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환율전쟁의 정치경제학

by 최배근 posted Mar 26, 2004
중국과 미국의 환율전쟁의 정치경제학
                                               최배근(건국대 민족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중국 위앤화 재평가를 둘러싸고 각종 주장과 전망이 난무하고 있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위앤화 절상뿐 아니라 심지어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과 급격한 위앤화 절상은 물론이거니와 환율시스템의 개혁을 거부하는 중국간의 갈등이다. 중국과 미국간 환율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앤화 재평가 문제가 제기된 시점과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앤화의 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로 당시 중국은 수출과 외국인투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경제의 고속성장이 안정화되는 시기로 진입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소위 (1990년대 말 기업에 대한 연준<FRB>의 지원이라는) ‘주식시장 케인즈주의’에 의한 신경제, 즉 주가 상승에 의한 소비와 투자의 증가(자산효과)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난 신경제의 활력이 꺼지며 경기가 빠르게 침체되고 있었다.

90년대 말 미국 내수시장의 호황과 미국 수입의 증가는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경제의 회복에는 기여하였으나 미국 경상수지를 크게 악화시켰다. 1997년까지 1,283억 달러에 불과하였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98년에 2,083억 달러, 2000년에 4,103억 달러, 2002년에 5,034억 달러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런데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의 문제를 미국 자산에 대한 외국인들의 매수라는 자본수지의 흑자로 해결하였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침체가 깊어가면서 연준은 2001년도 한해에만 11차례, 그리고 2002년과 2003년에도 각각 한차례씩 금리를 인하하여 2000년 말 6.5%였던 금리가 2003년 6월까지 1%로 크게 인하되었다. 금리 인하와 경기침체로 미국자산에 대한 매력이 떨어짐에 따라 2000년 1조 달러를 넘었던 미국 내 외국자산은 2002년에는 6,303억 달러 수준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이같은 배경에서 달러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달러에 연동되어 있을 뿐 아니라 1996년 이래 달러당 8.2760에서 8.2800 위앤 선에서 사실상 거의 변동이 없는) 위앤화는 달러 약세에 편승해서 상대적으로 절하됐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이 높아졌고, 그 결과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늘어난 반면, 미국의 대중수출은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위앤화 절상 요구의 배경이다. 문제는 현재 미국경제가 겪고 있는 수출부진과 고실업현상이 중국의 대미흑자에서 비롯된 것이기보다는 미국 자체의 경쟁력 하락이나 산업구조의 변화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에 따른 경제정책 운용의 경직성 등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수출보다 더 많이 소비하고, 세금 줄여 소비하고, 그 결과 가계 및 국가 부채가 사상 최대수준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인 초저금리에도 연체율이 높아질 정도로 민간부문이나 정부부문이나 저축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나라가 미국이고 그런 점에서 현재의 부동산과 주식 및 채권시장은 거품투성이다. 감세로 가계 여유에 의한 일시적 효과로 나타난 최근의 경기 회복도 고용이나 소득의 개선이 수반되지 않고 있고, 게다가 금리 인상의 압박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위앤화의 대폭 절상과 환율시스템의 변동을 요구하는 미국의 입장을 중국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요구를 중국은 시장개방의 확대 속에 유일하게 남겨두고 있는 자본통제 수단의 포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이는 체제유지와 관련된 것이기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의 요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단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급격한 환율시스템 변화는 중국 뿐 아니라 국제경제 전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앤화의 급격한 절상은 중국경제의 통화긴축 추세를 악화시키고, 수출 기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외자를 급속히 이탈시키고,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을 대폭 증가시키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연쇄적으로 환율절상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들은 중국의 성장 속도 조절과 더불어 세계경기의 둔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미국과의 불필요한 갈등 확대를 최소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중국은 대미 수입 증가속도를 대미 수출 증가율 9%보다 높게 계획하고 있고, 총 규모 67억 달러의 비행기 엔진, 자동차 부품을 미국에서 직접 구매하기로 했고 또 2차 구매사절을 미국에 보내 대두를 비롯한 농산물을 구매할 예정이고 수출시 부가가치세 환급비율을 낮출 예정이고 위앤화도 소폭이지만 절상할 예정이다. 중국이 지난 2월 기록한 78억 7천만 달러의 무역적자 역시 이런 노력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중국과 미국간의 환율 및 무역 전쟁의 실상을 보면 외부에서보다는 내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미국경제의 문제에 대한 희생양을 찾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일부에서 위앤화 재평가를 둘러싼 미중 갈등을 기본적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 대 ‘팍스 시니카’(중국에 의한 세계 평화)의 충돌로 보는 것도 일리가 있다.


* 참고로 이 글은 한겨레21 3월 29일자 지구촌경제의 칼럼에 게재한 글입니다.

* 그리고 코멘트 감사합니다. 제가 아는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