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과 네팔 비꾸

by 이윤주원 posted Dec 02, 2003


두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으나, 둘 사이에는 부처님께 귀의한 불자라는 공통점이 있었지요. 부처님은 누구 하나만을 편애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죽었고, 한사람은 살아났습니다.

지율스님이 살아났습니다.

스님은 고속철도의 천정산 관통반대를 외치며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목숨을 건 단식을 시작하였다. 45일간 지속된 단식은 도룡뇽 소송인단 20만명의 서명을 이끌어내었고, 불교계에 천정산 문제를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불교시민사회운동의 역사에서 이토록 유례가 없는 성과를 낸 것은 목숨을 걸고 천정산을 지키고자 했던 지율스님의 굳은 결의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지율스님의 단식 소식은 불교계로 하여금 환경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속철도 천정산 관통 계획이 백지화될 때까지 단식을 풀지 않겠다던 비구니 지율의 맹세는 어느 누구도 꺾지 못할 대단한 기백이었습니다. 단식의 고통으로 지율스님이 하루하루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던 중 도법, 수경, 법륜스님 등 불교계의 스승들이 나서서 그녀를 살리자고 불교계와 시민사회단체에 호소를 해왔습니다. 죽음으로써 천정산을 지키고자 마음먹었던 지율스님도 ‘도룡뇽 소송인단 10만명’을 모아낸다면 단식을 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정토회가 나섰습니다. 녹색연합도 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이 두 단체뿐만 아니라 불교시민사회단체 전부와 주요 환경단체가 서로 앞 다투어 비구니 지율을 살리고자 ‘도룡뇽 소송인단 10만명’의 서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5일, 5일을 넘기면 단식을 푼다하더라도 스님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도룡뇽 소송인단에 서명을 해달라고 모 환경단체에서 하루에 5번이나 전화를 하더라구. 서명했다고 해도 또 전화를 걸어오고. 나중에는 너무 짜증이 나서 화를 내게 되더군.”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한 말입니다. 그를 평소에 알고 있는 터라 결코 과장해서 말할 사람은 아닙니다. 그만큼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해서 불교계는 물론 환경단체들이 얼마나 정열적으로 활동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단식 45일째,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목표치인 10만명을 넘어 ‘도룡뇽 소송인단 16여만명’의 서명을 받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에 힘을 얻은 지율스님도 45일만에 단식을 풀었지요. 현재 도룡뇽 소송 1차 공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건 단식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불교계가 이토록 빠른 시간 안에 최대한의 성과를 내보기도 처음입니다. 10여년간 불교계에서 불교시민운동을 해온 저로써도 옴 몸에 전율이 감싸오는 짜릿한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이주노동자 다라카 씨가 달려오는 지하철에 몸을 내던져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다라카 씨의 죽음은 자살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사회적 타살이 더 올바를 것입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이 제정되면서 4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정부는 강제추방하고 있습니다. 벌어 둔 돈이 없던, 다라카 한 사람에게 목매고 사는 스리랑카 가족들이 줄줄이 있던 그에게 있어 강제추방은 사형선고였습니다.  

또 한 사람이 죽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네팔 비꾸 씨가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서 목을 매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 또한 자살이 아닙니다. 타살입니다. 강제추방이라는 살인자가 벌인 연쇄살인사건일 뿐입니다. 연쇄살인범은 러시아 이주노동자 안드레이,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부르혼도 살해했습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이 천정산 관통 터널 백지화를 요구하며 단식하던 지율스님을 살리기 위해 정열적으로 도룡뇽 소송인단 서명을 받던 그 때, 연쇄살인범 ‘강제추방‘은 잔인한 살인행각을 했던 것입니다. 몇몇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강제추방을 막기 위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죽어갈 때, 불교계는 무엇을 했습니까? 지율스님과 비꾸, 다라카, 안드레이, 부르혼의 생명 가치가 다르지 않으련만, 지율스님을 살릴 수 있던 힘을 가졌던 불교가 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에는 침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팔 비꾸가 왜 죽음을 택했는지 아십니까? 비꾸 씨는 고국의 가족들 생계 때문에 강제추방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강제추방에 맞서 죽더라도 한국에서 죽겠다고 했답니다. 그는 평소의 신념대로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쓴소리를 한 김에 한 마디 더하겠습니다. 불교는 중생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관심과 동참의 뜻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리 노숙인들이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거리에서 죽어가고, 강제추방 반대를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농성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이 생기고, 생계가 곤란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도시빈민들이 늘어가도 불교의 대답은 침묵 그 자체였습니다.

도룡뇽의 생명보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합니까?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도룡뇽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지율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에 가슴아파했던 것도 사람의 목숨이 걸렸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것도 성직자의 고결한 생명이었기에 그 놀라운 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룡뇽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보다 귀중했기에 도룡뇽 소송인단에 서명을 동참시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화일보 이신우 논설위원의 주장처럼 도룡뇽이 상징하는 천정산의 모든 생명은 실체가 아니지요. 이미지로서만 대중들의 머릿속을 배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인간입니다. 인간의 삶의 질을 위해 도룡뇽이 이용당하고 있지요. 물론 도룡뇽에게도 좋은 일이지만은….

도룡뇽을 살리자고 열정적으로 나선 불교계가 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죽어가는 데 침묵하고 있을까요? 영원한 미스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