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방중(訪中)의 정치경제학
최배근(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2004년 4월의 김정일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은 지난 2000년 5월과 2001년 1월의 두 차례 방중과는 대조적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북한의 대외관계전략이 2000년 이전으로 다시 이동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였던 기존 북한의 대외관계전략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유럽 등으로 다원화되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진행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의 확대, 한반도-시베리아 철도연결, 북일수교 정상회담 등은 북한은 물론이고 동북아 경제질서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주지하듯이 식량난과 에너지난 등 북한의 경제침체는 체제 유지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한 경제난의 타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의 해결로 압축된다. 하나는 경제를 정상화시킬 때까지 안정적인 식량 확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개발을 위해 충분한 해외자금 확보의 문제다. 2000년 이전까지 북한은 북미관계 타결을 통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부시정권의 등장으로 북한의 계획은 난관에 봉착하였고, 이에 북한은 한국의 협조와 지원 속에 러시아와 일본 등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2002년 가을 중국의 양빈장관 구속과 미국의 북핵문제 제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북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사건들이었다. 중국의 동북3성 개발(동북공정)과 연계되지 않는, 즉 독립적인 북한의 개방과 개발 전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역시 수용할 없는 미국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그후 현재까지 북한은 경제개발과 핵보유가 동시에 불가능한 일임을 확인하였다.
게다가 올해 7월이면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년이 되는데 북한 경제는 여전히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북한 경제가 90년대 말부터 마이너스(-) 성장률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762달러로 추정되는 2002년도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던 1990년 국민소득 1,142 달러의 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정은 1990년(41.7억 달러) 수준의 거의 절반에 불과한 무역액(2002년 22.6억 달러)에서도 확인된다. 경제침체와 외화난으로 2002년의 원유도입량(438만 배럴)도 1990년 1,847만 배럴의 ¼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곡물생산량 또한 자연재해가 심하였던 90년대 중반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중국에 대한 의존의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매년 50만t 내외의 원유와 30만t 안팎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대중 수출도 2000년 3,700만 달러에서 2001년 1억6,700만 달러, 2002년에는 2억7,100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 중국이 주도하는 6자 회담의 지속과 적극적 참여를 약속하고, 미국 설득을 위해 중국의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게 제공한 ‘화려한 선물’의 대가로 중유와 식량 등의 무상지원이 뒤따랐다. 시베리아횡단철도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나 양빈 체포․구속사건 등으로 틀어진 양국 관계를 복원시키고 맹방 관계를 재확인하였다는 것은 북중관계의 비대칭적 현실을 북한이 인정한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특히 이번 방중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중국이 올해부터 본격 추진 중인 동북 3성 진흥 계획에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연계해 추진하려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이는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신의주특구 재추진 등 북한의 개방과 개발을 중국은 동북지역 개발의 큰 틀 속에서 자리 매김 하겠다는 의도이고, ‘한국-북한의 개성공단과 신의주특구-중국 동북부-시베리아’라는 연결고리를 동북아 개발플랜의 중심축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즉 북한을 중국 동북지역의 틀 속에 묶음으로써 북한핵 해결과 그에 따른 신동북아 질서의 출현 과정에서 중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최고지도부들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의 권유’라는 남한에 대한 선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남북관계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확장, 과시하는 것이다. 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이 주도하였던 한반도문제가 중국과 미국의 주도로 바뀌고 남북의 대중․대미 의존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 때맞춰 개성공단을 위한 대북 송전 방침이 결정되었고, 2001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방문 후 결심한 ‘금강산밸리’ 건설계획이 남북경협의 합의사항 중 하나로 발표되었다. 중국이 주도하는 북한 핵문제 해결이나 경제개발 과정에 소외되지 않으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기만 하다.
* 이 글은 다음 주 한겨레21 칼럼 내용입니다. 다른 의견 표명 환영합니다.
최배근(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2004년 4월의 김정일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은 지난 2000년 5월과 2001년 1월의 두 차례 방중과는 대조적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북한의 대외관계전략이 2000년 이전으로 다시 이동하였다는 점이다. 미국을 중심축으로 하였던 기존 북한의 대외관계전략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유럽 등으로 다원화되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진행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의 확대, 한반도-시베리아 철도연결, 북일수교 정상회담 등은 북한은 물론이고 동북아 경제질서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들이었다.
주지하듯이 식량난과 에너지난 등 북한의 경제침체는 체제 유지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한 경제난의 타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의 해결로 압축된다. 하나는 경제를 정상화시킬 때까지 안정적인 식량 확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개발을 위해 충분한 해외자금 확보의 문제다. 2000년 이전까지 북한은 북미관계 타결을 통해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부시정권의 등장으로 북한의 계획은 난관에 봉착하였고, 이에 북한은 한국의 협조와 지원 속에 러시아와 일본 등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2002년 가을 중국의 양빈장관 구속과 미국의 북핵문제 제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켰다. 북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사건들이었다. 중국의 동북3성 개발(동북공정)과 연계되지 않는, 즉 독립적인 북한의 개방과 개발 전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역시 수용할 없는 미국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그후 현재까지 북한은 경제개발과 핵보유가 동시에 불가능한 일임을 확인하였다.
게다가 올해 7월이면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년이 되는데 북한 경제는 여전히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북한 경제가 90년대 말부터 마이너스(-) 성장률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762달러로 추정되는 2002년도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던 1990년 국민소득 1,142 달러의 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정은 1990년(41.7억 달러) 수준의 거의 절반에 불과한 무역액(2002년 22.6억 달러)에서도 확인된다. 경제침체와 외화난으로 2002년의 원유도입량(438만 배럴)도 1990년 1,847만 배럴의 ¼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곡물생산량 또한 자연재해가 심하였던 90년대 중반보다는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중국에 대한 의존의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매년 50만t 내외의 원유와 30만t 안팎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대중 수출도 2000년 3,700만 달러에서 2001년 1억6,700만 달러, 2002년에는 2억7,100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 중국이 주도하는 6자 회담의 지속과 적극적 참여를 약속하고, 미국 설득을 위해 중국의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게 제공한 ‘화려한 선물’의 대가로 중유와 식량 등의 무상지원이 뒤따랐다. 시베리아횡단철도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나 양빈 체포․구속사건 등으로 틀어진 양국 관계를 복원시키고 맹방 관계를 재확인하였다는 것은 북중관계의 비대칭적 현실을 북한이 인정한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특히 이번 방중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중국이 올해부터 본격 추진 중인 동북 3성 진흥 계획에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연계해 추진하려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이는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신의주특구 재추진 등 북한의 개방과 개발을 중국은 동북지역 개발의 큰 틀 속에서 자리 매김 하겠다는 의도이고, ‘한국-북한의 개성공단과 신의주특구-중국 동북부-시베리아’라는 연결고리를 동북아 개발플랜의 중심축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즉 북한을 중국 동북지역의 틀 속에 묶음으로써 북한핵 해결과 그에 따른 신동북아 질서의 출현 과정에서 중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최고지도부들은 김정일 위원장에게 ‘서울 답방의 권유’라는 남한에 대한 선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는데 남북관계에서도 중국의 역할을 확장, 과시하는 것이다. 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이 주도하였던 한반도문제가 중국과 미국의 주도로 바뀌고 남북의 대중․대미 의존이 심화되고 있다.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에 때맞춰 개성공단을 위한 대북 송전 방침이 결정되었고, 2001년 1월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 방문 후 결심한 ‘금강산밸리’ 건설계획이 남북경협의 합의사항 중 하나로 발표되었다. 중국이 주도하는 북한 핵문제 해결이나 경제개발 과정에 소외되지 않으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눈물겹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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