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회 - 거꾸로 가는 간척사업
정창수(시민행동 밑빠진독상 팀장)
요즘 관심의 초점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간척은 바다나 호수를 토지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간척을 진행해 왔지만 실제로는 그 사례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지형적으로 간척에 적합한 곳이 많지 않고 기존의 땅을 토지로 개간하는 것에 비하여 경제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농지확보와 해일과 같이 바다로 인한 자연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간척을 한 것이다.
우리역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논농사와 수리시설에서 간척이 있었는데 특히 벽골제 부근에 소형 간척사가 개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고려 의종14년(1159)때에 영광에 방조제를 수축했다는 것이 최초이고 고종(1256)때 몽고 침입을 저지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강화도 등을 간척한 기록이 있다. 지금의 강화도는 그때 많이 변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간척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확인될 뿐 정확한 공사내역을 알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를 요새화 하면서 추가로 간척되고 서해안이나 남해안 일대도 상당한 면적이 간척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산 윤선도가 1640년에서 1660년 사이 전남 해남에 거주할 때 완도, 진도 등에서도 간척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대규모 간척은 일제시대부터인데 1917년에서 1938년 사이에 서울시 면적의 절반 가량이나 되는 178개 지구, 40,877정보가 개발되었다. 현재의 공유수면매립법이 일제시대인 1923년에 군량미 확보를 위해 제정된 '조선공유수면매립법'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현재의 간척사업의 논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왜 변함 없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튼 우리는 간척사업은 계속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최고를 향하고 있다. 국토의 5분의1을 1천년동안 매립하고 있는 네델란드처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간척에 있어서는 세계최고이다.
역사에서 간척은 자연의 큰 틀을 보존하면서 진행해왔다. 네델란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간이나 버려진 농지를 복구하는 에 치중하였다. 우리도 간척이 경제성도 떨어지지만 오래 쓰면 토질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해변저지대의 농지를 보호하기 위한 방조제 건설이 주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간척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당시 우리는 고려시대에 운하도 건설할 정도의 기술이 있었다. 지금은 1천년에 걸쳐서 조금씩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진행한 네델란드마져도 간척지의 해체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을 정도로 간척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무엇이든 세계최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척분야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만들고 싶겠지만 세계인들에게는 환경에 대한 무지와 오류반복이 세계최고인 한국인으로 이해될 것이다.
*이글은 시민의신문(www.ngotimes.net)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정창수(시민행동 밑빠진독상 팀장)
요즘 관심의 초점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간척은 바다나 호수를 토지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인류는 오래 전부터 간척을 진행해 왔지만 실제로는 그 사례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지형적으로 간척에 적합한 곳이 많지 않고 기존의 땅을 토지로 개간하는 것에 비하여 경제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농지확보와 해일과 같이 바다로 인한 자연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간척을 한 것이다.
우리역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논농사와 수리시설에서 간척이 있었는데 특히 벽골제 부근에 소형 간척사가 개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고려 의종14년(1159)때에 영광에 방조제를 수축했다는 것이 최초이고 고종(1256)때 몽고 침입을 저지하고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강화도 등을 간척한 기록이 있다. 지금의 강화도는 그때 많이 변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때에도 간척이 있었다는 사실만이 확인될 뿐 정확한 공사내역을 알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를 요새화 하면서 추가로 간척되고 서해안이나 남해안 일대도 상당한 면적이 간척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산 윤선도가 1640년에서 1660년 사이 전남 해남에 거주할 때 완도, 진도 등에서도 간척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대규모 간척은 일제시대부터인데 1917년에서 1938년 사이에 서울시 면적의 절반 가량이나 되는 178개 지구, 40,877정보가 개발되었다. 현재의 공유수면매립법이 일제시대인 1923년에 군량미 확보를 위해 제정된 '조선공유수면매립법'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현재의 간척사업의 논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왜 변함 없이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튼 우리는 간척사업은 계속되는 정도가 아니라 세계최고를 향하고 있다. 국토의 5분의1을 1천년동안 매립하고 있는 네델란드처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간척에 있어서는 세계최고이다.
역사에서 간척은 자연의 큰 틀을 보존하면서 진행해왔다. 네델란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간이나 버려진 농지를 복구하는 에 치중하였다. 우리도 간척이 경제성도 떨어지지만 오래 쓰면 토질이 급격히 저하되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해변저지대의 농지를 보호하기 위한 방조제 건설이 주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간척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당시 우리는 고려시대에 운하도 건설할 정도의 기술이 있었다. 지금은 1천년에 걸쳐서 조금씩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진행한 네델란드마져도 간척지의 해체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을 정도로 간척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무엇이든 세계최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간척분야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만들고 싶겠지만 세계인들에게는 환경에 대한 무지와 오류반복이 세계최고인 한국인으로 이해될 것이다.
*이글은 시민의신문(www.ngotimes.net)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