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밥 앞에서 주접떨지 않기 이왕재(회사원)
결정을 미루겠다는 결정
서너 달 전, 회사 주요사업의 새로운 방향 설정과 그에 걸맞는 조직 재편을 대표이사가 승인하지 않았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대표는 사업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을 직원(물론 나를 포함해)들의 적극적이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한 업무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싶었다. 일이 잘 되면 대표의 관리 능력이 훌륭한 것이었고, 일이 잘 안되면 나의 업무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서로 서 있는 자리가 달랐고, 그래서 느끼는 문제도 달랐다.
상황이 그렇게 가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자리를 옮기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른 모든 사정들에 앞서서 ‘이직’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결정을 미루는 것으로 결정했다.
독립의 유혹
많은 봉급생활자는 내 일을 하고 싶어한다. 실패할 위험에 대한 부담만큼이나 역동적인 도전과 그에 합당한 성과에 대한 유혹도 크다. 부나방처럼 많은 이들이 독립에 도전하고, 그 중 선택받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은 좌절을 맛본다. 실패를 줄여줄 많은 비법이 공개되고 있지만 성공의 확률이 높아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이 도전자의 숫자를 줄일 경고가 될 가능성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몇몇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저런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뚜렷하게 결정되거나 심각하게 검토된 바는 없지만 의지가 있다면 기회는 오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새롭게 일을 벌일 자금도, 그럴만한 동지도 없었다. 그렇지만 일은 항상 치밀하게 준비되었을 때 벌이는 것만은 아니었다. 혹시 좋은 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또 다시 유혹에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대책이나 계획 없이 나는 회사를 나왔다.
남의 돈으로 하는 창업은 범죄행위?
몇 장짜리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창업자금을 구하려고 돌아다녔다. 함께 할 일이 있다는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세상일이라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라는 격려는 있으되 당장 일을 시작할 돈을 주는 곳은 없었다. 잘 되는 것을 보여주면 참여하겠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위험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동업자는 구하지 못했다. 모두 짐작한 일들이었지만 견디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한 친구가 이런 나를 보고 남의 돈으로 자기 사업을 하려는 것은, 그것이 엔젤 투자이건, 창업 투자이건, 대출이건 무슨 이름으로 빌리는 것이건 간에, 부도덕한 범죄행위라며 모름지기 자기 사업은 자기 돈으로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경영과학 석사를 마치고 기술고시를 거친 후 특허청에 근무하던 그가 벤처를 하겠다고 뛰쳐나온 것이 3년 전 일이고, 그 회사를 접은 것이 1년 전 일이다. 소위 기술과 아이템으로 회사를 차리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벤처 사업가들을 접하고 그가 얻은 교훈인 듯 싶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여러 자원(자본, 기술, 인력 등)을 연결시키고 관리하는 것으로 기업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으면 기술이나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역으로 기술이나 사람이 있으면 돈을 구할 수 있다.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돈을 구해 기술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조합을 이루는 과정은 많은 경우 허풍과 과장을 동반하고, 숱한 거짓 약속을 남발하게 된다.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하는 기업이 원하는 바의 목표를 이룰 확률은 적다. 도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성취는 어렵다.
삶을 건 절절함이야말로 독립의 필요조건
자기 돈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 돈은 지난 시간의 노동과 관계가 쌓여서 이루어진 축적물이다.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라는 말은 지금까지 이룬 것이 없다면 앞으로 이룰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자기의 삶을 걸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생각은 낙관적인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무책임한 전망에 불과하다. 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금전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런 것이었다. 모든 일은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한다. 일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돈이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 독립을 준비하지 않았고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것을 뛰어넘겠다고 하는 순간 무리하게 되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독립을 원했다면 삶을 걸고 절절하게 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독립을 위한 나의 돈이 모였을 것이다. 내가 독립을 원한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 진 셈이다. 내 몸을 움직여 밥을 먹고 돈을 벌어야 한다.
소설가이자 기자인 김훈의 다음 글이 새삼스럽게 읽힌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가운데.
이 글이 실릴 즈음 나는 다시 독립을 꿈꾸는 회사원이 되어있을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벌고, 그 덕으로 살아가는 내 삶을 사랑하게되면, 다시 도전의 기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긴 이 노동과잉 공급의 시대에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
결정을 미루겠다는 결정
서너 달 전, 회사 주요사업의 새로운 방향 설정과 그에 걸맞는 조직 재편을 대표이사가 승인하지 않았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대표는 사업이 난관에 봉착해 있는 것을 직원(물론 나를 포함해)들의 적극적이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한 업무태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싶었다. 일이 잘 되면 대표의 관리 능력이 훌륭한 것이었고, 일이 잘 안되면 나의 업무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서로 서 있는 자리가 달랐고, 그래서 느끼는 문제도 달랐다.
상황이 그렇게 가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나는 쉽사리 자리를 옮기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른 모든 사정들에 앞서서 ‘이직’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나는 결정을 미루는 것으로 결정했다.
독립의 유혹
많은 봉급생활자는 내 일을 하고 싶어한다. 실패할 위험에 대한 부담만큼이나 역동적인 도전과 그에 합당한 성과에 대한 유혹도 크다. 부나방처럼 많은 이들이 독립에 도전하고, 그 중 선택받은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이들은 좌절을 맛본다. 실패를 줄여줄 많은 비법이 공개되고 있지만 성공의 확률이 높아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이 도전자의 숫자를 줄일 경고가 될 가능성도 없긴 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몇몇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저런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뚜렷하게 결정되거나 심각하게 검토된 바는 없지만 의지가 있다면 기회는 오는 것 아니냐는 낙관론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새롭게 일을 벌일 자금도, 그럴만한 동지도 없었다. 그렇지만 일은 항상 치밀하게 준비되었을 때 벌이는 것만은 아니었다. 혹시 좋은 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또 다시 유혹에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대책이나 계획 없이 나는 회사를 나왔다.
남의 돈으로 하는 창업은 범죄행위?
몇 장짜리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창업자금을 구하려고 돌아다녔다. 함께 할 일이 있다는 사람들도 만났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할 수 있듯이 세상일이라는 것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라는 격려는 있으되 당장 일을 시작할 돈을 주는 곳은 없었다. 잘 되는 것을 보여주면 참여하겠다는 사람은 있었지만, 위험을 함께 짊어지겠다는 동업자는 구하지 못했다. 모두 짐작한 일들이었지만 견디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한 친구가 이런 나를 보고 남의 돈으로 자기 사업을 하려는 것은, 그것이 엔젤 투자이건, 창업 투자이건, 대출이건 무슨 이름으로 빌리는 것이건 간에, 부도덕한 범죄행위라며 모름지기 자기 사업은 자기 돈으로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경영과학 석사를 마치고 기술고시를 거친 후 특허청에 근무하던 그가 벤처를 하겠다고 뛰쳐나온 것이 3년 전 일이고, 그 회사를 접은 것이 1년 전 일이다. 소위 기술과 아이템으로 회사를 차리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벤처 사업가들을 접하고 그가 얻은 교훈인 듯 싶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은 여러 자원(자본, 기술, 인력 등)을 연결시키고 관리하는 것으로 기업가로서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으면 기술이나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역으로 기술이나 사람이 있으면 돈을 구할 수 있다.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돈을 구해 기술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조합을 이루는 과정은 많은 경우 허풍과 과장을 동반하고, 숱한 거짓 약속을 남발하게 된다. 자기 중심을 잡지 못하는 기업이 원하는 바의 목표를 이룰 확률은 적다. 도전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성취는 어렵다.
삶을 건 절절함이야말로 독립의 필요조건
자기 돈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기 돈은 지난 시간의 노동과 관계가 쌓여서 이루어진 축적물이다. 자기 돈으로 사업을 하라는 말은 지금까지 이룬 것이 없다면 앞으로 이룰 것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니와 자기의 삶을 걸고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생각은 낙관적인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무책임한 전망에 불과하다. 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금전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런 것이었다. 모든 일은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한다. 일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돈을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돈이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 독립을 준비하지 않았고 독립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이것을 뛰어넘겠다고 하는 순간 무리하게 되고 거짓말을 하게 되고 힘들어지는 것이다. 독립을 원했다면 삶을 걸고 절절하게 구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독립을 위한 나의 돈이 모였을 것이다. 내가 독립을 원한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 진 셈이다. 내 몸을 움직여 밥을 먹고 돈을 벌어야 한다.
소설가이자 기자인 김훈의 다음 글이 새삼스럽게 읽힌다.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一言以蔽之)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가운데.
이 글이 실릴 즈음 나는 다시 독립을 꿈꾸는 회사원이 되어있을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벌고, 그 덕으로 살아가는 내 삶을 사랑하게되면, 다시 도전의 기회가 새로운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하긴 이 노동과잉 공급의 시대에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축복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