바라는 바를 제시한다.
첫째, 분명하게 평양에 말하자
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기다려주지 말자. 지난 5년 간 기다려준 것만 해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내한 것이다. 더 기다려주면 남북대화는커녕 남남대화까지 곤란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워싱턴보다 더 세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핵 사태는 결국 우리 민족의 운명에 직결된 현안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OECD 11위 국가 대한민국이 평양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나. ‘전쟁이 나고 말고’의 문제 이전에 이미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산업자본이 머잖아 중국에 먹힐 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당장 ‘동북아 물류 중심’이니 ‘금융 허브’니 하는 국가적 대사를 치러야 하는 우리로선 중동과는 또 다른 절체절명의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지금처럼 수시로 이북에게 발목을 잡히다간 간신히 벗어난 97년의 경제위기가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는가.
둘째, 다자간 외교의 틀을 만들자
미국은 외교에서 쌍무관계를 선호한다. 그러나 전방위 외교시대에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한미의 쌍무관계로만 풀 수는 없다. 물론 정부에서도 늘 다자간 외교의 틀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노력을 적극적이었다고 평가하긴 곤란하다. 국력을 기울여 주변 열강이나 UN 무대에 친한(親韓) 기류를 조성하고, 특히 동북아 집단 안전보장에 관한 다자간 외교의 틀을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자. ‘4+2’니 ‘5+5’니 다자간 협상의 이야기가 쉼 없이 나온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정부 레벨뿐만 아니라 민간 레벨까지 요청하여 그 몫을 함께 지고 나갈 일이다. 궁극적으로 남북의 통일을 고려한다면 주변국의 지지와 동의는 가히 절대적이다. 즉, 북핵을 비롯한 현안 위주의 다자간 외교에서 벗어나 통일외교란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입체적으로 접근해가는 방법론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북핵 사태와 같은 돌발변수에도 한국정부의 개입의 폭이 넓어지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한 版 마샬플랜’을 준비하자
앞서 거론한 ‘한국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전제조건으로 하여, ‘북한 版 마샬플랜’을 한국이 적극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주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북에 매력적인 투자유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여 되는 북한재건사업에 국제적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는가. 이는 그야말로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물론, 통일한국의 비전까지 얽힌 난제 중의 난제이다. 그러나 외길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가 걸린 일이 아닌가. 지금부터 한국사회의 모든 지혜를 모아 이 대역사를 준비하자.
<맺음말>
북핵 문제의 UN 안보리 상정을 가까스로 유보하고, 고심 끝에 한국정부가 평양에 보낸 특사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의 합작품인데 김 위원장은 면담조차 거절했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더 이상 평양은 정권을 지키기 위한 도박에 한반도 전체를 끌어들이는 몰 역사적인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신정부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5년의 햇볕정책의 결과가 결국 ‘위기의 유보’에 불과했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이란 개념을 포기하고 포용정책이란 개념을 채택한 신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정부는 국가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민족이익을 찾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의 국가이익이란 결국 ‘북핵 사태의 조기해결’과 함께 ‘항구적 긴장 완화조치의 수립’이 아니겠는가. 민족이익이란 ‘남북경제공동체의 수립’ 그리고 ‘통일한국으로의 진전’이다. 둘 다 교집합이 없지 않으나 현실에서는 분명히 다르다. 그만큼 정부와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분명 차별화 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신정부에서는 더 이상 불필요한 한미간의 마찰, 목표 없는 다자간 외교, 정부와 NGO의 경계를 혼돈 하는 미숙한 레토릭, 일방적인 대북 인내 등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아니 될 것이다.
94년과 달리 지금의 사태는 그나마 한국정부와 시민사회의 개입여지가 있다. 이 위기를 현명하게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의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모두 냉철해지자. 정부가 할 역할, 시민사회가 할 역할을 분명히 하며 그 두 바퀴의 균형 있는 총력외교로 북핵이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최악의 사태를 피해가야 할 것이다.
<<북핵, 그 판도라의 상자>>
<북핵 사태의 본질>
북핵 사태의 재연을 접하며 문득 떠오른 단상은 박정희의 핵 개발이었다.
약소국의 숙명. 비록 한민족의 말살을 꾀하던 끔찍한 일제의 마수에서 해방되었다 하나, 분단된 조국. 남이든 북이든 미국이나 중국과 소련 등 열강에 의지하지 않고선 안보를 확신할 수 없었던 우리의 불운한 현대사에서, 핵은 늘 한반도의 권력자들에게 뿌리칠 수 없는 크나큰 유혹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무대는 냉혹하다. 누가 좋아서 92년 남북 비핵화선언을 했겠나. 하지만 약소국인 우리가 어찌 감히 현실주의(Realism)를 무시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간 파나마의 노리에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박정희까진 아니더라도 작년의 가장 큰 해프닝이었던 신의주특구의 양빈 꼴만은 무시할 수 없을 게다.
지금은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서 험한 꼴이 연출되고 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행여 워싱턴에서 북핵 개발을 묵인한다 치자. 그렇다고 세상이 조용할까. 결코 그럴 리 없다. 탈북자 문제로 지금도 끊임없이 베이징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평양이다. 게다가 전략지 만주에 자리잡은 조선족은 솔직히 베이징에선 늘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골치 아픈 소수 민족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갖는다, 그래서 중국이 머리에 핵을 이고 산다,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속방(屬邦)의 불온(不穩)이다. 대만의 핵을 인정 않는 베이징이 북한의 핵을 인정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참으로 순진한 판단이 아니겠는가.
최근에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부시와 체니는 쟁반에 담긴 김정일의 목을 원한다” 그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아마 둘은 정말 그걸 바랄 지도 모른다. 로마나 징기스칸 제국보다도 더 위대한, 역사상 최초로 명실공히 세계 패권을 쥔 초강대국에 ‘한 주먹도 아니 되는 놈이 덤빈다’는 그 모욕감. 그것도 ‘이라크처럼 먹을 거라도 많으면 참겠지만, 눈 씻고 봐도 돈 될 것도 없는 놈들 –그래서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예산은 거의 한국이 대었다- 때문에 우리가 이리 바빠야 하나’ 하는 대목에서 끝 모를 증오가 솟구칠 게다. 아메리카는 곧 정의다, 아메리카의 말은 정언 명령이다, 그런데도 워싱턴은 대화가 아닌 협상을 하라는 압력에 시달린다. ‘유라시아 대륙 곳곳의 동생들이 북핵을 핑계로 토를 달고 대꾸를 하고 있다.’
열강에 둘러싸인 약소국이란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핵은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설사 핵에 관한 유혹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건 열강을 자극하여 자꾸만 통일의 길을 멀게 하는 단견이 될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 위험한 도박은 중단되어야 한다.
사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를 차치하더라도 북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아니다. 북한은 이미 네 차례나 스스로 약속을 어겼다. 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 94년 제네바 합의 그리고 NPT(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와 2000년 6.15 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혹은 쌍무관계로 혹은 다자간에 맺어진 조약을 북한은 번번이 줄곧 어겨왔다. 제네바 합의와 NPT 탈퇴에 관해 평양이 할 말이 있다손 치더라도 말끝마다 민족공조를 들먹이는 평양이 민족간에 평화를 위하여 맺은 비핵화 선언과 6.15 공동선언을 무력화한 것은 무어라고 변명할 것인가.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게 하고도 다시금 미국 책임론만 들먹이며 자신들의 집요한 핵개발 의지를 합리화하는 것을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민족의 고통>
WFP(세계식량계획)가 호소한다.
“식량지원이 끊기면 북한 어린이들 4백만이 아사(餓死) 위기에 몰린다”
고통스럽다. 이미 90년대 중반의 대량아사와 식량난으로 북한 인구는 거꾸로 감소했으며 살아남은 10대 아이들도 평균 신장이 남한에 비해 10~20cm를 밑도는 난장이가 되었다. 그런데 또 식량난이고 아사 위기다. 2천만 종족 전체를 대상으로 이어지는 극한의 생체실험. 유구한 한민족사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 좀처럼 끝나지 않고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연변에서 동북3성 그리고 중국의 변경은 모두, 멀리는 몽골과 러시아까지 이어진 끝없는 탈북의 행렬. 물경 수십 만으로 추정되는 이 동아시아판 집시족은 시민권은커녕 인권도 없다. 때리면 맞고 건드리면 몸 대줘야 하고 눈 치켜 뜨면 자다가도 줄행랑을 쳐야 하는, 오직 생존을 위해 인간의 모든 존엄을 포기한 유인원의 무리라면 지나친 지적일까.
한국에 사는 우린 너무 태평해 보인다. 레드 콤플렉스에선 벗어난 지는 몰라도 과연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산다 할 수 있을까. 우리 중 지금도 일제말기 멸족의 위험에 처했던 때 그리고 자유시참변(1921년)과 민생단 사건(1932~35년)을 잊지 않고 있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그러니 반도 이북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우리 반쪽의 처참한 몰골, 세계인들에게 비춰질 다 같은 코리안으로서 우리의 自畵像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 그에 대해 어찌 평가해야 할까. 자고로 정치가의 사생활은 묻지 않는 법이다. 그가 도덕군자든 무절제한 제왕이든 그건 호사가들의 관심사일 뿐이다. 정치가는 오로지 위정(爲政)의 결과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김정일의 위정은 어떠한가. 그리고 그는 무얼 위해 이북의 형제들에게 첩첩산중의 ‘고난의 행군’을 지금도 강요하고 있나. 어차피 북한은 체제를 떠나 국가로서의 기본적인 기능과 정당성을 상실한 나라다. 게다가 인민들을 국내외로 죄다 유리걸식 하게 만드는 정치가라면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도대체 핵을 가지고 무얼 하겠다는 건가. 그걸로 최악의 경우 정권을 지키겠다고? 국가의 안보도 아니고 체제의 안보도 아닌 오직 정권의 안보를 위해서 어떤 수를 쓰더라도 핵은 보유하겠다고. 그러나 김 위원장은 심각한 오판을 하고 있다. 이미 북한은 외부 충격으로 무너질 나라가 아니다. 수 년 전에 수백 만이 아사하지 않았나. 그래서 워싱턴은 당연히 붕괴할 거라 믿고 제네바 합의도 덜컥 해주고 희소식이 들리기만 고대하고 있질 않았나. 그러나 전쟁보다 더한 그 참극에도 평양의 정권이 흔들린다는 이야긴 그 어디에도 없다. 모택동이 말했듯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그런데 인민들이 총을 가지고 있나. 극단적인 파쇼사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인민이 아니고 결국 총을 가진 측근들이고 외세와 연관된 군부말고도 사고칠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오로지 핵만 가지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설사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는다 치자. 그걸로 뭘 어쩌겠다고. 그래 봐야 주한미군은 요지부동이고 유사시 프레데터 1대만 떠도 주석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인데.
‘협정의 효력’이란 오직 힘의 균형관계가 유지될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약소국인 이북에서 그 힘이란 권력의 정당성과 국가기능의 복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협정은 다만 문서에 새겨진 빛 바랜 텍스트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께 드리는 苦言>
김정일 위원장에게 묻는다. 제발 ‘민족공조’란 수사를 그만 썼으면 한다. 당신이 급할 때 언제 서울을 찾은 적이 있었나. 6.15 선언의 감격이 다 사라진 재작년 이후 서울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도 사방의 공격에 시달릴 때 당신은 벌써 답방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당신은 강택민과 푸틴만 귀찮게 쫓아다니며 북-중-러 공조에만 골몰하고 있지 않았나. 그런데 민족공조 라니. 당신이 북한의 지도자라면 아직도 민족의 통일을 간절히 원하신다면, 앞으로 민족의 이름을 거론할 때는 심사숙고 한 흔적이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정말 민족공조를 원한다면 다음의 주문을 이행해 주시라.
첫째, 핵 개발을 영원히 포기하라
당신은 지금 ‘경제개발과 핵’ 두 마리 토끼를 다 좇고 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없다. 선택하라. 무얼 선택해야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을 수 있는지 자명하지 않은가.
지금처럼 벼랑끝 전술로 주변 열강의 신경을 자꾸 긁어 민족의 장래에 득 될 건 아무 것도 없다. 과거 핵은 물론 농축우라늄 방식과 경수로까지 죄다 포기하라. 당신들 기술로 경수로 운영했다간 제2의 체르노빌 걱정으로 한민족은 모두 밤잠을 이룰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둘째, 자주포를 뒤로 빼라
자주포가 평양을 지켜줄 수 있다고 믿나. 남한의 침략은 막겠지. 자주포를 쏴버리면 서울은 말 그대로 불바다가 되니깐. 그런데 상식으로 생각해봐라. 남한이 미치지 않는 한 북침을 할 가능성은 전무하지 않나. 미치려고 해도 그렇게 몰아갈 전제군주도 없다.
셋째, 군축하라
저개발국에서 오로지 믿을 건 인적자원 뿐인데 청춘 남녀들을 남자는 11년, 여자는 3년씩 군대에 붙잡아두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이미 20대가 결혼 적령기를 놓쳐 마을마다 애 울음소리마저 그쳤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군축을 하지 않고선 신의주 특구를 10개 만들어도 경제개발은 물 건너가게 된다. 또한 그래야 남한에서도 진심으로 이북의 확고한 경제개발의 의지를 믿게 될 것이다.
넷째, 외교는 반드시 서울과 공조하라
어리석은 당신. 허장성세는 그만 부려라. 9월17일 북일 수교 협상의 악몽을 잊었는가. 고이즈미가 애가 타 청한 그 좋은 조건에서 당신은 엉뚱한 말 한마디로 대사를 그르치고 결국엔 이시하라 신타로(도쿄도 지사, 일본의 극우 포퓰리즘의 상징)만 좋은 일 시켜주지 않았나. 그리고 강석주 마저 당신의 풍을 따라 켈리를 만나 큰소리 치다가 또 그 덫에 걸리지 않았나. 당신들의 일방 시스템으로 외교를 안다고 자신하지 마라. 당신들의 ‘통 큰 외교’가 먹힐 곳은 오로지 같은 민족, 한국밖에 없다. 그것도 우리가 알고도 속아주며 애 타도 한 없이 기다려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섯째, 북한의 재건을 남한에 위임하라
솔직히 생각해봐라. 평양에 돈 줄 사람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는지. 당신의 부친 때 만든 나진선봉조차 90%는 재일교포들이 투자한 것 아닌가. 그 뒤에 KEDO까지 남한이 아니면 어디서 돈 나올 때가 있었나. 지금도 미국의 감시를 받아가면서도 대만처럼 폐기물 갖다 주는 게 아니라 독일처럼 광우병 걸린 쇠고기 주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카지노자본주의가 아니라 남북 협력으로 이북에 청정 테크놀러지를 이식하려고 민족애를 발휘하는 게 남한 기업인들 아닌가. 남한에 위임하라. 그래야 당신도 살고 민족이 살 수 있다.
<한국정부가 할 일>
북핵 사태의 해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애타게도 질질 끌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북한을 응징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이북에서 뭐 팔아먹을 게 있어야 경제봉쇄도 의미가 있는데 실효성이 없다. 설사 한다 하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치 않으면 그야말로 밑 빠진 독이다. 유일하게 제어 가능한 건 한국인데 이 경우에도 ‘인도주의적 지원’이란 부메랑을 맞으면 워싱턴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된다. 여긴 동아시아지 아프리카나 중동이 아니지 않은가. 중국과 러시아는 북핵을 원치 않는다. 그렇다고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고 맞장구를 칠 수도 없다. 계속 일괄타결 이런 소리를 하면서 이북을 구슬릴 수밖에 없다. 일본이야 특히 이시하라 신타로 派들은 제발 북핵이 현실화되길 바랄 것이다. 그래야 음지에서 고생하는 자위대가 양지로 나올 수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미 권위를 상실한 제네바 합의를 대체할 신규협약의 타결로 결론이 맺어져야 하는데, 아무튼 올 가을까지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오기만 간절히 빌 뿐이다.
북핵 문제를 일거에 타결할 실마리를 제시할 곳은 오로지 김정일 위원장 밖에 없다.
그가 현명히 판단해서 자신도 살리고 이 민족도 살 길을 열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아울러 노파심으로 하는 말을 보탠다. NGO와 정부는 다르다. 지금의 국면에서 NGO는 부시 욕을 엄청 해도 된다. 그리고 반전평화 시위를 세게 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어차피 NGO는 면책이 된다. 아울러 한국에도 국제사회의 평화를 고뇌하는 수준 높은 지성인들이 많다는 걸 만방에 알리는 것도 역설적으로 국제무대에서의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국정부의 발언권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다르다. 정부 권력의 정당성은 무엇보다 국가의 안전보장에 있다. 그러길래 국민이 권력을 위임해준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부가 태평하게 사태의 책임론을 따지고 어설프게 중재니 하는 말을 남발하게 되면, 심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판단력에 관해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주도권은 고사하고 외교적 발언권의 심각한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 곧 신정부가 들어선다. 평양에 못지않게 서울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게 주목 받을 시점이다. 이에 한국정부에 바라는 바를 제시한다.
첫째, 분명하게 평양에 말하자
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기다려주지 말자. 지난 5년 간 기다려준 것만 해도 우리 정부는 충분히 인내한 것이다. 더 기다려주면 남북대화는커녕 남남대화까지 곤란해질 수도 있다. 오히려 워싱턴보다 더 세게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핵 사태는 결국 우리 민족의 운명에 직결된 현안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OECD 11위 국가 대한민국이 평양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나. ‘전쟁이 나고 말고’의 문제 이전에 이미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국의 산업자본이 머잖아 중국에 먹힐 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당장 ‘동북아 물류 중심’이니 ‘금융 허브’니 하는 국가적 대사를 치러야 하는 우리로선 중동과는 또 다른 절체절명의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지금처럼 수시로 이북에게 발목을 잡히다간 간신히 벗어난 97년의 경제위기가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는가.
둘째, 다자간 외교의 틀을 만들자
미국은 외교에서 쌍무관계를 선호한다. 그러나 전방위 외교시대에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한미의 쌍무관계로만 풀 수는 없다. 물론 정부에서도 늘 다자간 외교의 틀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의 노력을 적극적이었다고 평가하긴 곤란하다. 국력을 기울여 주변 열강이나 UN 무대에 친한(親韓) 기류를 조성하고, 특히 동북아 집단 안전보장에 관한 다자간 외교의 틀을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자. ‘4+2’니 ‘5+5’니 다자간 협상의 이야기가 쉼 없이 나온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정부 레벨뿐만 아니라 민간 레벨까지 요청하여 그 몫을 함께 지고 나갈 일이다. 궁극적으로 남북의 통일을 고려한다면 주변국의 지지와 동의는 가히 절대적이다. 즉, 북핵을 비롯한 현안 위주의 다자간 외교에서 벗어나 통일외교란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입체적으로 접근해가는 방법론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만 북핵 사태와 같은 돌발변수에도 한국정부의 개입의 폭이 넓어지게 될 것이다.
셋째, ‘북한 版 마샬플랜’을 준비하자
앞서 거론한 ‘한국정부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걸 전제조건으로 하여, ‘북한 版 마샬플랜’을 한국이 적극 주도해야 한다. 그런데 주도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북에 매력적인 투자유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여 되는 북한재건사업에 국제적 컨소시엄을 구성하겠는가. 이는 그야말로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물론, 통일한국의 비전까지 얽힌 난제 중의 난제이다. 그러나 외길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미래가 걸린 일이 아닌가. 지금부터 한국사회의 모든 지혜를 모아 이 대역사를 준비하자.
<맺음말>
북핵 문제의 UN 안보리 상정을 가까스로 유보하고, 고심 끝에 한국정부가 평양에 보낸 특사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김 대통령과 노 당선자의 합작품인데 김 위원장은 면담조차 거절했다.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더 이상 평양은 정권을 지키기 위한 도박에 한반도 전체를 끌어들이는 몰 역사적인 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신정부의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난 5년의 햇볕정책의 결과가 결국 ‘위기의 유보’에 불과했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그런 점에서 햇볕정책이란 개념을 포기하고 포용정책이란 개념을 채택한 신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정부는 국가이익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만 궁극적으로 민족이익을 찾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의 국가이익이란 결국 ‘북핵 사태의 조기해결’과 함께 ‘항구적 긴장 완화조치의 수립’이 아니겠는가. 민족이익이란 ‘남북경제공동체의 수립’ 그리고 ‘통일한국으로의 진전’이다. 둘 다 교집합이 없지 않으나 현실에서는 분명히 다르다. 그만큼 정부와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분명 차별화 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신정부에서는 더 이상 불필요한 한미간의 마찰, 목표 없는 다자간 외교, 정부와 NGO의 경계를 혼돈 하는 미숙한 레토릭, 일방적인 대북 인내 등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선 아니 될 것이다.
94년과 달리 지금의 사태는 그나마 한국정부와 시민사회의 개입여지가 있다. 이 위기를 현명하게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것이 오늘 우리의 당면 과제가 될 것이다. 모두 냉철해지자. 정부가 할 역할, 시민사회가 할 역할을 분명히 하며 그 두 바퀴의 균형 있는 총력외교로 북핵이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최악의 사태를 피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