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34회 - 호주제가 전통이라고?

by 정창수 posted Jun 17, 2003
34회 - 호주제가 전통이라고?

정창수(시민행동 밑빠진독상 팀장)

우리나라에서 남녀차별의 전통이 언제부터일까? 그런데 생각보다 이 전통이 길지 않다. 우선 상속제도를 보면 고려시대까지 균분상속이 원칙이었다. 그래서 기혼과 미혼, 아들 딸을 가리지 않고 똑같이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단순한 풍습이 아니라 법으로도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사>형법지에 따르면 균분상속의 원칙을 어기는 사람은 태형20부터 도형(강제노역)2년까지의 형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속에 차별이 없었으므로 제사도 아들 딸 심지어는 사위가 주관하기도 했다. 장남만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조선후기 이후이다. 그래서 제사를 위해 양자를 들이거나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둘 필요도 없었다. 조선 중종 실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대를 이을 자손이 없더라도 딸에게 제사를 지내게 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왕실과 사대부들이 이러하니 일반인들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결혼생활도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 즉 남자가 혼인 후 여자쪽 집에 머무는 것이 기본적인 생활문화였다. 남명 조식이나 사림파의 시조 김종직도 그랬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현모양처 신사임당이다. 강릉의 부모 집에서 남편과 살면서 이율곡을 키웠다.

이런 전통은 호주제 문제에서도 볼 수 있다. 본래 호주제도는 조세징수와 용역부과를 위한 기본자료의 성격에 불과하였다. 거기다가 고려때까지는 남녀차별도 없었다. 여주 이씨의 족보를 보면 고려시대인 1368년에 44세의 아들을 둔 과부가 호주로 등록되어 있다. 현재의 장남중심, 여성차별적 경향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 즉 임진왜란후인 17세 이후부터 생겨난 전통이다. 그런데 이때에도 제사상속과 재산상속이 주된 가계의 승계관념이었다.

여기에 호주상속이라는 상속형태를 포함시킨 것은 일본이다. 1910년 조선의 관습조사보고서에 제사 및 재산상속에 추가하여 호주상속이라는 개념을 추가시킨 것이다. 가족국가이념에 맞추어 조선을 개조시키려는 것이었는데 국가를 하나의 큰 가족으로 보고 천황이 국가의 가장역할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국민은 가장에 절대 복종해야하는 것이다. 한 시기에 나타났던 현상이 일본제국주의라는 시기를 통해 제도화되어버린 것이다.

현재 호주제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그런데 철학이나 이념을 논하기에 앞서 호주제가 우리 전통의 문화유산이라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금수와 같다고 하는 등의 주장은 어이가 없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은 현실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한다. 잘못된 일은 한번 벌어지면 비극이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벌어지면 희극이 된다. 그런데 그들이 저렇게 목놓아 외치는 것을 보면 혹시 따로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글은 시민의신문(www.ngotimes.net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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