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대립과 21세기식 이이제이(以夷制夷)

by KG posted Jul 12, 2005
21세기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동남아를 거쳐 인도, 중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중국과 기존의 포위망을 더욱 강화하려는 미국사이의 외교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직접 대면을 통해서는 교류와 협력을 역설하면서도 주변국과의 외교에서는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통해 상대와의 대립과 갈등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옛 영화를 되찾고 싶어하는 러시아와 손을 잡았다. 7월 1일 모스코바에서 채택된 21세기 국제질서에 대한 공동선언이 그것이다. 양국 정상은 선언을 통해, “모든 국가는 각자 특성에 맞는 발전방법을 찾고 국제이슈에서 동등한 참여를 보장받아야 하며,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하되 일방적 행동은 피하고 독재정책이나 무력에 의한 위협과 사용에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 “주권국의 객관적인 발전과정을 무시하고 외부로부터 특정한 사회정치적 모델을 강요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며, 국제적인 인권보호도 모든 국가의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분리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체첸사태와 양안 문제에 대해서도 상호지원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경분쟁 등 40년 동안의 갈등을 청산하고 미국의 포위망을 뚫기 위해 중국이 러시아의 손을 잡은 것이다.

중국식 이이제이 - 러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그리고 이 선언이 외교적 수사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역사상 최초의 양국 합동군사훈련을 예정해놓고 있다. 훈련 장소 또한 애초 예정되었던 중국 서부 신장성 일대가 아닌 발해만으로, 8천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8월 18일부터 실시할 예정이다. 훈련명은 ‘평화사명 2005’. 한마디로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일방적인 외교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의 개입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와 동시에 한국-일본-대만-필리핀-베트남-괌으로 이어지는 태평양의 대중국 봉쇄라인 앞에서 무력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또 7월 5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4개국과의 공동성명을 통해 “9.11 이후 아프간에서의 반테러 군사작전은 종료단계에 있으므로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주둔중인 미군의 철수 시한을 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략적 요충지인 중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고 있던 미국에게 공식적으로 철수를 요구한 것이다. 중국은 이번 회의에 이란과 파키스탄을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시킴으로써 이슬람을 끌어들이는 한편, 지난 3월 키르기스스탄 레몬혁명과 5월 우즈베키스탄 시민폭동의 배후로 미국을 의심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미국이 선점한 서쪽의 봉쇄라인을 뚫겠다는 것이다.

인도 및 동남아시아 국가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6월 2일에는 러시아, 인도와의 3개국 외무장관회담을 통해 경제협력 및 상호존중과 다극체제(Multi-Polarity)로의 진전에 기반한 공정한 국제질서를 선호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7월 5일에는 태국,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 5개국과 메콩강 하류지역(GMS) 정상회의를 갖고 총250억 달러 규모의 개발계획인 쿤밍선언을 채택했다. 이들 국가를 중화경제권역에 포함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전통적인 이이제이를 통해 미국의 대중국 포위망을 뚫겠다는 것이다.




미국식 이이제이 - 대만, 인도, 베트남

중국의 행보에 맞선 미국의 움직임 역시 빨라지고 있다. 홍콩언론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군사훈련에 맞서 올 하반기 대만, 일본이 참가하는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훈련명은 ‘프랜드십 2005’. 기존의 미일군사훈련에 대만을 참가시켜 노골적으로 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다. 또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의 중앙아시아 주둔 미군 철수요청에 대해서는 “아프가니스탄은 여전히 반테러를 위해 미군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한마디로 거부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중앙아시아를 결코 중국과 러시아에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6월 29일 인도와 군사협력 조약을 체결하고 향후 10년간 무기공동생산, 미사일 방위 협력 등 군사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BRICs의 일원으로 중국과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도를 통해 중국의 인도양 진출을 봉쇄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지난 6월 21일에는 베트남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군 전함의 베트남 항구 정박과 미국의 베트남 장교 군사훈련 지원 등에 합의했다. 중국을 막기 위한 미국식 이이제이인 것이다.

이강제강(以强制强)의 길 찾아야

자본과 에너지를 급속도로 빨아들이며,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으로 급부상하는 중국과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고 막아내기 위한 미국의 대립이 더욱 치열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문제는 그 틈바구니에 한반도가 있다는 사실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을 향하는 과정에서 미중간의 대립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시급하게는 올 하반기 서해에서는 중-러군사훈련이, 동해에서는 미-일군사훈련이 실시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한반도가 미중간 힘겨루기의 대결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이지만 21세기에 새로운 버전으로 되살아난 이이제이 전략에 맞서 우리는 이강제강(以强制强)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립하고 있는 미중 양국과 전략적 파트너로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인도와 베트남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족공조와 국제협력의 이분법을 뛰어넘어 한반도 문제의 이니셔티브를 되찾아오는 방법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우리 사회가 내향(內向)의 굴레에서 벗어나느냐에 있고, 그 책임은 급변하는 세계질서에 눈감고 연정(聯政) 논란 등 내부의 정치구상에만 몰두하는 20세기적인 정치리더십의 극복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