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다고 중이 떠날 것인가?
"언제부턴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생활의 반복입니다. 존경하던 선배는 다른 곳으로 전근 가고..싫어하는 상사와 치열한 눈치전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단지 생존하고 싶어서. 이곳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냥..용기가 없는 건지 삶에 길들여진 건지..... 7시30분 출근에 10시에서 12시 사이에 퇴근하면서도.. 뭐가 좋다고 용을 쓰는지. 입사 후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지만.. 짤릴 때까지 계속될 춤을 추게 될 것 같은 이 불안감... "
연봉을 비교해준다는 한 사이트의 "더러워서 퇴직할까" 코너에 '벗을 때까지 춤을 춰야 하는 분홍구두'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이 코너의 사연들은 절절하기만 하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팀장 때문에 삶의 활력을 잃어버렸다는 입사 8개월짜리 초년생의 고민에서부터 직장 상사에 찍혀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호소까지 오늘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이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18년이라고 한다. 95년의 6.79년과 비교해 본다면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지금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은 일상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휴식'의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직장생활의 불안정은 해고라는 외부적 위협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회사 자체의 경영적 불안도 문제이고, 불합리한 경영으로 인한 낮은 임금과 격무도 문제가 된다. 상사와 동료와의 갈등은 다른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이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은 '사표'를 던지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한때 유목민적인 삶을 꿈꾼 적이 있다. 농경민은 땅에 운명을 의탁하지만, 유목민은 자기자신에 운명을 건다. 회사가 나를 선택하게 할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일자리를 선택할 것이다. "권위적 사내 문화와 비효율적 의사 결정 과정에 적응할 수 없어 정상적 업무 수행 수행이 어렵다고 여겨져 사표를 제출하오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첫 사표의 퇴사이유란은 이렇게 채워졌다. 보통은 '일신상의 이유'라는 관용구가 자리 잡는 게 관례이겠으나 향후 인사 정책에 참조가 되게끔 상세히 적어달라는 인사팀장의 요청에 선뜻 장문(?)의 이유를 휘갈겼던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표표히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길에 당당히 나섰다. 나는 한 회사에 내 인생 전체를 의탁할 생각은 없었다.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삶은 안타깝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 뒤 몇 차례 직장을 옮겼고, 몇 차례 독립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여전히 '유목민'을 꿈꾸는 회사원 처지이다.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연을 맺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연을 이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고, 연을 끊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버림 받기 전에 버리겠다는 유치한 생각이 아닌 바에야 다니던 회사를 제 발로 걸어 나오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결심을 실행하기까지는 피를 말리는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다.
당장의 일자리를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거니와 그 새로운 자리에서 지금과 다른 새로운 현장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직의 선배들은 충고한다. 거기가 거기니 쉽게 경거망동하지 말지니. 하긴 백번을 생각해도 부당하고, 천번을 곱씹어봐도 용납이 안 되는 대우를 받는 것을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만두겠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처지가 딱할 뿐이다.
내가 다니던 한 회사에서 당시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궁지에 몰려있을 때, 그래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내일 당장 그만 두겠다고 펄펄 날뛰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중국여행 안내 책자에 실린 글이라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여행 기간 중 동행했던 20대 중반의 한 중국 여성 가이드는 베이징 굴지의 대학을 나와 유창한 영어실력은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가이드로서의 업무 능력은 불성실하기 짝이 없어서 예약이 확인되지 않거나 기차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거나 해서 여행객들로부터의 원성이 자자했다. "제 꿈은 외국인 회사에서 비서 업무를 하는 거에요. 이런 하찮은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요. 정말 지겨워요. 빠른 시간 안에 베이징으로 돌아갈 거에요." 이 가이드는 꿈을 잃지 않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이는 글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친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 가이드 같은 하찮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중요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은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도전이다. <성공적인 이직의 열 가지 공통점>이라는 글은 성공적 이직의 조건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학습정도, 적성, 기술, 상세한 직업 정보, 인적 네트워크, 내부자 시각, 가족의 동의, 주위의 객관적 평가 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중요하게 당사자의 태도와 비전과 관련하여 이런 질문을 던진다."가고자 하는 직종의 장점과 단점을 다 짚어봤다. 단점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갖고 싶은가? 기존에 하던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가는 것’으로서 이직을 생각하는가?"
유목민은 현재의 난관을 피해 정착할 만한 평화로운 거처를 찾아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던 지금의 이 자리가 삶의 현장이고 도전의 자리이다. 여기에서의 도전을 견디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의 도전을 흔쾌히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절이 싫다고 중이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싫다고 떠나기만 할 것인가? 구도에 절절한 중은 더 깊은 수련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절에 머물든 혹은 그 절을 떠나든.
"언제부턴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생활의 반복입니다. 존경하던 선배는 다른 곳으로 전근 가고..싫어하는 상사와 치열한 눈치전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단지 생존하고 싶어서. 이곳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냥..용기가 없는 건지 삶에 길들여진 건지..... 7시30분 출근에 10시에서 12시 사이에 퇴근하면서도.. 뭐가 좋다고 용을 쓰는지. 입사 후 부속품이 되어가고 있지만.. 짤릴 때까지 계속될 춤을 추게 될 것 같은 이 불안감... "
연봉을 비교해준다는 한 사이트의 "더러워서 퇴직할까" 코너에 '벗을 때까지 춤을 춰야 하는 분홍구두'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이 코너의 사연들은 절절하기만 하다.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팀장 때문에 삶의 활력을 잃어버렸다는 입사 8개월짜리 초년생의 고민에서부터 직장 상사에 찍혀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호소까지 오늘 당장이라도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이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00년 15세 이상 임금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5.18년이라고 한다. 95년의 6.79년과 비교해 본다면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지금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은 일상적인 선택이 되고 있다. 그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휴식'의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직장생활의 불안정은 해고라는 외부적 위협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회사 자체의 경영적 불안도 문제이고, 불합리한 경영으로 인한 낮은 임금과 격무도 문제가 된다. 상사와 동료와의 갈등은 다른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그 자체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이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은 '사표'를 던지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한때 유목민적인 삶을 꿈꾼 적이 있다. 농경민은 땅에 운명을 의탁하지만, 유목민은 자기자신에 운명을 건다. 회사가 나를 선택하게 할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일자리를 선택할 것이다. "권위적 사내 문화와 비효율적 의사 결정 과정에 적응할 수 없어 정상적 업무 수행 수행이 어렵다고 여겨져 사표를 제출하오니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첫 사표의 퇴사이유란은 이렇게 채워졌다. 보통은 '일신상의 이유'라는 관용구가 자리 잡는 게 관례이겠으나 향후 인사 정책에 참조가 되게끔 상세히 적어달라는 인사팀장의 요청에 선뜻 장문(?)의 이유를 휘갈겼던 것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표표히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길에 당당히 나섰다. 나는 한 회사에 내 인생 전체를 의탁할 생각은 없었다.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일자리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삶은 안타깝게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 뒤 몇 차례 직장을 옮겼고, 몇 차례 독립을 시도했지만 지금은 여전히 '유목민'을 꿈꾸는 회사원 처지이다.
직장을 선택하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연을 맺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연을 이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고, 연을 끊는 것은 더욱 힘든 일이다. 버림 받기 전에 버리겠다는 유치한 생각이 아닌 바에야 다니던 회사를 제 발로 걸어 나오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 결심을 실행하기까지는 피를 말리는 고민과 결단이 필요하다.
당장의 일자리를 그만 두고 새로운 일을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거니와 그 새로운 자리에서 지금과 다른 새로운 현장을 경험하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이직의 선배들은 충고한다. 거기가 거기니 쉽게 경거망동하지 말지니. 하긴 백번을 생각해도 부당하고, 천번을 곱씹어봐도 용납이 안 되는 대우를 받는 것을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만두겠다는 것 말고는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처지가 딱할 뿐이다.
내가 다니던 한 회사에서 당시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궁지에 몰려있을 때, 그래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내일 당장 그만 두겠다고 펄펄 날뛰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중국여행 안내 책자에 실린 글이라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여행 기간 중 동행했던 20대 중반의 한 중국 여성 가이드는 베이징 굴지의 대학을 나와 유창한 영어실력은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가이드로서의 업무 능력은 불성실하기 짝이 없어서 예약이 확인되지 않거나 기차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거나 해서 여행객들로부터의 원성이 자자했다. "제 꿈은 외국인 회사에서 비서 업무를 하는 거에요. 이런 하찮은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요. 정말 지겨워요. 빠른 시간 안에 베이징으로 돌아갈 거에요." 이 가이드는 꿈을 잃지 않고 있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이 글을 쓴 이는 글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친구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행 가이드 같은 하찮은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중요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 두는 것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과 동의어이다. 현재의 어려움을 벗어나는 것은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은 도피가 아니라 도전이다. <성공적인 이직의 열 가지 공통점>이라는 글은 성공적 이직의 조건으로 새로운 일에 대한 학습정도, 적성, 기술, 상세한 직업 정보, 인적 네트워크, 내부자 시각, 가족의 동의, 주위의 객관적 평가 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중요하게 당사자의 태도와 비전과 관련하여 이런 질문을 던진다."가고자 하는 직종의 장점과 단점을 다 짚어봤다. 단점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갖고 싶은가? 기존에 하던 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목표를 ‘향해 가는 것’으로서 이직을 생각하는가?"
유목민은 현재의 난관을 피해 정착할 만한 평화로운 거처를 찾아 옮겨 다니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 있던 지금의 이 자리가 삶의 현장이고 도전의 자리이다. 여기에서의 도전을 견디지 못하면 다른 곳에서의 도전을 흔쾌히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절이 싫다고 중이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싫다고 떠나기만 할 것인가? 구도에 절절한 중은 더 깊은 수련을 위한 선택을 할 것이다. 그 절에 머물든 혹은 그 절을 떠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