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에 드리는 苦言

by 永樂 posted Feb 06, 2004
<총선연대에 드리는 苦言>


2월5일, 총선시민연대에서 4년 전에 이어 다시 66명에 달하는 낙천 명단을 발표했다.

16대 총선에서 낙천 명단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상 초유의 정치적 리콜 이벤트에 대중의 호응은 뜨거웠고 그로 인해 편파성 논란이 일부 있었지만 해당 당사자들은 이렇다 할 변명조차 할 겨를 없이 그대로 노도에 휩쓸려 나갔다. 가히 살생부라 할 만 했다.

그러나 17대 총선을 앞두고 어김없이 등장한 낙천 명단을 두고 세간의 시선은 확실히 4년 전과 많이 다르다. 한마디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왜일까.

먼저 공정성 논란이 뜨겁다.

한때 상종가를 올리던 前 국회의장 이만섭 의원이 낙천대상에 올랐다. 이유인즉슨 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을 탈당, 국민신당을 만들고 대선 이후 민주당과 합당했다는 죄목이다. 그렇다면 독수리 5형제는 어떻게 되는가. 이만섭 의원과 똑같이 탈당과 창당 및 합당을 거듭했으나 명단에 그들의 이름은 왠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들은 대선 이후 이미 여당이 된 ‘살아있는 권력’을 염두에 두고 수차의 당적 이동을 했음에도 말이다.

정작 논란의 핵심은 여당인 열린우리당 47인에 관한 평가다. 그들 모두 대선 이후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했으니, 총선시민연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엄연히 철새 집단이다. 그러나 왠지 오로지 자료만으로 엄정하게 선정했다는 총선연대에서는 탈당계를 제출한 47인 전원을 ‘분당’이라 옹호하며 특례조치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낙천 대상에 의원대비 최고의 비율로 올라간 민주당의 경우 가장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20명 중 절반인 10명이 대선 직전에 후보단일화 문제로 자당을 이탈했다 복당했음에도 예외 없이 철새로 분류하고 있으니, 여당과는 다른 秋霜의 잣대가 아닐 수 없다.

다음으로 진실관계를 외면한 폭행사건 처리 식의 잣대이다.

가장 극명한 사례는, 2000년 한국 헌정사에 길이 남을 의원임대사건이다. 그 당사자인 배기선 장재식 의원 또한 낙천대상에 올랐다. 그런데 세인이 알듯이 그 사건의 주역은 DJP연대의 두 사람이고 그를 사주한 죄인들은 오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 버젓이 건재한 인사들이다. 어떻게 주역과 사주범은 멀쩡한데 종범만 처벌할 수 있나.

또한 한화갑 의원과 정동영 의원의 경우에 이르게 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경선 초기에 하차한 이와 끝까지 완주한 이를 놓고, 한 사람은 검찰이 조사 중이라 유죄 판결도 나지 않는 혐의만으로 부패분자로 낙인을 찍고 또 한 사람은 다만 검찰의 말씀이 없는 관계로 아예 거론조차 않고 있다. 이미 세간에서 논란에 휩싸인 사안을 특별한 논리도 없이 그대로 가져와 명단에 실은 것은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소소한 흠결을 적시하지 않더라도 이처럼 당장 눈에 띄는 결격 사유만으로도 낙천 명단의 적실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총선시민연대가 자신들의 낙천명단을 한국의 정치개혁을 이룰 불가결하고 필수적인 자료이자, 더 없이 공평무사한 자료인 것처럼 확신에 차 야당 관계자들에게 으름장까지 놓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총선시민연대의 순수성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순수성이 정상참작의 사유일 수는 있어도 모든 잘못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정책이념 정당정치로 가겠다는 정치개혁의 시도에서 가장 중요한 의정활동을 빼놓고 곁가지의 문제로 국회의원들을 단죄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가 있나. 물론 변명은 있다. “의정활동의 객관화된 자료가 없어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를 빼고 나머지 기준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총선시민연대의 무능을 토로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국정을 운영하는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각각이 얼마나 사회통합과 국익창출에 역할을 발휘했는가 평가하고 그 중 정치지도자가 될 이와 그렇지 못한 이를 분별할 기준을 제시해야 함이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를 소화할 능력이 없으니 오로지 네거티브의 기준으로 낙천 명단을 짜게 되고 그것이 불필요하게 특정정파 편들기란 오해마저 불러일으키는 꼴이 되지 않았는가. 이래 가지고선 그 의도와 상관없이 한국정치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미 4년 전과 달리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그 때는 국가부도위기와 정권교체를 경험한 마당이라, 시민들이 바꿔 식의 파격적인 儀式마저 감내할 각오가 있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도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80년대 후반에 머물러 있고 어느덧 3대에 이르는 민주화 출신 대통령을 맞이했음에도 고단한 민생의 개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도덕주의 정치 구호가 희망이 될 수 없고 대한민국 사회를 어떻게 87년에서 2004년으로 끌어올릴 것인가 그 답변을 시민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네거티브란 돌멩이를 던지기 앞서, 누구보다 나라 장래와 민생을 염려하는 시민단체에서 네거티브의 운동을 버리고 공동체의 장래에 관한 사려 깊은 메시지를 들려주어야 할 때이다. 그것이 또한 20세기와 다른 금세기 디지털 시민정치의 마인드가 아니겠는가.

기실 지금 총선연대가 해야 될 일이 쌓여있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부터 ‘국민참여0415’라 자칭한 親盧세력까지 10만 거병을 운운하며 온 나라를 선거판으로, 끝없는 대결과 반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군사독재를 무너뜨려야 할 87년 6월의 거리도 아니고, 민생파탄으로 온 국민이 시름하는 기약 없는 이 나라에서 정말로 순수한 시민의 벗이라면, 총선연대는 무엇보다 총선에 올인한 정부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에 역량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는 '성장잠재력 고갈'과 '고용 없는 성장' 그리고 '중화 경제권에의 흡수'를 우려하는 마당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비전 없는 사회에서 이탈하려는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럼에도 턱 없는 낙관으로 현실을 호도하고 선심정책 남발에 몰두하는 정부여당과 실력 부재의 탓으로 부득불 네거티브로 일관하는 야당 사이에서 국민들은 次善은커녕 次次惡의 선택을 강요받는 고통을 겪고 있다. 누가 이 혼란을 수습할 것인가. 국가사회의 장래에 관한 무한한 책임을 지닌 대안집단의 일원으로 총선시민연대 또한 자리잡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