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문제, 금융시스템에 주목해야...
- 신용카드 문제와 언론보도
현재 우리 사회의 신용카드 문제는 당사자들인 카드회사나 카드빚에 몰린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금융불안의 원인은 물론 경제회복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전업카드사의 연체금액과 연체율이 증가하다보니 카드사의 경영이 악화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은행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연쇄적으로 금융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추정에 따르면 신용카드 산업의 거품붕괴에 따른 충격이 없었다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9%가 아닌, 4~5%의 성장이 가능했을 정도다. 문제는 지금의 금융불안이 기업보다는 가계부문 부실의 영향이 더 커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가계의 대출상환 능력이 단기간에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통해서는 가계부실로 촉발된 금융불안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카드문제는 경제문제로 그치지 않고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카드 빚 때문에 이혼을 하고 가족과 동반 자살을 하고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내몰리는 등 평화롭던 가정이 깨지고, 부녀자 납치와 강도행각 등 갖가지 신용카드와 관련된 범죄를 겪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다. 그러다보니 카드문제에 대한 책임자 문책이 거론되고 이에 지난해 말부터 감사원은 신용카드대책 특별감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사회적 탈선과 범죄율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등 커다란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한 카드문제를 제대로 치유하고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조사는 불가피하다.
카드문제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은 금융불안의 핵폭탄
카드정책의 분기점은 신용카드업법과 할부금융업법이 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통합되어 카드사 대출업무 허용과 은행권 차입한도 철폐 등 카드사가 외형 확대에 나서는 환경이 조성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카드정책의 결정적 전환점은 외환위기로 극도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소비중심의 내수회복으로 정책기조가 변경된 1999년이었다. 정부(재경부)는 카드의 현금서비스한도(월 70만원)를 폐지하였고 그 결과 카드사들은 본연의 결제기능(신용판매와 할부)대신 대출기능(현금서비스와 카드론)에 매달렸다. 카드사들은 경쟁이 가열되면서 ‘길거리 모집’에도 적극 나서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해줬다. 그러다가 2001년초 카드빚으로 인한 사회범죄와 미성년자 탈선이 꼬리를 물자 마침내 금융감독위원회는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 규제조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는 ‘영업자율 침해’란 이유로 금감원이 마련한 규제조치를 거부하다가 문제가 심각해지자 2002년 5월에 가서야 길거리 카드모집 금지조치를 단행하였다. 게다가 금감원은 카드사의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하다가 연체율이 10%를 웃돌자 2002년 11월이 되어서야 카드사를 시장에서 경고 또는 퇴출시킬 수 있는 근거(적기시정조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미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2003년 3월 카드위기는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카드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카드채권 만기가 돌아오는데도 상환할 능력이 없고, 한편으로 카드채를 운용한 투신사와 채권시장이 마비상태로 전락했다. 관치금융이란 비난에도 정부는 금융권을 동원한 5조원의 자금을 투입, 카드채 만기연장조치를 취했고 카드사의 증자 등 자본 확충을 유도했다(소위 4.3조치). 당시 감독당국은 시장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서 “카드사 유동성 지원조치는 이번이 마지막이고, 이제 시장에 의한 자율구조조정만 남았다”고 약속하고, 2003년 (상반기에는 2.1조원의 적자가 나지만) 하반기에는 1.9조원의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전망이 어긋나고 연체율이 늘어나자 지난해 10월 17일 적기시정조치기준에서 연체율을 제외시켜 주면서까지 적기시정조치를 면해주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LG카드의 유동성 위기에서 보듯이 카드사태는 재발했다. 이미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친 LG카드의 경우 올해 상반기까지 경영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0조원이 넘는 차입금으로 인해 여전히 금융시장의 핵폭탄으로 작동할 우려가 매우 크다. KB카드를 제외한 8개 전업 카드사들의 지난해 적자 규모가 8조가 넘는 것으로 집계될 정도로 카드문제는 여전히 금융불안의 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채권단의 2조원 규모 신규 자금지원 및 LG그룹의 추가 손실부담과 산업은행에 의한 위탁경영으로 봉합된 LG카드 회생방안으로 금융시장은 고비를 넘겼다. 은행계 카드사의 경우 부실이 심화하자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회사인 카드사들을 흡수, 합병하여 유동성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LG카드 사태의 여파로 회사채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카드회사들의 신규 회사채 발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은행과 달리 전업카드사는 수신기능이 없으므로 회사채 발행이 가장 중요한 자금 조달원이다. 대형전업사 중 하나인 삼성카드의 경우 재무상황이 LG카드보다는 양호하고, 유동성 확보와 시장신뢰 회복을 위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주주로부터 1조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기에 유동성 위기의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현재와 같이 카드채 발행시장이 사라진 상황이 장기화하면 삼성을 비롯한 전업카드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이대로 방치할 경우 신용불량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카드사가 어려워지면 이용 한도를 줄이게 되고, 그러면 신용불량자는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카드채 시장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카드사 문제는 금융시장 불안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대안, 현상적 원인의 지적에 머물러
신용카드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자세는 피상적이고 사후적이고 대안 제시가 없는 비판 위주다. 무엇보다 언론은 카드문제의 당사자들과 관련해서는 돌려받을 수 있을지 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한 금융회사의 무모함, 그리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보자는 카드사용자 개인의 무분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조장한 ‘공범’으로서 카드 사용을 부추긴 정부의 조급함, 정부 부처간 협력 및 감독 실패 등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카드사에 대한 대출업무 허용이나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 부분과 관련해서는 재경부의 책임을, 길거리 회원모집을 방치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책임을, 그리고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금감위와 금감원의 책임을 지적한다. 카드 업무와 관련하여 역할별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책임들을 지적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카드문제에 대한 책임의 전모가 파악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언론이 최근 카드업계가 정상화의 조짐을 보이는 상황임에도 경기회복이 수반되지 않는 한 카드문제는 재발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듯이, 앞에서 지적한 카드문제들은 현상적이고 사후적이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카드사 대출업무 허용과 은행권 차입한도 철폐 등 국민의 정부가 펼친 카드정책이나 소비진작책에 대해 당시 어느 누구도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카드문제로 인해 카드정책과 소비진작책의 성과가 가려진 부분이 없지 않다. 1999년 이후의 가계부채 확대는 금융기관의 수익성과 경영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소비를 뒷받침해 내수 중심의 경기 상승을 주도한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예를 들어, 1999년 총 민간 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12.3%에 불과하였으나, 2002년 말에는 48.5%까지 증가했다.
사실, 2001년 초부터 금융감독 당국과 한국은행이 각자 카드사 부실 및 가계부채 급증 등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음에도 2002년 상반기까지 카드문제가 방치된 연유도 가계대출을 고도로 규제하면 경기회복에 해가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2002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책이 수립되었음에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처방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까지 번졌던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늦은 감이 있으나 언론이 재경부, 금감위, 한은간의 협력 및 견제 장치인 금융정책협의회가 아무런 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경부의 정책 지배를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이런 비판과 더불어 언론이 금감위(관료조직)와 금감원(민간조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금융감독 당국을 단일 민간기구로 개편하는 것과 더불어 재경부와의 협력 및 견제 장치를 법률적으로 제도화하여 금융감독 당국의 독립성과 책임성의 확립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적절하였다
카드문제의 본질과 관련하여 경제시스템의 변화에 주목해야
기본적으로 언론이 지적하는 카드문제에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재경부와 감독 당국 간의 협력체제가 고도성장의 성과만큼 긍정적 기능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처럼 한국은 정부(투자) 주도로 높은 저축률과 산업화를 이룩하였지만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내수(소비) 주도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신용카드 발행이 급증했고 카드 사용은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 동력으로 각광받았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대출에서 외환위기 이후에는 개인 대출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는 카드문제가 정부 주도, 즉 투자 주도의 경제정책이 더 이상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전(1993-97년)과 이후 5년(1998-2002년) 연평균 GDP 성장률에서 각각 6.9%와 4.8%를 기록했듯이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국민의 정부에서 시행된 구조조정으로 성장률이 2% 이상 구조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투자시스템의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외환위기 전후 5년간 연평균 총투자율은 36.3%에서 25.9%로 10% 이상 구조적으로 하락하였고 이것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경기침체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총저축률 역시 외환위기 전후로 연평균 34.9%에서 31.7%로 3% 이상이 구조적으로 하락하였다.
투자율의 구조적 하락에 직면한 국민의 정부에서 선택한 것이 소비진작책이었다. 그러나 투자와 고용 그리고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비진작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 총수요는 내수와 수출로 구분되고, (총)소득이 충분치 않은 사회에서 소비 주도의 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나 고용의 증대, 즉 투자의 증가가 전제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11.7%의 역성장을 기록한 뒤 1999년 11.0%, 2000년 7.9%, 2001년 4.7%, 2002년 6.8% 등으로 성장세를 지속하던 국내 민간소비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1.1%의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가계부채 등에 대한 부담으로 가계지출이 크게 감소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품소재 산업 등이 취약한 이유로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더라도 수출산업과 내수 산업의 연관관계가 작기 때문에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주요 수출산업의 고용흡수력은 크게 저하된 상태로 파악되고 있다. 결국 투자율의 회복 없는 소비진작책은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총투자율과 총저축률 그리고 경제성장률이 ‘구조적으로 하락’하였다는 것은 김대중 정부의 4대 구조조정의 결과인데, 특히 금융 및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 결과 투자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부, 은행, 기업의 유기적 협력 시스템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의 기업 및 구조조정은 대안적인 투자 시스템의 구축 없이 기존의 협력 시스템을 파괴시켰다. 기업대출에서 개인대출로 은행의 신용공급행태의 변화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부문의 구조조정과 관련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수익성 중심의 은행이 저축을 투자로 연결시키는 매개고리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해외매각 등 은행의 민영화 결과인 것이다.
자본시장의 무분별한 개방의 결과 시설투자나 기업의 중장기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기업의 시설투자 공시 후 주가의 하락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금융자본의 급속한 국내진출과 관련하여 최근 ‘금융주권’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택담보대출 등 개인금융에 치중하는 반면 기업금융은 소홀하다. 그 결과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자금공급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또한,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이 지급결제기능을 갖고 있는 은행 등의 지배권을 확보할 경우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부를 수도 있는 점이 지적된다. 즉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면 외국계 은행은 시장안정보다는 단기수익에 치중한 독자적 행동으로 시장위험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실제로 금융시장 불안정시 외국계 은행은 단기적 이익에 치중한 나머지 독자적 행동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펀드는 단기수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조기철수 등으로 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경향이 있다. 예로 최근 채권단이 공동관리에 합의했던 LG카드에 대해 한미은행과 외환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신규 자금 지원을 거부하여 논란이 된 것은 좋은 사례에 해당된다.
또한, 카드문제를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변화와 관련지어 이해하기도 한다. 예로 대기업 그룹 중 가장 빨리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그룹의 경우 계열사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의 결과를 비교하곤 한다. 즉 지주회사 체제가 오히려 LG카드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의 과반수를, 그리고 기타 계열사들까지 포함하여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있어 부실이 심화되기 이전에 유상증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나 지주회사 산하의 자회사는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고 회사채도 인수할 수 없어 LG카드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금 여력이 있는 그룹 계열사가 출자나 회사채 인수로 부실을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카드문제는 단순히 감독 실패나 감독시스템의 문제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 시스템 전체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호황 속에서도 계속되는 경기침체, 투자부진, 가계신용대란, ‘고용 없는 성장’ 등 우리 경제가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새로운 성장시스템의 마련 없이 낡은 시스템을 파괴시킨 결과인 것이다.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은 카드문제 해결의 본질이다. 따라서 언론은 카드채 시장을 살리고 투자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현재의 금융시스템의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 신용카드 문제와 언론보도
현재 우리 사회의 신용카드 문제는 당사자들인 카드회사나 카드빚에 몰린 사람들에게 국한되지 않고 금융불안의 원인은 물론 경제회복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전업카드사의 연체금액과 연체율이 증가하다보니 카드사의 경영이 악화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은행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연쇄적으로 금융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 추정에 따르면 신용카드 산업의 거품붕괴에 따른 충격이 없었다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2.9%가 아닌, 4~5%의 성장이 가능했을 정도다. 문제는 지금의 금융불안이 기업보다는 가계부문 부실의 영향이 더 커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다는 점이다.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가계의 대출상환 능력이 단기간에 향상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통해서는 가계부실로 촉발된 금융불안이 해소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게다가 카드문제는 경제문제로 그치지 않고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카드 빚 때문에 이혼을 하고 가족과 동반 자살을 하고 아이들이 고아원으로 내몰리는 등 평화롭던 가정이 깨지고, 부녀자 납치와 강도행각 등 갖가지 신용카드와 관련된 범죄를 겪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다. 그러다보니 카드문제에 대한 책임자 문책이 거론되고 이에 지난해 말부터 감사원은 신용카드대책 특별감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사회적 탈선과 범죄율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등 커다란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한 카드문제를 제대로 치유하고 재발시키지 않기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 조사는 불가피하다.
카드문제는 여전히 제거되지 않은 금융불안의 핵폭탄
카드정책의 분기점은 신용카드업법과 할부금융업법이 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통합되어 카드사 대출업무 허용과 은행권 차입한도 철폐 등 카드사가 외형 확대에 나서는 환경이 조성된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카드정책의 결정적 전환점은 외환위기로 극도로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소비중심의 내수회복으로 정책기조가 변경된 1999년이었다. 정부(재경부)는 카드의 현금서비스한도(월 70만원)를 폐지하였고 그 결과 카드사들은 본연의 결제기능(신용판매와 할부)대신 대출기능(현금서비스와 카드론)에 매달렸다. 카드사들은 경쟁이 가열되면서 ‘길거리 모집’에도 적극 나서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카드를 발급해줬다. 그러다가 2001년초 카드빚으로 인한 사회범죄와 미성년자 탈선이 꼬리를 물자 마침내 금융감독위원회는 길거리 카드회원 모집 규제조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규제개혁위원회는 ‘영업자율 침해’란 이유로 금감원이 마련한 규제조치를 거부하다가 문제가 심각해지자 2002년 5월에 가서야 길거리 카드모집 금지조치를 단행하였다. 게다가 금감원은 카드사의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소홀히 하다가 연체율이 10%를 웃돌자 2002년 11월이 되어서야 카드사를 시장에서 경고 또는 퇴출시킬 수 있는 근거(적기시정조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미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 2003년 3월 카드위기는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카드사가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카드채권 만기가 돌아오는데도 상환할 능력이 없고, 한편으로 카드채를 운용한 투신사와 채권시장이 마비상태로 전락했다. 관치금융이란 비난에도 정부는 금융권을 동원한 5조원의 자금을 투입, 카드채 만기연장조치를 취했고 카드사의 증자 등 자본 확충을 유도했다(소위 4.3조치). 당시 감독당국은 시장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서 “카드사 유동성 지원조치는 이번이 마지막이고, 이제 시장에 의한 자율구조조정만 남았다”고 약속하고, 2003년 (상반기에는 2.1조원의 적자가 나지만) 하반기에는 1.9조원의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 전망이 어긋나고 연체율이 늘어나자 지난해 10월 17일 적기시정조치기준에서 연체율을 제외시켜 주면서까지 적기시정조치를 면해주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말 LG카드의 유동성 위기에서 보듯이 카드사태는 재발했다. 이미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친 LG카드의 경우 올해 상반기까지 경영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0조원이 넘는 차입금으로 인해 여전히 금융시장의 핵폭탄으로 작동할 우려가 매우 크다. KB카드를 제외한 8개 전업 카드사들의 지난해 적자 규모가 8조가 넘는 것으로 집계될 정도로 카드문제는 여전히 금융불안의 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채권단의 2조원 규모 신규 자금지원 및 LG그룹의 추가 손실부담과 산업은행에 의한 위탁경영으로 봉합된 LG카드 회생방안으로 금융시장은 고비를 넘겼다. 은행계 카드사의 경우 부실이 심화하자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회사인 카드사들을 흡수, 합병하여 유동성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LG카드 사태의 여파로 회사채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카드회사들의 신규 회사채 발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은행과 달리 전업카드사는 수신기능이 없으므로 회사채 발행이 가장 중요한 자금 조달원이다. 대형전업사 중 하나인 삼성카드의 경우 재무상황이 LG카드보다는 양호하고, 유동성 확보와 시장신뢰 회복을 위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주주로부터 1조원 상당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기에 유동성 위기의 가능성은 크지 않으나 현재와 같이 카드채 발행시장이 사라진 상황이 장기화하면 삼성을 비롯한 전업카드사들은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이대로 방치할 경우 신용불량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카드사가 어려워지면 이용 한도를 줄이게 되고, 그러면 신용불량자는 더 늘어나기 때문이다. 즉 카드채 시장이 정상화되지 않는 한 카드사 문제는 금융시장 불안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언론의 대안, 현상적 원인의 지적에 머물러
신용카드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자세는 피상적이고 사후적이고 대안 제시가 없는 비판 위주다. 무엇보다 언론은 카드문제의 당사자들과 관련해서는 돌려받을 수 있을지 조차도 생각하지 못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한 금융회사의 무모함, 그리고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고 보자는 카드사용자 개인의 무분별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를 조장한 ‘공범’으로서 카드 사용을 부추긴 정부의 조급함, 정부 부처간 협력 및 감독 실패 등을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카드사에 대한 대출업무 허용이나 현금서비스 한도 폐지 부분과 관련해서는 재경부의 책임을, 길거리 회원모집을 방치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책임을, 그리고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부분과 관련해서는 금감위와 금감원의 책임을 지적한다. 카드 업무와 관련하여 역할별로 정부 및 공공기관의 책임들을 지적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카드문제에 대한 책임의 전모가 파악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언론이 최근 카드업계가 정상화의 조짐을 보이는 상황임에도 경기회복이 수반되지 않는 한 카드문제는 재발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듯이, 앞에서 지적한 카드문제들은 현상적이고 사후적이다. 경기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카드사 대출업무 허용과 은행권 차입한도 철폐 등 국민의 정부가 펼친 카드정책이나 소비진작책에 대해 당시 어느 누구도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카드문제로 인해 카드정책과 소비진작책의 성과가 가려진 부분이 없지 않다. 1999년 이후의 가계부채 확대는 금융기관의 수익성과 경영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소비를 뒷받침해 내수 중심의 경기 상승을 주도한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예를 들어, 1999년 총 민간 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가 차지하는 비중이 12.3%에 불과하였으나, 2002년 말에는 48.5%까지 증가했다.
사실, 2001년 초부터 금융감독 당국과 한국은행이 각자 카드사 부실 및 가계부채 급증 등의 문제점을 인식하기 시작했음에도 2002년 상반기까지 카드문제가 방치된 연유도 가계대출을 고도로 규제하면 경기회복에 해가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2002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대책이 수립되었음에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처방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금융시스템의 불안으로까지 번졌던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늦은 감이 있으나 언론이 재경부, 금감위, 한은간의 협력 및 견제 장치인 금융정책협의회가 아무런 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재경부의 정책 지배를 합리화 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은 정당하다. 이런 비판과 더불어 언론이 금감위(관료조직)와 금감원(민간조직)으로 이원화되어 있는 금융감독 당국을 단일 민간기구로 개편하는 것과 더불어 재경부와의 협력 및 견제 장치를 법률적으로 제도화하여 금융감독 당국의 독립성과 책임성의 확립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적절하였다
카드문제의 본질과 관련하여 경제시스템의 변화에 주목해야
기본적으로 언론이 지적하는 카드문제에는 외환위기 이전까지 재경부와 감독 당국 간의 협력체제가 고도성장의 성과만큼 긍정적 기능을 수행했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최근 보도처럼 한국은 정부(투자) 주도로 높은 저축률과 산업화를 이룩하였지만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내수(소비) 주도의 경제정책에 힘입어 신용카드 발행이 급증했고 카드 사용은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 동력으로 각광받았다. 즉 한국의 은행들은 외환위기 이전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대출에서 외환위기 이후에는 개인 대출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는 카드문제가 정부 주도, 즉 투자 주도의 경제정책이 더 이상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외환위기 이전(1993-97년)과 이후 5년(1998-2002년) 연평균 GDP 성장률에서 각각 6.9%와 4.8%를 기록했듯이 한국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위기극복을 위한 방안으로 국민의 정부에서 시행된 구조조정으로 성장률이 2% 이상 구조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투자시스템의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외환위기 전후 5년간 연평균 총투자율은 36.3%에서 25.9%로 10% 이상 구조적으로 하락하였고 이것이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경기침체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총저축률 역시 외환위기 전후로 연평균 34.9%에서 31.7%로 3% 이상이 구조적으로 하락하였다.
투자율의 구조적 하락에 직면한 국민의 정부에서 선택한 것이 소비진작책이었다. 그러나 투자와 고용 그리고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비진작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론적으로 총수요는 내수와 수출로 구분되고, (총)소득이 충분치 않은 사회에서 소비 주도의 성장은 생산성의 증가나 고용의 증대, 즉 투자의 증가가 전제되지 않는 한 지속될 수 없다.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11.7%의 역성장을 기록한 뒤 1999년 11.0%, 2000년 7.9%, 2001년 4.7%, 2002년 6.8% 등으로 성장세를 지속하던 국내 민간소비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1.1%의 감소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는 가계부채 등에 대한 부담으로 가계지출이 크게 감소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품소재 산업 등이 취약한 이유로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회복이 가시화되더라도 수출산업과 내수 산업의 연관관계가 작기 때문에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데,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주요 수출산업의 고용흡수력은 크게 저하된 상태로 파악되고 있다. 결국 투자율의 회복 없는 소비진작책은 지속될 수 없었던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총투자율과 총저축률 그리고 경제성장률이 ‘구조적으로 하락’하였다는 것은 김대중 정부의 4대 구조조정의 결과인데, 특히 금융 및 기업 부문의 구조조정 결과 투자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의 경제성장은 정부, 은행, 기업의 유기적 협력 시스템에 기초한 것이었는데 외환위기 이후의 기업 및 구조조정은 대안적인 투자 시스템의 구축 없이 기존의 협력 시스템을 파괴시켰다. 기업대출에서 개인대출로 은행의 신용공급행태의 변화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부문의 구조조정과 관련을 맺고 있다. 예를 들어, 수익성 중심의 은행이 저축을 투자로 연결시키는 매개고리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해외매각 등 은행의 민영화 결과인 것이다.
자본시장의 무분별한 개방의 결과 시설투자나 기업의 중장기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기업의 시설투자 공시 후 주가의 하락은 이를 반영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 금융자본의 급속한 국내진출과 관련하여 최근 ‘금융주권’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주택담보대출 등 개인금융에 치중하는 반면 기업금융은 소홀하다. 그 결과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한 자금공급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 또한, 수익성만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이 지급결제기능을 갖고 있는 은행 등의 지배권을 확보할 경우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부를 수도 있는 점이 지적된다. 즉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확대되면 외국계 은행은 시장안정보다는 단기수익에 치중한 독자적 행동으로 시장위험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실제로 금융시장 불안정시 외국계 은행은 단기적 이익에 치중한 나머지 독자적 행동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아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펀드는 단기수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조기철수 등으로 시장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경향이 있다. 예로 최근 채권단이 공동관리에 합의했던 LG카드에 대해 한미은행과 외환은행 등 외국계 은행이 신규 자금 지원을 거부하여 논란이 된 것은 좋은 사례에 해당된다.
또한, 카드문제를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의 변화와 관련지어 이해하기도 한다. 예로 대기업 그룹 중 가장 빨리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LG그룹과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그룹의 경우 계열사 카드사의 유동성 위기의 결과를 비교하곤 한다. 즉 지주회사 체제가 오히려 LG카드의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 체제가 아닌 삼성의 경우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의 과반수를, 그리고 기타 계열사들까지 포함하여 대부분의 지분을 갖고 있어 부실이 심화되기 이전에 유상증자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던 반면, 현재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나 지주회사 산하의 자회사는 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 없고 회사채도 인수할 수 없어 LG카드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자금 여력이 있는 그룹 계열사가 출자나 회사채 인수로 부실을 해결해 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카드문제는 단순히 감독 실패나 감독시스템의 문제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 시스템 전체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의 호황 속에서도 계속되는 경기침체, 투자부진, 가계신용대란, ‘고용 없는 성장’ 등 우리 경제가 위기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새로운 성장시스템의 마련 없이 낡은 시스템을 파괴시킨 결과인 것이다. 경기 회복과 일자리 창출은 카드문제 해결의 본질이다. 따라서 언론은 카드채 시장을 살리고 투자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해 현재의 금융시스템의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