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인하는 재계에 대한 정치인들의 러브콜?

by 최배근 posted Nov 21, 2003
[한겨레신문 [왜냐면] 칼럼 2003.11.27 화면보기 클릭]

법인세 인하는 재계에 대한 정치인들의 러브콜?


그 동안 인하 폭과 시기를 두고 논란을 빚어왔던 법인세율이 2005년부터 과세표준에 따라 2%포인트 인하될 예정이다. 국회 재경위는 지난 11월 20일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한나라당 나오연 의원이 제출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심사, 과세표준 1억 원 이하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율을 현행 15%에서 13%로, 과표 1억 원 초과 기업에 대해서는 27%에서 25%로 인하키로 합의했다. 다만 재경위는 정부의 세입 재원 등을 감안해 한나라당이 주장한 것보다 1년 연기해 2005년 분부터 적용키로 했다. 개정안은 재경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다. 법인세 2%포인트 인하 시 지난해 기준으로 연간 기업체의 세부담 완화는 1조8천억 원 안팎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세 개정안의 제출 취지에서 밝혔듯이 법인세 인하의 최대 목표는 기업의 투자 부진 및 투자 감소 해소 그리고 고용 증대에 있다. 우리나라 현재의 경기침체의 주요인이 기업의 투자부진에 있다는 점에서 법인세 인하가 투자증대를 가져올 수만 있다면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감소나 분배의 왜곡 등 다른 비용들을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총투자율은 1993∼97년 5년간은 최저 34.4%(1997년)에서 최고 38.1%(1996년)로 연평균 36.3%이었으나 1998∼2002년 5년간은 최저 21.3%(1998년)에서 최고 28.3%(2000년)로 연평균 25.9%로 외환위기 전후 연평균 투자율이 10% 이상 하락하였고 이는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경기침체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의 경제상황은 법인세 인하로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끌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법인세는 법인기업의 자기자본소득에 과세하는 것으로 법인이 납세의무자가 된다. 법인세 인하는 2년 전에도 있었다. 여야는 2001년 12월 19일 한나라당과 자민련이 표결로 재경위를 통과시킨 [법인세법 개정안](법인세 2%포인트 인하)의 본회의 상정을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1%를 인하하였다. 그 결과 법인세율은 2002년부터 소득 1억 원 이상이면 27%, 1억 원 미만이면 15%가 적용되었다. 이로써 법인세율은 2002년부터 소득 1억 원 이상이면 27%, 1억 원 미만이면 15%가 적용되었다.

그러나 2002년도 총투자율은 26.1%로 1999∼2001년의 연평균 투자율 27.4%를 밑도는 수준이었고, 2003년 9월 1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한국 제조업의 유형자산 변동추이'에 따르면 1997년 43조5,680억원이던 국내 제조업 설비투자 규모는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1998년 18조5980억원으로 크게 준 뒤 (외환위기의 이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20조원 내외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는 △99년 18조6,190억원 △2000년 22조9,740억원 △2001년 22조2,650억원 △2002년 20조6,560억원 등으로 법인세 인하의 효과는 발견할 수 없었다. 올해에도 기업의 설비투자는 전년동기대비 2/4분기에는 -0.8%, 3/4분기에는 -4.7% 감소했다. 올 3분기의 설비투자 감소폭은 지난 2001년 3분기 이후 2년만에 최고 감소폭이 설비투자가 2분기 연속 동반 감소세를 보인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3,4분기 이후 처음이다. 반면 기업들의 현금예금은 2002년 말 현재 46조6,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보이고 있듯이 기업들의 투자기피 원인이 자금부족 때문이 아닌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지난 11월 1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지역 359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법인세 인하에 대한 기업인의 조사'에 따르면 법인세율을 1∼2% 인하될 경우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업체는 12.2%에 불과했다. 전체의 60%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법인세 인하 시 여유자금을 기업 내부에 유보해 관망 후 결정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듯이 법인세가 인하돼도 투자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법인세 폐지로 잃게 되는 세수손실을 그 상당액만큼 세출을 삭감하지 않는 한 재정적자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법인세는 원천과세를 통해 세금누수를 차단하고 법인이 누리는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등 다른 조세가 할 수 없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폐지하고 대체 세원을 마련할 경우의 문제점이 크기 때문에 많은 선진국들은 법인세 폐지를 함부로 단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국들 중 세율이 낮은 대표적 국가인 미국조차 35% 수준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천문학적 국가빚이다. 2002년 말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채무를 합한 국가 채무가 133조원 규모에 달한다. 우선 절대 규모가 1997년 말 65조원 정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났다는 점이 그 이유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을 보더라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1999년 20% 수준을 넘더니 2000년 21.3%, 2002년 22.4%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 예산의 10% 이상을 이자를 갚는 데 쓰고 있고, 2002년부터 매년 20조 원 이상의 부채만기가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세 인하와 세수 감소는 결국 개인소득세의 증대로 대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와 일반주주에게 부담을 전가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법인세를 폐지할 경우, 법인의 이윤은 주주들의 지분비율대로 주주들에게 소득으로 배당되어 개인소득세로 과세된다. 이렇게 되면 주주들의 소득세 부담이 급증하여 소득세 납세자들의 저항이 거세지고, 세후소득 감소는 저축을 줄여 결국 기업투자를 저해하는 효과로 돌아올 것이다. 기업인들이 내 돈과 기업 돈을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세금부담은 일반주주에게 돌아가지만 기업이득의 상당 부분은 재벌총수를 비롯한 대주주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법인세 폐지로 남는 돈을 모두 재투자에 쓴다는 보장도 없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적자재정 편성을 통한 경기부양으로 적극 선회하고 있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가계부채 누적에 따른 카드 부실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데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장기화로 기업의 경영환경이 극도로 악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1월 20일 국회 예결위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에 국내총생산(GDP)의 1.5% 규모의 적자재정 편성을 권고했다”며 “이는 6조원 가량의 적자를 의미한다”고 말했고, 또한 당정협의회에서도 “내년에 5% 성장을 이루려면 3조원 정도 예산을 증액해야 한다”며 국채 발행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법인세 인하에 따른 세수 감소와 적자 재정 운영은 이자율 인상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이는 기업의 투자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 조세감면은 재정적자를 발생시킬 것이고 이는 정부저축이 마이너스( )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민저축(≡민간저축+정부저축)이 감소한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차입을 하면 가계와 기업들에 의한 민간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부자금의 공급량이 줄어든다. 그 결과 이자율은 상승하고 투자는 위축될 것이다.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활성화는 1980년대 초 미국 레이건 행정부에서 시도했던 실패한 경험이다. 감세로 재정적자의 증대와 소득분배의 악화만을 가져왔던 것이다. 사실 투자증대가 목적이라면 오히려 법인세 폐지보다 투자세액공제나 특별감가상각같이 그 투자효과가 직접적이고 분명한 제도를 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투자금액의 일정 비율만큼 세금을 깎아주는 투자세액공제가 도입되면 기업들의 세후 법인소득의 증가효과가 있다. 정부는 이미 지난 7월부터 설비투자금액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10%에서 15%로 인상하였고, 이로 인한 세금 경감 혜택은 연간 6000억~7000억 원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설비투자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기업살리기와 투자활성화를 통한 경기부양 차원에서 곧 국회 본회의에 제출될 법인세 인하의 효과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견고하지 못하다. 기업인조차 그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법인세 인하 추진은 총선을 앞두고 기업에게 보내는 러브콜로 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우리의 정치인들에게는 국민경제나 일반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더 이상 공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사익에 복무하는 정치의 타락으로 경제가 고통을 받고 국민의 눈물이 넘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