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과 서울의 선택
永樂
역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悲願을 비껴간다. 가까이는 1945년 광복군의 투입을 앞두고 불과 사흘 앞서 일왕이 항복을 하고 아흐레 앞서 소련군이 참전하는 바람에,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조국의 완전한 광복이 어이없게도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음을 잊을 수가 없다. 역사에 假定이 없다고 늘 이야기를 하지만, 이 나라에 사는 누군들 그 운명의 날짜가 며칠 비껴가 우리도 파리의 개선문에 입성하는 프랑스인들 마냥 전혀 다른 역사를 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달래지 않았으랴.
어찌 보면, 지난 10년 동안 평양의 김정일 위원장도 이와 유사한 넋두리를 수없이 반복했을 수도 있다. 하필이면 그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난 직후에 북한은 연거푸 기상재앙을 맞으며 80년대 후반부터 곪아가던 주체경제의 만성 환부가 일거에 폭발하고 만 게 아닌가.
인구의 1/10이 餓死하는 체제위기에 봉착해서 김 위원장은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다. 기실 달리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아무 대책도 없이 적성국가인 한-미-일의 원조로 근근히 연명하는 주체국가 북한에서 불만이 커져가는 군부를 달래지 않고서는, 굳이 프레데터 같은 미군기가 출현하지 않더라도 주석궁의 하루하루는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나온 게 총대중시사상이요 선군정치요 강성대국이다.
김 위원장도 안다. 이미 기아에서 살아남는 약삭빠른 인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들이 장마당과 대륙을 오가며 김 주석과 자신을 비교해 ‘무능한 폭군’으로 몰아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엔 개방 말고는 방도가 없는데, 군부를 달래기가 쉽지가 않다. 금강산이고 무엇이고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나. 그에겐 아직도 김 주석이 사후에도 누리는 절대적 권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 때를 놓쳤다. 유훈통치를 무사히 끝내고 남북 정상회담도 하고 워싱턴 코뮤니케까지 발표하며 무언가 큰 전환점을 노렸는데, 하필이면 그 직전에 미국의 수장이 바뀌어버렸다. 만사 공염불이 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듬해 터진 9.11테러는 세계사의 탈냉전시대를 마감하며 9.11 反테러시대를 열고 말았다. 이는 곧 엉거주춤한 평양에겐 93년 첫 북핵 위기 발발 시 그 원점으로 모든 게 되돌아가는 걸 의미했다. 곧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넋두리다.
반전을 시도했다. 2002년 9월 초 외신을 달구었던 신의주특구 양빈의 등장과 고이즈미의 방북은 모처럼의 특종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문제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워싱턴과 韜光養晦의 가면을 벗어던진 베이징 모두를 거스른 이 용감한 시도는 아무런 뒷심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베이징의 반격은 김 위원장이 임명한 장관을 일언반구 없이 囹圄의 몸으로 만든 게 고작이었지만, 워싱턴의 분노는 고농축우라늄 문제(HEU)로 폭발한다. 켈리의 매서운 추궁과 강석주의 대중없는 虛張聲勢는 그 축소판이다.
참으로 아찔한 때였다. 원래 협상 테이블에 모든 카드를 다 비치하는 것이기에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만의 하나 이라크 문제가 없었더라면 그 날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정국이 어찌 흘러왔을 지 알 수 없다. 마치 1334년 전처럼 토번(티벳)이 장안을 침공치 않았더라면 唐軍이 전라도 지방에 퍼질러 앉아 있을 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고, 결국 이 게임에서 가장 큰 이문을 남긴 자는 그저 광만 판 베이징이다. 평양은 어느 새 그들의 눈치를 살펴야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세 번째 넋두리의 고뇌에 직면하고 있다. 어찌 하다 보니 10년 전에는 워싱턴과 실랑이를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서울을 빼고도 무려 네 나라의 눈치를 봐야 한다. 특히 그 중 베이징은 무섭기 한량없다. 행여 도리질하면 장마당에 물건이 사라지고 동평양 서평양 발전소에 기름이 떨어져 주석궁까지 암흑이 될 수도 있고 기세로 보아 그보다 더한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군부가 있다. 북한이란 철옹성의 모기장이 장군님 치세 이래로 사방이 구멍투성이가 되었다고 불만이 그득한데, 김 주석처럼 한 판 승에 가까운 제 2의 제네바 협상이 나오기 전에는 ‘현재 핵 동결’에서 한 걸음도 나가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그렇다고 취임 이후 가장 파격적으로 나오는 워싱턴의 제안에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미국 정치는 이미 4년 전에 서울 못잖게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배웠기 때문에, 자칫 뭉그적대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가지 말란 법이 없다.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악몽이다.
그뿐 아니다. 아들 셋 있는 게 하나같이 말썽꾸러기거나 아니면 젖비린내 나는 치들이라 이들을 믿고 무얼 할 수도 없다. 어느덧 예순 셋의 나이에 몸도 예전 같잖고 갈수록 어려운 판국에 믿을 게 가족뿐이라는데 오히려 자식들 건사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게다.
어디로 가야 하나. 日暮途遠이라고 갈수록 태산이다. 도망 갈 곳도 없고 기댈 언덕도 보이지 않으며 서있는 한 뼘 땅조차 믿을 수 없는 게 그의 처지다. 결국 그에겐 마지막 선택만이 남아있다. 간명하다. “남은 패를 다 던져라!”
꿈에도 생각하기 싫은 88년 올림픽이 있고 난 이래로 평양의 일관된 외교원칙은 通美封南이었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그는 변함없다. 通美通南이라 한들 그저 서울은 종속변수다. 왜 그럴까. 지난 반세기 북조선 인민들에게 자나 깨나 들려온 이야기가 둘 있다. 하난 “때 되면 이밥에 고깃국 먹게 해줄게” 그리고 둘은 “그 전에 불구대천 원수를 내쫓고(적화통일하고) 지옥에 살고 있는 남조선 얘들을 구하자” 진정 세상 물정 모르는 북한 동포들이 통일을 외치며 흘리는 눈물은 진실일 수 있다.
여하튼 앞서 얘기가 새빨간 거짓말이란 건 측근들은 물론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고 오로지 불안한 건 뒷이야기인데, 김 위원장이 ‘人의 帳幕’에 가려 상황판단을 못하는 듯하다. 당 간부 자제들이 모인 술자리에선 버젓이 남조선 댄스곡이 흘러나오고, 일부 부르조아 인민들도 이래저래 남조선 사람들이 건네주는 돈 맛을 반기는 판국인데, 아직도 ‘사랑의 정치’에 안겨서 남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상낙원에 목숨을 걸고 산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로지 그것이 위안일지.
분명한 것은, 굳이 인권 문제를 거론치 않더라도, 앞으로 서울을 비롯한 세상물정을 인민들이 소상히 아는 걸 막을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베이징이든 위싱턴이든 도쿄든 그 어디도 ‘군사적으로 불안한 평양’을 원하지 않으며, 특히 流民의 量産地로서 북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오늘의 모호한 상황이 지속되리라 보는 것은 참으로 지극한 바램이다. 그리고 또 있다. 모든 유관 국가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구한다는 것이다. 서울처럼 민족애에 입각한 퍼주기란 꿈에도 있을 수 없다.
결국 김 위원장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서울과의 거래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어차피 누구와 거래하든 서두르지 않으면 그의 권좌는 위태롭다. 바꾸고 변화하라는 것인데, 그걸 뭉그적대고 골치 아파 외면하다가 어느덧 외톨이가 되어버렸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거래한다면 반드시 군부의 불만은 억누르고 갈 수밖에 없다. 부시의 말처럼 “핵과 미사일을 먹고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어디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이다.
하나만 봐라. 퍼주기를 하는 곳하고 냉정하게 깎아서 파는 곳하고 어디가 그에게 단골이 되겠는가. 어차피 만천하에 알려질 북한의 인권실태. 그 어떤 변명에도 세칭 자유세계는 그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이란 이름으로 그를 포용해줄 가능성이 있는 유일무이한 蘇塗는 서울이다.
이즈음에서 김 위원장에게 전하는 충고는 갈음하고 화살을 서울로 돌리겠다. 어차피 孤掌難鳴이라고 손뼉이 맞아야 무얼 하더라도 진전이 있을 게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은 듣기에도 지긋지긋한 ‘조용한 외교’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중동이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미친 곳치고 성과를 얻은 곳이 없다. 왜 그럴까. 그건 첫째, 정부가 외교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핵이 사라지는 게 우선 당면 지상과제이겠지만, 설사 그리 되더라도 동북공정이 현실화되어 漢水 以北이 漢族의 속국이 되어버린다면 우리에게 안보상 우려의 해소는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이 나을 수도 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외교를 하는가 하는 전략목표 말이다.
한반도의 장래를 저울질하는 6자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발언권이 어디에 있는가. 강경이든 유화든 워싱턴의 모든 언술은 이미 평양을 좌지우지하는 베이징에 쏠려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서울에선 지나치게 베이징에 환상을 품고 있다. 도리어 미국을 나무라고 중국의 역할에 고마움을 표하는 언사까지 나오지 않는가. 한 번만 깊이 생각해도 베이징이 지금의 역학관계를 즐기면서 못 되더라도 현상유지, 잘 되면 한반도 전체를 영향권 아래 두려는 게 분명함에도 말이다.
그리고 둘째, 정부의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조차도 모든 국력을 쏟아 부어 외교전을 펼치는데 비할 바 없이 초라한 분단 한국에서 오로지 외교를 정부에서만 하려고 한다. 그나마도 어쭙잖은 기능주의로 모든 업무를 예서제서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다. NSC가 있지만 屋上屋 이상의 무슨 역할을 하고 있나. 오늘처럼 대한민국의 외교가 6자회담 따로, 개성공단 따로, 동북공정 따로 나간다면 한반도문제에서 대한민국은 영원히 들러리의 역할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우리만 빼고 모든 유관 국가가 한반도문제의 제반 사안을 하나의 목표 아래 하나의 테이블에서 관리하고 있지 않는가.
더 이상 북한과 미국만 쳐다보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한반도문제의 당사자이자 민족의 장래를 책임질 주역으로서 대한민국이 자신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서북공정을 마무리한 베이징이 동북공정의 큰 줄기 아래 한반도문제를 좌지우지하는 전략적 행보에 서울이 종종걸음만 쳐서는 곤란하다. 최소한 티벳이나 대만문제 등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보며 베이징을 견제할 지렛대를 만들어야 하며, 외교석상에서 때로는 담대하게 민족의 이익을 관철하는 배포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장차 북한문제와 통일의 미래를 베이징의 선처만 바라며 구걸할 것인가.
아울러, 대한민국을 지탱할 유일한 세계 최강의 동맹을 홀대하며 스스로 고립무원을 자처하는 전략적인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해선 곤란하다. 반세기 혈맹의 한미관계를 오늘 미일동맹의 하위 레벨로 전락하게 만든 절반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遠交近攻의 역사적 교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서울의 리더쉽이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평양이 서울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공동의 행보를 취한다면, 민족의 장래는 밝다.
이제는 김 위원장과 담판할 때가 되었다. 단군릉을 축조하고 고구려를 계승했다 자처하는 평양이 4월 후진타오를 만나고 난 뒤로 말 한 마디 못하는 광경은 민망하다 못해 처연하다. 김 위원장에게 과연 김 주석이라면 이리 했을까 단호하게 지적하며, 남조선의 적화를 위한 가능성 없는 민족공조가 아니라 김 위원장도 살고 민족의 통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운명을 건 민족공조를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개성은 물론 동평양 서평양 화력발전소와 주석궁에 한국의 에너지가 들어가고, 북한의 장마당에 한국의 물품이 넘쳐나도록 만들자. 어차피 달리 방도가 없는 한,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장래를 의탁해봤자 고구려 패주 보장왕의 신세를 면할 수 없지 않은가. 워싱턴 또한 서울이 베이징에 기울었다는 의심을 풀 수 있다면, 불가능한 미래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한민족의 온전하고 하나된 미래를 위해 전천후 전방위로 주변국과의 외교전에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동북공정이 나오고, 그동안 퍼주기에도 북한의 어느 이권이 누구와 거래 중이란 얘기가 들려옴은, 아직은 우리가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음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기실 日暮途遠은 김 위원장에게만 할 말이 아니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지배해보지 못한 한민족, 그 宿願을 풀고자 13억 인구의 세뇌에 본격 돌입한 華夏族의 서슬 퍼런 魔手를 보고서도 戰慄할 줄 모르고 오로지 反美만 하면 전쟁위협이 사라지고 민족의 통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하룻강아지들이 작금의 대한민국 여론의 한켠을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가당찮게도 한반도문제 해결의 선의의 당사자라고 믿는 베이징과는 호의적 언사로 서로 의도치 않은 오해가 사라지리라 그들의 입장에서 극력 사고하는 신판 慕華主義者들까지 곧 세력화될 터인데,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장래를 어이할 것인가. 아직 우리가 두 발 뻗고 잘 날은 멀기만 하다.
[KoreaGlobe]에서는 추후 『KP 2010』분과를 통해서 이상의 모든 과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반도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북한 체제전환의 주역으로, 서울이 등장할 수 있도록 제반 기획에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나아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존립을 지켜내는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민족의 미래를 근심하는 모든 이들의 성원을 바란다.
永樂
역사는 언제나 사람들의 悲願을 비껴간다. 가까이는 1945년 광복군의 투입을 앞두고 불과 사흘 앞서 일왕이 항복을 하고 아흐레 앞서 소련군이 참전하는 바람에,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조국의 완전한 광복이 어이없게도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졌음을 잊을 수가 없다. 역사에 假定이 없다고 늘 이야기를 하지만, 이 나라에 사는 누군들 그 운명의 날짜가 며칠 비껴가 우리도 파리의 개선문에 입성하는 프랑스인들 마냥 전혀 다른 역사를 열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달래지 않았으랴.
어찌 보면, 지난 10년 동안 평양의 김정일 위원장도 이와 유사한 넋두리를 수없이 반복했을 수도 있다. 하필이면 그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난 직후에 북한은 연거푸 기상재앙을 맞으며 80년대 후반부터 곪아가던 주체경제의 만성 환부가 일거에 폭발하고 만 게 아닌가.
인구의 1/10이 餓死하는 체제위기에 봉착해서 김 위원장은 ‘고난의 행군’을 선포했다. 기실 달리 할 말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아무 대책도 없이 적성국가인 한-미-일의 원조로 근근히 연명하는 주체국가 북한에서 불만이 커져가는 군부를 달래지 않고서는, 굳이 프레데터 같은 미군기가 출현하지 않더라도 주석궁의 하루하루는 가시방석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나온 게 총대중시사상이요 선군정치요 강성대국이다.
김 위원장도 안다. 이미 기아에서 살아남는 약삭빠른 인민들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들이 장마당과 대륙을 오가며 김 주석과 자신을 비교해 ‘무능한 폭군’으로 몰아가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국엔 개방 말고는 방도가 없는데, 군부를 달래기가 쉽지가 않다. 금강산이고 무엇이고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나. 그에겐 아직도 김 주석이 사후에도 누리는 절대적 권위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결국 때를 놓쳤다. 유훈통치를 무사히 끝내고 남북 정상회담도 하고 워싱턴 코뮤니케까지 발표하며 무언가 큰 전환점을 노렸는데, 하필이면 그 직전에 미국의 수장이 바뀌어버렸다. 만사 공염불이 되는 정도를 넘어서서 이듬해 터진 9.11테러는 세계사의 탈냉전시대를 마감하며 9.11 反테러시대를 열고 말았다. 이는 곧 엉거주춤한 평양에겐 93년 첫 북핵 위기 발발 시 그 원점으로 모든 게 되돌아가는 걸 의미했다. 곧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넋두리다.
반전을 시도했다. 2002년 9월 초 외신을 달구었던 신의주특구 양빈의 등장과 고이즈미의 방북은 모처럼의 특종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문제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워싱턴과 韜光養晦의 가면을 벗어던진 베이징 모두를 거스른 이 용감한 시도는 아무런 뒷심 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베이징의 반격은 김 위원장이 임명한 장관을 일언반구 없이 囹圄의 몸으로 만든 게 고작이었지만, 워싱턴의 분노는 고농축우라늄 문제(HEU)로 폭발한다. 켈리의 매서운 추궁과 강석주의 대중없는 虛張聲勢는 그 축소판이다.
참으로 아찔한 때였다. 원래 협상 테이블에 모든 카드를 다 비치하는 것이기에 가볍게 볼 수도 있지만, 만의 하나 이라크 문제가 없었더라면 그 날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 정국이 어찌 흘러왔을 지 알 수 없다. 마치 1334년 전처럼 토번(티벳)이 장안을 침공치 않았더라면 唐軍이 전라도 지방에 퍼질러 앉아 있을 지도 모르는 판국이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고, 결국 이 게임에서 가장 큰 이문을 남긴 자는 그저 광만 판 베이징이다. 평양은 어느 새 그들의 눈치를 살펴야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여기서 김 위원장은 세 번째 넋두리의 고뇌에 직면하고 있다. 어찌 하다 보니 10년 전에는 워싱턴과 실랑이를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서울을 빼고도 무려 네 나라의 눈치를 봐야 한다. 특히 그 중 베이징은 무섭기 한량없다. 행여 도리질하면 장마당에 물건이 사라지고 동평양 서평양 발전소에 기름이 떨어져 주석궁까지 암흑이 될 수도 있고 기세로 보아 그보다 더한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군부가 있다. 북한이란 철옹성의 모기장이 장군님 치세 이래로 사방이 구멍투성이가 되었다고 불만이 그득한데, 김 주석처럼 한 판 승에 가까운 제 2의 제네바 협상이 나오기 전에는 ‘현재 핵 동결’에서 한 걸음도 나가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그렇다고 취임 이후 가장 파격적으로 나오는 워싱턴의 제안에 답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미국 정치는 이미 4년 전에 서울 못잖게 결과를 점치기 어렵다는 것을 잘 배웠기 때문에, 자칫 뭉그적대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가지 말란 법이 없다. 그건 더할 나위 없는 악몽이다.
그뿐 아니다. 아들 셋 있는 게 하나같이 말썽꾸러기거나 아니면 젖비린내 나는 치들이라 이들을 믿고 무얼 할 수도 없다. 어느덧 예순 셋의 나이에 몸도 예전 같잖고 갈수록 어려운 판국에 믿을 게 가족뿐이라는데 오히려 자식들 건사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니 하늘이 원망스러울 게다.
어디로 가야 하나. 日暮途遠이라고 갈수록 태산이다. 도망 갈 곳도 없고 기댈 언덕도 보이지 않으며 서있는 한 뼘 땅조차 믿을 수 없는 게 그의 처지다. 결국 그에겐 마지막 선택만이 남아있다. 간명하다. “남은 패를 다 던져라!”
꿈에도 생각하기 싫은 88년 올림픽이 있고 난 이래로 평양의 일관된 외교원칙은 通美封南이었다. 정상회담 이후에도 그는 변함없다. 通美通南이라 한들 그저 서울은 종속변수다. 왜 그럴까. 지난 반세기 북조선 인민들에게 자나 깨나 들려온 이야기가 둘 있다. 하난 “때 되면 이밥에 고깃국 먹게 해줄게” 그리고 둘은 “그 전에 불구대천 원수를 내쫓고(적화통일하고) 지옥에 살고 있는 남조선 얘들을 구하자” 진정 세상 물정 모르는 북한 동포들이 통일을 외치며 흘리는 눈물은 진실일 수 있다.
여하튼 앞서 얘기가 새빨간 거짓말이란 건 측근들은 물론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고 오로지 불안한 건 뒷이야기인데, 김 위원장이 ‘人의 帳幕’에 가려 상황판단을 못하는 듯하다. 당 간부 자제들이 모인 술자리에선 버젓이 남조선 댄스곡이 흘러나오고, 일부 부르조아 인민들도 이래저래 남조선 사람들이 건네주는 돈 맛을 반기는 판국인데, 아직도 ‘사랑의 정치’에 안겨서 남조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상낙원에 목숨을 걸고 산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로지 그것이 위안일지.
분명한 것은, 굳이 인권 문제를 거론치 않더라도, 앞으로 서울을 비롯한 세상물정을 인민들이 소상히 아는 걸 막을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베이징이든 위싱턴이든 도쿄든 그 어디도 ‘군사적으로 불안한 평양’을 원하지 않으며, 특히 流民의 量産地로서 북한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오늘의 모호한 상황이 지속되리라 보는 것은 참으로 지극한 바램이다. 그리고 또 있다. 모든 유관 국가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을 구한다는 것이다. 서울처럼 민족애에 입각한 퍼주기란 꿈에도 있을 수 없다.
결국 김 위원장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서울과의 거래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어차피 누구와 거래하든 서두르지 않으면 그의 권좌는 위태롭다. 바꾸고 변화하라는 것인데, 그걸 뭉그적대고 골치 아파 외면하다가 어느덧 외톨이가 되어버렸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그리고 거래한다면 반드시 군부의 불만은 억누르고 갈 수밖에 없다. 부시의 말처럼 “핵과 미사일을 먹고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과제는 어디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이다.
하나만 봐라. 퍼주기를 하는 곳하고 냉정하게 깎아서 파는 곳하고 어디가 그에게 단골이 되겠는가. 어차피 만천하에 알려질 북한의 인권실태. 그 어떤 변명에도 세칭 자유세계는 그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이란 이름으로 그를 포용해줄 가능성이 있는 유일무이한 蘇塗는 서울이다.
이즈음에서 김 위원장에게 전하는 충고는 갈음하고 화살을 서울로 돌리겠다. 어차피 孤掌難鳴이라고 손뼉이 맞아야 무얼 하더라도 진전이 있을 게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은 듣기에도 지긋지긋한 ‘조용한 외교’에 진절머리가 나 있다. 중동이든 중국이든 북한이든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미친 곳치고 성과를 얻은 곳이 없다. 왜 그럴까. 그건 첫째, 정부가 외교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핵이 사라지는 게 우선 당면 지상과제이겠지만, 설사 그리 되더라도 동북공정이 현실화되어 漢水 以北이 漢族의 속국이 되어버린다면 우리에게 안보상 우려의 해소는 없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이 나을 수도 있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외교를 하는가 하는 전략목표 말이다.
한반도의 장래를 저울질하는 6자회담에서 대한민국의 발언권이 어디에 있는가. 강경이든 유화든 워싱턴의 모든 언술은 이미 평양을 좌지우지하는 베이징에 쏠려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서울에선 지나치게 베이징에 환상을 품고 있다. 도리어 미국을 나무라고 중국의 역할에 고마움을 표하는 언사까지 나오지 않는가. 한 번만 깊이 생각해도 베이징이 지금의 역학관계를 즐기면서 못 되더라도 현상유지, 잘 되면 한반도 전체를 영향권 아래 두려는 게 분명함에도 말이다.
그리고 둘째, 정부의 독불장군 스타일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조차도 모든 국력을 쏟아 부어 외교전을 펼치는데 비할 바 없이 초라한 분단 한국에서 오로지 외교를 정부에서만 하려고 한다. 그나마도 어쭙잖은 기능주의로 모든 업무를 예서제서 사이좋게 나눠 갖고 있다. NSC가 있지만 屋上屋 이상의 무슨 역할을 하고 있나. 오늘처럼 대한민국의 외교가 6자회담 따로, 개성공단 따로, 동북공정 따로 나간다면 한반도문제에서 대한민국은 영원히 들러리의 역할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우리만 빼고 모든 유관 국가가 한반도문제의 제반 사안을 하나의 목표 아래 하나의 테이블에서 관리하고 있지 않는가.
더 이상 북한과 미국만 쳐다보는 근시안에서 벗어나 한반도문제의 당사자이자 민족의 장래를 책임질 주역으로서 대한민국이 자신의 위상을 분명히 해야 할 때이다. 서북공정을 마무리한 베이징이 동북공정의 큰 줄기 아래 한반도문제를 좌지우지하는 전략적 행보에 서울이 종종걸음만 쳐서는 곤란하다. 최소한 티벳이나 대만문제 등 동아시아 전체를 바라보며 베이징을 견제할 지렛대를 만들어야 하며, 외교석상에서 때로는 담대하게 민족의 이익을 관철하는 배포도 보여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장차 북한문제와 통일의 미래를 베이징의 선처만 바라며 구걸할 것인가.
아울러, 대한민국을 지탱할 유일한 세계 최강의 동맹을 홀대하며 스스로 고립무원을 자처하는 전략적인 어리석음을 더 이상 범해선 곤란하다. 반세기 혈맹의 한미관계를 오늘 미일동맹의 하위 레벨로 전락하게 만든 절반의 원인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遠交近攻의 역사적 교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서울의 리더쉽이다.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평양이 서울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공동의 행보를 취한다면, 민족의 장래는 밝다.
이제는 김 위원장과 담판할 때가 되었다. 단군릉을 축조하고 고구려를 계승했다 자처하는 평양이 4월 후진타오를 만나고 난 뒤로 말 한 마디 못하는 광경은 민망하다 못해 처연하다. 김 위원장에게 과연 김 주석이라면 이리 했을까 단호하게 지적하며, 남조선의 적화를 위한 가능성 없는 민족공조가 아니라 김 위원장도 살고 민족의 통일도 가능하게 만드는, 운명을 건 민족공조를 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개성은 물론 동평양 서평양 화력발전소와 주석궁에 한국의 에너지가 들어가고, 북한의 장마당에 한국의 물품이 넘쳐나도록 만들자. 어차피 달리 방도가 없는 한,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장래를 의탁해봤자 고구려 패주 보장왕의 신세를 면할 수 없지 않은가. 워싱턴 또한 서울이 베이징에 기울었다는 의심을 풀 수 있다면, 불가능한 미래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한민족의 온전하고 하나된 미래를 위해 전천후 전방위로 주변국과의 외교전에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동북공정이 나오고, 그동안 퍼주기에도 북한의 어느 이권이 누구와 거래 중이란 얘기가 들려옴은, 아직은 우리가 출발선에도 서지 못했음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기실 日暮途遠은 김 위원장에게만 할 말이 아니다. 지난 수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지배해보지 못한 한민족, 그 宿願을 풀고자 13억 인구의 세뇌에 본격 돌입한 華夏族의 서슬 퍼런 魔手를 보고서도 戰慄할 줄 모르고 오로지 反美만 하면 전쟁위협이 사라지고 민족의 통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하룻강아지들이 작금의 대한민국 여론의 한켠을 좌지우지하고 있지 않은가. 나아가 가당찮게도 한반도문제 해결의 선의의 당사자라고 믿는 베이징과는 호의적 언사로 서로 의도치 않은 오해가 사라지리라 그들의 입장에서 극력 사고하는 신판 慕華主義者들까지 곧 세력화될 터인데,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장래를 어이할 것인가. 아직 우리가 두 발 뻗고 잘 날은 멀기만 하다.
[KoreaGlobe]에서는 추후 『KP 2010』분과를 통해서 이상의 모든 과제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반도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북한 체제전환의 주역으로, 서울이 등장할 수 있도록 제반 기획에 열과 성을 다할 것이다. 나아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존립을 지켜내는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민족의 미래를 근심하는 모든 이들의 성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