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한 가난한 농부의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날이라고 한다. 그러나 12월 25일 예수가 태어났다는 것은 역사적인 허구이며, 복음서마다 예수가 태어나신 곳을 달리 적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인류는 매년 12월 25일을 크리스마스로 정하고 예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날만큼은 사랑과 나눔이 온 세상에 넘치는 날이기도 하다.
경제성장기의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연말연시와 겹쳐 항상 흥청망청 분위기였다. 그런 이유로 각 방송국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차분하게 보냅시다”라는 캠페인 방송을 내보내곤 했다. 그랬던 크리스마스가 1998년 IMF 뒤부터 차분해지는 조짐을 보이더니, 올해엔 크리스마스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거리는 조용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시민사회의 성숙 때문이라면 반가우련만, 경제침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주머니 사정이 빈약해 어쩔 수 없이 온 것이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늦은 8시 30분, 거리에 정적靜寂만 흐른다. 도로를 가득 메웠던 차들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간혹 한 두 대의 차량만 보인다. 너무도 차분한 크리스마스의 밤이었다. 그 밤에 아침을여는집 홈리스들이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들과 함께 남산공원과 회현역 지하도를 찾았다.
남산공원이야 그렇다고 쳐도, 회현역 지하도조차 인적이 뜸했다. 인적이 뜸해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라 그런지는 몰라도 9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임에도 꽤 많은 홈리스들이 잠자리를 펴고 눕기 시작했다. 평소 늦은 10시가 넘어야 잠자리를 펴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크리스마스는 홈리스들에게도 좀 일찍 쉴 수 있는 날이었다.
혹, 이런 주장에 많은 분들이 홈리스들은 매일 놀면서 쉬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거리 홈리스들은 체온이 떨어져 한기를 가장 많이 느끼는 새벽 4시쯤에 일어나야 한다. 그때부터 한 끼의 식사를 먹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들에게 그것이 일과이고 노동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겉보기에 놀고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회현역 지하도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9시 10분경이었다. 비록 잠자리를 일찍 펴기는 했지만 꽤 많은 홈리스들이 깨어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마스 덕택에 잠바, 과일, 떡 등 많은 옷가지와 먹을거리가 지하도에 넘쳐났다. 어디서 나눠줬는지는 모르지만 ‘정情’도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아시지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코파이 일명 ‘정情’을….
초코파이가 넘쳐나던 지하도에서 우리는 하이에나의 음흉한 눈빛을 보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맹수 사자나 표범이 사냥을 하면 어디선가 냄새 맡고 다가오는 하이에나. 이곳에도 홈리스들에게 후원물품이 들어오면 거래를 하려고 다가오는 하이에나들이 있다. 이곳의 하이에나는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 교회나 자선단체에서 후원물품을 풀고 가면 이들이 어디선가 하이에나처럼 나타난다. 이날도 여전히 홈리스와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 사이의 거래를 이루어졌다. 지하도가 풍성함만큼 거래도 더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거래되는 품목에는 속옷도 보이고 잠바도 보인다. 한 아주머니는 내복은 없냐고 묻기까지 한다. 작은 벼룩시장이 지하도에 선 느낌이다.
홈리스와 청소 용역 아주머니 둘 다 우리사회의 약자들이다. 침낭과 속옷을 팔아 쌈짓돈이라도 챙기려는 홈리스들과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밤늦은 시간에 청소하러 나온 하이에나 아주머니들의 아르바이트를 보고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그래서 빤히 보고도 입 뻥긋하지 못했다. 도저히 화를 낼 수도 비난 할 수도 없었다. 모른 척 할뿐….
잠시 상담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한 쪽에서 나눠주면 다른 쪽으로 금이 간 항아리 물 새듯 새어나가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교회나 자선단체로 하여금 자선을 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도 없거니와, 자선을 금지하면 거리 홈리스들 다수에게 피해가 돌아 갈 것이 뻔히 보인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草家三間 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누이 주장했듯이 비난할 수 없는 이 홈리스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다. 홈리스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은 다음 지급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센터를 설립해서 자선물품을 한 쪽으로 모으자는 말은 아니다. 거리 홈리스들에게 나눔을 하기 전에 사전조사와 상담을 충분히 하고 자선慈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도만 이루어진다 해도 이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비난할 수 없는 모럴해저드의 완전한 해결방법은 없다. 아마, 홈리스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전에는 우리들이 항상 부닥쳐야지 될 문제일 것이다.
곁에서 보기에 눈에 거슬리는 ‘거래’도 있었지만, 이날따라 회현역 지하도는 유례없이 따뜻했다. 더구나 홈리스가 수혜를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된 밤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많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눈 결과 마음과 몸이 풍성해진 이들은 지난 1년간 야간상담으로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잠바도 주고, 초코파이(일명 ‘情’)도 주고, 과일도 주었다.
크리스마스 밤, 홈리스들은 나누고 싶었나보다. 혹여 거절할까 두려워 조심스레 건넨 손길이 무척 다정해보이던 그런 밤이었다.
경제성장기의 한국에서 크리스마스는 연말연시와 겹쳐 항상 흥청망청 분위기였다. 그런 이유로 각 방송국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 차분하게 보냅시다”라는 캠페인 방송을 내보내곤 했다. 그랬던 크리스마스가 1998년 IMF 뒤부터 차분해지는 조짐을 보이더니, 올해엔 크리스마스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거리는 조용했다. 차분하고 조용한 크리스마스가 시민사회의 성숙 때문이라면 반가우련만, 경제침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주머니 사정이 빈약해 어쩔 수 없이 온 것이기에 마음이 무거웠다.
늦은 8시 30분, 거리에 정적靜寂만 흐른다. 도로를 가득 메웠던 차들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간혹 한 두 대의 차량만 보인다. 너무도 차분한 크리스마스의 밤이었다. 그 밤에 아침을여는집 홈리스들이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들과 함께 남산공원과 회현역 지하도를 찾았다.
남산공원이야 그렇다고 쳐도, 회현역 지하도조차 인적이 뜸했다. 인적이 뜸해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라 그런지는 몰라도 9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임에도 꽤 많은 홈리스들이 잠자리를 펴고 눕기 시작했다. 평소 늦은 10시가 넘어야 잠자리를 펴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크리스마스는 홈리스들에게도 좀 일찍 쉴 수 있는 날이었다.
혹, 이런 주장에 많은 분들이 홈리스들은 매일 놀면서 쉬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거리 홈리스들은 체온이 떨어져 한기를 가장 많이 느끼는 새벽 4시쯤에 일어나야 한다. 그때부터 한 끼의 식사를 먹기 위해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그들에게 그것이 일과이고 노동이다. 우리와 다르다고, 겉보기에 놀고먹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난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회현역 지하도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9시 10분경이었다. 비록 잠자리를 일찍 펴기는 했지만 꽤 많은 홈리스들이 깨어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풍성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크리스마스 덕택에 잠바, 과일, 떡 등 많은 옷가지와 먹을거리가 지하도에 넘쳐났다. 어디서 나눠줬는지는 모르지만 ‘정情’도 푸짐하게 쌓여 있었다. 아시지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코파이 일명 ‘정情’을….
초코파이가 넘쳐나던 지하도에서 우리는 하이에나의 음흉한 눈빛을 보았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맹수 사자나 표범이 사냥을 하면 어디선가 냄새 맡고 다가오는 하이에나. 이곳에도 홈리스들에게 후원물품이 들어오면 거래를 하려고 다가오는 하이에나들이 있다. 이곳의 하이에나는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 교회나 자선단체에서 후원물품을 풀고 가면 이들이 어디선가 하이에나처럼 나타난다. 이날도 여전히 홈리스와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 사이의 거래를 이루어졌다. 지하도가 풍성함만큼 거래도 더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거래되는 품목에는 속옷도 보이고 잠바도 보인다. 한 아주머니는 내복은 없냐고 묻기까지 한다. 작은 벼룩시장이 지하도에 선 느낌이다.
홈리스와 청소 용역 아주머니 둘 다 우리사회의 약자들이다. 침낭과 속옷을 팔아 쌈짓돈이라도 챙기려는 홈리스들과 어려운 살림살이 때문에 밤늦은 시간에 청소하러 나온 하이에나 아주머니들의 아르바이트를 보고 누가 비난할 수 있으랴! 그래서 빤히 보고도 입 뻥긋하지 못했다. 도저히 화를 낼 수도 비난 할 수도 없었다. 모른 척 할뿐….
잠시 상담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한 쪽에서 나눠주면 다른 쪽으로 금이 간 항아리 물 새듯 새어나가는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교회나 자선단체로 하여금 자선을 하지 말라고 강제할 수도 없거니와, 자선을 금지하면 거리 홈리스들 다수에게 피해가 돌아 갈 것이 뻔히 보인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草家三間 태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누이 주장했듯이 비난할 수 없는 이 홈리스들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하나다. 홈리스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은 다음 지급하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센터를 설립해서 자선물품을 한 쪽으로 모으자는 말은 아니다. 거리 홈리스들에게 나눔을 하기 전에 사전조사와 상담을 충분히 하고 자선慈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런 정도만 이루어진다 해도 이 문제는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비난할 수 없는 모럴해저드의 완전한 해결방법은 없다. 아마, 홈리스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전에는 우리들이 항상 부닥쳐야지 될 문제일 것이다.
곁에서 보기에 눈에 거슬리는 ‘거래’도 있었지만, 이날따라 회현역 지하도는 유례없이 따뜻했다. 더구나 홈리스가 수혜를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확인된 밤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많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눈 결과 마음과 몸이 풍성해진 이들은 지난 1년간 야간상담으로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잠바도 주고, 초코파이(일명 ‘情’)도 주고, 과일도 주었다.
크리스마스 밤, 홈리스들은 나누고 싶었나보다. 혹여 거절할까 두려워 조심스레 건넨 손길이 무척 다정해보이던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