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축제는 모든 중생의 축제?

by 希言 posted May 13, 2004
연등축제는 모든 중생의 축제?


매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할 때마다 보살의 서원을 경건하게 독송한다.

“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보리에 이를 때까지 만약 고독한 사람, 갇혀 있는 사람, 질병이 있는 사람 등 가지 가지 고통과 재난을 당하는 중생들을 본다면 끝내 잠시도 버리지 않고 반드시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올바른 도리로써 이익 되게 하고,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뒤에야 떠나겠습니다.”                                
(승만경 십대수장품 중에서)

보살의 서원을 읽고 지난 1년을 돌이켜본다. 고독한 사람에게 나는 벗이 돼주었는지. 갇혀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나누어 주었는지. 질병이 있는 사람에게 약과 치료를 나누었는지. 노숙인들에게 재활과 자활의 Vision을 부여했는지 항상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보살의 서원처럼 고통과 재난에 빠진 중생들을 잠시도 버리지 않고,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뒤에야 성불하겠다는 다짐을 올해도 해본다.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신 이유가 온 중생의 안락과 평화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 오신 날은 생명의 축제요, 온 중생들의 축제인 것이다. 이 기쁜 날에 불자들은 너도 나도 나눔과 희생, 베풂과 자비의 마음이 충만하여 부처님의 오심을 ‘연등축제’로 기뻐하며 한 바탕 어울림의 마당을 연다. 사회적 소수자인 노숙인들도 부처님의 자식인 불자(佛子)이기에 기쁨을 함께 나눌 자격이 충분하다. 4월 중순경이었다. 노숙인들은 부처님 오심의 축하하는 행사인 ‘연등축제’에서 보살의 서원은 아직도 미완성임을 보이고 싶었다. 지장보살께서 아직 지옥에 계시며, 승만부인이 아직 성불하지 못했으며, 유마거사가 아직도 병환 중에 있음을 모든 불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행복한 기회를 노숙인들은 얻지 못했다. 며칠 뒤 봉축위 담당자로부터 불기 2548년 연등축제는 ‘축제’에 중점을 뒀기 때문에 홍보활동 중심의 참여는 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노숙인들이 연등축제에 오면 분위기(?)가 흐려지지 않겠냐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서운했지만, 도솔천의 행사가 아닌 인간의 행사를 준비하는 실무자의 고민에도 수긍이 갔기 때문에 더 이상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날 저녁 홈리스의 친구들의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아침을여는집’ 입소인들에게 연등축제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고 공동체모임에서 알려주었다. 자신도 노숙인이지만, 연등축제에서 불자들에게 수정과와 식혜, 아이스크림을 팔아 거리노숙인들을 위한 거리상담센터의 설립기금에 도움이 되겠다며 결의를 밝힌 이씨가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몇몇 입소인들은 “노숙인이 참여하면 냄새가 나는 것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아닌데, 노숙인에 대한 불교의 인식이 좀 차별적이지 않냐”고 항의하기도 했다.

불교는 노숙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가진 종교가 아니라고 애써 변명을 해보았지만, 삶이 곧 상처였던 그들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불교를 옹호해봤자 냉소와 불신만 깊어질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날 밤 잠조차 잊을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신 이유에 대해 의미를 찾아보았다. 배움이 짧은 탓에 여전히 가난하고 소외된 중생들의 구원이라는 결론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노숙인들이 연등축제에 참가하여 사회적 소수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보살이 성불하지 못한 이유를 보여주는 게 분위기를 흐리는 것은 아닌데…. 이런 생각이 머리 속에 맴돌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