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덜미 잡힌 평양
내주 4월23일 베이징에서 북-미-중 3자 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지난 10월 북핵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만이다. 우선은 북핵문제가 레드라인을 넘기 전에 평화적 해결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썩 상쾌하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미동맹과 민족공조를 고뇌하며 북미 사이의 중재를 서겠다며, 한국정부는 지금껏 “interesting” 이란 말까지 듣고 온갖 수모를 겪으며 태평양과 대륙을 넘나들어 萬難辛苦를 자청한 게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중재자는 베이징이다. 그리고 결국에 한미동맹에서도 민족공조에서도 한국정부는 2진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뉴욕타임즈에서 말하길 이미 이라크전이 있기 전에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는 이번 3자회담의 윤곽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동의 오일 수입에 국가전략적 이해가 달린 베이징에서 이라크전이 남의 일일 수 없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뒷마당인 북핵사태 또한 녹록하게 대할 일이 아니다. 이라크전과 관련해 베이징은 예의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느닷없이 사흘간 평양으로 가는 오일 파이프라인을 잠궈 버렸다. 마침내 지난 3월8일 錢其琛이 숨어있는 김정일을 만나 선택을 종용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그다드 함락에 맞춰 열린 안보리 미팅을 거부하지 않고 중국은 나갔다. 그리고 3월12일 북한 외무성은 다자회담 수용시사 발표를 한다.
이게 외교다. 국가이익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명분은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중국은 이라크와 북한을 맞바꾼 것이다. 언필칭 혈맹이라는 북한의 안위는 베이징의 안전과 번영이라는 대전제에서만 의미가 있는 일이기에, 때로는 숨통을 죄이기도 하고 때로는 종용이라는 이름으로 협박도 하면서 결국에는 일괄타결(Package Deal)의 카드로 거래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동안 한국에서는 마치 소경 코끼리 더듬듯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국제정치의 현실주의(Realism)와 거리가 먼 명분론으로 낮과 밤을 지새웠다. 한미동맹이 우선이니 민족공조가 우선이니, 파병을 해야 하니 그리 되면 전범국이 되니 뜬구름 논란에 가장 구체적인 국익이란 이해관계는 피멍이 들고 말았다.
부끄럽다. 내남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의 얕은 안목은, 유라시아 대륙을 무대로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거래와 그 카드에 불과한 한반도의 처지를 읽어내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바보짓 그만 하고 한반도문제의 국외자가 아닌 당사자로 자리잡기 위해 지혜를 모을 일이다.
모든 게 10년 전 상황의 재판이다.
그 때도 남북이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일본의 대규모 수교교섭 사절단이 평양을 찾는 등 미국을 배제한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평양이 NPT 탈퇴를 하고 북핵사태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결국 베이징의 중재로 지금처럼 3자회담 끝에 KEDO를 만들고 한국이 봉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지금도 남북이 6.15 공동선언을 하고 고이즈미-김정일 만남이 있은 직후에, 평양이 NPT 탈퇴를 하고 북핵사태가 레드라인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베이징의 중재로 다시금 3자회담을 앞두고 있음이다.
그 때도 워싱턴은 베이징이 평양의 大哥임을 확인했고 이번에는 10년을 넘어 다시금 확고부동하게 재확인한 셈이다. 평양의 연착륙(Soft landing)이든 영변 등지의 외과수술(Surgical operation)이든 정권교체(Regime Change)든 베이징은 평양에 관한 한 자신의 이니셔티브와 기득권을 만천하에 과시한 셈이다. 이보다 더 큰 장사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작년 신의주특구의 양빈 임명과 그 직후의 베이징에 의한 강제폐쇄에 방성대곡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김정일로서는 독자노선을 걸어보려다 제 아비 하고는 달리 보기 좋게 창피를 당한 게 아닌가. 그 후로도 수없이 푸틴에게 가서 매달렸건만 별무 소득이었다. 이제 김정일이 어찌 베이징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 있으랴.
진정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문제의 장래이다.
명색이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건만 여전히 한국정부는 국외자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평양은 완전히 베이징에 덜미가 잡혀버렸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한반도문제의 장래에 관한 윤곽을 大哥들이 다 그려놓고 막상 우리가 그 그림판 위에서 춤을 추는 꼴이 재연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구한말이 그러했고 해방정국이 그러했으며 10년 전 역시 그러했다.
자, 앞으로 어떻게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주인 노릇을 할 것인가.
더 이상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북은 '내용상 양자' 미는 '형식상 다자'라는 명분을 얻어내었고 다른 나라 참여를 예약한 열린 틀이니 잘 되지 않았나” 이는 제3자가 할 소리며 우리가 할 얘기가 아니다. 우선 이 기회에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가 북미간의 문제라며 스스로 국외자 노릇을 자처한 것에 대해 통절히 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한나라당. 더 이상 3자회담 갖고 물고 늘어지지 마라. 그래 봤자 우리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꼴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제발 정신 차리자.
미-중 이란 大哥 틈새에 끼인 남북의 처지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유라시아 차원에서 돌아가는 국제정치의 거래를 직시한다면, 여야간의 외교를 둘러싼 정쟁이 아니라 힘 없는 한국정부의 발언권을 어떻게 높이고 국익을 구할 것인지 초당적인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며, 또한 한반도문제에의 접근을 ‘차분하고 집요하게’의 방법론이 아닌 큰목소리의 명분론으로 대체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겠다.
첫째 평양과 솔직하게 대좌하라.
더 이상 현금지원이니 햇볕이니 평화번영이니 하며 환심을 사거나 사태의 본질을 물타기 하는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그 동안 수 없이 확인한 사실이고 이번에도 김정일이 한국정부는 빼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민족공조란 낭만적인 수사를 함께 덤터기 쓸 일이 아니다. 대신 평양의 속내를 건드리고 솔직하게 대화를 물밑으로든 물위로든 이어나가라. 평양 입장에선 다들 간섭만 하지 막상 돈줄 데는 서울 말고는 별로 없는 현실 그리고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남북 주민들의 직접 만남이란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 아닌가. 이 대목에서 진정으로 개입(Engagement Policy)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 한국의 체력으론 붕괴사태를 감당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서로 타협점이 나올 수 있다. 만의 하나, 물밑에서 이마저 거부한다면 우리로선 특단의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
둘째 친미-친중 하라.
한국의 입장에서 친일해 봤자 친미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도쿄가 평양과 독자적으로 해보려다가 벌써 10년에 걸쳐 두 번이나 물을 먹지 않았나. 친중은 말할 것도 없다. 친러로 돌파구를 열려다 주저앉은 평양의 경우를 보라. 역시 친중 없는 친러는 해결책이 아니다. 더욱이 북한의 장래에 관한 이니셔티브를 베이징이 틀어쥔 다음에야 한국정부가 그를 도외시하고 어떻게 한반도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더 이상의 혼란은 곤란하다.
우리에겐 지난 10여 년 뼈 아픈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10년 만에 찾아온 “우리 마당에서의 남의 잔칫상” 앞에서 지난 실수를 다시금 반복해선 아니 된다. 평양과 민족의 명운을 걸고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그리 멀지 않게 다가왔다. 미-중의 양 大哥를 안심시키며 민족의 활로를 여는 [한반도 책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모두 지혜를 모으자.
내주 4월23일 베이징에서 북-미-중 3자 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지난 10월 북핵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만이다. 우선은 북핵문제가 레드라인을 넘기 전에 평화적 해결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적극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이 썩 상쾌하지 않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미동맹과 민족공조를 고뇌하며 북미 사이의 중재를 서겠다며, 한국정부는 지금껏 “interesting” 이란 말까지 듣고 온갖 수모를 겪으며 태평양과 대륙을 넘나들어 萬難辛苦를 자청한 게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중재자는 베이징이다. 그리고 결국에 한미동맹에서도 민족공조에서도 한국정부는 2진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뉴욕타임즈에서 말하길 이미 이라크전이 있기 전에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는 이번 3자회담의 윤곽이 마련되었다고 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중동의 오일 수입에 국가전략적 이해가 달린 베이징에서 이라크전이 남의 일일 수 없고, 마찬가지로 자신의 뒷마당인 북핵사태 또한 녹록하게 대할 일이 아니다. 이라크전과 관련해 베이징은 예의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느닷없이 사흘간 평양으로 가는 오일 파이프라인을 잠궈 버렸다. 마침내 지난 3월8일 錢其琛이 숨어있는 김정일을 만나 선택을 종용했다. 그리고 다음날 바그다드 함락에 맞춰 열린 안보리 미팅을 거부하지 않고 중국은 나갔다. 그리고 3월12일 북한 외무성은 다자회담 수용시사 발표를 한다.
이게 외교다. 국가이익을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에서 명분은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중국은 이라크와 북한을 맞바꾼 것이다. 언필칭 혈맹이라는 북한의 안위는 베이징의 안전과 번영이라는 대전제에서만 의미가 있는 일이기에, 때로는 숨통을 죄이기도 하고 때로는 종용이라는 이름으로 협박도 하면서 결국에는 일괄타결(Package Deal)의 카드로 거래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동안 한국에서는 마치 소경 코끼리 더듬듯이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국제정치의 현실주의(Realism)와 거리가 먼 명분론으로 낮과 밤을 지새웠다. 한미동맹이 우선이니 민족공조가 우선이니, 파병을 해야 하니 그리 되면 전범국이 되니 뜬구름 논란에 가장 구체적인 국익이란 이해관계는 피멍이 들고 말았다.
부끄럽다. 내남 가릴 것 없이 우리 모두의 얕은 안목은, 유라시아 대륙을 무대로 돌아가는 국제사회의 거래와 그 카드에 불과한 한반도의 처지를 읽어내지 못했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바보짓 그만 하고 한반도문제의 국외자가 아닌 당사자로 자리잡기 위해 지혜를 모을 일이다.
모든 게 10년 전 상황의 재판이다.
그 때도 남북이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일본의 대규모 수교교섭 사절단이 평양을 찾는 등 미국을 배제한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는 가운데, 평양이 NPT 탈퇴를 하고 북핵사태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결국 베이징의 중재로 지금처럼 3자회담 끝에 KEDO를 만들고 한국이 봉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지금도 남북이 6.15 공동선언을 하고 고이즈미-김정일 만남이 있은 직후에, 평양이 NPT 탈퇴를 하고 북핵사태가 레드라인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베이징의 중재로 다시금 3자회담을 앞두고 있음이다.
그 때도 워싱턴은 베이징이 평양의 大哥임을 확인했고 이번에는 10년을 넘어 다시금 확고부동하게 재확인한 셈이다. 평양의 연착륙(Soft landing)이든 영변 등지의 외과수술(Surgical operation)이든 정권교체(Regime Change)든 베이징은 평양에 관한 한 자신의 이니셔티브와 기득권을 만천하에 과시한 셈이다. 이보다 더 큰 장사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작년 신의주특구의 양빈 임명과 그 직후의 베이징에 의한 강제폐쇄에 방성대곡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었다. 김정일로서는 독자노선을 걸어보려다 제 아비 하고는 달리 보기 좋게 창피를 당한 게 아닌가. 그 후로도 수없이 푸틴에게 가서 매달렸건만 별무 소득이었다. 이제 김정일이 어찌 베이징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할 수 있으랴.
진정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문제의 장래이다.
명색이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건만 여전히 한국정부는 국외자 취급을 받고 있다. 그리고 평양은 완전히 베이징에 덜미가 잡혀버렸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한반도문제의 장래에 관한 윤곽을 大哥들이 다 그려놓고 막상 우리가 그 그림판 위에서 춤을 추는 꼴이 재연출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구한말이 그러했고 해방정국이 그러했으며 10년 전 역시 그러했다.
자, 앞으로 어떻게 이 땅에서 우리 겨레가 주인 노릇을 할 것인가.
더 이상 바보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북은 '내용상 양자' 미는 '형식상 다자'라는 명분을 얻어내었고 다른 나라 참여를 예약한 열린 틀이니 잘 되지 않았나” 이는 제3자가 할 소리며 우리가 할 얘기가 아니다. 우선 이 기회에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가 북미간의 문제라며 스스로 국외자 노릇을 자처한 것에 대해 통절히 반성할 일이다. 그리고 한나라당. 더 이상 3자회담 갖고 물고 늘어지지 마라. 그래 봤자 우리 스스로에게 침을 뱉는 꼴이 아니겠는가.
이제부터라도 제발 정신 차리자.
미-중 이란 大哥 틈새에 끼인 남북의 처지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유라시아 차원에서 돌아가는 국제정치의 거래를 직시한다면, 여야간의 외교를 둘러싼 정쟁이 아니라 힘 없는 한국정부의 발언권을 어떻게 높이고 국익을 구할 것인지 초당적인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며, 또한 한반도문제에의 접근을 ‘차분하고 집요하게’의 방법론이 아닌 큰목소리의 명분론으로 대체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안을 하겠다.
첫째 평양과 솔직하게 대좌하라.
더 이상 현금지원이니 햇볕이니 평화번영이니 하며 환심을 사거나 사태의 본질을 물타기 하는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그 동안 수 없이 확인한 사실이고 이번에도 김정일이 한국정부는 빼달라고 하지 않았던가. 민족공조란 낭만적인 수사를 함께 덤터기 쓸 일이 아니다. 대신 평양의 속내를 건드리고 솔직하게 대화를 물밑으로든 물위로든 이어나가라. 평양 입장에선 다들 간섭만 하지 막상 돈줄 데는 서울 말고는 별로 없는 현실 그리고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남북 주민들의 직접 만남이란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 아닌가. 이 대목에서 진정으로 개입(Engagement Policy)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어차피 지금 한국의 체력으론 붕괴사태를 감당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서로 타협점이 나올 수 있다. 만의 하나, 물밑에서 이마저 거부한다면 우리로선 특단의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
둘째 친미-친중 하라.
한국의 입장에서 친일해 봤자 친미가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도쿄가 평양과 독자적으로 해보려다가 벌써 10년에 걸쳐 두 번이나 물을 먹지 않았나. 친중은 말할 것도 없다. 친러로 돌파구를 열려다 주저앉은 평양의 경우를 보라. 역시 친중 없는 친러는 해결책이 아니다. 더욱이 북한의 장래에 관한 이니셔티브를 베이징이 틀어쥔 다음에야 한국정부가 그를 도외시하고 어떻게 한반도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더 이상의 혼란은 곤란하다.
우리에겐 지난 10여 년 뼈 아픈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10년 만에 찾아온 “우리 마당에서의 남의 잔칫상” 앞에서 지난 실수를 다시금 반복해선 아니 된다. 평양과 민족의 명운을 걸고 담판을 지어야 할 때가 그리 멀지 않게 다가왔다. 미-중의 양 大哥를 안심시키며 민족의 활로를 여는 [한반도 책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모두 지혜를 모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