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잊는다. 담배를 챙겨와 한 대 권하면서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익숙해 질 때도 되었건만 낯선 홈리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영 어색하다. 얼굴이 낯설어 말 걸기가 어색할 때 담배만한 매개가 없는데, 오늘도 담배 챙기는 것을 잊고 왔다. 3년 전, 담배와 결별을 한 뒤로 담배를 갖고 다닌 적인 없어 어색함을 대면해야 할 때만 담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음 주에는 꼭 챙겨야지, 다짐한다.
올 들어 제일 추운날인가보다. 두꺼운 겉옷을 뚫고 들어와 파고드는 겨울바람의 매서움이 대단한 날이었다. 평소에 그럭저럭 누워 잘만하던 회현역 지하도에도 그 겨울바람이 몰아쳤다. 추위에 견디지 못한 몇몇 분들은 좀더 따뜻하다는 을지로 지하도로 옮겨갔다고 한다. 소주로 몸을 덥히기 전에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는 그런 날씨이니, 옮겨간 홈리스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회현역의 터줏대감 할배한테 말을 걸려고 다가가니, 보기에도 탐나는 A급 오리털 침낭을 갖고 있었다. 어디서 구했냐고 물으니 “부천에서 온 신학대인가 교회인가에서 회현역 홈리스들에게 나눠줬다”고 했다. 할배는 “침낭뿐만 아니라 여러 노숙에 필요한 필수품목들을 나눴다”고 대답해주었다. 이때가 9시 30분경이었는데, 회현역에 있는 열댓명의 홈리스들은 얼핏 보기에도 노숙에 필요한 물품들을 어느 정도 구비하고 있어 보였다.
할배는 노숙의 경력이 꽤 오래되었다고 한다. 그 오랜 노숙 생활 속에서도 아직 정정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잠자리를 준비하는지 알 수 있었다.
회현역 할배의 잠자리는 묘사해 본다. 두꺼운 종이박스를 가장 밑에다 깐다. 그 위에 다시 종이박스를 깐다. 바람막이 벽을 종이박스로 세운다. 4면을 모두 막는데, 대략 지상에서 50㎝ 높이이다. 공사는 이제부터이다. 이미 두 겹으로 깔린 종이박스 위에 야외용 은색 돗자리(깔개)를 깐다. 그것도 두 겹으로 깔았다. 이쯤 되면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거의 차단될 것이다. 아직 멀었다. 네 겹으로 깔린 바닥 위에 다시 담요를 깔고, 그 위에 담요 한 장을 다시 깐다. 그제야 바닥 공사가 일단락된 것이다. 여섯 겹으로 한 겨울의 냉기를 차단한 것도 못미더워 어제 받은 침낭을 깔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침낭 위로 다시 담요 한 장을 덮은 뒤에야 안심한 듯 잠에 들었다.
할배에게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느냐고 물었다. 할배는 “회현역 노숙자들은 대략 저녁 8시부터 잠자리를 깔기 시작하고, 다음날 새벽 4시쯤에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룰을 지켜야지 회현역 역무원들이 노숙을 눈감아 준다”고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할배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뉘는데, 회현역을 청소하시던 청소아주머니가 침낭하나 구할 수 없냐고 물어 왔다. 같이 일하던 동료가 어제 나눠준 침낭을 2천원에 샀다고 하면서 자기도 하나 구할 수 없겠냐 말을 걸었다. 우리가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침낭을 팔 생각이 없어서 그랬는지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놀라지들 마시라. 이런 일을 흔하게 벌어진다. 거리에서 생활하면서 얼어 죽지 말라고 나눠준 침낭 등의 후원물품을 파는 홈리스들이 꽤 있는 편이다. 예전에 이런 일을 듣거나, 보게 될 때엔 꽤나 혼란스러웠다.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동이지만, 사회구조적인 배제와 폭력으로 내팽개쳐진 홈리스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없었다. 지금도 어느 것이 옳다고 판관처럼 심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혼란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뿐이다. 받아들이고 나니 익숙해졌다. 오늘도 청소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화내기 보다는 침낭보다 소주 한 병이 더 절실한 홈리스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과연 후원받은 물건을 소주 한 병 값에 팔아먹는 홈리스의 도덕적 해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아마 비난의 대상도 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보기엔 받아서 팔아먹는 홈리스보다 무조건 나눠주는 자선단체가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거리에서 이루어지는 나눔의 대부분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색내기식의 활동이 되곤 한다. 조금은 미안한 말이지만 종교․자선단체의 무책임한 나눔은 홈리스들로 하여금 도덕적 해이 상태로 몰아가곤 한다.
내가 혹은 우리가 주고 싶은 물건을 대량으로 나눠줄 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거리의 홈리스들이 과연 이것을 필요로 하는지 말이다. 공급자 위주의 물품 선택과 나눠주는 일은 일종의 가진 자들의 폭력이다. 거리 홈리스들에게 진정 무엇을 나누고 싶다면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 홈리스들의 필요에 따라서 나눠져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의 소중한 후원금이 소주 한 병과 맞바꿔지는 일이 없어진다. 이것이 바로 나눠주는 사람들의 책임감이다. 나눠주는 만족감으로 홈리스들에게 자선을 실천해서는 안 된다. 나눠주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물어봐야 한다. 무엇이 필요하냐고?
무책임하지만 그래도 거리에서 자선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보니 주머니에 자크가 꽉 채워져 도무지 열릴 기미가 안 보이기 때문이다. 홈리스의 친구들만 하더라도 예전 같으면 후원금이 몰려야 될 연말에 단돈 10만원도 후원받기가 힘들어졌다. 독거노인이나 아이들 시설과 달리 홈리스 쪽으로는 본래 후원도 잘 안되는 터라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경제까지 어려우니 헤쳐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어려움이 당분간이라면 그럭저럭 참고 견디겠는데, 우리 경제 여건으로 볼 때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이니 속이 터질 노릇이다. 이러니 없는 사람들만 맛이다. 홈리스로 전락한 사람이 거리와 쉼터에서 벗어나기란 하늘에 별따기가 되버렸다.
만약 경제가 성장한다고 하더라도 없는 사람들에게 암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미 우리 경제는 성장이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이 세계에서 최강임을 자랑하는 IT산업을 보라. IT산업이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고용이 성장과 비례해서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렇듯 한국이 지향하는 성장모델은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모델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제조업을 따돌리고 성장엔지에 불을 지피려면 첨단 테크놀로지 산업의 육성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무역대국, 한국을 이끌어가는 주력 산업의 성격이 이렇듯 바뀌는 현실에서 아무런 기술적 자원과 자본이 없는 홈리스들이 무슨 용빼는 재주로 자활을 해낼 것인가? 무슨 재주가 있어 거리와 쉼터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처럼 주거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에서 말이지.
적절한 분배를 이루지 못한 채 성장위주의 엔진만 가동해 온 우리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에 휩싸인 뒤로 경제적 약자들의 취약한 삶조차도 지켜주지 못하는 체질이 되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된 사회에서 더 이상의 희망을 잃어버린 홈리스들. 노숙은 선택이 아니라 경제적 약자들에게 극단적인 사회가 강요한 폭력이었다.
홈리스 문제를 우리 사회는 해결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직장을 갖고 10년 맞벌이 한 부부도 자기 집 한 채를 소유하기 힘든 사회에서 집이 없어 가족해체를 강요당한 홈리스들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공약(空約)을 넘어 사기에 가깝다.
이런 현실을 사는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홈리스가 늘어나고, 홈리스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적어진다는 것은 곧 포퓰리즘(대중선동) 정치의 토대가 두터워져간다는 것이다. 경제적 약자들이 공동체에 대해 쌓여가는 불만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보다 ‘혼란’을 선택할 수도 있다.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이들에게 ‘안정’과 ‘통합’은 개에게나 줘야할 이데올로기일 뿐이기에. 아르헨티나에서 유행했던 포퓰리즘 정치의 전형인 페론주의도 극단적인 빈부격차 속에서 굶주렸던 경제적 약자들과 선동정치로 일관했던 참주정치가들이 결탁한 결과물이 아니었던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집단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옷이나 침낭을 나누는 일도 분명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집을 나누고, 토지를 나누고, 일자리를 나누고, 희망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통합이고 국민통합의 지름길이다. 집값이 저렴한 상태에서 안정되어 있고, 몸이 아플 때 의료비 부담에서 벗어나고, 아이들 교육비 문제로 시름만하지 않는다면 적게 벌어도 살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니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으랴.
10시 30분, 회현역 지하도를 나오면서 ‘노숙이라는 강요된 비참함을’ 선택한 홈리스들에게 그 어떠한 도덕적 비난도 할 수 없는 우리사회의 야만스러움이 부끄러워졌다. 문득, 3년 전에 끊었던 담배가 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