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인권, 다시 보자

by 希言 posted Feb 28, 2005
지난 1월 22일 서울역에서 유사이래 최초로 거리노숙인들의 강한 저항의 몸짓인 폭동이 발생했다. 서울역 사건의 원인은 응급거리의료체계의 부재에서 발생한 중증질환 노숙인 2인의 죽음이었지만 그들의 죽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만큼 냉혹한 삶의 현장인 거리의 상황은 악화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저항은 노숙인 문제가 노숙인의 숫자에 비해 엄청난 사회적 폭발성을 가졌음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 대구역에서도 경찰과 노숙인들 간의 대규모의 충돌이 있을 뻔 하였다. 그러나 대구거리노숙인상담보호센터의 적절한 위기개입으로 극단적인 충돌은 간신을 막을 수 있었다. 이렇듯 사각지대 인권의 외면이 종기를 크게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노숙인 복지 서비스는 괄목상대했으나 아이러니하게 노숙인 복지의 사각지대도 늘어났다. 사각지대가 늘어난 만큼 노숙인 인권이 소홀하게 다뤄졌다. 사각지대의 발생은 노숙인 복지가 콘텐츠 중심이 아니라 하드웨어 중심으로 접근되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중심의 복지서비스는 노숙인 지원단체들 간의 연대의식과 협력체계를 높이기보다는 시설이기주의를 확장, 심화시킬 뿐이다. 이는 서울시의 전시행정과 노숙인 지원단체들의 생존의 욕구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연대의식과 협력체계의 부재와 시설이기주의를 심화는 속칭 ‘뜨는 사업’에 대한 서비스 중복을 발생시키고 ‘빛이 안 나는 사업’에 대한 외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커질 때로 커진 종기를 치료해야 한다. 100여명, 200여명이 이용할 수 있는 드롭인-센터를 연다고 치료될 문제는 아니다. 1.22 서울역 사건의 원인은 시설이 모자라서 일어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본원인은 노숙인 인권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계획적인 전략수립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숙인의 자존감 향상 등을 위해 거리급식을 실내급식으로 유도해야>

거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노숙인 인권문제를 진단한 뒤 약 처방을 해보도록 하겠다. 전국적으로 거리노숙인들이 이용하는 드롭인-센터가 10개소(정부지원 7개소, 미지원 3개소)가 있고, 무료급식도 당사자만 좀 부지런하다면 하루 3끼를 다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거리노숙인의 인권문제는 서비스의 절대적인 양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서비스 제공과정, 즉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거리무료급식은 봉사단체나 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선(善)의지로 이루어진 자선활동이지만 지하도나 지하 주차장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리노숙인들의 자존감과 위생문제를 배려할 수는 없다. 사실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최소한의 가림막도 없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굉장한 수치심을 동반하는 일이며, 위생에도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무료급식 봉사단체들 중 몇몇 일부의 단체가 무료급식을 하기 전에 종교의식을 강요에 가깝게 진행하는 문제이다. 5~10여분정도의 종교의식이라면 종교인들의 신앙심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추위 겨울 지하도나 지하 주차장에서 급식 전 30~1시간가량 종교의식을 치루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종교의식에 참여하기 싫은 노숙인이라면 다 끝난 뒤 배식 받으러 가면 되겠지만 사정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무료급식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미리 가서 줄을 서야한다. 그래서 몇몇 소신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료급식을 하는 봉사단체가 진행하는 종교의식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긴 종교의식 뒤 무료급식을 하는 봉사단체를 매도하고 싶지는 않다. 정부지원 없이 재원을 마련하려면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데, 노숙인들과 함께 종교의식을 치루는 것만큼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좋은 기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식사 단가로 치면 2000원 미만의 급식을 제공하며 30분~1시간가량 식당도 아닌 지하도나 지하주차장에서 추위와 더위에 맞서 싸우기도 힘든 상황에 놓인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일방적인 종교의식을 진행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거리 무료급식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가 무료급식 식당을 개소하여 거리급식을 실내급식으로 유도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무료급식 식당의 설치 후 거리급식을 실내급식으로 유도한다면 거리노숙인들의 자존감과 위생, 종교의식 등의 문제는 크게 줄어 들것이다. 무료식당의 설치는 긍정적인 도미노 효과를 낼 것이다.

우선 실내급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거리노숙인들이 열악한 거리급식보다 실내급식을 택할 것이다. 실내급식이 이루어진다면, 아무리 공간이 큰 식당이라 하더라도 몇 백 명씩 대기시켜놓고 기도를 마친 뒤 배식을 못하기 때문에 봉사자든 노숙인이든 절실한 신앙인만 배식 전에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시민단체와 개인들이 노숙인 복지 서비스에 봉사자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료급식처럼 봉사자들이 쉽지 그리고 많이 참여할 수 있는 봉사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요 노숙 거점 지역에 하드웨어격인 무료급식 식당을 지방자체 단체가 만들고, 이곳을 봉사단체들이 요일마다 돌아가면서 사용도록 한다면 노숙인의 자존감 보호, 위생, 종교의식의 강요 등 거리급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권단체가 나서 알코올과 정신질환이 심한 노숙인에 대한 위기개입을 해야>

현행 거리노숙인 지원정책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 바로 알코올 및 정신질환 노숙인에 대한 대안 없는 방치이다. 전체 거리노숙인 중에서 알코올이나 정신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지닌 노숙인의 비율이 대략 40%정도라고 한다. 상황은 이토록 심각한데 거리 야간상담 과정에서 알코올이나 정신질환이 심각한 노숙인을 만나도 상담원들이 조치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1987년 형제원 사건 뒤부터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강제수용정책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이 정책은 우리사회가 지켜야할 중요한 인권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정책이라 할지라도 정책 집행과정에서 제외되거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 알코올이나 정신질환이 심각한 거리노숙인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물론 정신과 전문의와 경찰, 상담원, 인권단체 회원들이 협력체계를 갖춰 알코올과 정심질환이 심각한 거리노숙인들의 위기개입을 한다면 해결 가능하지만 현행 서비스 체계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그동안 정신과 전문의가 포함된 거리상담팀을 구성하여 가동해보기도 했지만 정착하지 못하였다. 정신과 전문의의 열의도 문제였지만 서울시 당국의 무성의함, 예산의 부족 등이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정신과 전문의-경찰-상담원-인권단체 회원들’로 짜여진 서비스 체계를 갖추지 않는 한 알코올이나 정신질환(여성노숙인이 다수임)위기개입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위기개입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들어가야 할 비용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전시행정에 길들여진 지방자치단체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표가 나지 않는 복지시스템 구축에 비용을 투자를 잘 안하기 때문이다.

인권단체가 먼저 나서야 한다. 알코올과 정신질환이 심각한 노숙인들을 거리에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다. 특히 정신질환 노숙인들 중에는 다수의 여성노숙인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폭력 등 야만적인 폭력에 많이 노출된 여성노숙인 그중에서도 정신질환 여성노숙인들은 빠른 위기개입을 통해서 긴급보호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회적 소수자인 거리노숙인들의 인권문제를 소홀하게 다룰 수는 없다. 긴급한 위기개입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권단체의 감시와 견제가 위기개입 시스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알코올과 정신질환이 심한 노숙인에 대한 적절한 위기개입과 인권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의 적절한 예산 투입과 정부행정조직(ex」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 등)간의 협력체계구축, 인권단체의 참여 보장을 통한 감시와 견제가 요구된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해결할 수 없는 게 방치되고 있는 알코올과 정신질환 노숙인(여성노숙인 포함)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거리노숙인 의료문제 등 다수의 다각지대가 존재한다. 특히 1.22 서울역 사건의 본질적인 원인은 KTX 측과 협력하여 서울역사에 배회하는 거리노숙인들에 대한 의료보호체계를 못 갖춰 스크린을 못한 측면이 컸다. 이렇듯 강조하지만 시설의 수가 모자라 인권문제를 방치하는 게 아니라 위기개입서비스체계 구축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 전문가그룹, 인권단체, 관계기관(KTX, 경찰 등), 인권단체의 협력의식이 부족해서 노숙인 인권문제가 방치되는 것이다.

지난 1.22 서울역 사건 이후 노숙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더욱 심해졌다. 여론화된 사회적 편견은 노숙인 복지 정책 수립과정에 은밀하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노숙인 의료비 확충 문제를 놓고 보더라도 정책당국자나 관계자들은 노숙인들이 서울역 상담소에서 보인 태도(노숙인에 대한 이해가 없을 경우 굉장히 불쾌할 수도 있을 것이다)에서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감정이 섞인 보편화의 오류까지 보이고 있다. 노숙인 같은 사회적 편견이 심한 계층의 인권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몇 몇 특수한 케이스를 일반적인 케이스로 확대하여 보편화의 오류를 겪는 우(愚)를 범(犯)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복지정책(예산을 포함하여)의 기획에서 개인의 특수한 문제를 배려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집행에 있어서는 CASE BY CASE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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