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1월호]세상의 가장 든든한 아지트를 위해

by 이왕재 posted Nov 08, 2003
주식과 결혼에 3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누구나 희망찬 기대를 가지고 한다는 것이고, 다음은 그러나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는 이미 했으면서, 남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한다는 것이다.

숱한 선배들의 으름장에도 굴하지 않고 나도 때가 되어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결혼이라는 것을 희망찬 기대를 가지고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결혼이 사랑의 제도화라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사랑이 어떻게 틀 지워져 관리될 수 있다는 말인가?) 결혼식으로 가는 제도적 절차를 밟는 것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결혼은 자유로운 개인의 사적인 선택이라는 평소의 지론은 이른바 상견례를 치르면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해서 예단과 혼수에 이르러서는 그저 무사히 별탈없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처지가 되었다. 남들에 비해 별다른 소란없이 잘 진행되는 것이라는 평가에도 관행과 싸우고 제도와 타협하면서 정해진 절차를 소화해 내는 일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찬 것들이었다.

이러다 보니, 정말 힘을 들여 생각하고 만들어가야 할 두 사람의 관계와 공간은 정작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선배들의 경험을 귀기울여 듣고, 자기를 버리고 상대를 얻는 기적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함께 이룰 희망의 로드맵을 설계하고, 버리고 하지 말아야할 점검 목록을 작성하고, 이제 서로 상대의 것이 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충실하게 하는 모든 일들이 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예비부부를 위한 강좌에 참석했다. 강사로 나온 30년 경력의 부부의 충고는 인상적이었다. 부인은 꼼꼼한 남편의 모습이 답답해 보여 숨이 막혔다고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연애시절에는 그러한 남편의 꼼꼼함이 듬직해 보였다는 것이다. 남편은 변한 것이 없는데 자기의 마음이 변해서 좋아졌다 싫어졌다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내 틀로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은 새로운 관계 맺기를 익히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삶의 깊이를 배우고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작년 가을 한 선배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밤새 끙끙거리며 축시랍시고 휘갈긴 적이 있다. 한 해가 지나 올해 이제 이 축하의 글은 나를 위한 다짐이 되었다.

“문득, 세상에 버려진 우리들이,
먹고, 살고, 살림하고 양육하는
자잘한 일상의 위대함에 질려있을 때,

그래서, 내 청춘의 간절한 노래가
내 삶의 어느 구석에 어떤 모양으로
자리잡게해야 할지
망서리고 주저하고 있을 때,

이들이 이루어 놓은 성취들은,
가난함을 무욕으로 압도하는 용기와
부당함을 도전으로 제압하는 투지와
가끔 삶을 위협하는 회의를 절절한 초심으로 쓸어내는 성찰은,

그래서,
우리가 가지는 가장 든든한 아지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