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할 2푼 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래서, 친구들에게”
박민규의 소설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첫장에 실린 서언이다. 오래간만에 읽어본 통쾌한 소설이기도 했거니와 얼마전 삼성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생존을 위해서, 이 경쟁 사회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영혼까지 내놓고 일하고 있지만, 이 처지가 얼마나 앞으로 더 나아질지 아득하기만 하다”는 푸념을 듣고 나서인지 이 글귀는 인상적이었다.
"내가 졸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간다”는 이상한 표어 아래에서 보냈던 학창 시절 나는 생존을 위한 경쟁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배웠다. 그 당시 학생들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인생이 파멸할 것이라는 학생주임 선생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모든 비인간적인 처사와 폭언은 이 불행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이라는 것으로 정당화되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같은 이야기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다는 강의로 예비군 훈련 안보 교육에서 되풀이된다. “인간의 본성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라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체제입니다. 공산주의, 이념은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착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체제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위대한 ‘재발견’은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에게 다시 신앙이 되었다. 이른바 ‘합리적 사회’란 ‘효율적 사회’를 의미하며, 효율은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요즘 시대의 상식이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이 몸부림은 더욱 우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형국으로 몰아 넣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은 상대에게 지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으로 되돌아 온다. 승자독식의 사회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사회가 아니라 승자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이다. 탐욕을 부추겨 자신을 소진하게 하고 상대를 미워하게 하는 것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를 앞서가는 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가 나를 불행하게 해서는 안된다. 나보다 뒤쳐지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미치지 못함이 나를 행복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쟁의 용광로로 떠밀려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이기고 잘 다스리는 것이다.
만년꼴찌 삼미수퍼스타즈의 팬클럽은 행복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팀'으로서의 삼미를 인정할 수 있다면 '평범한 인생'으로서의 우리 삶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달라이라마가 언급하는 ‘만족’은 경쟁의 승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가 부족함 없이 나누어가질 수 있는 무한자원이다. 이 무한자원의 배분을 가로막고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가치의 문제’인 듯 싶다.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다. 당신이 큰 만족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을 소유하는가는 문제가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만족할 수 있다.”(“달라이라마의 행복론”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그래서, 친구들에게”
박민규의 소설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첫장에 실린 서언이다. 오래간만에 읽어본 통쾌한 소설이기도 했거니와 얼마전 삼성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친구에게서 “생존을 위해서, 이 경쟁 사회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영혼까지 내놓고 일하고 있지만, 이 처지가 얼마나 앞으로 더 나아질지 아득하기만 하다”는 푸념을 듣고 나서인지 이 글귀는 인상적이었다.
"내가 졸고 있는 이 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간다”는 이상한 표어 아래에서 보냈던 학창 시절 나는 생존을 위한 경쟁은 인간의 숙명이라고 배웠다. 그 당시 학생들은 ‘입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인생이 파멸할 것이라는 학생주임 선생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모든 비인간적인 처사와 폭언은 이 불행을 방지하기 위한 처방이라는 것으로 정당화되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같은 이야기가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이겼다는 강의로 예비군 훈련 안보 교육에서 되풀이된다. “인간의 본성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라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가장 적합한 체제입니다. 공산주의, 이념은 얼마나 좋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착한 존재가 아닙니다.” 자본주의체제에 살고 있는 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 위대한 ‘재발견’은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에게 다시 신앙이 되었다. 이른바 ‘합리적 사회’란 ‘효율적 사회’를 의미하며, 효율은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요즘 시대의 상식이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한 이 몸부림은 더욱 우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형국으로 몰아 넣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은 상대에게 지지 말아야 한다는 불안으로 되돌아 온다. 승자독식의 사회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사회가 아니라 승자 이익에 부합하는 사회이다. 탐욕을 부추겨 자신을 소진하게 하고 상대를 미워하게 하는 것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나를 앞서가는 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성취가 나를 불행하게 해서는 안된다. 나보다 뒤쳐지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미치지 못함이 나를 행복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경쟁의 용광로로 떠밀려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이기고 잘 다스리는 것이다.
만년꼴찌 삼미수퍼스타즈의 팬클럽은 행복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팀'으로서의 삼미를 인정할 수 있다면 '평범한 인생'으로서의 우리 삶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달라이라마가 언급하는 ‘만족’은 경쟁의 승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가 부족함 없이 나누어가질 수 있는 무한자원이다. 이 무한자원의 배분을 가로막고 경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 가치의 문제’인 듯 싶다.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다. 당신이 큰 만족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을 소유하는가는 문제가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만족할 수 있다.”(“달라이라마의 행복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