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정치적 행위이다. 모든 글쓰기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글쓰기마다 차이가 있다면 정치적 목적을 얼마나 이루었느냐 하는 것뿐이다.
홈리스 현장 전문가의 글쓰기도 정치적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은 크게 ▲홈리스를 바라보는 사회적 차별의식 철폐 ▲시장중심적 주거정책 폐지와 공익중심적 주거정책의 실시 ▲사회복지실천을 통한 홈리스 인권의 존중 등으로 나눠진다. 그러나 문화권력이 없는 필자의 글쓰기가 의도했던 정치적 목적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작가 이문열 씨가 홈리스 문제를 조선일보에 기고했다면, 조선일보는 지면을 내줄 것이다. 보수언론의 표준이라 자처하는 조선일보가 다루면 그 형제지인 동아, 중앙이 곧바로 따를 것이다. 그만큼 이문열 씨가 구축한 문화권력의 힘은 크다.
그러나 조선일보 비롯한 중안언론들은 이용할 가치도 없고 문화권력도 없는 이름없는 자유기고가에게는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다행하게도 인터넷신문이라는 문화권력이 없는 사람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덕분에 네티즌들이 지금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문화권력이 없는 글쟁이들에게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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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새해 첫날 홈리스의 친구들 야간상담 팀은 저녁 9시쯤 남산공원과 회현역, 남대문지하도를 찾았다. 항상 조용했던 남산공원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대문시장을 찾던 시민들의 발걸음이 뜸해진 회현역 지하도는 쥐죽은 듯했다. 새해 첫날이라 인적이 뜸한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지하도 홈리스 숫자도 한참 적었다. 터줏대감 격인 회현역 할배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할배는 남대문 지하도에서 밥 주는 날이라 그곳에서 밥을 먹고들 오느라고 늦을 것이라 했다.
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지하도로 내려오는 한 홈리스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그 고통의 정체가 궁금해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어디가 아프냐고, 왜 그러냐고. 취중이라 의사전달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는 55년생으로 이름은 윤명진(남, 가명)이고 1년 전쯤 서울역에 서있는 이동진료차량에서 X-레이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동진료차량에 탑승한 의사가 그의 가슴 사진을 보더니 기관지와 폐가 심하게 나쁘다면서 입원을 권유했다고 한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의사에게 윤씨를 강제로 입원시키지 왜 권유만 했냐고 따끔하게 야단치실 것이다. 그러나 죽기 일보직전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본인의 동의가 없이는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윤씨는 의사의 권유를 무시하고 약만 받아서 복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약을 복용해도 노숙을 하며 계속 술과 담배를 마시고 피웠기 때문에 점점 더 상태가 나빠졌다. 그는 이 사실을 외면한 채 약이 듣지 않는다고 두어 달 전부터는 약조차 복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현재 지하도 계단만 오르내려도 숨이 차 고통스럽다고 호소했다.
우리는 윤씨에게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어떠냐고 말을 건넸다. 우리의 제안에 윤씨는 “이대로 살다가 죽을 겁니다”라고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계속 끈질기게 권유하자 조금씩 마음이 흔들려 보였다. 때를 놓치지 않고 우리는 계속 설득했다.그러나 술에 취한 윤씨는 피곤했는지 “다음 주 목요일에 올거죠. 그날 상담해요. 미안해요. 선생님, 다음 주에 꼭 만나요. 제가 술에 취해서 너무 피곤해 더 이상 말하기가 힘들”다며 침낭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윤씨뿐만 아니다. 술 때문에 간이 상해 지긋지긋하다며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싶어 하는 남씨도, 온 몸에 벌레기 기어 다닌다며 환청과 환각의 고통을 받는 김씨도 긴급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만 한다. 거리에서 죽겠다면 의연함을 보인 남산공원의 턱수염 아저씨(일명, 남산의 빈라덴)도 작년 12월 25일 밤 너무 아프다며 도움을 요청하여 119로 동부시립병원 응급실로 후송시켰다. 뼈 속으로 찬바람이 파고드는 겨울밤의 노숙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이다.
몸이 아픈 홈리스들이 막상 병원을 찾아도 홈리스에 대한 경멸적인 태도 때문에 마음이 다쳐서 오는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서울역이 싫어서 청량리에 있는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을 찾았다는 남씨는 주민등록증이 없다면 치료를 거부한 병원에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사실, 일반병원은 물론 국가나 시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보건소에서도 홈리스들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많은 홈리스들이 가까운 보건소를 찾지 않고 보라매병원 등을 찾아간다. 보건소가 가장 불친절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못 가고, 차별받기 싫어서 안 가고…. 홈리스들이 병원을 갈 때쯤이면 몸은 이미 엉망이 되어 손쓸 여지도 별루 없을 정도이다.
이렇듯 거리 홈리스들의 의료서비스 문제는 꽤 심각한 상황까지 와있다. 남산공원과 회현역 지하도, 남대문 지하도에서 만난 거리 홈리스들 중에서 대략 40%가까이 되는 홈리스들이 크고 작은 질환으로 고통스러워했다. 그들은 대개 정신질환, 알코올 중독, 간 질환, 결핵 등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치료 가능한 질병들은 갖고 있었다.
치료가 가능한데도 거리 홈리스의 400%가까이가 각종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거리 의료서비스체계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밤 8시에서 9시경 서울역 지하도를 나가보면, 인의협을 비롯한 의료단체에서 거리 홈리스들을 위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또한 서울역 파출소 앞 빈 건물에는 거리 홈리스들을 위한 상설 의료소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상설 의료소 하나와 거리의 수바이처만으로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다.
야간상담에서 만난 홈리스들은 우선 서울역에 나가기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서울역 홈리스들의 무질서한 난장을 그들도 무척이나 경멸하고 있다. 한마디로 같은 취급을 받기 싫은 것이다. 더구나 서울역 근처에 설치한 상설 의료소에 대한 모종의 거부감 같은 것도 보였다. 아마 서울역의 이미지가 상설 의료소에도 투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명은 소중하다. 아무리 하찮은 미물의 생명일지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홈리스들에게 애정이 없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들의 생명이 하찮아 보일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엔 게으르고 지저분해 보이겠지만, 그들에게도 생명은 소중하다. 그들도 희망없는 세상 살아서 뭐하냐며 거리에서 죽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막상 고통이 닥치며 병원을 찾고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따뜻하게 반겨주는 병원은 드물다. 그들은 환자(=손님)가 아니라 돈 없고 지저분한 홈리스일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