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칼럼3] 불량 회사원 악동 '홍대리'

by 이윤주원 posted Mar 03, 2004

샐러리맨의 생활을 다룬 만화는 꽤 있다. 허영만의 <세일즈맨>-<아스팔트 사나이>, 강주배의 <무대리 용하다 용해>, 히로카네 켄시의 <시마과장>, 노다 시게루의 <감사역 노자키> 등은 세일즈맨의 성공과 실패, 좌절을 다룬 꽤 알려진 작품들이다. <무대리 용하다 용해>의 비굴하고 엉뚱하며 좀 모자란 무대리는 제외되지만, 이 만화들의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똑똑하며 매력적인 현대의 영웅들이라는 점이다.  

현대의 영웅들에게서 난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용기와 정의가 철철 넘치는 매력적인 이들에게 왜 나는 거리감을 느껴질까? 물론 <시미과장>, <감사역 노자키>, <아스팔트 사나이>는 재미있다. 그러나 그토록 매력적인 영웅인 시마과장, 노자키 감사, 이강토에 난 왜 푹 빠져들지 못할까?

항상 궁금했었다. 같은 샐러리맨인 나와 그들(시마과장, 노자키 감사, 이강토…)의 거리감에 대해서…. 또한 시마과장 등에게 느낀 거리감과는 다르지만 용한 ‘무대리’에게도 거리감은 있었고, 그건 더욱 컸다. 현실과 괴리된 ‘그들’과 현실에 ‘나’는 말이다.

쌓여만 가던 궁금증은 악동 홍대리의 출현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엉뚱한 일탈을 꿈꾸고 능력도 별 볼일 없고 평범한 그에게 푹 빠져들면서 안도감을 느꼈다. 홍대리처럼 용기도 없고 덜 똑똑하며 덜 매력적인 ‘내’가 ‘보통사람’임을 깨달으면서 시마과장과 노자끼 감사에게 느꼈던 꺼림칙함을 알 수 있었다. 영웅이 될 수 없는 소심한 보통사람인 ‘우리’는 시마과장이 아니라, 홍대리였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홍대리를 만나고서야 꺼림칙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악동 홍대리가 출사표를 던지기 전까지는 월급쟁이의 애환을 후벼 파 들여다보듯이 그린 작품은 한 편도 없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연신 손뼉을 치며 “맞다, 맞아”라고 탄식을 내뱉을 수 있는 만화. 현실을 그리돼 우울하지 않은 만화. 우울한 현실조차 옆 사람과 주고받는 가벼운 농담같이 그려낸 만화. 그 만화가 바로 <천하무적 홍대리>이다.

<천하무적 홍대리>는 우리 만화계가 가진 약점인 다양하지 못한 소재와 체험을 보완해주는 수작이다. 또한 누구에게나 만화를 그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준 만화이기도 하다.

우선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얼핏 보면 낙서하듯이 그린 만화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 잘 그린 그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일상에서 겪는 일을 평범한 그림으로 그려낸 만화가 <천하무적 홍대리>이다. 이런 만화를 그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우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이런 만화라면 나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먹게 한다. 곧 자기표현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가지게 한다. 이 자신감을 곧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만화의 출연진인 홍대리, 김부장, 이과장, 최주임, 김말숙 사원, 공대리는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곧 인물의 캐릭터가 생명을 가졌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홍대리의 천적 김부장은 우리시대의 전형적인 중간관리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업무실적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을 쪼지만 해고의 위험으로부터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우리시대의 40대가 바로 김부장이다.

홍대리, 그는 직장상사인 김부장 찍힌 불량 회사원이다. 지각을 밥 먹 듯하고 아픈 척 꾀병을 피워 조퇴를 일삼는다. 그리고 거래처 직원에게 거짓말을 부탁한 뒤 만화가게에서 만화를 태연하게 보는 눈에 가시 같은 직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부장을 골탕먹이기가 취미이고 업무 중에 쉴새없이 졸기나 하는 쓸모없는 직원이다.

홍대리는 해고 1순위다. 그가 해고되지 않는 건 만화 주인공이라는 이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 홍대리들은 아마 IMF 국가위기를 앞뒤로 해서 다 해고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화는 즐겁다. 엉뚱한 상상도 웃음으로 다독거려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홍대리가 밥만 축내는 샐러리맨만은 아니다. 박재동은 홍대리의 터무니없는 악동 짓은 오히려 샐러리맨이 생산의 도구나 소모품이 아님을 항변하는 몸짓이라고 한다. 그것은 경쟁과 퇴출, 국가의 부도위기, 실직의 불안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싸움터에서도 의심과 분노 없이 일하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몸부림이기도 하다.

엉뚱한 일탈과 상상으로 무장한<천하무적 홍대리>를 생산의 도구나 소모품이 아님을 항변하는 월급쟁이의 저항의 몸짓으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홍대리의 엉뚱한 일탈은 ‘투정’일뿐이다. 홍대리는 구조화된 권위주의와 사람들을 도구화시키는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칼을 들이대지는 못한다. 그는 여전히 일탈이라는 무기로 개인적인 저항 그 이상을 끌어내지 못하는 유약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홍대리의 엉뚱한 일탈에 웃으며 박수치지만,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은 느끼지 못한다.
    
김부장, 그는 권위주의의 수혈을 받은 이 시대의 중간관리자이다. 그는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부하직원들을 닦달해야 하는 기업의 소모품이다. 홍대리가 졸기만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같이 나타나고, 직원들이 월급을 갉아먹는 월급벌레들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항상 감시하는 카메라 같은 존재이다.

김부장도 악동 홍대리와 처지는 똑같다. 홍대리와 책상에 나란히 걸터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하루를 쓸쓸하게 정리하는 김부장. 선생님이 꿈이었던 그가 직원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묘한 만족감에 흐뭇해하는 에피소드나, 이사 사무실에서 홍대리와 나란히 앉아 야단을 맞으면서 속으로 뽕짝을 부르는 에피소드를 보면, 그도 힘없는 월급쟁이 그 이상은 아니다.

홍대리는 작가 홍윤표의 분신이다. 그는 다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홍대리’ 덕분에 만화 그려서 먹고사는 만화가가 됐다. 그런데 만화가가 된 것이 축하할 일은 못되나 보다. 만화가로 전업을 한 그가 원고를 앞에 놓고 끙끙대며 만화를 그린다는 일이 고통스러워지고, 공부가 부족하다고 고백하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것을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