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환경 불안에 따른 우리 경기의 전망
스태그플레이션 함정에 빠진 미국경제?
최근 들어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환경이 불안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미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미국 경기가 소프트 패치(soft patch)가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이란 함정에 빠진 것이라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1분기 GDP가 연율환산 시 3.1% 증가했다고 밝혔다. 월가 예상치 3.6%를 밑도는 것은 물론 2003년 1분기 1.9% 성장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투자가 지난해 4분기 14.5% 증가에서 1분기에는 4.7% 증가로 대폭 줄었다. 특히 설비와 소프트웨어 투자는 2년래 최저치로 급감했다. 기업재고도 802억 달러 늘어 작년 4분기 472억 달러의 배 수준을 기록했다. 재고가 빠른 시일 내에 처리되지 않으면 생산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3월 미국의 공식 실업률은 5.2%로 이는 클린턴행정부시절의 평균수준으로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나쁘지 않지만 이는 적극적인 구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것일 뿐이고 다른 지표들을 보면 90년대보다 노동시장 상황이 나쁘다. 성인 중 고용자 비중이 과거보다 낮고 실업자들이 재취업에 걸리는 기간이 90년대에 비해 훨씬 길어지고 있는 반면, 고용시장이 어렵다 보니 노동자들에게는 협상력이 없어 임금 인상이 미미한 수준이다. 그 결과 미국 경제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은 1분기에 3.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작년 4분기 증가율 4.2%보다 낮은 수치다. 실제로 소비심리의 대표지수인 소매판매는 3월 0.3% 증가에 그쳤다. 이러다보니 많은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미국의 2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종래 3.5~4.2%에서 2.5~3.5%로 낮추고 있다. 반면, 물가 상승 정도를 나타내는 개인소비지출(PCE) 지수도 연율 2.2% 증가해 2001년 4분기 이후 3년래 최대치를 나타냈다. 4분기 PCE 상승률은 1.7%였다. 이처럼 성장률이 둔화되고 물가압력이 증대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증대하고 있는 것이다.
여력이 없는 유럽연합과 일본 경제
여기에 고유가로 2월 무역수지 적자가 월간기준 사상 최고치인 610억4천만 달러를 기록하는 등 미국 경제의 최대 난관인 무역적자가 확대됨에 따라 통상압력과 위안화 절상압박 그리고 달러화 가치 하락 등 세계경제환경이 극도로 불안정해지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미국인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하는 반면, 미국인들의 가처분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년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거의 제로에 가까운 실정으로 지난해 1분기 1%, 2분기 1.2%, 3분기 0.7%, 4분기 1.6%에 불과하다. 문제는 소비를 줄일 경우 경기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은 교역 상대국들의 내수 진작, 즉 수입 확대를 통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해소시켜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유럽대륙의 경기도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어 미국상품에 대한 수입을 크게 증가시킬 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특히 EU 전체의 40%를 차지하는 역내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과 프랑스 등이 사상최고의 실업률로 허덕이고 있고 재정적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고유가와 유로화 강세 등으로 올 성장목표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유로 단일통화에 가입한 12개국의 올 평균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의 2.0%에 못 미치는 1.6%에 그칠 전망이다. 독일 기업실사지수는 지난 2003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5%에서 0.7%로 하향 조정하였고, 프랑스 역시 기업실사지수가 1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이탈리아와 비슷한 1.2%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다. 영국 정도가 EU 평균치보다 높은 2.8%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한편, 2002년 마이너스(-) 성장을 하였던 일본경제는 2004년에는 2.4%를 기록하고, 소비자물가지수도 지난해 4분기에는 플러스(+)로 반전되는 등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지수가 올해 1월 -0.1%, 2월 -0.3%로 다시 후퇴하면서 디플레이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지난해 말 4.5%까지 하락했던 실업률도 올 2월에는 4.7%로 상승하였고, 지난해 말 -0.3%까지 하락하였던 기업의 재고율도 올 1월과 2월에 2.2%와 3.0%로 다시 상승하는 등 올해 성장률이 0.8% 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 EU 그리고 일본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중국만이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중국경제는 긴축조치에도 불구하고 1분기에 예상보다 높은 9.5%의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중국경제가 성장할수록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증대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적자는 전년보다 30.5% 늘어난 1,620억 달러(미국 전제 무역적자의 약 26%)로 한 나라에 대한 적자로는 미국 역사상 최대였다. 게다가 올 들어 1~2월중 미국의 중국제품 수입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37%나 급증했다. 반면 미국의 대중국 수출은 10%나 감소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역조에 이어 성장률 격차가 커짐에 따라 미국의 대중국 통상압력과 위안화 절상 요구의 강도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문제는 위안화 절상으로 중국제품의 미국 수출을 줄이는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저소득국가인 중국이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을 늘이는 것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문제를 미국의 주요 교역파트너들이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재정적자와 신용버블은 미국경제의 또 다른 난관
미국경제의 또 하나의 최대 난관인 재정적자 해소 역시 현재로서는 간단치가 않다. 지난 9월 말로 끝난 2004 회계연도의 재정적자가 4,130억 달러로 사상 최고로 이 같은 재정적자는 부시 행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펼친 대규모 감세정책과 이라크 점령 및 테러와의 전쟁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결과다. 의회예산국은 2005-2014 회계연도 기간의 예상 누적적자가 2조2천900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최근 그린스펀 미국 연준 의장이 "연방 재정적자가 지탱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현재의 추세를 역전시키지 않는 한 경기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거나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가 있다.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정부의 수입을 증가시키거나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추가 감세를 검토하고 있는 부시행정부에게 증세를 기대할 수도 없지만 세금 인상은 소비와 경기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반면, 지출 역시 줄일 여력이 거의 없는 상태다. 인플레이션 압력과 더불어 재정적자의 증대는 금리 인상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결과 성장률 부진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 기조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용버블 역시 금리 인상의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초저금리에 따라 유동성이 크게 증가한 결과 경제주체들의 부도율이 급등할 위험이 증대하면서 신용 버블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부채와 더불어 저금리 기조로 투기등급 채권발행의 급증, 1987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미국의 모기지 부채 증가율 등으로 미국의 가계․기업․정부의 부채증가율은 1988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금리 인상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내년에 미국 경기가 본격적인 후퇴 국면으로 진입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노사대타협과 사회통합을 통한 자신감 회복
이처럼 향후 미국과 세계 경기의 비관적인 전망은 대외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율 4.6%는 전적으로 수출에 의해 달성된 것이고, 올들어 내수가 미약하나마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본격적 추세를 확인하기도 전에 대외환경이 나빠지면 고용 및 설비투자 회복에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경기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줄어들면서 주가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내수회복을 위해 노사대타협 등 사회통합이 시급하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임금경쟁력 상실, 생산성 저하, 외국인 투자 감소, 투자 위축과 경영권 불안 등의 문제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나 고용 등의 문제를 풀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타협과 사회통합만이 경제주체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