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회복,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by 최배근 posted Jun 15, 2005
최배근 (운영위원장, 건국대 경상학부 교수)

앞의 칼럼에서 한국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현재의 한국경제가 투자의 구조적 위축이라는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병을 고치려면 의사는 먼저 병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경우 원인을 치료하기보다는 대증요법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투자의 구조적 위축의 원인으로 하나는 과거의 유산에 대한 잘못된 처방으로 시스템의 소멸을 지적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투자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낡은 제도와 공간 인프라의 문제다. 따라서 투자 위축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체질에 맞는 시스템을 재구축하고, 동시에 제도 및 공간 인프라 전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새로운 성장시스템은 어디에

첫째, 과거 개발독재기의 성장시스템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단과 민주주의 빈곤으로 인해 두가지 취약점을 갖고 있는 ‘불구의 시스템’이었다. 개발독재기의 경제성장시스템은 '고부채-고투자-고성장'(정부-은행-기업의 협조체계)으로 요약되는 정부와 민간부문이 위험을 공유하는 ‘위험공유시스템’ 혹은 ‘민관 공조의 투자리스크 관리체계’였다.

그러나 개발독재기의 ‘위험공유시스템’은 관치금융과 정경유착 그리고 외환위기 등의 부정적 이미지가 보여주듯이 이익의 공유없이 ‘위험과 손실만’이 공유되고, 의사결정의 비민주적 구조로 공정성과 투명성을 결여한 불구의 시스템이었다. 즉 기업과 국민경제의 고성장은 높은 투자율에서 가능하였고, 높은 투자율은 외환위기 이전 한국 대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에서 보듯이 은행 차입으로 가능하였다.

한편 빠른 압축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의 대주주 소유지분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었고, 경영권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응이 주식의 상호출자였다. 실제로 기업의 대주주는 경영권 유지에 대한 높은 욕구로 주식공개나 유상증자 방식을 통한 자금조달을 기피하였다. 반면, 차입형 기업 확장이 잘못된 투자로 결과할 경우 기업들의 연쇄 부도는 물론이고 은행 파산과 국민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실제로 과거 정부는 재벌기업의 도산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을 우려하여, 또 은행은 재벌기업에 발목이 잡힌 관계로 국민의 부담 하에 추가지원을 계속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위 ‘대마불사론’의 핵심이다. 게다가 기업 성장의 과실은 공정하게 분배되었는가? 정경유착과 엄청난 규모의 정치자금 등에서 보듯이,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에서 보듯이 관치금융과 정경유착 그리고 ‘성장의 그늘’은 ‘위험공유시스템’의 정당성을 훼손시켰던 것이다.

투자리스크 관리체계부터 복원해야

우리 사회는 개발독재의 종식과 더불어 이익의 공유 없이 위험과 손실을 사회화시킨 ‘불구의 시스템’을 정상화시켜야 했다. 즉 민주화는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위험공유시스템을 업그레이드 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87년체제’는 개발독재의 유산인 ‘위험과 손실만’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청산대상'으로만 인식하였다. 그리고 그 자리를 우리 사회의 토대와는 거리가 먼 자본시장 중심의 영미시스템으로 대체하였고, 그 결과는 외국인 자본의 영향력 증대에 따른 은행의 금융중개기능 약화, 경영권 안정성의 위협 증대, 단기 실적 위주의 안정적 경영과 중장기투자의 기피, 상시적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졌다. 즉 대안 없는 위험공유시스템의 해체가 투자의 위축과 고용구조의 악화라는 구조적 내수침체와 양극화를 결과한 것이다.

따라서 여전히 유효성이 남아 있고 필요성이 있는 민관 공조의 투자리스크 관리체계의 복원이 필요하다. 물론 새로운 시스템은 위험과 손실만이 아니라 이익이 공유되고, 투명성의 강화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업그레이드된 민관 공조의 투자리스크 관리체계의 복원을 전제로 경영권 안정성 문제도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 함께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식기반경제의 선결조건, 교육혁신

둘째, 투자 위축과 고용구조의 불안정 그리고 양극화 문제는 낡은 교육시스템과 관련을 갖고 있다. 향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와 관련된 신성장동력산업(신기술-신산업)의 육성과 지식기반경제로의 진입은 교육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조업의 경우 설비투자(물적자본)의 고용 및 성장 유발효과가 높았던 반면, ‘혁신주도형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역으로 인적자본이 설비투자를 유발한다. 즉 자본의 부족이 성장의 걸림돌이 아니라 인적자원(인재) 공급의 부족이 성장과 고용의 걸림돌이다.

산업사회의 산물인 현재의 대학 및 교육시스템, 특히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이룬 사회의 교육시스템으로는 지식사회와 지식기반경제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할 수가 없다. 평균적인 지식과 기술의 인적자원을 공급하고 있는 현재의 대학과 교육시스템으로는 기업과 사회발전의 신 동력인 ‘다양성 관리’에 부응해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편, 대학이 사회보다 뒤쳐진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낡은 제도’인 대학의 변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짧게는 3년, 길게는 향후 15년 이후 우리 공동체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현재 대학에서 수행하는 인적자원 공급 방식의 문제에 대한 타개책으로 산학(연)협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 방식으로는 기껏해야 기업의 현재 수요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지식기반경제의 고부가가치는 신속성과 유연성을 생명으로 한다.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만이 생존할 수밖에 없고, 또한 중장기적인 기업과 공동체의 생존 및 번영을 위해서는 기업 주도의 교육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사회발전을 대학이 선도할 수 있는 교육혁신이 시급하다. 공공성과 다양성의 원칙에 기초한 교육혁신만이 투자 회복은 물론이고 청년층실업 문제 등 고용 문제와 사회양극화 문제를 접근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지역균형발전, 분산이 아니라 공간전략 필요

마지막으로 투자 위축은 경제환경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낡은 공간인프라와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기존의 중화학공업은 영남권에 밀집되었으나 중국시장의 성장에 따라 성장과 투자의 축이 정보통신산업을 중심으로 수도권 및 수도권과 가까운 서해안쪽으로 오래 전부터 이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간 구도의 변화가 수도권 집중과 불균형 발전에 따른 지방소외의 문제와도 충돌하고 있다.

산업구조의 전환, (중국경제의 부상 등) 대외경제환경의 변화, 제조업 기반의 유지, 그리고 북한 지역의 경제 재건 등과 관련하여 한반도 및 동북아의 공간인프라를 구상해야 한다. 따라서 공공자원의 분산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지역균형발전(분권)전략은 그 시야를 한반도 및 동북아 구상으로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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