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서평1] 新 천하무적 홍대리

by 김정대 posted Mar 03, 2004
갑자기 주원형의 [만화칼럼]시리즈가 주루룩 칼럼란에 매달린 모습을 보곤, 문득 옛날에 썼던 글들이 생각나서 옮겨봅니다. 반응이 좋으면 저도 연재하지요 ^^;
====================================================================

홍대리, 무대리, 하대리…
97년이후 연이어 히트작들을 내었던 직장인 소재의 일명 샐러리맨 만화 열기를 지피고 지금도 이끌고있는 대표 캐릭터들이다. 그렇게 그들 만화들은 한국만화판에 새로운 소재와 독자층으로의 지평을 열어제끼는 선두주자들이 되었다. 미묘하게도 이시기는 때마침 불어닥친 IMF 사태로 인하여 기존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던 직장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파괴되기 시작한 때이다.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바둥대며 살아가던 직장인들의 고단한 삶은 생존의 문제로 내몰리는 현실로 까지 비화되었다. 전문직종의 성공한 직장인을 다루던 기존 샐러리맨 만화들은 이제 영웅담들을 담는 대신, 3040세대의 독자와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영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역할들을 해주기 시작했다.

1999년에 <스포츠서울>에 연재되기 시작한 『용하다 용해』의 ‘무용해 대리’가 기성작가의 다양한 장르 탐구의 결과 끝에 나왔다면, [빅점프]로 시작해서 <한국일보>로 자리잡은 『천하무적 홍대리』의 경우는 어쩌면 자신의 생활이었을 소재에서 창조된 ‘작가가 진짜 직장인인 만화’로 시작했었다.
『 천하무적 홍대리』는 기존의 단순 소재로서의 직장인 만화가 가졌던 보수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21세기형 샐러리맨으로 등장하였다. 이전 샐러리맨 만화의 주인공들은 직장의 부속품으로서 자신의 업무로 성과를 내고 정체성을 인정받는 성공하는 드라마의 히어로들이었다. 그러나 홍대리는 자신의 소원으로 주 4일 근무를, 10시 출근 5시 퇴근을, 근무시간에 박찬호 선발경기 시청을 염원하는 소박한(어쩌면 파괴적인) 주인공일 따름이다. 빨간 망토와 쫄쫄이바지를 입고 하늘을 날던 슈퍼맨이 땅에 내려와 뿔테안경을 끼고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멘 샐러리맨으로 변신, 독자와 함께 걷기 시작한 것이다.

『천하무적 홍대리』는 당시에 신선했던 발상만큼이나 표현방식도 새로웠다. 스크린 톤 없는 배경에 선 묘사만으로 이루어진 어설퍼보이는 그림체는, 기존 드라마와 캐릭터가 가지는 힘으로 독자를 이끌었던 일본만화(comics) 스타일보다, 다양한 일상의 에피소드 속에서 독자의 감성을 적셨던 서구, 구미만화의 카툰(cartoon)을 많이 닮았다.

『천하무적 홍대리』가 처음 선을 보인 1997년, 당시 ‘홍윤표’ 작가 역시 홍대리의 직함을 달고 만화를 연재했었다. 어느새 작가는 과장으로 진급하고 회사도 옮겼었고, 지금은 프랑스에 건너가 학생이 되어있다. 현실의 홍대리가 홍작가로 거듭났듯이 천하무적의 홍대리 역시, 천하무적의 홍과장, 홍부장, 나아가서 홍사장으로 성장하기를 이땅의 모든 대리들은 갈망할 것이다.
기존의 『천하무적 홍대리』가 1, 2, 3권의 연작시리즈를 이제 벗어나 『新 천하무적 홍대리』라는 새로운 듯, 그러나 다르지만도 않은 새제목으로 나타난데에는 그렇게 또다른 변화의 의지가 숨겨져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