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책략이 필요하다
S에게
미국 대륙 한복판, 네브라스카에서 겪는 유학 생활은 견딜만한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무슨 신령이 지폈는지 미국변호사가 되겠다고 새색시를 데리고 건너간지 벌써 일년이 넘어가는군.
앞으로 십수년 내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운명을 결정지을 시베리아 개발이라는 대역사(大役事)가 있을 터인데, 거기에 대한민국이 당당한 일 주체로 참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것이 장정을 떠나는 너의 출사표였다.
베트남으로, 중국으로 대우자동차의 현지공장을 전전할 때마다 경쟁자로 만났던 GM, 이제는 너의 옛직장의 새로운 주인이 된 그들에 대해 너는 늘 두려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그들의 지칠줄 모르는 탐욕과 그 집요함, 치밀함에 우리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패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 위대한 ‘무대뽀’ 정신.
너는 그 놈들하고 다시 시베리아에서 맞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때는 적지(?)에서 배운 지식으로 걔네들보다 더 치밀한 논리와 더 치열한 준비로 일전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너를 미국으로 가게 한 동력이라고 했다. 그래, 많이 배우고 있는가, 예비미국변호사?
오늘 Y가 마케팅팀장으로 일하는 회사에 갔었다. 어느덧 휴대폰으로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당당한 중견기업이 되어있더군. Y는 요즘 중국 시장이 뜨거운 감자라며 그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대해 제품 승인 절차를 까다롭게 해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Y가 내리고 있는 생존 비법은 하청생산에서 벗어나 독자 브랜드 파워를 가지는 것이었다. 결국 정면 승부를 선택하고 있었다.
어디 그것이 그 회사의 처지이기만 하겠는가. 이 나라가 이제 새로운 생존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1890년대 주일청국참사관이었던 황준헌이 “조선책략”을 썼다. 조선•일본•중국 3국이 힘을 합치고 미국과 연합해서 러시아를 막아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종은 이 책에 감동을 받아 유생에게 돌리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양이인 왜국과 힘을 합칠 수 없다는 상소문뿐이었다. 구한말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외교적 선택은 쇄국이냐 개항이냐가 아니라 어떤 개항이냐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주도적 선택도 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처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아시대의 국가 전략의 큰 방향을 틀거리를 잡지 못하고 아직 우리는 반미친북과 친미반북의 앙상한 대결의 고비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체니가 중국과 일본, 한국을 한바퀴 돌고 들어갔고, 그 직후 김정일과 후진타오가 만났다. 이 급박한 시국에 한국의 대통령은 청와대에 유폐되어 있고, 정치권은 총선을 치루느라 다른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보였다.
이제 멀리 바라보는 안목의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뛰어넘는 통일시대의 다자간 상생 모델로 중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에 이른 것 같다. 한국책략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에서 네가 갈 곳도 만들어지겠지.
그 때 되면 내가 한마디 할 수 있을 게다.
(영화 ‘친구’의 동건이 목소리로) “니가 가라, 시베리아”
2004년 봄날,
서울에서 왕재가
*참여사회 5월호에 실릴 칼럼입니다.
S에게
미국 대륙 한복판, 네브라스카에서 겪는 유학 생활은 견딜만한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무슨 신령이 지폈는지 미국변호사가 되겠다고 새색시를 데리고 건너간지 벌써 일년이 넘어가는군.
앞으로 십수년 내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운명을 결정지을 시베리아 개발이라는 대역사(大役事)가 있을 터인데, 거기에 대한민국이 당당한 일 주체로 참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것이 장정을 떠나는 너의 출사표였다.
베트남으로, 중국으로 대우자동차의 현지공장을 전전할 때마다 경쟁자로 만났던 GM, 이제는 너의 옛직장의 새로운 주인이 된 그들에 대해 너는 늘 두려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그들의 지칠줄 모르는 탐욕과 그 집요함, 치밀함에 우리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패기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 위대한 ‘무대뽀’ 정신.
너는 그 놈들하고 다시 시베리아에서 맞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때는 적지(?)에서 배운 지식으로 걔네들보다 더 치밀한 논리와 더 치열한 준비로 일전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너를 미국으로 가게 한 동력이라고 했다. 그래, 많이 배우고 있는가, 예비미국변호사?
오늘 Y가 마케팅팀장으로 일하는 회사에 갔었다. 어느덧 휴대폰으로 수천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당당한 중견기업이 되어있더군. Y는 요즘 중국 시장이 뜨거운 감자라며 그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은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대해 제품 승인 절차를 까다롭게 해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Y가 내리고 있는 생존 비법은 하청생산에서 벗어나 독자 브랜드 파워를 가지는 것이었다. 결국 정면 승부를 선택하고 있었다.
어디 그것이 그 회사의 처지이기만 하겠는가. 이 나라가 이제 새로운 생존 경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지고 있다. 1890년대 주일청국참사관이었던 황준헌이 “조선책략”을 썼다. 조선•일본•중국 3국이 힘을 합치고 미국과 연합해서 러시아를 막아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고종은 이 책에 감동을 받아 유생에게 돌리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양이인 왜국과 힘을 합칠 수 없다는 상소문뿐이었다. 구한말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외교적 선택은 쇄국이냐 개항이냐가 아니라 어떤 개항이냐였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주도적 선택도 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의 처지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아시대의 국가 전략의 큰 방향을 틀거리를 잡지 못하고 아직 우리는 반미친북과 친미반북의 앙상한 대결의 고비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체니가 중국과 일본, 한국을 한바퀴 돌고 들어갔고, 그 직후 김정일과 후진타오가 만났다. 이 급박한 시국에 한국의 대통령은 청와대에 유폐되어 있고, 정치권은 총선을 치루느라 다른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보였다.
이제 멀리 바라보는 안목의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박정희식 발전모델을 뛰어넘는 통일시대의 다자간 상생 모델로 중국과 미국을 아우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에 이른 것 같다. 한국책략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에서 네가 갈 곳도 만들어지겠지.
그 때 되면 내가 한마디 할 수 있을 게다.
(영화 ‘친구’의 동건이 목소리로) “니가 가라, 시베리아”
2004년 봄날,
서울에서 왕재가
*참여사회 5월호에 실릴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