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칼럼2] 기억과 연대는 약한 자의 무기

by 이윤주원 posted Feb 24, 2004
폭력과 학살의 역사
『십자군 이야기』

1.
십자군전쟁은 인류역사의 한 획을 그은 중요한 사건이다. 1096년부터 1291년까지 200여년간 유럽과 중동지방에 폭력과 학살, 광란을 불러온 십자군전쟁은 엄청난 문명의 충돌을 가져왔다. 십자군전쟁이 불러온 문명의 충돌이 인류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우선 유럽에 근대절대왕권 형성의 밑바탕이 되었다. 왕보다 더한 권력을 가졌던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었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전쟁이었던 십자군전쟁 당시 민중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종교적 지도자는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공공연하게 공격하던 시기였다. 또한 전쟁은 상업의 발전과 도시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동방의 과학문명이 서유럽으로 유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십자군전쟁의 원인은 무엇일까? 역사는 전쟁의 원인을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이유로 나누어 바라본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원인은 땅을 바라는 민중의 열망과 시장을 바라는 상인들의 이해관계였다. 대토지 소유자인 교회와 영주의 속박에서 벗어나 땅을 얻고자 하는 당시의 민중들-십자군전쟁이 참여했던 많은 농민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면 토지를 무상으로 얻을 수 있다는 오리엔트 드림을 꿈꿨다고 한다. 물론 위정자들의 사기극이었지만-과 성장하던 상업계급의 시장에 대한 탐욕이 빚어낸 추악한 역사가 바로 십자군전쟁이었다.

오리엔트 드림을 꿈꿨던 당시 농민들의 삶은 열악했다고 한다. 그 고달팠고 열악했던 농민들의 삶이 종교적 맹종과 만나 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제노사이드(대량학살)의 역사적 시원(始原)을 만들었던 것이다. 바로 십자군운동 중에 발생한 유대인 학살이 그 제노사이드의 역사적 효시였다. 김태권의 유쾌한 지식만화 『십자군 이야기』에도 그 에피소드를 다루었다.

1096년 은자 피에르를 추앙해서 모인 농민으로 구성된 군중십자군은 라인강 유역에서 유대인들을 학살하였다. 이 사건을 십자군에 모인 군중들의 집단 히스테리 증상에서 나온 학살로 봐야 하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적 이기주의가 숨어 있었다. 당시 군중십자군에 참가한 많은 농민들이 유대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었는데, 빚을 갚지 않으려는 의도와 고리대금을 하던 유대인들에 대한 분노가 학살의 원인이라고 한다.

1096년 라인강 유역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이 서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의 효시였다. 이 반유대주의는 20세기를 최악의 제노사이드의 하나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낳게 된다. 이렇듯 십자군전쟁은 그 출발부터 부도덕한 불의(不義)의 전쟁이었다.


2.
역사만담꾼 김태권은 천년전에 벌어진 십자군전쟁과 2003년에 시작된 이라크전쟁, 작전명 ‘충격과 공포’는 본질적으로 똑같은 불의(不義)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굳이 작가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두 전쟁의 모습은 많이 닮았다. 더구나 전쟁을 일으킨 전쟁광들의 사고구조도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강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폭력과 죽음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약자의 슬픔이 마음 속 깊이 파고든다. 그래서 작가는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라고 했던가. 꽤 자극적으로 이성과 감성을 울리는 문구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몸서리치게 무섭게 느껴진다. 약자에게는 ‘기억’이라는 미래적 교훈 말고는 현실의 폭력과 죽음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물론 살아 중국 천하를 통일하고 절대권력을 누렸던 진시황도 역사의 기억을 두려워해서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희대의 사건을 저질렀다. 누가 그랬던가? 중국의 통치자들은 “당장 패배해도 역사에서 이기면,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래서 중국의 대역사가 사마천도 궁형을 당하면서까지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저술했는지 모른다. ‘기억’이라는 무기로 역사에서 이기기 위해. 중국만 그랬던가? 아니다. 조선왕조도 절대왕권을 누린 제왕들이 조선왕조실록을 보고자 했으며, 고치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역사의 평가는 그만큼 무서운가 보다.

그러나 기억이 살아남아 미래에 폭력을 제거할 가장 마지막 무기라고 해도, 현재 살아 있는 폭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딜레마가 김태권으로 하여금 십자군전쟁이라는 기억을 소급하게 한 것 같다. 성스러운 도시 예루살렘을 회복하자며 벌인 십자군전쟁이나 결국 없는 것으로 밝혀진 대량살상무기를 핑계 삼아 벌인 이라크전쟁은 정말 판박이 같다. 추악한 위정자들의 이분법적 정신세계가 인류를 얼마나 위험으로 몰아넣는지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약자이기 때문에 기억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폭력과 학살을 막아낼 재주는 없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는 순환하는 것만은 아니다. 굳이 헤겔의 변증법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지만 역사적 교훈을 밑거름으로 하면서 순환한다고 믿는다. 과거의 약자들에게 폭력을 소멸시킬 수 있는 무기가 기억뿐이라면, 현재의 약자인 우리들에게는 세계시민의 연대라는 또 하나의 비폭력적인 무기가 있다.  

십자군전쟁이 벌어지던 시대는 정보와 세계관이 협소했기에 문명의 차이를 갈등으로밖에 풀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광기가 지배하는 제노사이드가 빈번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라크전쟁이 발발했던 21세기는 인터넷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 덕택에 문명의 차이는 단순한 다름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세계시민은 알고 있다.

십자군전쟁과 이라크전쟁은 문명의 충돌이자 경제적 야욕이 빚어낸 전쟁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러나 세계를 보는 눈이 좁았던 중세에는 종교적 광기 민중들로 하여금 제노사이드의 역사를 만들게 했지만, 더 넓은 세계를 보게 된 현재의 세계시민은 전세계 곳곳에서 반전시위를 벌였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분명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가 맞다. 하지만 기억만 갖고는 미래의 폭력은 물론 현재의 폭력도 막기엔 역부족이다. 사해동포주의에 입각한 세계시민의 연대, 이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폭력과 학살의 역사를 인류사에서 지우기 위해서는 두 날개가 필요하다. 기억과 연대, 이 두 날개로 날아야만 한다. 역사만담꾼 김태권의 유쾌한 지식만화 『십자군 이야기』는 두 날개 중 한 날개인 기억의 소중함을 되살려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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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다리:

어제밤 새벽 4시까지 잠을 설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잠을 제대로 자본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뒤적거린 책이 바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아직 1권밖에 안 나왔지만, 책 좋은 지식만화라고 생각했던
책이었다.
어제밤 두번재로 읽고 서평이라는 핑게로 글을 한 편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