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글로브는 2002년부터 해마다 국치일(8월 29일)을 전후하여 몽양-죽산-장준하로 이어지는 우리 헌정사의 잊혀진 주역을 찾아 그 뜻을 되살리는 '헌정사 기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올 해는 기행과 별도로 '죽산연구소' 설립을 위한 기획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5월 24일 "조봉암 연구"의 저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의 박태균 교수를 초청해 화요대화마당을 진행했으며, 향후 관련 연구자료와 연구자를 모아 죽산의 현대적 의미를 찾는 대중적 작업을 계속할 것이다. 특히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으로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고, 동북공정과 독도문제 등 외파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열어가는데 죽산연구소가 소중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회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촉구한다. 아래 글을 죽산의 부활이 갖는 의미에 대한 최배근 운영위원장 글이다.[편집자 주]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적 진보주의’의 모색
우리 사회에서의 이념 논쟁을 보면 우리의 현실에 기초하기보다는 ‘논쟁을 위한 논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그 정책 대안 역시 구체적이지 않고 상호간에 차이도 모호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지식인의 식민지성에서 비롯한다. 예를 들어, 논쟁이 되는 정치 이념들은 본래 우리의 것이 아니라 수입된 것으로 우리 현실과 실질적 관련성이 배제된 추상적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 형식적인 진보와 제국주의의 반동성에 대한 고발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은 ‘옛 싸움을 흉내내는’ 마르크스 시대의 청년헤겔파와 무엇이 다른가.
그 결과 오늘의 진보진영은 죽산 조봉암(1899~1959)과 진보당의 성과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물론자임을 부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입된 이념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았던 죽산은 이념적 양극화를 제어하고 사회통합을 위한 '한국적 길'을 모색한 ‘한국적 진보주의’자였다. 흔히 죽산과 진보당을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라는 잣대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죽산과 진보당에 깊은 이해 없이 수입된 이념들로 자의적으로 재단한 것이다.

평화통일론과 통합의 리더십
현대사에서 6.25전쟁은 역사적으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수백만 명의 동포가 희생되는 전쟁을 치르고서도 통일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무력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은 무모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을 뿐 아니라 무력 통일은 그 자체가 반역사적이고 반인간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또한, 6.25전쟁은 우리 민족만의 전쟁이 아니고 미국, 소련, 중국 등이 개입된 국제전쟁이었다. 전쟁을 하고도 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은 배후에 미국, 소련, 중국이 개입되어 우리 민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들의 전략에 따라 진행되었다.
즉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문제라는 사실을 입증했고, 통일문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다. 이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냉전적 세계질서의 종식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지속되는 적대적 대결관계를 해소하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려면 민족 전체가 받아들일 수 있고 국제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문명을 창출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6.25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산독재와 백색독재를 배격하고 민주체제를 확립하고 생산과 분배를 합리적으로 조정하여 서민생활을 보장하는 정치를 구현하고, 민주적 평화통일을 이룩하는 것이었다. 특히 평화통일론은 통일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려 했던 반민주적이고 반역사적이고 반인간적인 분단세력의 허구를 깨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 죽산과 진보당의 상징이었다.
당시 독재체제를 강화하고 영구집권의 길을 트려고 하는 이승만과 자유당에 대항해 민주대동운동이 제기되었고, 민주대동운동 세력에서 이탈하여 민주당을 창당한 세력들은 표면적으로는 죽산을 기피하는 세력이었지만 그 본질은 분단세력으로 무력통일을 주장하는 자유당이나 이승만과 본질적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적 진보주의를 표방하고 통합의 리더십의 창출에 온 몸을 던졌던 죽산의 ‘한국적 길’ 찾기는 현재 진행형이기에 죽산은 역사적으로 복원되고 부활되어야 한다.
최배근(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