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지각변동이 가시화되고 있다. 그 주요 진앙지는 세 곳이니 베이징과 워싱턴 그리고 평양이다. 안타깝게도 6자회담의 다른 당사자들인 서울과 도쿄 그리고 모스크바는 주변부로 밀리고 있다. 그런데 그 한 곳은 자업자득, 또 한 곳은 무임승차심리, 나머지 한 곳은 소극적인 선택에 기인한 바가 크니 가히 반세기 전의 6.25 때와 달라진 바가 없다.
지난 7월1일 마침내 CAFTA(Chinese-ASEAN Free Trade Agreement)가 공식 발효되었다. 아세안을 향한 한중일의 경쟁이 중국의 판정승으로 끝난 셈이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내막은 원래 화교자본이 아세안 즉, 동남아의 금융 60%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과감한 투자로 인해 중국은 97년 유동성 위기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권역과 세계 인구의 30%인 18억의 시장이 중화 경제권으로 편입된다는 말이다.
이를 축하라도 하듯 지금 산동반도에서 발해만까지 1만에 달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최정예 핵전력이 육해공 합동군사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두 달 뒤에는 러시아의 뒤를 이어 인도가 또 중국의 카운터 파트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CAFTA가 느닷없이 나온 것이 아니듯, 브라질만 뺀 BRICs가 중국 주도로 모여서 반미동맹을 시위하는 것도 2001년에 결성된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CAFTA와 격변하는 동아시아
미국이 중국의 급소라고 생각하는 대만 문제 또한 녹록치 않다. 마잉주 타이베이 시장의 인기몰이에서 보듯이 이미 대만은 정서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통합되어 가고 있다. 올해 들어 떠들썩하게 치러졌던 3차 국공합작 릴레이 이벤트에 미국은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무더위에 지친 건 서울만이 아니다. 워싱턴은 더할 수도 있다. 나탄 샤란스키의 조언에 따른 중동의 재편은 소문만 무성한 잔치다. 이라크전쟁의 결론은 시아파와 쿠르드의 힘을 배가하여 아랍세계의 근본주의 성향만 부채질 하고 있으며, 변죽만 울린 가자지구의 정착촌 철수 이벤트는 역시 유대 근본주의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스탄은 자국 영토에 미국과 러시아 기지를 동시에 유치하는 양다리 외교를 하고 있으며, 이란의 유전자원 만큼은 양보 못 하겠다는 ‘늙은 유럽’의 전의도 불타고 있다.
아시아의 혈맹이랄 수 있는 일본은 더하다. 일본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국경 및 역사분쟁으로 날을 지세고 있어 워싱턴의 동아시아 전략의 믿음직한 동업자라기보다 기껏 모은 손님들을 죄다 쫓아내는 불청객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기실 일본의 앞뒤 없는 도발이 아니었더라면 저토록 'Grand China'가 힘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평양은 이 모든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 앉은 고수 중의 고수다. 지난 반세기를 오로지 양다리 외교로 버텨왔으며 지금 또한 변형된 양다리 외교에 다름 아니다. 초기에 그토록 6자회담에 반발했던 평양이 이제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다시금 판을 이끌고 있다. 지난 2월10일 핵보유국 선언 이래로 아예 핵클럽의 일원임을 기정사실화하고 6자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하자고 떼를 써온 그들이다. 그런데 그 도저히 먹힐 수 없는 강변이 워싱턴을 흔들고 있다. 평양이 그토록 바라고 키신저가 그토록 만류했던 6자회담 틀 내의 양자회담이 현실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전략적 모호성까지 팽개치고 크리스토퍼 힐은 평화적 핵 이용과 평화협정까지 내놓고 밝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히 클린턴에 이어 부시까지 물 먹인 평양외교의 결정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고려할 때 서울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Naive)의 표본이다. 한미동맹의 핵심인 인계철선이 무너지고 주한미군 지상군이 감축되고 있음에도 한미동맹은 건재하다 외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무덤이 되고 있는 위안화 블랙홀이 제도화되고 동북공정의 루트가 합동군사훈련으로 떠들썩함에도, 베이징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20세기 인류사회에서 유일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낸 저력은 쇠락해 가고 민주화 이래 오늘까지 글로벌은커녕 국제사회의 우물안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까지 만들어가며 스스로 탈냉전과 탈분단의 이니셔티브를 연출했음에도 김영삼 정부에선 한반도구상은 만들지도 못하고 국제사회와 남북관계에서 냉온탕만 거듭 드나들면서 이전의 자산까지 모두 상실해버렸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자산은 물론이고 인프라까지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끊임없이 동맹의 진의를 캐묻다가 인계철선을 허물어버렸고, 베이징은 마늘 파동 이래 노골적으로 서울을 무시하며 아예 이북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동북4성으로 간주하고 밀고 들어오고 있으며, 일본까지 피랍문제를 기화로 순식간에 코리안의 가해자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독도를 시발로 정한론의 야욕을 불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리아, 옵저버가 아니라 오너가 되어야
10여 년 만에 국제사회와 한반도문제에서 서울이 옵저버 신세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이유는 내향과 근거 없는 환상으로 인한 자업자득이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개발기적 그리고 민주주의와 글로벌 디지털 테스트베드에 이르기까지 수미일관은 외향의 전략이다. 에너지의 전량과 식량의 대종 그리고 안보는 물론 시장까지 모두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가로서 외향은 필수이며 생존의 기본방식인 것이다.
코리아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전 세계가 쓰지 않는 동북아 류의 개념부터 폐기하고, 과거와 분권의 내부 살림을 국가전략으로 환치하는 결벽증을 벗어나서, 코리아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제2의 개발신화에 5천만과 팬코리아 3천만의 지혜와 자산을 동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멀리 내다보자. 지금은 차기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바뀔 동아시아의 지도와 세계적인 석유전쟁에서 코리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촌음과 주야를 잊고 몰두해야 할 때이다.
지난 7월1일 마침내 CAFTA(Chinese-ASEAN Free Trade Agreement)가 공식 발효되었다. 아세안을 향한 한중일의 경쟁이 중국의 판정승으로 끝난 셈이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내막은 원래 화교자본이 아세안 즉, 동남아의 금융 60%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과감한 투자로 인해 중국은 97년 유동성 위기도 무사히 지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모든 권역과 세계 인구의 30%인 18억의 시장이 중화 경제권으로 편입된다는 말이다.
이를 축하라도 하듯 지금 산동반도에서 발해만까지 1만에 달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최정예 핵전력이 육해공 합동군사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두 달 뒤에는 러시아의 뒤를 이어 인도가 또 중국의 카운터 파트너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CAFTA가 느닷없이 나온 것이 아니듯, 브라질만 뺀 BRICs가 중국 주도로 모여서 반미동맹을 시위하는 것도 2001년에 결성된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에서부터 이어져 온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CAFTA와 격변하는 동아시아
미국이 중국의 급소라고 생각하는 대만 문제 또한 녹록치 않다. 마잉주 타이베이 시장의 인기몰이에서 보듯이 이미 대만은 정서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국에 통합되어 가고 있다. 올해 들어 떠들썩하게 치러졌던 3차 국공합작 릴레이 이벤트에 미국은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무더위에 지친 건 서울만이 아니다. 워싱턴은 더할 수도 있다. 나탄 샤란스키의 조언에 따른 중동의 재편은 소문만 무성한 잔치다. 이라크전쟁의 결론은 시아파와 쿠르드의 힘을 배가하여 아랍세계의 근본주의 성향만 부채질 하고 있으며, 변죽만 울린 가자지구의 정착촌 철수 이벤트는 역시 유대 근본주의에게 날개를 달아줄 수도 있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키스스탄은 자국 영토에 미국과 러시아 기지를 동시에 유치하는 양다리 외교를 하고 있으며, 이란의 유전자원 만큼은 양보 못 하겠다는 ‘늙은 유럽’의 전의도 불타고 있다.
아시아의 혈맹이랄 수 있는 일본은 더하다. 일본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모든 나라들과 국경 및 역사분쟁으로 날을 지세고 있어 워싱턴의 동아시아 전략의 믿음직한 동업자라기보다 기껏 모은 손님들을 죄다 쫓아내는 불청객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 기실 일본의 앞뒤 없는 도발이 아니었더라면 저토록 'Grand China'가 힘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평양은 이 모든 플레이어들의 머리 위에 앉은 고수 중의 고수다. 지난 반세기를 오로지 양다리 외교로 버텨왔으며 지금 또한 변형된 양다리 외교에 다름 아니다. 초기에 그토록 6자회담에 반발했던 평양이 이제는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여 다시금 판을 이끌고 있다. 지난 2월10일 핵보유국 선언 이래로 아예 핵클럽의 일원임을 기정사실화하고 6자회담을 핵군축회담으로 하자고 떼를 써온 그들이다. 그런데 그 도저히 먹힐 수 없는 강변이 워싱턴을 흔들고 있다. 평양이 그토록 바라고 키신저가 그토록 만류했던 6자회담 틀 내의 양자회담이 현실이 되었을 뿐 아니라 전략적 모호성까지 팽개치고 크리스토퍼 힐은 평화적 핵 이용과 평화협정까지 내놓고 밝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히 클린턴에 이어 부시까지 물 먹인 평양외교의 결정판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지각변동을 고려할 때 서울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Naive)의 표본이다. 한미동맹의 핵심인 인계철선이 무너지고 주한미군 지상군이 감축되고 있음에도 한미동맹은 건재하다 외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의 무덤이 되고 있는 위안화 블랙홀이 제도화되고 동북공정의 루트가 합동군사훈련으로 떠들썩함에도, 베이징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별다른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다.
20세기 인류사회에서 유일의 경제기적을 만들어낸 저력은 쇠락해 가고 민주화 이래 오늘까지 글로벌은커녕 국제사회의 우물안개구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시절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까지 만들어가며 스스로 탈냉전과 탈분단의 이니셔티브를 연출했음에도 김영삼 정부에선 한반도구상은 만들지도 못하고 국제사회와 남북관계에서 냉온탕만 거듭 드나들면서 이전의 자산까지 모두 상실해버렸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더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자산은 물론이고 인프라까지 무너지고 있다. 미국은 끊임없이 동맹의 진의를 캐묻다가 인계철선을 허물어버렸고, 베이징은 마늘 파동 이래 노골적으로 서울을 무시하며 아예 이북을 재조지은(再造之恩)의 동북4성으로 간주하고 밀고 들어오고 있으며, 일본까지 피랍문제를 기화로 순식간에 코리안의 가해자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독도를 시발로 정한론의 야욕을 불태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리아, 옵저버가 아니라 오너가 되어야
10여 년 만에 국제사회와 한반도문제에서 서울이 옵저버 신세로 전락하고만 것이다. 이유는 내향과 근거 없는 환상으로 인한 자업자득이다. 대한민국의 생존과 개발기적 그리고 민주주의와 글로벌 디지털 테스트베드에 이르기까지 수미일관은 외향의 전략이다. 에너지의 전량과 식량의 대종 그리고 안보는 물론 시장까지 모두를 해외에 의존하는 국가로서 외향은 필수이며 생존의 기본방식인 것이다.
코리아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전 세계가 쓰지 않는 동북아 류의 개념부터 폐기하고, 과거와 분권의 내부 살림을 국가전략으로 환치하는 결벽증을 벗어나서, 코리아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드는 제2의 개발신화에 5천만과 팬코리아 3천만의 지혜와 자산을 동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멀리 내다보자. 지금은 차기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전후로 바뀔 동아시아의 지도와 세계적인 석유전쟁에서 코리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촌음과 주야를 잊고 몰두해야 할 때이다.