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개혁 이전에 통치에 성공해야 한다

by 이왕재 posted May 26, 2003
햇빛이 비치는 반대편에 그림자가 생긴다. 햇빛이 없다면 그림자도 없다.
지금의 '개혁'이 혹시 그런 것은 아닐까?
조선일보가 없다면 안티조선도 없다. 수구반동이 없다면 '개혁'도 없다.
2003년 대한민국의 개혁은 이렇게 보수에 기대어 서 있다.

참여 정부 출범 직전에 대구에서 지하철 화재 사건이 있었다. 대구는 통곡했으나 아무도 그 심정을 헤아려 위로해 주지 못했다. 대구를 정치적 고향으로 하는 한나라당은 무능 그 자체였고, 광주전남의 95%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정부는 겉치레 위로만 하는 듯 싶었다.

청와대는 아무런 해법도 내 놓지 못했다. 민심이 읽혔을지 모르나 민심을 다스리지는 못했다. 조중동에 수구 세력과의 일전이 더 급한 것이었을 것이다. 관료 세력과의 한판 대결이 기다리고 있는 판국에 패자의 심정을 아우를 여유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개혁세력에게 비판은 익숙한 일이지만, 책임은 낯선 단어이다.

노무현의 청와대팀은 국정을 책임져야-그것도 개혁적으로- 하는 자리에 서 있었고 보수 진영은 그들의 서투름을 조롱했다. 노무현의 열혈지지자들은 개혁의 고삐를 놓치지 마라고 아우성이었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개혁세력’은 노무현의 첫 내각에 '부적절한 과거'가 있는 인사가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엄정한 인사란 그런 것이었다.
노무현 팀의 인재카드가 몇 장이나 있는지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날이 선 칼로 내리찍으면 목이 날아갔다. 얼마나 멋진 개혁의 승리인가?

안 될 사람이 누구인지 가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누가 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구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노무현의 첫내각은 급조되어 청와대팀과 워크샵에서 상봉하게 된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대미, 대북, 대중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게 주어진 집권 초기의 가장 큰 도전이었다. 노무현의 청와대 외교안보팀은 미국의 대북압박을 약화시킨 다음 북한의 핵포기를 설득시키는 것으로 핵문제 해법의 방향을 잡았다. 친미주의자들은 경악했고, 반미주의자들은 열광했다.

부시 행정부의 전방위적 압력이 청와대를 압박했다. 미군을 철수시킬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 조선일보가 받아 대서특필하고, 워싱턴 한 술집에서 미행정부 관료가 "부시는 노무현 정부를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면 김대중 주필이 부시는 한다면 하는 사나이라며 바람을 잡았다.

김정일은 남한 개혁진영의 열광과는 다르게 노무현의 당선에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못한 듯 했다. 한국의 어떤 제안에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라종일을 필두로한 밀사외교도 별무성과였다. 김정일의 눈은 오로지 워싱턴과 북경으로 향해 있었다.

노무현의 자주외교정책에 대해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개혁 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을 접하고 망연자실했다. 북핵과 파병을 둘러싼 한국 내의 좌/우의 갈등은 토론조차 불가능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한국을 위해 서로에게 상대는 사라져야 할 존재가 되었다.

개혁세력은 노무현 정부의 파병 결정을 보수세력의 정치/외교적 승리이자 개혁세력의 패배로 이해했다.

이들은 최근 노무현 방미 결과를 두고 '굴욕외교'라 비판하며 이는 노무현이 친미수구세력에 개혁이 밀리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듯 싶다.

하지만 문제는 개혁 세력이 수구세력을 제압했을 때에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혁과 보수는 어느 시기 어느 장소에서든 다른 모습으로 부딪치게 된다.
지금의 개혁 세력은 앞으로 언제인가 보수세력이 되어있을 수 있다.
어떤 쟁점을 둘러싸고는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개혁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대결과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적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사정이 이러하다 할 때, 이제 노무현대통령이 개혁 강박증에서 이제 벗어나 국정 책임자로서의 자기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개혁에 있어서 성공하기 이전에 통치에 있어서 성공해야 한다. 통치에 실패한 정권은 그 역사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