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장기불황'과 다른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
최배근(운영위원장, 건국대 경상학부 교수)
‘일본식 장기불황’의 가능성?
지난 5월 30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서 "현 단계에서 경제시스템의 획기적 개선(Quantum Jump)을 이루지 못할 경우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는 지난 5월 20일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2.7% 성장하는데 그쳤고, 수출증가율도 한자리 수로 둔화됐다는 발표에 뒤이어 나온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한달 보름 전인 지난 4월16일 터키를 방문, 동포간담회 등의 자리에서 “한국경제는 완전히 회복됐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경제부총리의 ‘일본식 장기침체’ 가능성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2년간 내수불황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증가율이 둔화되면서 지난 4월에는 경상수지가 2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서고 경기선행지수도 하락으로 반전되면서 '내외수 복합불황'이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대부분의 경제전문가와 경제연구소들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강하게 피력할 때 필자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줄곧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4월 3일자 칼럼 참고). 그러나 필자가 주장한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우려’는 경제부총리가 제기한 ‘일본식 장기불황’의 내용과는 크게 다르다.
일본식 장기불황과 다른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
지난 5월 25일 일본의 이토 타쯔야 금융담당 대신은 금융청(FSA)을 통해 "올 3월 기준 주요 시중은행의 전체 여신 대비 무수익여신(NPL) 비율이 2002년의 절반 수준인 2.9%로 떨어져 부실대출 문제가 정상화됐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경기가 정점을 통과한 1991년 2월 이후 일본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고,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대변하던 일본 금융권의 부실대출 문제에 금융감독당국이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고 공식선언을 한 것이다.
침체의 기간으로 보나 지불한 비용으로 보나 일본의 금융개혁은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1990년대 금융권의 부실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9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2000년 이후에 투입된 공적자금도 50조엔으로 추정된다. 은행의 구조조정 및 부실채권 처리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이 이처럼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은행 및 기업의 경영정상화가 지연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한국과 달리 은행이나 주요 기업들을 사실상 외국자본에 넘겨주거나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의 실업 발생, 그리고 비정규직으로의 재고용에 따른 비정규직 중심의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조성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현재 일본 상장기업주식 중 외자계 비중은 17-18% 수준으로 경영의 주도권은 확실하고 안정되게 일본인에 의해 장악되고 있고, 전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은 25% 수준에 불과하며 바로 이 점이 노사안정의 토대이고 가계의 소비지출이 크게 변화되지 않게 하는 기능, 즉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를 막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즉 일본경제는 장기침체라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성장시스템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다른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다시 생각하는 한국경제 장기침체의 원인
반면, 한국경제가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여 무리한 부양책으로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한 2002년을 제외하면) 2000년 이후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시스템의 마련 없이 기존의 성장시스템을 해체시킨 결과다. 1985년 1월 레이건 연두교서에서 드러난 금융부분으로 자본의 재배치를 비롯해 80년대 후반부터 세계경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으나, 87(년)체제로 등장한 우리사회의 새로운 주역들은 새로운 시대와의 조응(照應)에 실패하였다.
세계화선언(1995.1.25)과 OECD 가입(1995.1 가입 신청과 1996.12 가입 확정) 등 문민정부의 분별없는 세계화와 그에 따른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국민의 정부는 경제위기의 타개라는 명분에서 영미형 시장경제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기존의 <고부채-고투자-고성장>이라는 위험공유에 의한 성장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가능성은 투자와 소비 위축 그리고 수출경쟁력의 추세적 약화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투자 위축은 외국자본의 영향력 증대, 민관공조의 투자리스크관리체계의 붕괴, 필요한 인적자본의 공급 미비, 새로운 경제환경에 필요한 공간 및 제도 인프라 미비 등에 따른 경영권 안정성의 약화, 단기 실적 위주의 안정적 경영, <신기술-신산업> 분야에 대한 소극적 투자 등에서 기인한다.
둘째, 소비 위축은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온 고용구조의 불안정성의 증대에 따른 결과다. 고용구조의 불안정성의 증대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는커녕 변화하는 환경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낡은 교육시스템과 앞에서 지적한 기업의 투자 위축에서 비롯한다.
셋째, 최근 수출의 침체는 한국의 양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최종수요가 둔화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의 구조로서는 한국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수출경쟁력의 약화 추세를 피할 수 없다. 이는 한편으로는 중국경제 등의 부상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술-신산업> 분야를 위한 인적자본의 공급에 필요한 교육시스템의 부재와 투자 위축으로 IT를 비롯한 현재의 주력산업 이후(소위 신성장동력산업)가 준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동북아 차원의 청사진부터 마련해야
이밖에도 투자 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는 공간인프라의 정비는 노무현 정부의 분권전략과 관련된 것이다. 최근 수도권 규제 완화와 균형 발전의 대립에서 보듯이 참여정부의 분권전략은 공공자원의 분산 차원을 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의 준비없이 추진된 것이었다.
현재 중국의 부상으로 국내 제조업은 급속히 공동화되고 있고, 최근 빠르게 증가되고 있는 중국의 북한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 민족경제의 구상에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한미간의 신뢰 구조의 문제로 인해 남북경협을 비롯한 민족협력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은 북핵 및 북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와 동북아 구상은 국내 제조업의 생산기반이자 물적자본 주도의 성장동력 유지 및 확보라는 차원에서, 북한경제의 재건과 민족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동북아 성장에너지의 적극적 활용을 통한 새로운 성장기반의 마련이라는 점에서 다차원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균형발전(분권전략)과 연계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공자원의 분산은 제로섬 게임이기에 대립과 갈등만 격화시킬 수 있는 반면,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과 분권전략을 연계시킬 때 플러스섬 게임의 분권전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배근(운영위원장, 건국대 경상학부 교수)
‘일본식 장기불황’의 가능성?
지난 5월 30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전북 무주리조트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중앙위원 연석회의에서 "현 단계에서 경제시스템의 획기적 개선(Quantum Jump)을 이루지 못할 경우 일본과 같은 장기침체의 늪에 빠질 소지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는 지난 5월 20일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동기에 비해 2.7% 성장하는데 그쳤고, 수출증가율도 한자리 수로 둔화됐다는 발표에 뒤이어 나온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한달 보름 전인 지난 4월16일 터키를 방문, 동포간담회 등의 자리에서 “한국경제는 완전히 회복됐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기에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경제부총리의 ‘일본식 장기침체’ 가능성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지난 2년간 내수불황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수출증가율이 둔화되면서 지난 4월에는 경상수지가 2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서고 경기선행지수도 하락으로 반전되면서 '내외수 복합불황'이 도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대부분의 경제전문가와 경제연구소들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를 강하게 피력할 때 필자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줄곧 한국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질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4월 3일자 칼럼 참고). 그러나 필자가 주장한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우려’는 경제부총리가 제기한 ‘일본식 장기불황’의 내용과는 크게 다르다.
일본식 장기불황과 다른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
지난 5월 25일 일본의 이토 타쯔야 금융담당 대신은 금융청(FSA)을 통해 "올 3월 기준 주요 시중은행의 전체 여신 대비 무수익여신(NPL) 비율이 2002년의 절반 수준인 2.9%로 떨어져 부실대출 문제가 정상화됐다"는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는 경기가 정점을 통과한 1991년 2월 이후 일본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고,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대변하던 일본 금융권의 부실대출 문제에 금융감독당국이 위기 탈출에 성공했다고 공식선언을 한 것이다.
침체의 기간으로 보나 지불한 비용으로 보나 일본의 금융개혁은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1990년대 금융권의 부실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9조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2000년 이후에 투입된 공적자금도 50조엔으로 추정된다. 은행의 구조조정 및 부실채권 처리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이 이처럼 ‘아주 고통스러운 과정’(점진적인 방법)을 선택함으로써 은행 및 기업의 경영정상화가 지연되는 측면이 있었지만, 한국과 달리 은행이나 주요 기업들을 사실상 외국자본에 넘겨주거나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규모의 실업 발생, 그리고 비정규직으로의 재고용에 따른 비정규직 중심의 불안정한 고용구조를 조성시키지는 않았던 것이다.
현재 일본 상장기업주식 중 외자계 비중은 17-18% 수준으로 경영의 주도권은 확실하고 안정되게 일본인에 의해 장악되고 있고, 전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은 25% 수준에 불과하며 바로 이 점이 노사안정의 토대이고 가계의 소비지출이 크게 변화되지 않게 하는 기능, 즉 소득과 소비의 양극화를 막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즉 일본경제는 장기침체라는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성장시스템을 유지하였던 것이다. 다른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다시 생각하는 한국경제 장기침체의 원인
반면, 한국경제가 (정치적 일정을 고려하여 무리한 부양책으로 6%대의 성장률을 기록한 2002년을 제외하면) 2000년 이후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표현하면 외환위기 이후 새로운 시스템의 마련 없이 기존의 성장시스템을 해체시킨 결과다. 1985년 1월 레이건 연두교서에서 드러난 금융부분으로 자본의 재배치를 비롯해 80년대 후반부터 세계경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으나, 87(년)체제로 등장한 우리사회의 새로운 주역들은 새로운 시대와의 조응(照應)에 실패하였다.
세계화선언(1995.1.25)과 OECD 가입(1995.1 가입 신청과 1996.12 가입 확정) 등 문민정부의 분별없는 세계화와 그에 따른 경제위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국민의 정부는 경제위기의 타개라는 명분에서 영미형 시장경제모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기존의 <고부채-고투자-고성장>이라는 위험공유에 의한 성장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이다.
현재 한국경제의 장기침체의 가능성은 투자와 소비 위축 그리고 수출경쟁력의 추세적 약화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투자 위축은 외국자본의 영향력 증대, 민관공조의 투자리스크관리체계의 붕괴, 필요한 인적자본의 공급 미비, 새로운 경제환경에 필요한 공간 및 제도 인프라 미비 등에 따른 경영권 안정성의 약화, 단기 실적 위주의 안정적 경영, <신기술-신산업> 분야에 대한 소극적 투자 등에서 기인한다.
둘째, 소비 위축은 소득의 양극화를 가져온 고용구조의 불안정성의 증대에 따른 결과다. 고용구조의 불안정성의 증대는 새로운 시대를 선도하기는커녕 변화하는 환경조차 쫓아가지 못하는 낡은 교육시스템과 앞에서 지적한 기업의 투자 위축에서 비롯한다.
셋째, 최근 수출의 침체는 한국의 양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최종수요가 둔화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현재의 구조로서는 한국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수출경쟁력의 약화 추세를 피할 수 없다. 이는 한편으로는 중국경제 등의 부상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기술-신산업> 분야를 위한 인적자본의 공급에 필요한 교육시스템의 부재와 투자 위축으로 IT를 비롯한 현재의 주력산업 이후(소위 신성장동력산업)가 준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동북아 차원의 청사진부터 마련해야
이밖에도 투자 위축의 원인이 되고 있는 공간인프라의 정비는 노무현 정부의 분권전략과 관련된 것이다. 최근 수도권 규제 완화와 균형 발전의 대립에서 보듯이 참여정부의 분권전략은 공공자원의 분산 차원을 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의 준비없이 추진된 것이었다.
현재 중국의 부상으로 국내 제조업은 급속히 공동화되고 있고, 최근 빠르게 증가되고 있는 중국의 북한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 민족경제의 구상에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한미간의 신뢰 구조의 문제로 인해 남북경협을 비롯한 민족협력이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은 북핵 및 북한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와 동북아 구상은 국내 제조업의 생산기반이자 물적자본 주도의 성장동력 유지 및 확보라는 차원에서, 북한경제의 재건과 민족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동북아 성장에너지의 적극적 활용을 통한 새로운 성장기반의 마련이라는 점에서 다차원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에 균형발전(분권전략)과 연계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공공자원의 분산은 제로섬 게임이기에 대립과 갈등만 격화시킬 수 있는 반면,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과 분권전략을 연계시킬 때 플러스섬 게임의 분권전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