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을 위한 변명>>
2003. 5. 20 / 永樂
<무엇이 굴욕인가?>
한미정상회담이 있은 지 불과 닷새, 대통령이 귀국한 지는 겨우 사흘이다.
그런데 지금 노대통령 지지층의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굴욕외교란다.
노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이 나라의 존엄과 위신을 팔아먹고 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한 번 살펴보자. 노대통령의 방미 성격은 국빈방문이 아니라 실무방문이다.
그래서 의회연설도 없고, 공동기자회견도 없다. 크로포드 목장에의 초대는 물론 없다.
그런데 부시는 노대통령을 적극 환대했다.
예정에 없던 로즈가든에서의 공동기자회견 그리고 이어진 만찬…
내내 미국정부는 이태 전 부시와 김 전 대통령과의 냉기를 씻으려는 듯
나름의 성의를 다 했다. 그에 따라 노대통령도 적극 립서비스를 했다. 그게 다다.
립서비스 또한 계산된 것이 아닌가.
우리의 상상을 넘는 미국 조야의 嫌韓症을 불식해야 하고,
한편으론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평양에 대한
적절한 경고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던, 햇볕정책을 잇겠다고 공언하던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외로운 고뇌로 불면의 밤을 지새며 준비한 발언이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굴욕이란 말인가?
김 전 대통령처럼 "this man"라는 이야기라도 들었단 말인가.
노 전 대통령 일행처럼 검색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행보를 그리도 지독히 폄하하는가.
노대통령은 방미 전부터 5.18을 고려해 일정을 조정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기념일에 맞추어 광주로 내려왔다.
그러나 어이 없게도 그는 정문도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야당의 반발도 아니고 지역주민들의 농성도 아니며, 5.18 유족들의 시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극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나서 합법화의 물꼬를 터 주려 한
한총련 학생들의 행패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토록 심한 굴욕을 겪어야 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총련의 행패는 그 동기의 순수성을 고려하자고 말을 하고
의전상 융숭한 대접을 받은 방미는 굴욕외교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그저 시민사회라는 통칭으로 소개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의 발언에서 어떤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으며
왜 그들이 무슨 절차의 적절성으로 시민사회의 대표성을 참칭한단 말인가.
<근거 없고 무책임한 선동은 그만 두라>
아마 요지는 이것일 게다.
“왜 대통령은 부시를 만나 단호하게 군사적 옵션의 배제를 못박고 오지 않았는가.
오히려 한미동맹을 민족공조보다 우선시하고 경협과 북핵 포기를 연계하며
나아가 북한을 믿을 수 없는 파트너라는 둥 자극적인 언사만 일삼았는가.
이는 당사자 해결을 원칙으로 한 햇볕정책의 배신이며
정경분리를 골자로 한 화해협력의 포기나 다를 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시민사회의 대표격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우선 솔직해져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과 우리들의 의견은 다르다. 매우 유감스럽다.”
그렇지 아니 하고 지금처럼 국민의 소박한 민족정서를 자극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무책임한 선동을 계속 한다면,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지 아니 할 수 없다.
그를 전제로 그들 주장의 적실성을 하나씩 살펴보자.
외교에서 목표의 달성을 위해 동원가능한 모든 옵션을 쥐고 있는 건 당연지사지 않은가.
더군다나 평양처럼 예측불가능의 상대에게 아무 반대급부도 없이
먼저 이 편의 강력한 최후의 카드를 스스로 버리라는 건 적절한 권고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에 집착한다면 두 가지 개연성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첫째 외교의 ABC를 모른다는 이야기.
언론플레이의 애드벌룬이 다 확정된 국가정책이라고 믿는다는 이야기다.
이야말로 울시 같은 매파에게 고마운, 동맹국의 愚衆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의도적인 선동이다.
그들이 서울과 베이징의 파워엘리트들이 이미 군사적 옵션을 선택했다고
현실성 없는 판단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최소한 워싱턴은 앞뒤 가리지 않는
戰爭狂이라고 확신하는 몽상가들이거나, 아니면 전쟁가능성을 침소봉대해서
결국 평양의 협상 입지를 넓히려고 한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 말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그 곳에까지 가서
서랍 속에 파묻힌 ‘군사적 옵션’의 배제를 계속 떠들어야 하는가.
그건 너무나도 처량한 일이다. 왜 대한민국의 생사존망을 이역만리에까지 가서
공개적으로 읍소하고 구걸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그들이 그리도 수치로 여기는 당사자 원칙의 포기이고 굴욕이지 않는가.
평양의 ‘지극히 위험한 게임’은 대한민국이 주도해서 얼르고 달래며 길들여야 할 문제다.
그게 당사자 원칙이지 늘 오냐오냐 해주고 주변국들에겐 늘 인내하라 요구하는 건
당사자 원칙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으며 북한을 정상국가로 오인하는 錯視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 거론되는 ‘민족공조’란 평양의 선전문구.
도대체 누구하고 민족공조를 한다는 말인가.
왜 그들은 ‘화해협력’이란 대한민국의 적절한 개념이 있는데도
자꾸 평양의 문구를 들먹이는가. ‘한반도 비핵화선언’에서부터 최근의 ‘6.15 공동선언’까지
밥 먹듯이 민족공조를 깬 평양의 행태를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무슨 의도로 그리 ‘민족공조’를 들먹이는가.
화해협력이 없는 민족공조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평양 스스로 민족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핵정치를 지금 당장 걷어치우고,
서울 불바다 발언의 악몽을 수시로 깨닫게 하는 휴전선 전방배치 대량살상무기를
후방으로 이전하고 나서, 비로소 떳떳하게 협력을 요청하고 공조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 머리 위에 핵을 드리우고 우리 턱 밑에 총구를 들이대는 행위 앞에
감히 어찌 ‘민족공조’를 되뇌이나.
끝으로 정경분리. 사실을 왜곡치 말라.
마치 핵논란으로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궁지로 모는 듯
언론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야말로 의도를 의심치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 이 와중에도 우리는 물론 미국과 일본 모두 평양과의 관계를 끊기는커녕
평양과 가장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기아사태 이후 10년이 가까워지도록 그 소란 속에서도
한미일의 지속적인 식량지원이 없었다면 지금 평양은 존재할 수 없다.
국교부재 혹은 적대적 관계에도 한미일은 역설적으로 평양 정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료가 건너가고 워싱턴에서 서울에서 식량이 선적될 채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SARS에도 거래관계가 끊기고 위축되며 관광업에 거미줄을 치는 마당에,
핵장난을 하는 평양에 조건 없는 식량지원을 넘어서서 아무런 반대급부나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이 현금지원도 하고 관광객도 보내고 철도공사를 하란 말인가.
그리도 정경분리란 그럴 듯한 표현으로 평양에 더 노골적인 지원을 해주길 바라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노대통령의 고뇌에 찬 진일보를 환영한다>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自主를 하고 당당해진다는 것은,
스스로 사태를 주도할 이정표(Road Map)가 있고, 행사할 수 있는 패가 있으며,
동원할 자원이 존재할 때에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하니 지금처럼 억지 부리며
노대통령의 실리외교를 터무니 없이 공박하는 어리석은 짓은 말자.
햇볕정책의 이정표에 무슨 이니셔티브의 시나리오가 있었나.
평양의 행패를 제어할 어떠한 패가 있었으며,
“알아서 잘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주변국들의 시선 앞에서
무슨 자원을 어떻게 동원할 복안이 있었나.
노대통령의 고뇌에 찬 진일보를 쌍수 들어 환영한다.
집권 전후로 늘 초조하게 바라만 보았던 그 가슴졸임의 세월.
일국의 대통령이 잦은 낭만적인 발언으로 평양을 다독거리기만 하려 한다는 염려와,
안보 현실을 무시하고 동맹관계에 으름장을 놓는 위험한 외교를 벌인다는 초조감에,
솔직히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 대통령에 관해서만은 한시름 덜어도 될 듯하다.
남한산성의 교훈으로 고뇌하던 파병 결정의 시절을 지나,
바야흐로 4,900만의 선두에서 ‘전략적 선택’을 과감히 해내는 국가지도자로서,
나날이 자리를 잡아가는 노대통령의 진일보에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외람되지만 한가지만 부탁드리고자 한다.
이번 행보처럼 정치에서도 ‘고뇌에 찬 진일보’로
온 국민을 유쾌히 놀라게 하는 대통령이 되시길 빈다.
코드를 맞춘다고 나머지 맘에 안 드는 기타줄을 죄다 뿌리치는
분파의 지도자가 되지 마시고,
배짱이 있고 그릇이 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인재들과 폭넓게,
코드가 아닌 배짱과 그릇을 맞추는 대통합의 국민지도자가 되시길 빈다.
그 길만이 ‘아름다운 변신’이 추억거리로 묻히지 않고
새로운 헌정사의 장을 여는 계기로 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오늘 밤은 편안히 잠들 수 있겠다.
日新又日新하는 노대통령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제 2의 아름다운 변신을 다시 한 번 충심으로 부탁드린다.
2003. 5. 20 / 永樂
<무엇이 굴욕인가?>
한미정상회담이 있은 지 불과 닷새, 대통령이 귀국한 지는 겨우 사흘이다.
그런데 지금 노대통령 지지층의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굴욕외교란다.
노대통령이 워싱턴에 가서 이 나라의 존엄과 위신을 팔아먹고 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한 번 살펴보자. 노대통령의 방미 성격은 국빈방문이 아니라 실무방문이다.
그래서 의회연설도 없고, 공동기자회견도 없다. 크로포드 목장에의 초대는 물론 없다.
그런데 부시는 노대통령을 적극 환대했다.
예정에 없던 로즈가든에서의 공동기자회견 그리고 이어진 만찬…
내내 미국정부는 이태 전 부시와 김 전 대통령과의 냉기를 씻으려는 듯
나름의 성의를 다 했다. 그에 따라 노대통령도 적극 립서비스를 했다. 그게 다다.
립서비스 또한 계산된 것이 아닌가.
우리의 상상을 넘는 미국 조야의 嫌韓症을 불식해야 하고,
한편으론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가는 평양에 대한
적절한 경고메시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사진 찍으러 가지 않겠다던, 햇볕정책을 잇겠다고 공언하던 대통령으로서,
얼마나 외로운 고뇌로 불면의 밤을 지새며 준비한 발언이겠는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굴욕이란 말인가?
김 전 대통령처럼 "this man"라는 이야기라도 들었단 말인가.
노 전 대통령 일행처럼 검색이라도 받았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행보를 그리도 지독히 폄하하는가.
노대통령은 방미 전부터 5.18을 고려해 일정을 조정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기념일에 맞추어 광주로 내려왔다.
그러나 어이 없게도 그는 정문도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수모를 겪었다.
야당의 반발도 아니고 지역주민들의 농성도 아니며, 5.18 유족들의 시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극렬한 반발을 무릅쓰고 자신이 직접 나서 합법화의 물꼬를 터 주려 한
한총련 학생들의 행패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토록 심한 굴욕을 겪어야 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한총련의 행패는 그 동기의 순수성을 고려하자고 말을 하고
의전상 융숭한 대접을 받은 방미는 굴욕외교란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그저 시민사회라는 통칭으로 소개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의 발언에서 어떤 균형감각을 찾을 수 있으며
왜 그들이 무슨 절차의 적절성으로 시민사회의 대표성을 참칭한단 말인가.
<근거 없고 무책임한 선동은 그만 두라>
아마 요지는 이것일 게다.
“왜 대통령은 부시를 만나 단호하게 군사적 옵션의 배제를 못박고 오지 않았는가.
오히려 한미동맹을 민족공조보다 우선시하고 경협과 북핵 포기를 연계하며
나아가 북한을 믿을 수 없는 파트너라는 둥 자극적인 언사만 일삼았는가.
이는 당사자 해결을 원칙으로 한 햇볕정책의 배신이며
정경분리를 골자로 한 화해협력의 포기나 다를 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시민사회의 대표격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우선 솔직해져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과 우리들의 의견은 다르다. 매우 유감스럽다.”
그렇지 아니 하고 지금처럼 국민의 소박한 민족정서를 자극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무책임한 선동을 계속 한다면,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하지 아니 할 수 없다.
그를 전제로 그들 주장의 적실성을 하나씩 살펴보자.
외교에서 목표의 달성을 위해 동원가능한 모든 옵션을 쥐고 있는 건 당연지사지 않은가.
더군다나 평양처럼 예측불가능의 상대에게 아무 반대급부도 없이
먼저 이 편의 강력한 최후의 카드를 스스로 버리라는 건 적절한 권고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그에 집착한다면 두 가지 개연성 말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첫째 외교의 ABC를 모른다는 이야기.
언론플레이의 애드벌룬이 다 확정된 국가정책이라고 믿는다는 이야기다.
이야말로 울시 같은 매파에게 고마운, 동맹국의 愚衆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의도적인 선동이다.
그들이 서울과 베이징의 파워엘리트들이 이미 군사적 옵션을 선택했다고
현실성 없는 판단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최소한 워싱턴은 앞뒤 가리지 않는
戰爭狂이라고 확신하는 몽상가들이거나, 아니면 전쟁가능성을 침소봉대해서
결국 평양의 협상 입지를 넓히려고 한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 말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그 곳에까지 가서
서랍 속에 파묻힌 ‘군사적 옵션’의 배제를 계속 떠들어야 하는가.
그건 너무나도 처량한 일이다. 왜 대한민국의 생사존망을 이역만리에까지 가서
공개적으로 읍소하고 구걸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야말로 그들이 그리도 수치로 여기는 당사자 원칙의 포기이고 굴욕이지 않는가.
평양의 ‘지극히 위험한 게임’은 대한민국이 주도해서 얼르고 달래며 길들여야 할 문제다.
그게 당사자 원칙이지 늘 오냐오냐 해주고 주변국들에겐 늘 인내하라 요구하는 건
당사자 원칙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으며 북한을 정상국가로 오인하는 錯視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계속 거론되는 ‘민족공조’란 평양의 선전문구.
도대체 누구하고 민족공조를 한다는 말인가.
왜 그들은 ‘화해협력’이란 대한민국의 적절한 개념이 있는데도
자꾸 평양의 문구를 들먹이는가. ‘한반도 비핵화선언’에서부터 최근의 ‘6.15 공동선언’까지
밥 먹듯이 민족공조를 깬 평양의 행태를 세상이 다 아는데,
왜 무슨 의도로 그리 ‘민족공조’를 들먹이는가.
화해협력이 없는 민족공조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평양 스스로 민족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핵정치를 지금 당장 걷어치우고,
서울 불바다 발언의 악몽을 수시로 깨닫게 하는 휴전선 전방배치 대량살상무기를
후방으로 이전하고 나서, 비로소 떳떳하게 협력을 요청하고 공조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 머리 위에 핵을 드리우고 우리 턱 밑에 총구를 들이대는 행위 앞에
감히 어찌 ‘민족공조’를 되뇌이나.
끝으로 정경분리. 사실을 왜곡치 말라.
마치 핵논란으로 북한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궁지로 모는 듯
언론플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그야말로 의도를 의심치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금 이 와중에도 우리는 물론 미국과 일본 모두 평양과의 관계를 끊기는커녕
평양과 가장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기아사태 이후 10년이 가까워지도록 그 소란 속에서도
한미일의 지속적인 식량지원이 없었다면 지금 평양은 존재할 수 없다.
국교부재 혹은 적대적 관계에도 한미일은 역설적으로 평양 정권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도 비료가 건너가고 워싱턴에서 서울에서 식량이 선적될 채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바라는가.
SARS에도 거래관계가 끊기고 위축되며 관광업에 거미줄을 치는 마당에,
핵장난을 하는 평양에 조건 없는 식량지원을 넘어서서 아무런 반대급부나
안전에 대한 보장도 없이 현금지원도 하고 관광객도 보내고 철도공사를 하란 말인가.
그리도 정경분리란 그럴 듯한 표현으로 평양에 더 노골적인 지원을 해주길 바라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국익이 도대체 무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노대통령의 고뇌에 찬 진일보를 환영한다>
국제정치의 무대에서 自主를 하고 당당해진다는 것은,
스스로 사태를 주도할 이정표(Road Map)가 있고, 행사할 수 있는 패가 있으며,
동원할 자원이 존재할 때에라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하니 지금처럼 억지 부리며
노대통령의 실리외교를 터무니 없이 공박하는 어리석은 짓은 말자.
햇볕정책의 이정표에 무슨 이니셔티브의 시나리오가 있었나.
평양의 행패를 제어할 어떠한 패가 있었으며,
“알아서 잘 한다”고 비아냥거리는 주변국들의 시선 앞에서
무슨 자원을 어떻게 동원할 복안이 있었나.
노대통령의 고뇌에 찬 진일보를 쌍수 들어 환영한다.
집권 전후로 늘 초조하게 바라만 보았던 그 가슴졸임의 세월.
일국의 대통령이 잦은 낭만적인 발언으로 평양을 다독거리기만 하려 한다는 염려와,
안보 현실을 무시하고 동맹관계에 으름장을 놓는 위험한 외교를 벌인다는 초조감에,
솔직히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 대통령에 관해서만은 한시름 덜어도 될 듯하다.
남한산성의 교훈으로 고뇌하던 파병 결정의 시절을 지나,
바야흐로 4,900만의 선두에서 ‘전략적 선택’을 과감히 해내는 국가지도자로서,
나날이 자리를 잡아가는 노대통령의 진일보에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외람되지만 한가지만 부탁드리고자 한다.
이번 행보처럼 정치에서도 ‘고뇌에 찬 진일보’로
온 국민을 유쾌히 놀라게 하는 대통령이 되시길 빈다.
코드를 맞춘다고 나머지 맘에 안 드는 기타줄을 죄다 뿌리치는
분파의 지도자가 되지 마시고,
배짱이 있고 그릇이 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인재들과 폭넓게,
코드가 아닌 배짱과 그릇을 맞추는 대통합의 국민지도자가 되시길 빈다.
그 길만이 ‘아름다운 변신’이 추억거리로 묻히지 않고
새로운 헌정사의 장을 여는 계기로 승화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오늘 밤은 편안히 잠들 수 있겠다.
日新又日新하는 노대통령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며,
제 2의 아름다운 변신을 다시 한 번 충심으로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