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똥

by 이윤주원 posted Sep 23, 2003
안동 조탑리 마을교회 문간방에 교회 종지기가 살았다.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에서 출생한 그는 귀국했으나 생활고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 뒤 잠시 동안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살았으니 6.25전쟁으로 가족들이 다시 흩어졌다.

이 해부터 부산에서 재봉기 상회, 서점 등의 점원생활을 하였다. 하늘은 그가 받던 고통이 모자랐다고 느꼈는지, 1955년 병생의 지병인 결핵을 앓게 하였다. 그 뒤 대구, 김천, 상주, 문경, 점촌, 예천 등을 걸인으로 떠돌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유랑걸식 끝에 교회문간방으로’에 그가 썼듯이, 그는 일찍부터 가족과 친구들을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보냈다. 그만큼 깊은 아픔을 젊은 시절부터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살았던 비극적인 사람이다.

나이 서른에야 겨우 안동 조탑리 마을교회 문간방에 정착할 수 있었던 병약한 젊은 종지기 권정생. 허나 마을교회 문간방 생활도 그리 편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런 삶 속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서향으로 지어진 예배당 부속건물의 토담집은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외풍이 심해 겨울엔 동상이 걸렸다가 봄이 되면 낫곤 했다. 그래도 그 조그만 방은 글을 쓸 수 있고 아이들과 자주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여름에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호지문에 빗발이 쳐서 구멍이 뚫리고 개구리들이 그 구멍으로 뛰어 들어와 꽥꽥 울었다.

겨울이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 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버려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개구리든 생쥐든 메뚜기든 굼벵이든 같은 햇빛 아래 같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고통도 슬픔도 겪으면서 살다 죽는 게 아닌가. 나는 그래서 황금덩이보다 강아지 똥이 더 귀한 것을 알았고 외롭지 않게 되었다.”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들은 나라 안 온 백성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 선생님의 동화는 모두 쉽게 써진 아동문학이다. 그렇다고 어린이들만 읽으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선생님의 글들은 어른들이 꼭 읽어야 한다.

선생께서는 글을 쉽게 써야 한다고 가르치고 실천하시는 분이다. 이유인 즉, 특권적인 입장에 글을 쓰면 진리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란다. 선생이 듯하시는 바는, 진리는 소수의 특권적인 엘리트 문화에 있는 게 아니라 풀뿌리 백성들의 삶에 있다는 가르침이 아닐까?

<우리들의 하느님>은 권선생님이 어른들에게 준 선물이다. 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이 없는 듯싶다. 허나 아동문학만 하시던 분이시기에 산문집을 낸다는 것 자체가 못내 찜찜했던가 보다. 덧붙여 선생님은 혹여나 자신이 쓴 글로 인해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도 놓지 않으셨다.

“사실 저는 책을 낸다는 것이 반갑지 않습니다. 우선 바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씌여졌는지 걱정부터 앞서기 때문입니다.”

“교정지를 받아 다시 읽어보니 거의가 이곳 마을사람들 이야기여서, 그동안 잊고 살았던 언짢은 일을 새삼스레 떠올려 그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끼칠까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책들이 홍수를 이루는 현대사회에서 참 생명이 담긴 말씀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선생님의 말씀이 담긴 책 한권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겠다.

권 선생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얼마전 MBC 방송의 ‘느낌표’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선정도서로 정했다고 녹색평론사 김종철 선생에게 연락을 했다고 한다. 방송국에서 처음 연락을 하면서 방송을 타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있을테니 20만부쯤을 미리 찍어 놓으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MBC 방송의 ‘느낌표’에 소개된 책치고 흥행, 일명 ‘대박’이 안 난 책은 없다.

그런데 가뜩이나 출판사 살림도 어려운 녹색평론사에서 ‘느낌표’ 제작진의 권유를 거부할 줄 누가 알았던가? 김종철 선생의 거절은 방송국 측으로서는 무척 당황했던 모양이었던가 보다. ‘느낌표’ 제작진은 권정생 선생님에게 직접 허락받으려고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권선생님은 명쾌하게 ‘느낌표’ 제작진들에게 거절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느낌표’ 제작들에게 전해 거절을 요지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행복한 경험은 책방에서 자기 손으로 책을 고르는 일인데, 왜 그런 행복한 경험을 없애려는 것인가요?”

돈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김종철 선생이나 행복이 무엇인지 잘 아시는 권 선생님이나 우리시대의 참 스승임에 틀림이 없다.

썩은 달걀은 어미 닭이 아무리 품고 있어도 깨어나지 못한다. 썩은 달걀엔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참 달걀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병아리가 깨어난다. 썩은 스승들의 글을 아무리 읽고 읽어도 깨달음을 얻지는 못한다. 거기에는 참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의 참 스승 권정생 선생님의 소박한 세상보기가 담긴 <우리들의 하느님>을 여러분들이 일독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