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 미디어의 준비 1호(한반도구상의 부분)에 준비하고 있는 글입니다. 아직 미완성의 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좋은 의견주시면 글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분량이 많아 읽기에 불편을 드립니다. 분량도 차후에 조절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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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과 신 동북아 그리고 통일한국의 미래상 도출
한반도 문제의 세계사적 의미
한반도와 동북아는 한반도를 들러 싼 관련국들의 관계가 대립구도를 고착화시킨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예측불허의 상황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매우 불안전하고, 한반도의 분단 또한 새로운 차원에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질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세계평화와 번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동북아의 출현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는 세계체제와 동북아를 매개하는 중간항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평화와 공동번영을 본질로 하는 ‘신 동북아’ 등장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초패권국가로서 단극세계질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산물인 ‘아태지역’ 개념이 북한을 무시해온 설명 방식이라면 “북한을 동북아의 일주체로 복원시키고 북핵문제를 남북관계를 넘어서는 동북아관계의 핵심의제의 하나로 설정”하는 신 동북아 구상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다자주의 공간을 적극 활용해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중장기적 포부를 담은 구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과 이를 통한 신 동북아의 등장은 미국 중심 구도를 확립시킨 불완전한 의미에서의 냉전질서(적대적 대결관계)의 해체가 아닌 동북아에서 대립관계를 내용적으로 해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세계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동북아 관련국간의 협력과 공동 번영은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리더십의 빈곤’에 놓여 있다. 동북아의 핵심 관련국들인 한중일의 협력관계를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과 그 이후의 냉전구도 등 이 지역에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어두운 과거사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식자의 표현대로 ‘뭉치는 유럽연합(EU)’ 대 ‘흩어지는 동아시아’는 21세기를 향한 EU와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동아시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상징한다. “신성로마제국은 법을 제정할 수도 없고 세금을 징수할 수도 없으며, 군대도 모집할 수 없고, 전쟁선언도 어떠한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키고 민족주의가 개화한 유럽 제 민족에게 지역적 국가체제를 보장한 1648년의 웨스트팔렌(Westfalen) 조약이 분리와 배제를 내용으로 하는 근대 서구사회의 출발점이었다면 유럽연합의 완성 과정은 근대를 넘어 통합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과거의 숙적인 프랑스와 독일의 정치적 화해를 만들어냈던 1951년 ‘유럽 석탄 및 철강 공동체’라는 6개국 경제공동체에서 시작한 오늘의 유럽연합은 지난 5월에는 1945년 얄타협정으로 분리됐던 동서 유럽을 통합시키더니 최근에는 유럽연합 헌법안을 채택함으로써 경제 통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명실상부한 정치적 통합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고유의 영토와 언어와 문화를 가진 유럽의 25개 주권국가 국민 4억5천만 명이 하나의 규범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는 정치공동체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시킨 ‘얄타시대의 종언’(end to Yalta)이란 환호성이 유럽을 뒤흔들었던 2004년의 동아시아는 어떤가? 동아시아에서는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공동체의 출범은 차치하고 경제협력조차 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협력과 통합의 21세기 리더십의 형성과는 거리가 있는 민족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고 그 결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 협력조차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동질성의 부재 및 일본과 중국이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4년째 지속되는 불황에 처해 심한 좌절을 겪고 있으며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지향한 '상처받은 민족주의'를 나타내고 있고, 중국은 자신감에 가득 찬 ‘적극적 민족주의’(대중화주의)를 표명하고 있다. 이 두 강대국 간의 세력다툼이 재연되고 있는 와중에서 한국은 미래지향적 한반도 구상 없이 생존 및 자유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 한미 안보동맹이 지역동맹으로의 전환에서 보듯이 향후 미국과 중국간의 마찰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즉 이른바 중국의 “대중화주의”와 미일의 “패권주의”가 격돌할 경우 세계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일 세력간의 대립구도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분단고착화나 심지어 전쟁위험에 대응할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밖에 없다.
북한핵과 6자회담의 정치경제학
외형상으로 한반도의 문제는 핵과 미사일의 개발에 집착하는 북한과 이를 강력히 저지하려는 미국간의 충돌로 이해된다. 이는 양자의 이해를 조화롭게 절충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양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즉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경제파탄 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의 개발은 합리적 선택인 반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미사일 방어망(MD)과 지역안보동맹을 구축하여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북아의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미국에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위협의 강조 또한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의 개발에 대해 미국이 외교적 노력과 경제 제재는 물론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와 냉전질서의 종언은 남북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 한․소 수교(1990.9),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91.12.13)과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도출(91.12.31) 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 분야별 분과위원회 및 공동위원회가 잇달아 개최(1992.3)됨으로써 분단이후 최대규모의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고 한․중 관계개선(1992.8)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1993.3.12)하고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활발했던 남북대화는 중단되고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994년 10월 21일 북미간 제네바 핵합의로 북한 핵의 동결과 경수로의 전환, 북미간 관계개선이란 방식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네바 합의로 북한과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과 긴장해소는 가능해졌지만 남북한간은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고 다시 한번 냉전상태로 되돌아갔다. 특히 제네바 합의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점진적이고도 단계적인 해결을 제시하고 있고 해결의 주체도 북미만이 아닌 여러 국가들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의 국제화를 결과하였다는 점이다.
2002년 10월에 터진 2차 북핵위기는 북미간 적대적 관계의 해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개선된 남북관계의 지렛대를 이용하여 체제 위기를 탈출하려는 시도에 대한 미국의 견제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1990년 이후 9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면서 식량․에너지․외화 등 3난을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 들어갔고 1998년 말에는 생존문제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1990년 1,142 달러하던 일인당 국민소득은 98년에는 절반 수준에 불과한 573달러로 하락하였다. 무역액도 1990년 규모(48.5억 달러)의 ⅓에도 못 미치는 14.4억 달러까지 하락하였고, 외화 부족으로 원유도입량도 1990년 수준(1,847만 배럴)의 거의 ⅙ 수준인 369만 배럴로 감소하였다. 이처럼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북한 경제난의 타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의 해결로 압축된다. 하나는 경제를 정상화시킬 때까지 안정적인 식량 확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개발을 위해 충분한 해외자금 확보의 문제다. 2000년까지 북한은 북미관계 타결을 통해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부시정권의 등장으로 북한의 계획은 난관에 봉착하였고, 이에 북한은 한국의 협조와 지원 속에 러시아와 일본 등을 끌어들였다. 즉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명,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반면,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의 전단계로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를 추구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정주영씨의 소떼방북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합의 등 남북관계의 개선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2000년 7월19일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1년 7월과 2002년 8월 러시아 방문을 통해 북러 양국은 '동해선 복원건설'에 합의, 그리고 러시아의 중재 속에 2002년 9.17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그런데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동북아 지역의 긴장 완화는 이 지역의 경제개발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90년대 장기간 경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일본은 과잉 유동성의 해소와 화물신칸센 중심의 산업건설공동체 건설을 통해 대량 실업의 구제와 경기회복을 목표로 한 아시아기금 창설과 아시아연합(AU)을 구상하고 있었다. 러시아도 세계경제의 과잉 유동성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1998년 9월말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상태였고 낙후한 동부 시베리아를 개발해야만 독자적 경제재건이 가능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남북간 철도 복원, 그리고 이를 시베리아철도와 연결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여기에 유럽-아시아를 잇는 고속전철망까지 연결하는 '뉴 오리엔탈'을 구상하고 있다. 1998년 한국과 북한 역시 심각한 경제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1998년 북한경제는 해외 자원과 기술 그리고 시장과의 결합 없이는 독자적 회생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공급 부족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동북아 뉴딜 플랜은 그 자체로 북한의 에너지난과 외화난을 상당히 해소시킬 뿐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 긴장완화는 일본을 비롯한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고, 특히 북일수교에 따른 북한에 대한 일본의 배상은 북한의 경제재건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에서 나온 '북일 평양선언' 중 국교수립 후 일본이 북한에게 하기로 한 배상 관련 항목을 보면 “무상자금 협력, 저이자 장기차관 제공 및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또한 민간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견지에서 일본 국제협력은행 등에 의한 융자, 신용대부 등이 실시”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식 개방을 거부했던 북한이 2002년 7・1조치와 더불어 신의주특구 개발계획을 추진한 연유가 동북아 개발플랜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1998년에 외환위기로 최대의 국난을 겪고 있었다. 80년대 말 3저 호황 이후 한국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었고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투자와 동북아 구상이 그것이었다. 80년대 말부터 제기된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망을 남북한을 거쳐 일본까지 잇는 소위 ‘정주영 가스전 플랜’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철도망과 통신망까지 함께 이어 동아시아를 운송수단과 통신시설 등 거대 네트워크로 엮자는 구상이 바로 ‘동북아구상’인 것이다.
2000년 1월 이탈리아와의 수교 후 12월에는 영국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2001년 들어서도 네덜란드(1.15), 벨기에(1.23), 캐나다(2.6), 스페인(2.7), 독일(3.1), 룩셈부르크(3.5), 그리스(3.8), 그리고 같은 해 5월 14일에 유럽연합(EU)과 수교를 맺는 등 서방국가들의 연이은 대북 수교 역시 동북아 개발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당면한 세계금융위기의 탈출구로서 공급을 계속할 수 있는 미발달지역의 경제개발이 필요한데 3억의 인구, 노동력, 풍부한 천연자원이 존재해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동북아시아(환동해주변지역)는 러시아에서 중국, 일본에 이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건설, 함께 건설될 정보통신네트워크, 도로ㆍ교통 인프라 프로젝트, 그리고 이것들의 실현을 가능케 할 동북아시아개발은행(또는 기금) 창설을 전망케 한다. 동북아시아 경제개발과 안정을 가져올 신 동북아의 출현은 지역평화는 물론이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는 세계경제에서 가장 역동성을 보이는 지역이다. 동북아의 핵심국가인 한․중․일 3국은 전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이들 3국의 인구는 유럽연합의 네 배나 된다. 동북아 3국의 지난해 교역 신장률은 전 세계 평균(4.6%)보다 5배나 높은 22.8%의 신장률을 기록했고, 그 결과 지난해 동북아 3국의 무역액은 2조812억 달러로 미국의 2조296억 달러를 초과했다. 동북아가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동북아 국가들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부각되고 있고 일본 중국 대만 한국은 세계 제1~4위의 최대 외환보유국이며 서로간의 3국간 경제관계 역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 3위의 수입대국인 중국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일본(17.9%), 대만(11.9%), 한국(10.5%)이 빅3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과 홍콩에 이어 중국의 주요 수출국이다. 일본에게 중국은 최대 수입국이자 두 번째 수출국이고, 한국은 세 번째 주요 수출입국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게 중국과 일본은 수출에서는 1위와 3위, 수입에서는 3위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 동북아에서 미국의 자리 찾아주기
이처럼 동북아 및 세계 경제가 직면한 과잉 유동성 위기의 해소와 거대개발 수요의 창출이라는 소위 '동아시아 뉴딜 플랜'이라는 경제논리가 동북아의 낡은 질서를 뿌리 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2002년 가을 중국이 양빈장관을 구속(2002.10.4)하고 미국은 북핵문제를 제기(2002.10.4)하였다. 그 결과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동북아 뉴딜 플랜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사건들이었다. 에너지 자원이 안정적 확보를 비롯해 동북아 뉴딜 플랜에 중국의 이해가 보장되지 않고, 그리고 중국의 동북3성 개발(동북공정)과 연계되지 않는, 즉 독립적인 북한의 개방과 개발 전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역시 수용할 없는 미국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즉 동북아 냉전구도의 해체는 냉전구도의 중심축에 있는 미국의 역할과 비중을 신 동북아에서 어떻게 재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냉전구도 이후의 신 동북아의 청사진에 미국이 배제되는 한, 미국은 동북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동북아에서 냉전구도를 유지해 미국의 헤게모니 체제를 위협하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구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EU 가입으로 유럽으로의 팽창이 어려워진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함으로써 러시아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이른바 ꡐ월스트리트-미국 재무부-국제통화기금(IMF) 복합체ꡑ에 도전하는 동북아개발기금의 구상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추진 중인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아시아의 일부 동맹국들이 참여함으로써 이 지역은 MD 체제에 참가하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로 양분되고 있고, 동북아에서 지역대립 구도는 이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군비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구상에 대해 일본 역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입장이기에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현상유지 구상은 힘을 받고 있다. 일본은 MD 체제의 참여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뿐 아니라 MD 체제 구축에 필요한 핵심부품의 생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 원칙 가운데 하나인 무기수출 금지 조항을 폐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 협력의 증대 경향을 실질적인 동북아 공동 번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신 동북아에 미국의 이해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즉 동북아와 미국의 윈윈(win-win)게임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로 압축되고, 이런 점에서 한․미․일 안보동맹과 한․중․일 협력 체제의 중심에 있는 한국의 리더십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경제개발과 핵보유가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세계체제와 신 동북아를 매개하지 않는 한반도 문제의 해법은 실현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6자회담의 등장배경은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화시킴으로써 북핵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에게 책임 분담을 요구하기 위해 (다자회담의 범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의 차이는 있었으나) 6자회담을 선택한 것이다. 단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다자틀내에서 양자대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운영상 절충을 하였다. 6자회담은 나름대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북핵문제에서 한, 중, 러의 입장이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북한을 고립시키는 구도로만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북핵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번영과 관련된 문제로, 6자회담에서 동북아 주요국의 입장과 이해가 반영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현재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민족공조와 한미동맹을 조화롭게 절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형상으로 볼 때 6자회담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협력 강화 등 북한의 외교적 고립상태를 탈피시켜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희석시키려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북한을 고립시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충돌하고 있다.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입장은 북한의 전략변화로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북한은 3차 6자회담을 앞두고 지난 4월 김정일 위원장의 3차 방중을 통해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고 중국으로부터 무상원조를 얻어냈을 뿐 아니라 5월에는 고이즈미 총리와의 2차 정상회담을 통해 2002년의 평양선언을 부활시키고 식량지원을 얻어내는 등 6자회담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남과 북 역시 북핵문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군사회담과 경제회담을 잇따라 개최해 우발적 충돌 방지와 상호비방 중지 등 초보적 수준의 군사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시행하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모색하는 등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과거 미소를 주축으로 양분된 냉전이데올로기에 지배됐던 동북아시아는 분명히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전쟁을 통한 해결책을 중시하는 워싱턴과는 다른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해결방안을 추구하는 모델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핵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대폭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동북아국가들은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끊지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을 상쇄시키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안 없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머무는 것이나 대안 없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끊는 것 모두 위험한 상황을 결과할 수 있는 것이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중국에 대한 의존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은 매년 50만톤 내외의 원유와 30만톤 안팎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대중 수출도 2000년 3,700만 달러에서 2001년 1억6,700만 달러, 2002년에는 2억7,100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4월 방중에 중국이 주도하는 6자 회담의 지속과 적극적 참여를 약속하고, 미국 설득을 위해 중국의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게 제공한 ‘화려한 선물’의 대가로 중유와 식량 등의 무상지원이 뒤따랐다. 시베리아횡단철도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나 양빈 체포․구속사건 등으로 틀어진 양국 관계를 복원시키고 맹방 관계를 재확인하였다는 것은 북중관계의 비대칭적 현실을 북한이 인정한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특히 지난 4월 방중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중국이 올해부터 본격 추진 중인 동북 3성 진흥 계획에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연계해 추진하려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이는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신의주특구 재추진 등 북한의 개방과 개발을 중국은 동북지역 개발의 큰 틀 속에서 자리 매김 하겠다는 의도이고, ‘한국-북한의 개성공단과 신의주특구-중국 동북부-시베리아’라는 연결고리를 동북아 개발플랜의 중심축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즉 북한을 중국 동북지역의 틀 속에 묶음으로써 북한핵 해결과 그에 따른 신 동북아 질서의 출현 과정에서 중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중국에 대한 의존 증대가 빠르게 증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체적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북한에게 생존권과 자주권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북한의 경제침체는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한 경제가 1999년부터 5년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약 818달러 수준으로 추정되고, 이는 1990년의 수준인 1,142달러의 70%가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비교적 양호한 기상여건과 우리의 비료 30만 톤 지원 등에 힘입어 북한이 지난해 기록한 곡물생산량 425만톤은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99년 이후 최고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요 곡물수요량(639만톤)의 2/3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북한의 지난해 대외무역규모 23.9억 달러 역시 1990년 규모(48.5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외화난으로 2003년의 원유도입량 420.7만 배럴도 1990년 1,847만 배럴의 23%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북한경제의 장기간 침체는 산업구조의 취약성과 더불어 만성적인 에너지․원자재 부족, 생산시설의 노후화, 낙후된 기술수준 등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산업 전반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외 자원과 기술 그리고 시장과의 결합 없이 북한 경제의 독자적 회생이 어렵고, 따라서 2002년 7・1조치로 상징되는 개혁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올해 7월이면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년이 되는데 북한 경제는 여전히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북한 역시 공급부족을 더 이상 내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절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북한의 체제유지는 핵무기가 아닌 새로운 방안으로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북한 지도부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관철시키는 동시에 북한이 최소한의 방어적 안보, 다자적 정치안보, 개혁과 개방을 통한 경제안보의 확보를 위해 미국과 동북아 주변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궁극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대화의 구축이 필요하다. 예로 현재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다국간 군사 대화를 주도하고 있고, 중국 역시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간 군사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갖고 있다. 일부에서 6자회담을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안보문제를 다루는 다자안보협의기구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는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 번영과 세계체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핵해결 과정에서 통일한국의 미래상 합의 이끌어내야
동시에 6자 회담 이후를 내다보는 시각으로 핵 문제 해결 이후 남북협력과 4대국 외교를 준비해나가야 한다. 주변국들은 자신의 국익에 따라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다. 즉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는 다르다. 핵 문제 해결은 북한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일부일 뿐이다. 북한 핵의 완전폐기는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에 이르는 포괄적인 북한 정책의 틀 속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즉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하기 위해서는 현재 미국이 제시하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의 선언으로서는 충분치 않다. 북미간 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의 체결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라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핵 문제의 해결이 관건이 될 것이고, 이를 위해 남한은 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의 합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즉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어느 식자의 표현대로 평양 가는 버스는 워싱턴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핵문제 해결 이후 남북한 긴장완화는 물론이고 북한의 개방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 북한이 개방될 경우 북한 정상화를 남한이 주도할 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남한은 미국이 북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도록 설득시키는 역할을 해주는 대신 남북간에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북간에 남북경제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미래 경제상에 대한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북한 시장이 개방되면 북한 경제는 외국 자본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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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과 신 동북아 그리고 통일한국의 미래상 도출
한반도 문제의 세계사적 의미
한반도와 동북아는 한반도를 들러 싼 관련국들의 관계가 대립구도를 고착화시킨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예측불허의 상황을 조성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는 매우 불안전하고, 한반도의 분단 또한 새로운 차원에서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질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그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세계평화와 번영으로 연결되는 새로운 동북아의 출현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는 세계체제와 동북아를 매개하는 중간항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평화와 공동번영을 본질로 하는 ‘신 동북아’ 등장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다. “초패권국가로서 단극세계질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의 산물인 ‘아태지역’ 개념이 북한을 무시해온 설명 방식이라면 “북한을 동북아의 일주체로 복원시키고 북핵문제를 남북관계를 넘어서는 동북아관계의 핵심의제의 하나로 설정”하는 신 동북아 구상에서는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다자주의 공간을 적극 활용해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중장기적 포부를 담은 구상”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결과 이를 통한 신 동북아의 등장은 미국 중심 구도를 확립시킨 불완전한 의미에서의 냉전질서(적대적 대결관계)의 해체가 아닌 동북아에서 대립관계를 내용적으로 해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세계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동북아 관련국간의 협력과 공동 번영은 구호 수준에 머물러 있을 정도로 ‘리더십의 빈곤’에 놓여 있다. 동북아의 핵심 관련국들인 한중일의 협력관계를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과 그 이후의 냉전구도 등 이 지역에서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어두운 과거사가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식자의 표현대로 ‘뭉치는 유럽연합(EU)’ 대 ‘흩어지는 동아시아’는 21세기를 향한 EU와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동아시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상징한다. “신성로마제국은 법을 제정할 수도 없고 세금을 징수할 수도 없으며, 군대도 모집할 수 없고, 전쟁선언도 어떠한 조약도 체결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신성로마제국을 해체시키고 민족주의가 개화한 유럽 제 민족에게 지역적 국가체제를 보장한 1648년의 웨스트팔렌(Westfalen) 조약이 분리와 배제를 내용으로 하는 근대 서구사회의 출발점이었다면 유럽연합의 완성 과정은 근대를 넘어 통합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과거의 숙적인 프랑스와 독일의 정치적 화해를 만들어냈던 1951년 ‘유럽 석탄 및 철강 공동체’라는 6개국 경제공동체에서 시작한 오늘의 유럽연합은 지난 5월에는 1945년 얄타협정으로 분리됐던 동서 유럽을 통합시키더니 최근에는 유럽연합 헌법안을 채택함으로써 경제 통합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명실상부한 정치적 통합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고유의 영토와 언어와 문화를 가진 유럽의 25개 주권국가 국민 4억5천만 명이 하나의 규범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행동한다는 정치공동체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단시킨 ‘얄타시대의 종언’(end to Yalta)이란 환호성이 유럽을 뒤흔들었던 2004년의 동아시아는 어떤가? 동아시아에서는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공동체의 출범은 차치하고 경제협력조차 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협력과 통합의 21세기 리더십의 형성과는 거리가 있는 민족주의가 더욱 강화되고 있고 그 결과 동아시아 국가들은 분열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경제적 협력조차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동질성의 부재 및 일본과 중국이 화해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14년째 지속되는 불황에 처해 심한 좌절을 겪고 있으며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헌법 개정을 지향한 '상처받은 민족주의'를 나타내고 있고, 중국은 자신감에 가득 찬 ‘적극적 민족주의’(대중화주의)를 표명하고 있다. 이 두 강대국 간의 세력다툼이 재연되고 있는 와중에서 한국은 미래지향적 한반도 구상 없이 생존 및 자유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최근 한미 안보동맹이 지역동맹으로의 전환에서 보듯이 향후 미국과 중국간의 마찰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즉 이른바 중국의 “대중화주의”와 미일의 “패권주의”가 격돌할 경우 세계 초강대국을 지향하는 중국과 이를 견제하려는 미일 세력간의 대립구도 속에서 새로운 차원의 분단고착화나 심지어 전쟁위험에 대응할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밖에 없다.
북한핵과 6자회담의 정치경제학
외형상으로 한반도의 문제는 핵과 미사일의 개발에 집착하는 북한과 이를 강력히 저지하려는 미국간의 충돌로 이해된다. 이는 양자의 이해를 조화롭게 절충할 수 있는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양자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즉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경제파탄 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북한에게 핵과 미사일의 개발은 합리적 선택인 반면,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미사일 방어망(MD)과 지역안보동맹을 구축하여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북아의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미국에게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위협의 강조 또한 합리적 선택이기 때문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의 개발에 대해 미국이 외교적 노력과 경제 제재는 물론 군사적 수단도 배제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체제의 붕괴와 냉전질서의 종언은 남북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주어 한․소 수교(1990.9),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91.12.13)과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도출(91.12.31) 그리고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남북 분야별 분과위원회 및 공동위원회가 잇달아 개최(1992.3)됨으로써 분단이후 최대규모의 남북대화가 이루어지고 한․중 관계개선(1992.8)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1993.3.12)하고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활발했던 남북대화는 중단되고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994년 10월 21일 북미간 제네바 핵합의로 북한 핵의 동결과 경수로의 전환, 북미간 관계개선이란 방식으로 타결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네바 합의로 북한과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과 긴장해소는 가능해졌지만 남북한간은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고 다시 한번 냉전상태로 되돌아갔다. 특히 제네바 합의가 북한 핵문제에 대한 점진적이고도 단계적인 해결을 제시하고 있고 해결의 주체도 북미만이 아닌 여러 국가들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북핵문제의 국제화를 결과하였다는 점이다.
2002년 10월에 터진 2차 북핵위기는 북미간 적대적 관계의 해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이 개선된 남북관계의 지렛대를 이용하여 체제 위기를 탈출하려는 시도에 대한 미국의 견제 성격이 강하다. 북한은 1990년 이후 9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면서 식량․에너지․외화 등 3난을 중심으로 북한의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 들어갔고 1998년 말에는 생존문제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1990년 1,142 달러하던 일인당 국민소득은 98년에는 절반 수준에 불과한 573달러로 하락하였다. 무역액도 1990년 규모(48.5억 달러)의 ⅓에도 못 미치는 14.4억 달러까지 하락하였고, 외화 부족으로 원유도입량도 1990년 수준(1,847만 배럴)의 거의 ⅙ 수준인 369만 배럴로 감소하였다. 이처럼 체제를 위협할 정도의 북한 경제난의 타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의 해결로 압축된다. 하나는 경제를 정상화시킬 때까지 안정적인 식량 확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개발을 위해 충분한 해외자금 확보의 문제다. 2000년까지 북한은 북미관계 타결을 통해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북한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부시정권의 등장으로 북한의 계획은 난관에 봉착하였고, 이에 북한은 한국의 협조와 지원 속에 러시아와 일본 등을 끌어들였다. 즉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가로 지명,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던 반면, 김대중 정부는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와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의 전단계로 분단체제의 평화적 관리를 추구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정주영씨의 소떼방북과 금강산 관광사업의 합의 등 남북관계의 개선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남북정상회담을 매개로 하여 2000년 7월19일 푸틴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001년 7월과 2002년 8월 러시아 방문을 통해 북러 양국은 '동해선 복원건설'에 합의, 그리고 러시아의 중재 속에 2002년 9.17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된다. 그런데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동북아 지역의 긴장 완화는 이 지역의 경제개발을 매개로 한 것이었다. 90년대 장기간 경제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일본은 과잉 유동성의 해소와 화물신칸센 중심의 산업건설공동체 건설을 통해 대량 실업의 구제와 경기회복을 목표로 한 아시아기금 창설과 아시아연합(AU)을 구상하고 있었다. 러시아도 세계경제의 과잉 유동성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여 1998년 9월말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상태였고 낙후한 동부 시베리아를 개발해야만 독자적 경제재건이 가능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남북간 철도 복원, 그리고 이를 시베리아철도와 연결해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여기에 유럽-아시아를 잇는 고속전철망까지 연결하는 '뉴 오리엔탈'을 구상하고 있다. 1998년 한국과 북한 역시 심각한 경제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1998년 북한경제는 해외 자원과 기술 그리고 시장과의 결합 없이는 독자적 회생이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공급 부족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동북아 뉴딜 플랜은 그 자체로 북한의 에너지난과 외화난을 상당히 해소시킬 뿐 아니라 한반도 및 동북아 긴장완화는 일본을 비롯한 서방과의 관계 정상화로 이어지고, 특히 북일수교에 따른 북한에 대한 일본의 배상은 북한의 경제재건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에서 나온 '북일 평양선언' 중 국교수립 후 일본이 북한에게 하기로 한 배상 관련 항목을 보면 “무상자금 협력, 저이자 장기차관 제공 및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또한 민간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견지에서 일본 국제협력은행 등에 의한 융자, 신용대부 등이 실시”될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식 개방을 거부했던 북한이 2002년 7・1조치와 더불어 신의주특구 개발계획을 추진한 연유가 동북아 개발플랜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1998년에 외환위기로 최대의 국난을 겪고 있었다. 80년대 말 3저 호황 이후 한국경제는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었고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투자와 동북아 구상이 그것이었다. 80년대 말부터 제기된 시베리아의 천연가스망을 남북한을 거쳐 일본까지 잇는 소위 ‘정주영 가스전 플랜’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철도망과 통신망까지 함께 이어 동아시아를 운송수단과 통신시설 등 거대 네트워크로 엮자는 구상이 바로 ‘동북아구상’인 것이다.
2000년 1월 이탈리아와의 수교 후 12월에는 영국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2001년 들어서도 네덜란드(1.15), 벨기에(1.23), 캐나다(2.6), 스페인(2.7), 독일(3.1), 룩셈부르크(3.5), 그리스(3.8), 그리고 같은 해 5월 14일에 유럽연합(EU)과 수교를 맺는 등 서방국가들의 연이은 대북 수교 역시 동북아 개발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지 않다. 만성적인 수요 부족과 당면한 세계금융위기의 탈출구로서 공급을 계속할 수 있는 미발달지역의 경제개발이 필요한데 3억의 인구, 노동력, 풍부한 천연자원이 존재해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동북아시아(환동해주변지역)는 러시아에서 중국, 일본에 이르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건설, 함께 건설될 정보통신네트워크, 도로ㆍ교통 인프라 프로젝트, 그리고 이것들의 실현을 가능케 할 동북아시아개발은행(또는 기금) 창설을 전망케 한다. 동북아시아 경제개발과 안정을 가져올 신 동북아의 출현은 지역평화는 물론이고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는 세계경제에서 가장 역동성을 보이는 지역이다. 동북아의 핵심국가인 한․중․일 3국은 전 세계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이들 3국의 인구는 유럽연합의 네 배나 된다. 동북아 3국의 지난해 교역 신장률은 전 세계 평균(4.6%)보다 5배나 높은 22.8%의 신장률을 기록했고, 그 결과 지난해 동북아 3국의 무역액은 2조812억 달러로 미국의 2조296억 달러를 초과했다. 동북아가 세계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동북아 국가들간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심화되고 있다. 중국이 세계의 제조공장으로 부각되고 있고 일본 중국 대만 한국은 세계 제1~4위의 최대 외환보유국이며 서로간의 3국간 경제관계 역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미국과 독일에 이어 세계 3위의 수입대국인 중국시장의 점유율을 보면 일본(17.9%), 대만(11.9%), 한국(10.5%)이 빅3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미국과 홍콩에 이어 중국의 주요 수출국이다. 일본에게 중국은 최대 수입국이자 두 번째 수출국이고, 한국은 세 번째 주요 수출입국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게 중국과 일본은 수출에서는 1위와 3위, 수입에서는 3위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신 동북아에서 미국의 자리 찾아주기
이처럼 동북아 및 세계 경제가 직면한 과잉 유동성 위기의 해소와 거대개발 수요의 창출이라는 소위 '동아시아 뉴딜 플랜'이라는 경제논리가 동북아의 낡은 질서를 뿌리 채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중국과 미국이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2002년 가을 중국이 양빈장관을 구속(2002.10.4)하고 미국은 북핵문제를 제기(2002.10.4)하였다. 그 결과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고 동북아 뉴딜 플랜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북한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과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확인시켜주는 상징적 사건들이었다. 에너지 자원이 안정적 확보를 비롯해 동북아 뉴딜 플랜에 중국의 이해가 보장되지 않고, 그리고 중국의 동북3성 개발(동북공정)과 연계되지 않는, 즉 독립적인 북한의 개방과 개발 전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중국의 입장, 그리고 미국의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한반도 및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역시 수용할 없는 미국의 입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즉 동북아 냉전구도의 해체는 냉전구도의 중심축에 있는 미국의 역할과 비중을 신 동북아에서 어떻게 재조정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냉전구도 이후의 신 동북아의 청사진에 미국이 배제되는 한, 미국은 동북아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동북아에서 냉전구도를 유지해 미국의 헤게모니 체제를 위협하는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동구권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EU 가입으로 유럽으로의 팽창이 어려워진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을 봉쇄함으로써 러시아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 게다가 이른바 ꡐ월스트리트-미국 재무부-국제통화기금(IMF) 복합체ꡑ에 도전하는 동북아개발기금의 구상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이 추진 중인 미사일방어(MD) 체제에 아시아의 일부 동맹국들이 참여함으로써 이 지역은 MD 체제에 참가하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들로 양분되고 있고, 동북아에서 지역대립 구도는 이 지역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군비 경쟁을 심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런 미국의 구상에 대해 일본 역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입장이기에 동북아에 대한 미국의 현상유지 구상은 힘을 받고 있다. 일본은 MD 체제의 참여를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뿐 아니라 MD 체제 구축에 필요한 핵심부품의 생산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 원칙 가운데 하나인 무기수출 금지 조항을 폐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북아 협력의 증대 경향을 실질적인 동북아 공동 번영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신 동북아에 미국의 이해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즉 동북아와 미국의 윈윈(win-win)게임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문제로 압축되고, 이런 점에서 한․미․일 안보동맹과 한․중․일 협력 체제의 중심에 있는 한국의 리더십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경제개발과 핵보유가 동시에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였고, 세계체제와 신 동북아를 매개하지 않는 한반도 문제의 해법은 실현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주었다. 6자회담의 등장배경은 기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북한과의 양자대화를 거부하는 미국은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화시킴으로써 북핵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북핵문제 해결과정에서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동시에 한반도 문제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에게 책임 분담을 요구하기 위해 (다자회담의 범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의 차이는 있었으나) 6자회담을 선택한 것이다. 단지,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다자틀내에서 양자대화가 가능할 수 있도록 운영상 절충을 하였다. 6자회담은 나름대로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북핵문제에서 한, 중, 러의 입장이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에 북한을 고립시키는 구도로만 작동하지는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북핵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 평화·번영과 관련된 문제로, 6자회담에서 동북아 주요국의 입장과 이해가 반영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현재까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민족공조와 한미동맹을 조화롭게 절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형상으로 볼 때 6자회담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2년 9.17 북일정상회담을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협력 강화 등 북한의 외교적 고립상태를 탈피시켜 한반도의 전쟁가능성을 희석시키려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북한을 고립시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충돌하고 있다.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입장은 북한의 전략변화로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북한은 3차 6자회담을 앞두고 지난 4월 김정일 위원장의 3차 방중을 통해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고 중국으로부터 무상원조를 얻어냈을 뿐 아니라 5월에는 고이즈미 총리와의 2차 정상회담을 통해 2002년의 평양선언을 부활시키고 식량지원을 얻어내는 등 6자회담의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남과 북 역시 북핵문제가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군사회담과 경제회담을 잇따라 개최해 우발적 충돌 방지와 상호비방 중지 등 초보적 수준의 군사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를 시행하고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모색하는 등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과거 미소를 주축으로 양분된 냉전이데올로기에 지배됐던 동북아시아는 분명히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전쟁을 통한 해결책을 중시하는 워싱턴과는 다른 평화정착을 위한 외교적 해결방안을 추구하는 모델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핵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대폭발'에 대한 우려 때문에 한국을 포함해 동북아국가들은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끊지 않으면서 북한의 위협을 상쇄시키는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안 없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머무는 것이나 대안 없이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끊는 것 모두 위험한 상황을 결과할 수 있는 것이다.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은 중국에 대한 의존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국은 매년 50만톤 내외의 원유와 30만톤 안팎의 식량을 북한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대중 수출도 2000년 3,700만 달러에서 2001년 1억6,700만 달러, 2002년에는 2억7,100만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4월 방중에 중국이 주도하는 6자 회담의 지속과 적극적 참여를 약속하고, 미국 설득을 위해 중국의 중재 역할을 요청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북한에 대한 중국의 발언권을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게 제공한 ‘화려한 선물’의 대가로 중유와 식량 등의 무상지원이 뒤따랐다. 시베리아횡단철도 노선을 둘러싼 갈등이나 양빈 체포․구속사건 등으로 틀어진 양국 관계를 복원시키고 맹방 관계를 재확인하였다는 것은 북중관계의 비대칭적 현실을 북한이 인정한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특히 지난 4월 방중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중국이 올해부터 본격 추진 중인 동북 3성 진흥 계획에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연계해 추진하려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이는 ‘동북공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신의주특구 재추진 등 북한의 개방과 개발을 중국은 동북지역 개발의 큰 틀 속에서 자리 매김 하겠다는 의도이고, ‘한국-북한의 개성공단과 신의주특구-중국 동북부-시베리아’라는 연결고리를 동북아 개발플랜의 중심축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즉 북한을 중국 동북지역의 틀 속에 묶음으로써 북한핵 해결과 그에 따른 신 동북아 질서의 출현 과정에서 중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중국에 대한 의존 증대가 빠르게 증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체적으로는 핵을 포기하는 북한에게 생존권과 자주권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북한의 경제침체는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 북한 경제가 1999년부터 5년 연속 플러스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개선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북한의 일인당 국민소득은 약 818달러 수준으로 추정되고, 이는 1990년의 수준인 1,142달러의 70%가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비교적 양호한 기상여건과 우리의 비료 30만 톤 지원 등에 힘입어 북한이 지난해 기록한 곡물생산량 425만톤은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99년 이후 최고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필요 곡물수요량(639만톤)의 2/3 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북한의 지난해 대외무역규모 23.9억 달러 역시 1990년 규모(48.5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외화난으로 2003년의 원유도입량 420.7만 배럴도 1990년 1,847만 배럴의 23%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북한경제의 장기간 침체는 산업구조의 취약성과 더불어 만성적인 에너지․원자재 부족, 생산시설의 노후화, 낙후된 기술수준 등 생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산업 전반에 상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해외 자원과 기술 그리고 시장과의 결합 없이 북한 경제의 독자적 회생이 어렵고, 따라서 2002년 7・1조치로 상징되는 개혁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올해 7월이면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년이 되는데 북한 경제는 여전히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는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북한 역시 공급부족을 더 이상 내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절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도 북한의 체제유지는 핵무기가 아닌 새로운 방안으로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북한 지도부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관철시키는 동시에 북한이 최소한의 방어적 안보, 다자적 정치안보, 개혁과 개방을 통한 경제안보의 확보를 위해 미국과 동북아 주변국가들의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궁극적으로 동북아 다자안보대화의 구축이 필요하다. 예로 현재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다국간 군사 대화를 주도하고 있고, 중국 역시 동아시아에서의 군사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사실상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간 군사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를 갖고 있다. 일부에서 6자회담을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평화·안보문제를 다루는 다자안보협의기구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이는 동북아 국가들의 공동 번영과 세계체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핵해결 과정에서 통일한국의 미래상 합의 이끌어내야
동시에 6자 회담 이후를 내다보는 시각으로 핵 문제 해결 이후 남북협력과 4대국 외교를 준비해나가야 한다. 주변국들은 자신의 국익에 따라 한반도에 영향을 끼치려 하고 있다. 즉 북핵 문제와 북한 문제는 다르다. 핵 문제 해결은 북한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일부일 뿐이다. 북한 핵의 완전폐기는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에 이르는 포괄적인 북한 정책의 틀 속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다. 즉 북한이 핵을 완전 폐기하기 위해서는 현재 미국이 제시하는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의 선언으로서는 충분치 않다. 북미간 국교정상화와 평화협정의 체결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이라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는 핵 문제의 해결이 관건이 될 것이고, 이를 위해 남한은 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겠다는 미국의 동의를 얻어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 한 남북 정상회담은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칙의 합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즉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어느 식자의 표현대로 평양 가는 버스는 워싱턴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문제는 핵문제 해결 이후 남북한 긴장완화는 물론이고 북한의 개방이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현 상황에서 북한이 개방될 경우 북한 정상화를 남한이 주도할 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북핵 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남한은 미국이 북핵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도록 설득시키는 역할을 해주는 대신 남북간에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북간에 남북경제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미래 경제상에 대한 합의가 안 된 상황에서 북한 시장이 개방되면 북한 경제는 외국 자본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