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이 살고 있는 지하도

by 이윤주원 posted Jan 17, 2004
유령이 살고 있는 지하도

홈리스라는 이름의 유령이 서울시내 지하도를 배회하고 있다. 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들은 주민등록 자체가 없거나 말소된 유령들이었다.

15일 오후 9시. 우리는 변함없이 회현역 지하도를 찾았다. 오늘따라 회현역으로 가는 걸음이 빨라진 이유는 박종희(가명∙남, 56세)씨를 만나야 한다는 두근거림 때문이었다.

회현역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는 그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홈리스다. 그는 분명 회현역 3-4번 출구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실존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었다. 그는 유령이었다. 무슨 이유가 있기에 실존하는 한 사람이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했다.

지난 목요일 저녁에 상담했던 자원활동가에 따르면, 그는 한국 국적이 없는 무국적 홈리스였다. 당연히 주민등록증도 없다고 했다. 그 이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지라 회현역 지하도에 도착하자마자 박씨부터 찾았다.

박씨는 현금인출기 옆에서 얇은 부대자루를 깔고 이불을 푹 덮은 채 잠들어 있었다. 곤히 자는 그를 깨우기 미안했지만, 어떻게 하든지 그가 국적을 취득하는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흔들어 깨웠다.  

더듬거리는 한국어 실력으로 말문을 연 박씨는 일본 후쿠오카에서 1948년도에 출생했다고 한다. 친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돌아가셔서 기억에 없고 일본인 남자와 재혼한 어머니도 10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죽은 뒤부터는 부랑자 생활을 하면 떠돌아 다녔고, 결국 조선인이며 연고가 없이 일본을 떠돈다는 이유로 1980년도에 한국으로 강제추방 당했다고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박씨의 과거사를 대략 들은 뒤, 우리가 도와드릴테니 주민등록신고를 하자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안했다. 그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다. 친척도 없고, 혼자라서 만들 필요를 못 느낀다는 이유였다. 주민등록신고를 하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가 되어 약간의 금전적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했으나,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상담과정에서 발견한 사실이지만, 서른 두해를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강제추방 되었기에 우리말을 잘 못했다. 더구나 귀국 후에도 거리 노숙과 부랑인 시설 입∙퇴소를 반복한 했던 그였기에 한국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가 무슨 뜻인지, 수급권자가 되면 생계지원비를 받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서울시내를 떠돌던 그에게 우리사회의 손길이 한 번도 미치지 않았던 결과였다. 그는 그렇게 유령이 돼버렸다.

우리는 ‘은평의 마을’ 입소를 권유했다. 거절할 줄 알면서…. 예상대로 바깥출입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가톨릭에서 ‘은평의 마을’을 위탁운영하기 전 갱생원 시절의 안 좋은 기억이 그에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마지막 카드로 노숙인 쉼터 입소를 권유했다. 그는 또다시 거부했다. 그에게 노숙인 쉼터는 술 마시고 시끄러운 곳으로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자유의 집’ 초기의 안 좋은 모습이 그에게 풍문으로 전해진 탓이리라.

사실, 거리 홈리스 중 많은 사람이 ‘자유의 집’ 경험이 있다. 그들은 ‘자유의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나와, 그들이 경험한 것 중에서 안 좋았던 기억만 부각(浮刻)해서 거리 홈리스들에게 전했다. 그래서 대체로 거리 홈리스들 사이에서 ‘자유의 집’에 대한 평판은 안 좋았다. 박씨도 그 중 하나였다.

박씨의 완강한 거절 탓에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 것이 없어져 어정쩡하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홈리스 한 사람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유시민씨(가명∙남, 65세), 늑막성폐결핵을 앓아 오른쪽 폐를 절단한 그는 서울로 주민등록을 옮길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전국에 있는 시설을 떠돌다가 회현역 지하도에 정착한 그는 주민등록이 말소될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주거가 일정하지 못한 홈리스들이 항상 겪는 일이 바로 ‘주민등록말소’였다. 주소를 옮길만한 쪽방하나 갖지 못한 그들에게 ‘주민등록말소’라는 행정조치는 천형(天刑)과도 같았다.

호적에 자식들이 있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가 되지 못한다는 유씨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면서 전국 시설을 떠돌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강원도 양구, 경북 산청, 경기도 연천…, 새로 발급된 주민등록증에만도 주소변경이 4군데가 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주민등록을 옮길만한 곳을 찾아 전입신고를 한 뒤, 자신이 기거할만한 시설을 찾고 싶어 했다.

그리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 우리는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설 쇠고 다음주에 ‘아침을여는집’으로 찾아오면 이곳 주소로 전입신고를 할 수 있도록 유씨에게 약속했다.    

박씨와 유씨뿐만 아니다. 많은 거리 홈리스들이 당사자들의 뜻과 달리 유령이 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사회는 비싼 주거비용과 임대주택제도의 허술함, 주민등록제도의 폭력성으로 계속 유령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홈리스들이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입할 주소와 오만원만 있으면 된다. 돈도 돈이지만 주거가 일정하지 못한 그들로서는 또다시 주민등록말소라는 천형(天刑)을 겪어야만 한다.

지금도 통계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짐작하기에 꽤 많은 유령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거리의 유령들은 단돈 오만원이 없어 선거를 기다린다. 정부가 선거기간마다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도 주민등록을 되살려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회현역 지하도에는 유령이 된 박씨와 그 곁에서 유령만은 안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유씨가 새벽 찬바람에 옷깃을 꽉 여민 채 잠을 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