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가 진보에게
- 어디까지가 진보고, 어디까지가 보수인지 -
요즘 '진보가 보수에게 보내는 편지'가 항간의 화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디까지가 진보고, 어디까지가 보수인지 모릅니다. 다만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로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수구반공주의세력이 체질적으로 싫어서 1980년대 말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게 된 35살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굳이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신다면, 그 척도는 아마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과 권익, 복지에 대한 태도가 아닐까요?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지향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과 권익보호이니까요.
만약 이 기준대로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는 것에 동의해주신다면, 아마 나는 진보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진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모임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홈리스, 빈곤아동, 빈곤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익과 인권 그리고 복지를 다루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단군이래 최대국난이었다는 1998년 IMF 경제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홈리스들의 인권과 구호활동에 몸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보문동에서 20여분의 홈리스들과 ‘아침을여는집’이라는 공동체를 일구고, ‘홈리스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해 거리 노숙인들의 인권과 안전, 구호활동을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 진보 맡지요?
이런 제가 ‘진보가 진보에게’라는 편지를 왜 쓰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제가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성장이데올로기와 반공권위주의로 우리사회의 헤게모니를 독식하던 수구세력의 빈자리를 합리적 보수가 빨리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우리사회에는 보수가 없었습니다. 보수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대체로 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지난 50여년간 수구세력의 일방적인 국가운영과 기득권 유지가 흔히 보수라고 불리는 자유주의자까지 민주화운동가로 탈바꿈시켰던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연대해 수구세력과 싸운 것이 바로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운동은 자유주의자들까지 좌파적 진보주의자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2002 대선은 영원할 줄 알았던 수구세력, 즉 반공권위주의세력이 이제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헤게모니를 유지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좌파적 요구에서부터 중도 우파적 요구까지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요구들이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한국사회는 혼란으로 요동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386세대가 주류질서 전면에 등장했고 세대갈등이 가치관뿐만 아니라 이념갈등으로까지 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지닌 거대한 두 집단이 동상이몽을 꿈꾸며 살고 있는 형국입니다. 세대갈등=보혁갈등인 것이지요. 시급하게 국민통합의 계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중국의 비약적 성장과 북한의 핵정치는 대한민국을 정치 경제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국론분열과 보혁갈등이, 밖으로는 국제정치지형의 격동이 우리 민족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한 격동의 시간을 진보라는 날개만으로 헤쳐갈 수는 없습니다. 이영희 교수의 성찰처럼 진보와 보수라는 양날개가 필요합니다. 무능한 진보를 배격하고 부패한 수구를 이 땅에서 청산하는 길은 유능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대화의 정치 뿐입니다.
과거 386들이 학생운동을 했건 안 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들이 어떤 정치지향을 갖고 움직이며, 그러한 정치지향에서 합리적 의사소통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진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정치개혁은 진보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와 함께 일궈가야 할 보배입니다. 수구세력을 공격하고 합리적 보수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함, 이것이 현재 진보에게 필요한 품성입니다.
- 진보는 보수의 그늘에서 성장해야 -
오늘(4월 7일)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 70여명의 법조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법조인 선언’을 했다는군요. 참 환영할 일입니다. 불과 몇년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혼란할 지경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 선언문을 읽다가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언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 옮겨봅니다.
2. 민주노동당은 일관되게 국민의 인권을 옹호했다.
정리해고, 노동조합에 대한 가압류와 손해배상, 부안 핵폐기장, 이라크 파병, FTA, 네이스, 양심적 병역거부, 성적소수자, 장애인, 공무원노조 등의 문제에서 일관되게 국민의 인권을 옹호한 정당은 민주노동당이 유일하다.
3. 민주노동당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세계평화는 크게 위협받고 있고, 남북미관계 또한 무력충돌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남북미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이라크 파병 철회 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러한 정책이 실현되어야 비로소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고 이 세상 가장 고귀한 가치인 생명을 존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태생적 한계로 감히 국민의 인권에 일관되지 못한 정책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의 구호도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 아닙니까?
그런데 묻겠습니다. 과연 복지정책이 있기나 한 것입니까? 한국 홈리스 정책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현란한 구호 뒤에 어떤 복지 정책이 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시렵니까? 부유세라굽쇼! 안 믿습니다. 제가 그래도 민주노동당원인데, 당원도 설득 못하는 부유세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 부유세 징수를 통한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보수정당이 외치는 정치적 레토릭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민주노동당의 정당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불안합니다.
우리사회가 항상 진보정치를 말하면서 그 예로 언급하는 서구 유럽사회의 진보정당치고 외교안보정책에서 진보적 정책을 펴고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자국 내에서 아무리 진보적인 정책을 펴는 정당도 외교안보정책은 항상 보수적이지 않습니까?
국가사회의 안위가 바람 앞에 촛불인데, 무슨 국제주의요, 무슨 진보입니까? 그래서 진보는 보수의 그늘 아래서 성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의 민주당도 세계전략의 구사에 있어서는 신제국주의 노선을 항상 견지합니다. 그래도 자국 내에서는 다양성의 수용과 소수인종에 대한 배려정책 등으로 극우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 혐의를 항상 받지 않습니까?
친미냐, 반미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힘이 없어 친미를 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닙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한국의 역할을 위해서는 친중친미자주노선을 견지해야 합니다. 모순이라고요? 친중친미자주노선은 당연히 모순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고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논리를 뛰어 넘어 모순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평화와 안정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밥이요, 생존권이다 -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권익, 복지를 생각하신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한반도가 균형을 잃고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해도 부자들이야 어떻게든 살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보호를 받던 가난한 백성들은 당장 한겨울에 옷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는 형국일 것입니다. 평화와 안정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밥이요, 생존이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바로 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미국이라는 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이요, 나가지 말래도 다 때가 되면 나갈 것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략적 철수를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습니까? 전략적 철수로 빈 자리를 중국과 일본이 차지하려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고요.
근대의 산물인 민족주의가 서구사회에서는 쇠퇴해 가는데, 아직 한-중-일 3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동아시아 공동체 결성의 큰 장애로 남아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이 공유하는 역사적 상처는 열린 민족주의가 아니라 배타적 민족주의의 강화로 통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지, 복지 하는데, 일자리만한 복지와 인권(빈곤은 매우 심한 인권침해이기에)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하는 한 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요. 부자들에게 재산을 내놓라고 강짜를 놔야 할까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한 소리란 걸 다 아시죠.
일자리 창출은 동아시아 경제 블록 차원에서 고민해야할 사안입니다. 한국도 더 이상 인종적 순결주의를 지키려하지 말고 인종과 문화, 다양성이 용해되는 용광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 차원에서 관세와 경제국경을 없애고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만이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보에게 요청 드립니다.
고용 없는 성장에 들어선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을 왜곡해서 국민들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용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 부유세를 걷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둥의 정치적 수사를 쓰지 마시고 현실 가능한 대안을 애기해 주십시오.
미군철수 운운하지 말아 주십시오, 가지말래도 갈 놈들입니다. 동아시아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어떻게 미국이라는 세력을 이용할 것인지 먼저 국민에게 이야기 해주십시오. 동아시아 공동체의 비전과 미래, 즉 청사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들의 이해가 반영되는 그런 구도겠지요. 이 역할을 우리 대한민국이 해내야만 지속적인 번영과 안정,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종교집단이 아닙니다. 진보정치세력은 종교에서 말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와는 다른 정치적 경제적 비전이 담긴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고뇌하는 결정이 담긴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나,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는 종교적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민주노동당도 한국에서 리더십을 지닌 정당입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유명인사를 보면 대부분 한국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핍박받는 민중들이 아니지요. 사회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이런 사회 지도층들이 관념의 유희에 빠져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친다면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곧 죽음 같은 고통이 몰려옵니다. 진심으로 말씀올리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이여!
그대와 우리가 진정한 진보로 당당히 태어나기 위해서는 보수의 그늘이 필요합니다. 제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반공수구세력을 미워하는 이유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쳐 가난한 백성들을 항상 곤란에 빠트리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진보는 무능한 보수보다 무능한 법입니다. 아직 진보는 국가운영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외교안보정책의 현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프게 외교안보를 말하지 말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국 내에서 좀 더 정치적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한동안 진보가 가야할 길입니다.
제 글에 많은 분들이 이의를 제기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보, 보수의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독이 될 수 있기에 좀 더 큰 틀로 진보가 성장하라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
2004년 4월 7일 보문동에서 미륵
- 어디까지가 진보고, 어디까지가 보수인지 -
요즘 '진보가 보수에게 보내는 편지'가 항간의 화제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디까지가 진보고, 어디까지가 보수인지 모릅니다. 다만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로 우리사회를 지배하던 수구반공주의세력이 체질적으로 싫어서 1980년대 말 민주화운동에 동참하게 된 35살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굳이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신다면, 그 척도는 아마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과 권익, 복지에 대한 태도가 아닐까요?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의 지향이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과 권익보호이니까요.
만약 이 기준대로 진보와 보수로 구분하는 것에 동의해주신다면, 아마 나는 진보 중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진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모임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홈리스, 빈곤아동, 빈곤노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익과 인권 그리고 복지를 다루는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단군이래 최대국난이었다는 1998년 IMF 경제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홈리스들의 인권과 구호활동에 몸담고 있습니다. 지금도 보문동에서 20여분의 홈리스들과 ‘아침을여는집’이라는 공동체를 일구고, ‘홈리스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해 거리 노숙인들의 인권과 안전, 구호활동을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 진보 맡지요?
이런 제가 ‘진보가 진보에게’라는 편지를 왜 쓰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제가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성장이데올로기와 반공권위주의로 우리사회의 헤게모니를 독식하던 수구세력의 빈자리를 합리적 보수가 빨리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우리사회에는 보수가 없었습니다. 보수의 이데올로기 지형은 대체로 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는데, 지난 50여년간 수구세력의 일방적인 국가운영과 기득권 유지가 흔히 보수라고 불리는 자유주의자까지 민주화운동가로 탈바꿈시켰던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연대해 수구세력과 싸운 것이 바로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운동은 자유주의자들까지 좌파적 진보주의자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2002 대선은 영원할 줄 알았던 수구세력, 즉 반공권위주의세력이 이제 한국사회에서 더 이상 헤게모니를 유지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좌파적 요구에서부터 중도 우파적 요구까지 그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요구들이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한국사회는 혼란으로 요동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386세대가 주류질서 전면에 등장했고 세대갈등이 가치관뿐만 아니라 이념갈등으로까지 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지닌 거대한 두 집단이 동상이몽을 꿈꾸며 살고 있는 형국입니다. 세대갈등=보혁갈등인 것이지요. 시급하게 국민통합의 계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중국의 비약적 성장과 북한의 핵정치는 대한민국을 정치 경제적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국론분열과 보혁갈등이, 밖으로는 국제정치지형의 격동이 우리 민족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한 격동의 시간을 진보라는 날개만으로 헤쳐갈 수는 없습니다. 이영희 교수의 성찰처럼 진보와 보수라는 양날개가 필요합니다. 무능한 진보를 배격하고 부패한 수구를 이 땅에서 청산하는 길은 유능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의 대화의 정치 뿐입니다.
과거 386들이 학생운동을 했건 안 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그들이 어떤 정치지향을 갖고 움직이며, 그러한 정치지향에서 합리적 의사소통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진보에게 편지를 씁니다. 정치개혁은 진보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와 함께 일궈가야 할 보배입니다. 수구세력을 공격하고 합리적 보수를 품을 수 있는 넉넉함, 이것이 현재 진보에게 필요한 품성입니다.
- 진보는 보수의 그늘에서 성장해야 -
오늘(4월 7일)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에서 70여명의 법조인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법조인 선언’을 했다는군요. 참 환영할 일입니다. 불과 몇년전에는 생각도 못할 일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혼란할 지경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 선언문을 읽다가 이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언문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어 옮겨봅니다.
2. 민주노동당은 일관되게 국민의 인권을 옹호했다.
정리해고, 노동조합에 대한 가압류와 손해배상, 부안 핵폐기장, 이라크 파병, FTA, 네이스, 양심적 병역거부, 성적소수자, 장애인, 공무원노조 등의 문제에서 일관되게 국민의 인권을 옹호한 정당은 민주노동당이 유일하다.
3. 민주노동당은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세계평화는 크게 위협받고 있고, 남북미관계 또한 무력충돌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남북미 평화협정체결,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 이라크 파병 철회 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러한 정책이 실현되어야 비로소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고 이 세상 가장 고귀한 가치인 생명을 존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태생적 한계로 감히 국민의 인권에 일관되지 못한 정책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거의 구호도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 아닙니까?
그런데 묻겠습니다. 과연 복지정책이 있기나 한 것입니까? 한국 홈리스 정책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무상의료, 무상교육이라는 현란한 구호 뒤에 어떤 복지 정책이 있는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시렵니까? 부유세라굽쇼! 안 믿습니다. 제가 그래도 민주노동당원인데, 당원도 설득 못하는 부유세로 어떻게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겁니까? 제가 보기에 부유세 징수를 통한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보수정당이 외치는 정치적 레토릭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노동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가 민주노동당의 정당정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불안합니다.
우리사회가 항상 진보정치를 말하면서 그 예로 언급하는 서구 유럽사회의 진보정당치고 외교안보정책에서 진보적 정책을 펴고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자국 내에서 아무리 진보적인 정책을 펴는 정당도 외교안보정책은 항상 보수적이지 않습니까?
국가사회의 안위가 바람 앞에 촛불인데, 무슨 국제주의요, 무슨 진보입니까? 그래서 진보는 보수의 그늘 아래서 성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의 민주당도 세계전략의 구사에 있어서는 신제국주의 노선을 항상 견지합니다. 그래도 자국 내에서는 다양성의 수용과 소수인종에 대한 배려정책 등으로 극우세력으로부터 공산주의자 혐의를 항상 받지 않습니까?
친미냐, 반미냐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힘이 없어 친미를 하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닙니다.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한국의 역할을 위해서는 친중친미자주노선을 견지해야 합니다. 모순이라고요? 친중친미자주노선은 당연히 모순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고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가 논리를 뛰어 넘어 모순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평화와 안정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밥이요, 생존권이다 -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과 권익, 복지를 생각하신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약 한반도가 균형을 잃고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해도 부자들이야 어떻게든 살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보호를 받던 가난한 백성들은 당장 한겨울에 옷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는 형국일 것입니다. 평화와 안정은 가난한 백성들에게 있어서 밥이요, 생존이요, 삶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바로 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미국이라는 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이요, 나가지 말래도 다 때가 되면 나갈 것입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략적 철수를 실행에 옮기고 있지 않습니까? 전략적 철수로 빈 자리를 중국과 일본이 차지하려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고요.
근대의 산물인 민족주의가 서구사회에서는 쇠퇴해 가는데, 아직 한-중-일 3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동아시아 공동체 결성의 큰 장애로 남아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이 공유하는 역사적 상처는 열린 민족주의가 아니라 배타적 민족주의의 강화로 통합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사실 복지, 복지 하는데, 일자리만한 복지와 인권(빈곤은 매우 심한 인권침해이기에)은 없습니다. 그러나 현 대한민국 그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창출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존재하는 한 가능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요. 부자들에게 재산을 내놓라고 강짜를 놔야 할까요?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한 소리란 걸 다 아시죠.
일자리 창출은 동아시아 경제 블록 차원에서 고민해야할 사안입니다. 한국도 더 이상 인종적 순결주의를 지키려하지 말고 인종과 문화, 다양성이 용해되는 용광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 차원에서 관세와 경제국경을 없애고 공동체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만이 최고의 복지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보에게 요청 드립니다.
고용 없는 성장에 들어선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을 왜곡해서 국민들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한국자본주의의 현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용을 창출할 수 없습니다. 부유세를 걷어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둥의 정치적 수사를 쓰지 마시고 현실 가능한 대안을 애기해 주십시오.
미군철수 운운하지 말아 주십시오, 가지말래도 갈 놈들입니다. 동아시아의 균형과 안정을 위해 어떻게 미국이라는 세력을 이용할 것인지 먼저 국민에게 이야기 해주십시오. 동아시아 공동체의 비전과 미래, 즉 청사진을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들의 이해가 반영되는 그런 구도겠지요. 이 역할을 우리 대한민국이 해내야만 지속적인 번영과 안정, 평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종교집단이 아닙니다. 진보정치세력은 종교에서 말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와는 다른 정치적 경제적 비전이 담긴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고뇌하는 결정이 담긴 평화와 생명의 가치를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나,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평화와 생명의 가치는 종교적 관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민주노동당도 한국에서 리더십을 지닌 정당입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유명인사를 보면 대부분 한국자본주의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핍박받는 민중들이 아니지요. 사회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이런 사회 지도층들이 관념의 유희에 빠져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친다면 가난한 백성들에게는 곧 죽음 같은 고통이 몰려옵니다. 진심으로 말씀올리는 것입니다.
진보주의자들이여!
그대와 우리가 진정한 진보로 당당히 태어나기 위해서는 보수의 그늘이 필요합니다. 제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반공수구세력을 미워하는 이유는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해쳐 가난한 백성들을 항상 곤란에 빠트리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진보는 무능한 보수보다 무능한 법입니다. 아직 진보는 국가운영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외교안보정책의 현장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설프게 외교안보를 말하지 말고 사회적 소수자들이 자국 내에서 좀 더 정치적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한동안 진보가 가야할 길입니다.
제 글에 많은 분들이 이의를 제기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보, 보수의 이분법적 대결구도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독이 될 수 있기에 좀 더 큰 틀로 진보가 성장하라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어서 감사합니다.
2004년 4월 7일 보문동에서 미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