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주가 대폭락, 87년 블랙 먼데이 재판의 전주곡인가?
최배근(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오일-중국-금리 ‘3중 쇼크’에서 비롯된 2004년 5월 아시아의 주가 대폭락은 1987년 10월 미국 증시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와 비교된다. 단지 87년의 경우 20% 이상의 주가 하락이 미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프로그램 트레이딩"이라는 거래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단 하루에 이루어진 반면, 2004년의 경우에는 4월말 중국쇼크가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과 유가의 고공행진이 상호 결합되면서 주가 대폭락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2004년과 87년 주가 대폭락의 또 다른 차이는 전자의 경우 아시아에 집중되었고 미국이나 유럽 증시에 미친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2004년 아시아 블랙 먼데이의 원인인 오일-중국-금리 ‘3중 쇼크’가 아시아, 미국, 유럽 경제에 상이하게 작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이후 세계 금융시장 환경의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1987년 미국발 주가 대폭락의 경우 미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된 위기와 이에 대한 인위적 처방이 실패한 사례다. 즉 80년대 들어 미국의 재정 및 경상 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미국 제조업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은 1985년 9월 22일 엔화와 마르크화의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소위 ‘플라자합의(Plaza Accord)’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플라자합의 이후 금리와 달러가치가 급락하자 국제자본이 미국의 채권 및 주식 시장에서 썰물처럼 이탈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독일과 일본 역시 지나친 달러가치의 하락으로 자국의 경기둔화를 우려해 공조에서 이탈한다. 환율정책 협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준의 금리 인상 역시 독일과 일본의 동반 금리인상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자 블랙 먼데이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둘째 90년대 후반 미국 증시의 호황은 1995년 4월 25일 소위 ‘역플라자 합의’로 불리는 강달러 정책이 경쟁국가의 이해관계 및 경제상황과 부합된 결과의 산물이다. 즉 1994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95년 3월 멕시코가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달러화 약세로 이어지고 달러가치는 95년 4월 79엔까지 하락하고, 달러 약세로 평가손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 내 국제자본이 유출하자 연준은 1994년 3%였던 금리를 6%로 대폭 인상한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성장을 둔화시키자 미국은 통화팽창정책으로 전환하고, 통화가치의 상승과 디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던 일본과 EU는 자신의 이해와 부합하기에 이를 지지한다. 독일과 일본 정부는 달러를 매입하고 심각한 경기침체에 시달리던 일본 역시 금리를 95년 4월 1.75%에서 95년 9월에는 0.5%까지 인하시킨다. 일본의 초저금리로 전세계적 신용공급이 확대되고 강달러 정책과 맞물려 미국의 채권과 유가증권 매입은 시작된다.
셋째, 1999년 1월 유로화의 등장은 환전변동 위험 및 환전비용 등 거래비용의 감소 그리고 화폐발행 차익(Seigniorage gain) 등으로 궁극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 감소 및 달러화 약세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중국의 초고속 성장에 따른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달러화 약세와 맞물릴 경우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재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이어지면서 지난 3,4월부터 달러화가 유로 및 엔화에 대해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아시아의 주가 대폭락이 오일-중국-금리와 관련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금리를 인상시킬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연준과 심지어 중국의 인민은행이 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을 보이는 것처럼 미국의 금리 인상은 동반 금리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약달러와 연결될 경우 미국의 주식시장은 87년과 같은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헤지펀드들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머니마켓펀드(MMF)나 미국 재무부 채권 등 장기국채나 금 등 보다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연유도 이런 불확실성에 있다.
* 한겨레21 5월 25일 511호에 게재될 예정.
최배근(건국대 민족통일연구소 소장)
오일-중국-금리 ‘3중 쇼크’에서 비롯된 2004년 5월 아시아의 주가 대폭락은 1987년 10월 미국 증시의 ‘블랙 먼데이(Black Monday)’와 비교된다. 단지 87년의 경우 20% 이상의 주가 하락이 미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프로그램 트레이딩"이라는 거래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고 단 하루에 이루어진 반면, 2004년의 경우에는 4월말 중국쇼크가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과 유가의 고공행진이 상호 결합되면서 주가 대폭락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2004년과 87년 주가 대폭락의 또 다른 차이는 전자의 경우 아시아에 집중되었고 미국이나 유럽 증시에 미친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2004년 아시아 블랙 먼데이의 원인인 오일-중국-금리 ‘3중 쇼크’가 아시아, 미국, 유럽 경제에 상이하게 작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80년대 이후 세계 금융시장 환경의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1987년 미국발 주가 대폭락의 경우 미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서 비롯된 위기와 이에 대한 인위적 처방이 실패한 사례다. 즉 80년대 들어 미국의 재정 및 경상 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되고 미국 제조업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미국은 1985년 9월 22일 엔화와 마르크화의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소위 ‘플라자합의(Plaza Accord)’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플라자합의 이후 금리와 달러가치가 급락하자 국제자본이 미국의 채권 및 주식 시장에서 썰물처럼 이탈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독일과 일본 역시 지나친 달러가치의 하락으로 자국의 경기둔화를 우려해 공조에서 이탈한다. 환율정책 협조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준의 금리 인상 역시 독일과 일본의 동반 금리인상으로 효과를 보지 못하자 블랙 먼데이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둘째 90년대 후반 미국 증시의 호황은 1995년 4월 25일 소위 ‘역플라자 합의’로 불리는 강달러 정책이 경쟁국가의 이해관계 및 경제상황과 부합된 결과의 산물이다. 즉 1994년부터 시작된 멕시코 페소화 위기는 95년 3월 멕시코가 IMF에서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달러화 약세로 이어지고 달러가치는 95년 4월 79엔까지 하락하고, 달러 약세로 평가손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 내 국제자본이 유출하자 연준은 1994년 3%였던 금리를 6%로 대폭 인상한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성장을 둔화시키자 미국은 통화팽창정책으로 전환하고, 통화가치의 상승과 디플레이션으로 고통을 받던 일본과 EU는 자신의 이해와 부합하기에 이를 지지한다. 독일과 일본 정부는 달러를 매입하고 심각한 경기침체에 시달리던 일본 역시 금리를 95년 4월 1.75%에서 95년 9월에는 0.5%까지 인하시킨다. 일본의 초저금리로 전세계적 신용공급이 확대되고 강달러 정책과 맞물려 미국의 채권과 유가증권 매입은 시작된다.
셋째, 1999년 1월 유로화의 등장은 환전변동 위험 및 환전비용 등 거래비용의 감소 그리고 화폐발행 차익(Seigniorage gain) 등으로 궁극적으로 달러에 대한 수요 감소 및 달러화 약세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중국의 초고속 성장에 따른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상승이 달러화 약세와 맞물릴 경우 유가와 원자재 가격의 재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이어지면서 지난 3,4월부터 달러화가 유로 및 엔화에 대해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최근 아시아의 주가 대폭락이 오일-중국-금리와 관련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금리를 인상시킬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연준과 심지어 중국의 인민은행이 금리 인상에 대해 신중을 보이는 것처럼 미국의 금리 인상은 동반 금리 인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약달러와 연결될 경우 미국의 주식시장은 87년과 같은 또 다른 재앙을 맞이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헤지펀드들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머니마켓펀드(MMF)나 미국 재무부 채권 등 장기국채나 금 등 보다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이동하고 있는 연유도 이런 불확실성에 있다.
* 한겨레21 5월 25일 511호에 게재될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