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행정부의 6자회담 전략 讀解를 위한 중점 고려사항

by 정낙근 posted Mar 04, 2004
부시행정부의 6자회담 전략 讀解를 위한 중점 고려사항


지난달 28일 6자회담 제2차 회의가 7개항의 ‘의장성명’을 채택한 가운데 폐막되었다. 회의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가지로 집약되는 것 같다. 하나는 실무그룹의 신설을 통한 회담 상설화의 틀을 갖추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와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공존의 원칙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평가와 달리 이번 회담은 미·북 양자간의 입장차를 확인한 것에 무게를 두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성과는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만은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평가가 부시행정부의 대북전략을 제대로 읽은데 바탕을 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다음 명제부터 우선 이해해야 한다.

첫째, 금년말 미국 대선과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다. 북핵문제는 국무부가 아니라 부시의 정치참모인 칼 로브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대선기간 중에는 대외문제를 새롭게 만들거나 기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지 않는다. 대신 유권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국내문제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북핵문제가 부시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카드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다.

요컨대 부시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방법(‘시간벌기’)이 당분간은 힘을 얻겠지만, 재선이 불투명하다고 판단될 경우 평화적 외교적 방법이외의 해결방안을 선택할 가능성도 상정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라면 미·북 갈등의 고리는 핵폐기에 대한 검증을 둘러싸고 나올 것이다. 북한이 핵동결과 폐기를 선언해도 검증의 방법과 내용, 강도에 대해 미·북 양측이 합의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회의에서도 미국은 북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를 재확인했을 뿐, 변화의 융통성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또한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은 물론이다.

둘째, 미국은 대외문제를 해결할 때 역할 분담을 중시한다. 예컨대 정부와 의회, 정부와 언론, 정부와 민간, 국무부와 국방부, 공화당과 민주당 등등. 우리는 이를 강온파의 대립으로 쉽게 규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부시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을 반기는 기류가 형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풀릴 것이라 섣부리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양당간에는 문제해결 방식상 차이는 있지만, 국익 추구라는 원칙과 목표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강·온은 대립의 문제가 아니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역할분담, 상호보완의 관계일 뿐이다.

셋째, 6자회담의 목표와 관련된 문제다. 미국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벽한 해체(CVID)를 목표로 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은 지난달 11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강화하는 방안을 포함한 7개항의 WMD 확산 방지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WMD 부품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과 항공기를 중간 나포 또는 제지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의 제안(PSI)을 더욱 확대한 것이다. 6자회담은 이런 큰 틀속에서 진행되는 하위수준의 회담이다.

핵동결에 대한 보상 요구와 핵 억지력 과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HEU)의 모호성 유지 등의 북한의 핵전략은 미국의 북핵 해결 원칙에 어긋난다. 결국 6자회담의 실패는 북한에게는 핵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 추가 협상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할 것이지만, 미국에게는 북핵문제를 유엔안보리 결의안으로 채택할 명분을 준다. 최악의 경우 미국의 선제공격전략이 북한에 적용될 명분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전쟁위기는 현실화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북한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지탄하게 될 것이다.

넷째, 6자회담의 성공은 북한의 핵폐기에 대한 대가(펀드)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우선 미국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물질적 보상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 단초는 2002년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금년 연두교서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이란 말로 대신) 규정에서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을 악마로 보는 한, 북한에 대한 보상은 한국과 일본이 주도적으로 떠맡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존재한다. 미국은 자신의 대북전략 수행을 위해 펀드 사용을 통제하려 할 것이고 이에 대해 한·중·러가 반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은 미국의 뜻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자주와 민족공조를 명분으로 대북지원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에 직접 나서려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미동맹관계의 심각한 훼손이 우려된다.


지난 김영삼 정부 당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문제 논의를 위해 미·북 제네바 합의와 4자회담이 있었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합의로 마치 한반도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양 흥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무력화되어 있다. 결국 국제적 합의든 조약이든 실천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에는 한갓 종이장에 불과하다.(04.03.02)@


*필자 : 정 낙 근(정치학박사, KG 운영위원)
* 업코리아(www.upkorea.net) 기획특집에 게재된 글의 원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