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속에 칼을 품고 있는 '분노'

by 이윤주원 posted May 13, 2003
입 속에 칼을 품고 있는 '분노'


일생을 살면서 버리려 해도 쉽게 버려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꼭지에는 꿀이 있지만 뿌리에 독이 있는 ‘분노’가 대표적입니다. 분노는 쉽게 상대방에 대한 폭력 행위로 이어집니다. 분노에 찬 사람들은 상대방을 비난, 질투, 시기, 파괴함으로써 울분과 분노를 풀려고 합니다.


분노는 분노를 낳을 뿐 삭힐 수는 없습니다. 물론 이 ‘분노’의 뿌리에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욕망에 이끌리고 욕심에 사로잡힌 자는 견해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여과 없이 언제나 입 밖에 냅니다. 여과 없이 내뱉은 한마디의 말이 ‘분노’의 씨앗이 되어 주위를 전염시키게 되지요.


견해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좁은 견해의 울타리에 들어앉아 한쪽을 배척하기도 하고, 또 다른 쪽에 집착하기도 합니다. 배척과 집착은 분노에 휩싸인 논쟁과 비방을 낳지요. 논쟁과 비방은 ‘성냄’을 낳고, 폭력이 일상화된 세상을 낳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은 분노와 성냄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싸우는 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치하는 자들은 ‘입 속에 칼을 품고’ 말의 폭력을 되풀이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세상을 바꾸겠다던 운동가들도, 욕망을 끊고 일체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살겠다던 수행자들도 분노와 성냄의 고리에서 맴돌고 있을 뿐입니다. 이들도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입 속에 칼을 품고’ 비방과 논쟁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주기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분노는 욕망과 두려움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견해에 집착하는 자는 세상의 변화가 두렵기 때문에 옛것만 고집한 채 ‘권위’를 부립니다. 하지만 “몽둥이를 들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세존의 말씀을 새겨봐야 합니다. 그들은 두렵기 때문에 ‘권위’라는 분노의 산물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욕망에 뿌리를 둔 분노는 자기 견해의 집착과 권위를 내세우게 됩니다. 이들은 두렵기 때문에 권위를 앞세우고 자기 견해에 그토록 집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의 살아있는 마음에는 이미 ‘번뇌와 두려움의 화살’이 박혀 있습니다. 이 화살을 맞은 자가 어찌 욕망의 진흙탕에서 벗어나 평안의 땅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분노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면 욕망을 잘 관찰하여 두려움을 털어 내야 합니다.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평화와 행복의 물결에 몸을 맡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 암울합니다.
얼마전 세상과 자신을 평화롭게 정화하겠다는 가치로 모인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임은 내세우는 가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자기 견해를 앞세운 채 반목하고 질시하며 ‘권위’ 앞세우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두려움조차 느꼈습니다. 더구나 나조차도 반목과 권위의 늪 속에서 빠진 채 헤매며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미움이 마음속에서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무서웠고 도대체 무엇인 문제인지 혼란스러웠지요. 집으로 돌아와 차분하게 원인을 관찰해보았습니다. 관찰의 결과, 두 가지의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첫째,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는 마음’조차 욕망이었다는 겁니다. 분명 그 자리에 참석한 누구도 공익을 우선시하지 개인의 이익에 집착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기 서린 거친 말들이 오간 건 사실입니다. ‘자신이 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견해에 갇혀 다른 이들의 견해를 들으려하지 않았지요.


둘째, ‘권위를 내세우려 하는 마음’이 욕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모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기 중심적인 견해에 갇혀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다 보면 ‘권위주의’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한번 그 함정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달콤함에 취해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지시, 명령, 일방성, 순응 등이 권위주의가 주는 달콤함이지요. 그러나 ‘열 명이 한 걸음을 딛는다는 것’은 의논, 솔선수범, 쌍방성, 저항 등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더딘 걸음이지요. 그래서 쉽게 ‘권위주의’라는 달콤함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거친 한 마디의 말은 분노, 성냄, 폭력의 씨앗이 되어 세상에 혼란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때문에 분노, 성냄, 폭력의 씨앗이 될 ‘말’을 삼가고 또 삼가해야 합니다. 때로는 다른 이들이 나에게 거칠고 노기 서린 욕설을 내뱉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분노하는 사람 때문에 화를 내면 안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화를 낸다면, 분노의 마음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지요. 다른 사람이 화내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 않는 것이 둘 다에게 유익한 방법이랍니다.


분명히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자신과 세상을 평화롭고 청정하게 바꾸려는 일을 할수록 비례해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분노의 싹은 커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렇게 견해가 달라 적대감이 일어날수록 세존의 가르침을 되새김해야 합니다.


“미움을 끊어서 편안히 잠자고 미움을 끊어서 슬프지 않네.

참으로 바라문이여, 뿌리에는 독이 있지만 꼭지에는 꿀이 있는

미움을 죽이는 것을 성자는 가상히 여기니

그것을 죽이면 슬프지 않기 때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