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의 정보수집과 정보인권

by 이윤주원 posted Jan 12, 2004

홈리스 정보인권에 빨간불이 켜졌다. 서울시가 노숙인 복지의 편리성을 이유로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을 이용해 홈리스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는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를 통해 홈리스들의 정보를 동의없이 수집해왔다. 그러던 중 홈리스 인권단체에서 정보를 동의절차가 없이 불법적으로 수집한다고 문제삼자, 형식상의 동의를 받기 시작했다. 수집과정에서 동의를 받는다지만 사회복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의 하나인 ‘자기결정권’을 홈리스들이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들의 정보는 일방적으로 수집될 위험이 있다.

현재 홈리스 인권단체와 홈리스들은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을 반대하고 있다. 홈리스 인권단체들은 서울시에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의 부당성과 재검토에 관한 서울시의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인터넷상에서 홈리스 정보수집의 부당함을 제기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공청회조차 갖지 않고 서울시는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왜 그럴까? 서울시는 무슨 이유로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문제는 정보가 지닌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교육부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고집하는 이유도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사실, 행정개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교육부를 폐지해야 할 부서로 꼽고 있다.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곧 인적자원의 양성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전근대적인 중앙집권적 행정부서과 과연 필요한가 묻고 싶다.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에나 했던 교육과정과 행정의 중앙집권적 통제는 사라져야할 구시대의 유물이다. 교육부가 이 사실을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교육부는 생존의 자구책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NEIS였다. NEIS는 학생들의 정보를 수집, 독점하여 과거의 영화를 다시 누려보자는 구시대적 발상에 새롭게 발전한 정보통신기술이 접목한 결과이다.  

단언하건데, 정보를 독점하려는 모든 발상은 조직이기주의에서 나온 생존의 논리이자 구시대적 발상일 뿐이다. 이는 ‘노숙인 정보 종합관리시스템’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시에서 홈리스 정보의 수집이 효율적인 관리와 편리함을 준다고 주장하더라도 왠지 의심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서울시가 주장하는 노숙인 복지서비스의 편리함은 왠지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린다. 복지서비스는 본래 불편해야만 서비스 대상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따라서 우리는 서울시가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를 이용해 홈리스 정보를 독점하려는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가 홈리스 정보 수집은 멈추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시는 혹시 모든 사회복지 대상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여 사회적 소수자들을 관리, 통제하고픈 것은 아닐까?

정보는 곧 권력이다. 고금을 통틀어 정보가 권력과 무관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정난靖難의 변變을 일으켜 제위를 빼앗은 영락제는 정통파의 반항을 사전에 막고자 환관을 첩자로 활용했던 동창凍瘡을 설치했다. 동창은 관리의 부정이나 역모逆謀의 정탐을 주요 업무로 삼았었다. 그러나 정보를 장악했던 동창은 서서히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동창이 정탐 업무를 넘어서 민간의 사소한 범죄까지 확대 취급하고 구금과 처형의 권한을 갖게 되면서 그 폐해가 커져갔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대한민국 군사독재정권도 정보기관(70년대 중앙정보부와 80년대 안기부)을 정통성이 없었던 독재정권의 권력을 유지하는 도구로 이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민주인사들과 민중들의 아픔은 지금까지 치유되지 않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예는 정보가 권력과 결탁하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역사의 증거이다. 그만큼 정보를 수집, 독점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아무리 감시와 견제, 예방의 사회시스템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정보의 독점이 주는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한 지금, 정보인권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우리가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정보인권에 심각한 침해를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경찰은 2001년 카메라와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미식축구 슈퍼볼을 관람하던 3천명의 관중 가운데 19명의 수배자를 쉽게 검거하였다. 화상인식 자동카메라가 관중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촬영했고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를 수배자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했다. 경찰은 경기를 마치고 퇴장하는 광중 가운데 수배자를 골라내기만 하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슈퍼볼을 관람하던 3천명의 관중은 예비범죄자 취급을 그들도 모르게 당했던 것이다. 과연, 미국 경찰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과정을 기술의 발달로 이루어진 수사기법의 자연스러운 진보라고 볼 수 있을까?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인권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정보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적인 인권침해와는 다르게 그 사실조차 모른다. 그저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정보인권이 은밀하게 침해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또 하나의 역할은 사회적 약자들의 정보인권을 지켜내는 것이다. 기술이 보장해주는 편리함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기술의 진보는 항상 인간의 삶에 역습을 가해온다. 지금은 국가기관이 홈리스 정보부터 수집하고 수집된 정보로 홈리스만 관리와 통제를 하겠지만, 언제 그 칼날이 우리에게 날아올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